토요일, 12월 29, 2007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

학생시절에 연극관련 과목의 과제를 위해 봤던 연극이었다. 이후로 나의 일기장에는 생활이 팍팍하게 느껴져 "자기감각, 자아" 등의 말이 필요한 때면 내용을 상기하며 유쾌하게 끝난 연극의 마지막 장면처럼 "카사블랑카여 다시한번!" 으로 마무리를 지으며 다짐을 새롭게 하곤 했다.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영화 카사블랑카를 보면서 영화속의 주인공(험프리 보가트)를 닮고 싶어하는 주인공 앨런의 독백으로 연극은 시작된다. 그는 아내에게 이혼당한 남자이며 꽤나 소심한 성격이다. 친구인 딕과 그의 아내 린다의 도움으로 앨런은 많은 여성을 소개받고 만나지만 지속된 관계로 이어지지 않는다. 나름대로 작업성 멘트를 준비하고 상황을 만들려 하지만 어리숙한 치장을 한 한심한 모습을 하고 있는 앨런에게 호감을 느끼는 여성은 없다. 만날때 마다 퇴자를 맞게 된다. 낙담한 앨런을 린다는 다독거리면서 위로한다. 차츰 린다와 사이가 가까워진 앨런은 그녀에게 마음을 품게 된다.

한편, 딕은 아내가 다른 남자와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만 설마 그가 앨런일 것이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다. 연극은 마지막으로 가면서 앨런과 린다는 연인 사이로 발전하지만 관계가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은 서로 알고 있다. 결국 앨런은 살아가는데 있어 중요한건 자아존중감 이라는걸 알게 되고 어설픈 치장 대신 솔직함에서 오는 자신감으로 상대방을 대하게 됨으로써 드디어 매력적인 여성과 데이트 약속을 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행복한 결말로 끝을 낸다.

연극의 재미있는 설정으로 험프리 보가트의 분신이 연극 중간중간에 등장 한다. 긴 코트를 입고 나타난 험프리 보가트는 자아존중감이 약한 앨런에게 시시콜콜 간섭을 하며 조언을 한다. "자, 이제 그녀에게 키스할 때라구. 머뭇거리지 마." 이런 식으로 충고를 들려준다. 자아를 잃어버리고 대중매체속의 가공된 이미지 또는 타인에 대한 의식이 중심에 서서 그것에 이끌려 가는 사람들의 혼란스러움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에 앨런이 자아존중감을 가지게 되었을때 험프리 보거트는 더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앨런의 마음속에 자기자신이 제일 먼저 자리를 잡게 되었고 누구의 눈치볼 필요없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게 된 것이다.

연극은 코믹하게 이뤄져 있다. 어슬픈 앨런이 작업을 걸때 사용한 대사중 기억에 남는 부분이다.

알렌 : 토요일 저녁에 뭐 할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여자 : ( 나가며 )자살 할 거에요.
알렌 : ( 나가는 여자를 뒤쫓으며 ) 그럼 금요일은요 ?

세상살이라는게 여러 조직에 얽매여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내가 내 삶을 살아가는게 아니라 타인의 의식에 얽매여서 살아가게 될때가 많다. 마음의 중심에 나 대신 타인이 대한 의식, 타인의 생각이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괜한 일에도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다. 스스로 헤쳐가야할 일에도 다른 사람의 눈을 먼저 의식해야 한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로써 완벽한 삶이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문제점들을 일으키고 또 안고 가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중요한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모두 내것으로 인정을 하고 받아 들이는 자세일 것이다. 장·단점을 받아 들이고 스스로 해결해 나가려는 자아존중감이야말로 세상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2008년이다. 새해에 또 다시 외쳐본다.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 ! "

목요일, 12월 27, 2007

호빵 CF

기억에 남는 광고가 여럿 있는데 이건 겨울이면 한번씩 생각나는 광고다. 언제 시작되었던 건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몇해동안 가게마다 호빵이 나올 무렵이면 방송되었던거 같다. 특별하게 동물들만 출연 하는데 미끌어져 넘어지는 펭귄의 모습과 물개가 머리를 들고 있는 모습은 이 광고의 백미였다.

수요일, 12월 26, 2007

다이어리

블로그의 이름처럼 종이를 담고 있는 다이어리는 내가 애지중지하는 물건중의 하나이다. 좋아하는 물건을 많이 갖게 되어 좋을거 같기도 하지만 그게 그렇지만도 않다. 필기를 대신할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이 있는 세상에서 한권의 다이어리를 채우는건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어서 대부분의 것들이 한동안 책꽂이에 꽂혀있다가 내지만 따로 빼서 쓰여지거나 쓰레기통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된다. 올연말에만 우리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지급한 것에서부터 협력업체들이 홍보용으로 배포하는것까지 대여섯권이 책꽂이를 차지하고 있다.

수많은 다이어리가 내손에 들어왔었지만 그중 기억에 남는 다이어리가 세권 정도 있다. 처음으로 다이어리를 소유했던건 고등학교때 아버지가 집에 가져오셨던 다이어리였다. 일반 노트 사이즈로 큼지막해 일기장으로도 적당해 그때부터 군대가기전까지 일기장으로 활용을 했었다. 없던 문장력을 그나마 확장시켜주었던 존재였었다. 질풍노도와 같았던 그 시기들의 상념들이 담겨 있다.

두번째는 군대 시절에 사용했던 다이어리 였다. 다이어리가 있으면 개인적인 영역이 생길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외출 나가던 이에게 부탁해서 구입했다. 컴팩트사이즈(10.8inch)를 말했었는데 클래식사이즈(14inch)를 받았었다. - 내지의 사이즈를 이렇게 말한다는 것도 최근에 안 사실이다. - 처음엔 조금 커보이는 다이어리가 못마땅했으나 이런저런 잡념과 넋두리들을 담아가기엔 안성 맞춤인 크기임을 알 수 있었다. 보안규정상 일기를 쓰는건 불법이라는 말에(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몰랐다 ) 검열때마다 숨겨 가면서 삶의 편린들을 기록으로 남긴 덕에 적어도 내게는 어떤 추억록 보다도 빛나는 추억록을 가지고 나올 수 있었다. 물론 소심했던 마음은 제대하느날 마지막 검문소를 통과할때까지 조마조마 해야 했었다.

세번째는 지금도 간간이 빈종이를 채워가고 있는 낡을데로 낡은 다이어리다. 처음 내손에 들어왔던건 서울에서 사회생활을 갓 시작했을 때쯤 진주집을 찾았을때였다. 몇장 쓰여지지 않은 다이어리가 눈에 띄길래 가져와 내가 사용했었다. 그때의 나는 알 수 없이 돌아가는 세상일들로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고 있을때이기도 했다. 마침 그때 처음으로 내 손에 들어왔던 지우개가 달린 오렌지색 Dixon연필과 함께 힘겨웠던 시간들을 내 하소연과 이야기들을 내내 묵묵히 들어 주던 고마운 존재가 되어 갔다. 어디에나 함께 다니는 존재가 되어 가방 없이도 다이어리 만큼은 손에 쥐고 다녔고 -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디자인적으로 봐도 별로인 그 무거운 다이어리를 손에 쥐고 다니는 모습을 떠올리면. - 산에 갈때 배낭속에 까지 넣어서 가지고 다닐만큼 분신과 다름없는 존재이기도 했다.


다이어리를 좋아하지만 그 물건 자체에 의미를 부여고 싶지는 않다. 물건 자체가 의미를 가지는 명품 다이어리를 소유하고 싶은 바램은 없다. 평범한 물건이 내 손에 들어와 의미를 부여 받는 과정이 좋다. 실용의 의미를 넘어 흐르는 생각들까지 틈틈이 담는 영혼의 교감까지 나누는 존재가 되는 그 과정 말이다. 시간의 효율적인 관리를 극대화 시켜주는걸로 광고되고 있는 어느 회사의 다이어리처럼 사용하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다. 내게는 모자란 기억의 보조장치와 일상의 소소한 감정들을 담는 도구로서의 역할만 하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목요일, 12월 20, 2007

2007년 대선 소감

대선이 끝났다. 예상했던데로 결과나 나왔기에 별다른 감흥은 일지 않고 쓴웃음만 나왔다. 지난 10년동안 민주화 세력과 개혁성향의 세력이 정권을 잡았지만 정작 그들의 지지기반이었던 서민들을 위한 정책은 뒷전으로 밀고 기득권 세력과 타협을 하고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정책들을 이어갔다. 과거의 운동권 출신의 정치인들은 고관대작의 생활에 안주했다.

민주화 뒤 ‘구조개혁의 주체’가 돼야 할 시민들이 외환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면서 양적인 생산 능력에 따라 줄을 세우는 전도된 가치 체계를 우리 사회는 대책 없이 수용했다. 이런 흐름을 저지해야 할 이른바 민주화 세력, 양심 세력들도 무방비 상태로 욕망의 대열에 동참했다. 이는 정치에 대한 불신을 낳았고, 민주화 세력에 대한 배신의 느낌과 결합되면서 대선 분위기가 ‘돈’과 ‘성공’의 이미지를 띤 이명박 쪽으로 쏠리는 현상으로까지 이어졌다. 민주화 정권이 들어선 이후의 서민, 노동자들의 생활은 치닫는 양극화로 더욱 어려워지게 되었다. 이번 선거는 이로 인한 민심 이반의 결과였던 것이고 민주·개혁 세력에 대한 실망과 반감이 어우러진 민심은 후보의 범죄적 과거를 묻지 않는 극단적인 선택을 가능하게 했다.

문득 이번 대선의 최대 수혜자는 삼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노무현이 연기시켜주었던 금산분리법을 완화를 주장하던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어버렸다. 더구나 이명박은 삼성특검을 반대하던 유일한 후보였었다. 전 정통부장관이었던 진대제의 이명박캠프 합류때 양식도 신념도 없는 저런 인물을 노무현 정부는 최장수 장관으로 기용하고 있었구나 했었지만 이또한 삼성의 노련한 작전이 아닌가 하는데까지 생각이 다다랐다.

결국 삼성특검은 흐지부지 되고 금산분리법까지 삼성에 유리한 방향으로 정리되어가지 않을까. 김용철 변호사의 용기있는 증언으로 우리사회의 치명적인 모순을 고칠수 있었던 기회는 물거품이 되고 말지 걱정이 든다. 자본과 권력의 유착은 더욱 고착화 되어 이명박의 말대로 "기업하기 좋은나라"가 되어 대다수의 서민들은 더욱 고착된 고용불안과 깊어지는 양극화로 인한 고통을 겪어야 하는건 아닐까.

오늘 이랜드 노조간부 43명이 집단 해고 되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과연 그가 말하는 경제 살리기, 존경하는 국민에 그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는 건지 모르겠다. 교과서 대로의 공산국가가 아닌 다음에야 모두가 똑같이 잘살고 이익을 볼 수는 없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는 그 말에 비정규직,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이익도 포함되어 있는지 묻고 싶다.

이런 일들이야 모두 존경하는 국민을 위하겠다는 전임 대통령들때도 일어났던 일들이기에 특별날것도 없다. 무엇보다도 우려스러운건 내년초부터 진행하겠다는 경부운하 사업이다. 청계천 복원사업때처럼 타당성 검토, 합리적 계획, 의견수렴, 영향평가 등 형식적 요건에 불과한 절차를 거쳐 전문성을 이유로 일반 시민의 참여가 제한된 채 관료와 전문가 중심으로 진행되지나 않을지. 태안앞바다에서의 기름유출로 인한 피해복구에서 석유를 닦아내는 퍼포먼스를 벌이던 그가 국를 동강내고 구조적으로 파괴시켜놓을 그 사업을 또 그때처럼 막무가내로 진행시키지나 않을지. 분명 그럴테지만 제발 이것만큼은 막아내고 싶다.

독·소 전쟁 싸이트

틈만 나면 괴벨스 평전을 읽고 있다. 넉넉잡아 내년 1월까지 독파 하려고 했는데 예상외로 쉽게 읽혀지고 있어 1월 중순이면 감상문을 올릴 수 있을거 같다. 평범했던 청년이 어떻게 히틀러에 열광하게 되고 측근이 되어 가는지 점점 흥미를 더해 가고 있다.

1000페이지 넘는 책을 지하철에 서서 들고 읽으려니 좀 뻘쭘한면도 있다. 무게도 무게여서 가산역에 다다를 즈음이면 팔이 뻐근하다.새삼스런 얘기지만 나치즈가 태생부터 악마집단으로 여겨왔던 생각들이 편협적인 생각이었음을 깨달아가고 있다. 그들이 발생하고 힘을 결집시킬 수 있었던 독일의 상황과 주변국과의 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주 훌륭한 싸이트 하나를 알게 되었다. 전혀 다른 내용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그 블로그를 다시 찾지 못하고 있다. 혹시라도 이글을 보게 된다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 볼그거의 말처럼 이런 내용을 공짜로 볼 수 있게 되다니 인터넷의 대단한 존재 가치를 확인했다. 독·소전쟁 정리겸 영어학습겸 섭렵을 해야 겠다.

독·소 전쟁

토요일, 12월 15, 2007

브레인 스토리(Brain Story)


부산으로 출장내려가는 길에 철도서점에서 샀다. 역시 책은 서점에서 골라가면서 사야 제맛으로 보는 맛이 있는거 같다.

뇌는 인간의 장기중 가장 특별한 부분으로 보인다. 생명을 이어가는 중요성에서는 뒤로 밀릴 수 있지만 의식을 가지는 사람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부분일 수 밖에 없다. 어떤 사고로 신체가 손상되면 많은 부위들을 기증받은 장기나 신체의 일부분으로 대체할 수 있고 회복 후에는 사고전과 다름없이 똑 같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뇌의 경우는 이식자체도 불가능 하겠지만 이식이 가능하다 가정해도 수술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사람이라는 개념에서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책에서는 동물의 신체중 뇌의 영역이 가장 알려지지 않았고 최후까지 알아가야할 부분이라는걸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들과 함께 설명한다. 뇌연구의 진척이 더디고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뇌의 특정영역이 특정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언어에 관한 영역이라고 알려 졌던 부분도 다른 부위의 손상으로도 동일한 현상을 겪기도해 객관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뇌가 이뤄내는 의식과 감정이 어떻게 구성되어 표현되는지를 밝히는게 뇌과학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보고 있다. 과학의 발달로 뇌가 가졌던 특정기능을 대체하는 것으로 보이는 기술들이 속속 선을 보이고 있다. 특히 기억과 연산부분은 컴퓨터의 능력이 일반적인 뇌의 기능보다 훨씬 뛰어넘고 있다. 하지만 뇌가 가지는 진정한 특성은 사람마다 가지는 개성과 감정, 의식에 있다. 이런 의식과 감정을 컴퓨터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고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쉽게 구현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가 있다는 이야기를 믿는 편인 나는 의식의 부분에 있어서는 과학의 영역을 넘어서 혼의 이야기도 나와 주기를 기대했었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과학적인 측면에서 뇌의 이야기를 풀어 간다. 뇌연구 부분에서 과학이 가진 한계를 인정하고 DNA와 미지 영역의 신비함을 과학적인 입장에서 이야기 하지만 누가나 수긍할 수 있을 정도로 편하게 이야기 해나가는 책이었다.

일전에 책에 관한 TV프로그램에서 사후세계에 관련된 책을 주제로 토론 하는걸 본적이 있다. 토론참석자는 사후세계를 긍정하는사람, 긍정하지 않는 사람, 중도적인 입장인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사후세계의 경험을 부정했던 토론자는 어느 국가연구기관의 박사였었다.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과학이 풀어나갈 과학의 영역이라고 간단히 정리해버려 다른 의견이 들어설 틈을 주지 않는 태도가 거슬리게 보였던 걸로 기억이 된다.

그 책에 나오는 일화로 큰 교통사로고 사후세계를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를 사회자가 했다. 사고 직후 그 사람은 아무런 고통없이 교통사고가 처리되는 모습을 공중에서 지켜보고 있을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사고현장 뒤로 줄지어 서있는 차속에 사고를 당한 자신을 위해 기도를 하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고 한다. 고마운 마음에 차번호를 기억했었고 병원에서 퇴원한 후 고마운 마음에 직접 찾아가 인사를 했다는 이야기였다. 영혼의 존재를 수긍할 수 있는 이야기도 그 사람에게는 아직 풀지 못한 뇌의 기능일 뿐이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평소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과학적인 것으로만 이해하려는 관습때문에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과학적인 영역과 비과학적인 영역은 함께 설 수 없는 것일까? 과학이 가지는 긍정적인 면들을 수용하지 않을 이유는 없지만 모든것을 과학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것도 분명한 사실이 아닐까.

무속인들이 신에 들린 후 부터 가족들도 모르는 숨겨진 이야기들을 굿중의 무속인이 이야기 하기도 한다. 이미 숨진 사람이 어느곳을 거쳐 갔는지를 말하기도 한다. 모두 뇌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과학적인 입장에서 설명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일을 풀어가고 예측해가기 위해 과학에 대한 맹신에 빠지는 것과 함께 비과학적인 해석과 방법에만 매달리는 것도 피해야할 일이다. 이 책과 같이 과학적인 뇌분석으로 최소한 아인슈타인의 뇌가 일반인과 특별히 달랐기에 천재적인 이론들을 내놓을 수 있었다는 비과학적 이야기가 과학적으로 반박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토요일, 12월 08, 2007

갈데까지 가는 나라

차기 대선을 10여일 남기고 있는 이나라는 이미 대기업 재벌 집단들과 학계, 사법부 등의 사익추구형, 친재벌형 패거리 집단들이 서로의 이득을 맞추느라 이합집산하는 희귀한 광경 이외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모습으로 흘러가고 있다.

신문기사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냈었다는 이가 기업의 비리를 조사하느라 기업이 위험에 빠지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기사를 봤다. 더 자세히 읽어볼 필요도 없이 삼성문제를 대충 조사하고 지나가자는 말이었다.

또다른 기사에서는 대기업들이 최종 면접 시험에서 김용철 변호사에 대한 질문을 응모자들에게 던져 김용철을 "배신자"라고 부르는 이에게 가선점을 주는 한편 김변호사의 양심 고백을 비난하고 "조직 보호"를 내세우는 이에게 합격의 길을 열어준다는 이야기였다.

이런 이상한 일은 뉴스거리도 되지 않을 정도로 대한민국에서는 "상식"이 되어 버린 모양이다. 마피아 윤리의 "상식화"야말로 두려운 일이지만 이미 그렇게 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신자유주의가 1~20년 더 진척되면 대한민국의 모습이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최소한의 정의도, 양식도 없는 사회가 가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고 사회적 약자의 원인과 책임은 오로지 개인에게만 돌아가는 천박한 성공지상주의는 당연한 상식이 되어 있을 것이다. 정부를 든든한 자금관리와 경비를 맡아주는 집단 정도로 보고 관리하는 확대된 기업의 권력, 경쟁력·효율성을 위한 비정규직의 확대와 인력감축의 상시화와 이로인한 빈부격차의 확대와 고착화, 개발지상주의에 떠밀려 깍이고 없어질 숲과 동물들.. 이렇게 척박하고 살벌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이 이나라의 미래여야 할까?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남미식 경제파탄의 말로를 향해 가는 모습밖에 보이지 않는다.

합격하려면 그를 배신자라 부르라.

목요일, 12월 06, 2007

김경준, 귀신과 일을 벌였었나?

검찰의 BBK 수사 발표가 있었다. 이미 그들이 재계, 정치세력의 손바닥위에서 놀고 있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에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이번 발표내용은 너무 화가 났다.

검찰 수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법리적 판단의 대상이 아닌 도덕적 논란의 문제들까지 충분한 조사도 하지 않은 채 불과 20일이란 짧은 조사를 통해 서둘러 무혐의라는 판정을 내린 데 있다.

거짓말 논란의 핵심 사안인 ㈜다스의 실소유자, 그리고 도곡동 땅 주인 문제의 처리가 대표적이다. 이 부분에 대한 검찰의 발표가 사실이라면, 도곡동 땅 주인이 아닌 이명박 후보의 형 이상은씨가 남의 땅 판 돈을 다스에 갖다 쓴 것이 된다. 검찰은 지난 8월 도곡땅 주인이 이상은씨가 아닌 제3자라고 판단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의 땅도 아닌 제3자의 돈을 자신의 증자 대금으로 집어넣었는데, 제3자가 누군지를 밝히지 않는 게 말이 되는가?

하지만 검찰은 도곡동 땅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끝내 비켜갔다. 이 후보의 다스 소유 의혹에 대해서도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다른 의혹들에 대해서는 화끈하게 무혐의 결론을 내린 검찰이 왜 유독 이들 부분에서는 어물쩍 넘어갔는지 궁금하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장춘 전 필리핀 대사는 이명박 후보로부터 이 후보가 비비케이의 대표라고 적힌 명함을 직접 받았다고 증언했지만 검찰은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또 이 후보는 7년 전 비비케이 사업을 시작했을 무렵,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비비케이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지만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눈을 감았다.

검찰 수사의 신뢰성에 대한 의구심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검찰 수사의 생명은 공정성과 신뢰 확보에 있을 것이다. 검찰은 이번 사건 수사에서 법적인 책임과 도덕적 책임 부분을 명확하게 가려서 판단을 해야 했다.

검찰은 더 나올 게 없다고 봐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고 했지만, 과연 그게 최선이었는지는 양식있는 사람이라면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발표내용이다. 증거가 불충분한 부분은 결론을 유보한 채 추후 보강 수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신중한 결론을 내려야 했다. 그랬더라면 수사 결과 전반에 대한 신뢰 문제로까지 번지지 않았을 것이다.

검찰이 도덕적 논란을 포함해 모든 의혹들에 대해 결론을 내리려 했다면 적어도 이 후보와 그의 형 이상은씨를 불러 충분한 조사를 해야 했다. 의혹의 당사자인 이 후보에 대한 서면 조사 두 차례로 그가 직면하고 있는 도덕적 논란들이 모두 무혐의라고 결론을 내린다면 누가 그것을 믿겠는가? 검찰은 이번 수사를 통해 유력한 대권주자의 호감을 얻었을지는 모르지만 가장 중요한 이미 실추된 그들의 명예를 아예 땅에 파묻는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수요일, 12월 05, 2007

경제 살리기

유력한 대선 후보인 이명박 후보의 최후의 걸림돌로 보이던 BBK 사건의 중간 발표가 있었다. 예상과 다르지 않게 이명박 후보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방향으로 결론이 났다. 다른 대선후보들은 수사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발표를 했고 신당은 수사과정에 대한 특검까지 발의하겠다고 나섰다.

위장취업, 위장전입, 친인척들에 대한 부동산 개발 정보 누설 등 한국가의 대표자로써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들을 저질렀는데도 40%대의 확고한 지지율은 변함이 없다. 이제 검찰의 면죄부까지 주어졌으므로 그의 대선의 승리는 확정적으로 보인다.

일반인이 저질렀다면 절대 용납되지 않을 도덕적, 법률적 문제들을 가지고 있는 이명박 후보가 그토록 인기를 구가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내세우고 있는 '경제 살리기'에 대한 기대에 있다. 문제가 있는건 알지만 경제만 살려 준다면 무방하다는 생각들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두 아들의 병역문제 때문에( 이명박과 비교하면 문제거리도 아닌거 같다 ) 많은 표를 잃고 대선에서 패해야 했던 이회창 후보는 도덕성을 이미지로 들고 나왔던 상황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어야 했지만 경제살리기라는 화두를 들고 나온 이명박에게 도덕성 문제 따위는 애당초 고려사항이 되지 않고 피해도 주지 않고 있는 셈이다. 그 만큼 이명박에 대한 경제부흥의 기대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크다. TV에서 봤던 이명박 후보 지지연설자는 시간 내내 이명박이면 경제를 살려서 서민들이 살만하게 해줄 수 있을 것으로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나라 경제는 어떤 상황일까? 참여정부가 들어선 이후의 경제가 그 전보다 바닥으로 곤두박질 떨어지고 있는 걸까? 그래서 서민들의 삶이 더욱 힘들어 지고 있는걸까? 이런 간단한 의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자료를 찾아 봐도 우리나라 경제가 파탄났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참여정부들어 역사상 최고의 주가 상승, 국가신용도 향상, 외환보유고 증가, 한미FTA체결로 수출기업 살리기 성공, 대국민 정부서비스의 획기적 질적향상을 이룬 전자정부 완벽구현 등 성공적으로 국정운영을 집행했다. 주가상승, 국가신용도향상, 외환보유고증가, 국가부채감소 등은 역대 정권 비교 최고수준이고, 자주국방-자주통일 노선 때문에 미국 양키들과 다소간의 불협화음이 다소 있지만 ( 미국이 해달라고 하는데로 다 해주면서 그정도 반대 목소리마저 나오지 않는다면 그게 어디 나라라고 부를 수 있을까? ) 이라크파병 등 강력한 동맹국인 대미외교의 안정적 강화를 이룬 정권으로 부를 수 밖에 없다.

참여정부는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과 지지에 의해 생겨난 정권이다. 대통령과 정책입안자들은 그런 철학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었으며 오히려 보수세력들이 원하는 정책을 잇따라 내놓음으로써 지지했던 이들에게 실망과 분노를 안겨 주었다. 요즘의 경제적인 어려움은 기업활동의 결과로 생기는 이익들이 노동자들에게까지 골고루 돌아가는게 아니라 일부 계층으로의 집중이 심화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은 판단일 것이다. 일반 서민들은 경제성장의 과실들을 맛볼 수 없으며 그래서 더욱더 양극화가 깊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참여정부들어 더욱 심해지고 고착화 되어가고 있다. 대표적인 좋은예로 비정규직 법안의 통과와 한미FTA의 졸속추진을 들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의 실질성장률은 4.5% 수준이다. 반면 잠재성장률은 4.9%이다. 대한민국이 보유한 모든 자본과 노동, 기술을 투여해서 가능한 최대 성장치와 실제성장치의 차이가 0.4% 포인트 차이가 난다는 뜻이다. 즉,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해도 5% 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경제성장은 노동의 숙련도, 자본스톡의 투자증대, 기술혁신, 연구개발과 같은 변수에 의해 견인되는 것이지 대통령이 시민들이나 노동자들을 윽박지른다고 해서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어떤 후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이 1%이상 오를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차라리 허경영 후보가 말하는 제대로 걷지 못하고 있는 세금들을 확실하게 받아내 모든 신혼부부들에게 1억원씩 주겠다는 공약이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와닿는다.

사회의 구성원들이 살아가는 과정중에 생겨난게 경제이지 경제를 위해 나라가 존재하거나 국민이 있는건 아니다. 대통령은 경제뿐만아니라 국가의 전반적인 분야들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을 가지고 정책을 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다. 하지만 이명박 후보처럼 먼지 정도가 아니라 매연에 썩은 냄새까지 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그의 뻔뻔함이 무섭고 그걸 용인 해주는 사회가 무섭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절반 가까운 지지를 보내고 있는 이 사회가 무섭다.

근거 희박한 경제살리기라는 말에 현혹되어 도덕적, 법률적 가치들이 폄하되어 나라의 기강이 흔들리는 선택을 하는 일만큼은 막아야 한다. 경제살리기 때문에 판단력이 마비되고 도덕적 가치들이 무시되는 사회라면 더 이상의 희망이 없는 사회일 것이다.

겨울동안 읽을 책

아침에 두권의 책을 받았다.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동물들의 겨울나기". 괴벨스의 선전이 제대로 효과를 본것인지 어릴 때 부터 봐왔던 2차 대전영화속 독일군의 멋있는 모습은 지금도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그래서 이런 독일군 이미지의 근원을 찾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겨울숲의 자연에 순응해 가는 동물들의 이야기도 궁금했다.

괴벨스의 경우 1,000페이지가 넘는다. 겨울내내 읽어야 할까?

화요일, 12월 04, 2007

ARTHUR - Artillery Hunting Radar

적 포병의 진지 및 공격 징후를 사전 탐지할 수 있는 대포병레이더가 스웨덴 SAAB사의 'ARTHUR'(ARTillery HUnting Radar)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미국과 이스라엘, 스웨덴 등 3개 국외업체가 경합한 결과, 군 작전요구성능(ROC)을 충족하고 수명주기 대비 비용 측면에서 경제성이 우수한 것으로 평가된 스웨덴 제품을 결정했다고 하는데 애당초 미국제품을 원했던 것으로 보이나 미국과 이스라엘의 경우 기술이전과 가격 부분에 문제가 있었던것으로 보인다.

대포병레이다는 적포병이 발사한 포탄이 탄착할 예상지점과 포진지를 파악하게 해주는 장비로써 정보화 전력이 가지는 가치가 커져가는 현대의 전장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장비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가 처음 도입을 결심하게 되었던 계기는 무엇보다 94년도에 북한 대표의 입에서 나온 "서울 불바다"때문이 아니었던가 싶다. 이미 남한과의 군사력경쟁에서 무너져 버린 북한은 더이상의 재래식 군비경쟁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비대칭 무기 확보에 나서게 된다. 수도권 일대를 겨냥한 장사정포를 배치하고서 군비경쟁의 주도권은 남한으로 넘어갔지만 전쟁이 벌어질 경우 자기들도 남한의 수도권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비대칭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거기서 나왔던 말이 앞서 말한 "서울 불바다"였다.

지하갱도시설에 위치한 장사정포들의 위치는 알려졌지만 갱도에서 나와 포격을 하는 포들의 위치를 정확히 판단해 보복포격을 통해 무력화 시키는게 시급한 문제로 대두 됨으로써 MLRS, ATACMS등의 전술 로켓, 미사일들과 함께 포병레이다를 서둘러 도입하게 되었었다.

서둘러 AN/TPQ-36를 사기는 했지만 도입후에 몇가지 문제점들이 노출되었다. 미국이 이 장비의 핵심기술을 한국에 제공해줄리는 만무한 일이었고 견인 트럭, 레이다, 쉘터의 세개의 파트로 구분되어 있어 우리나라와 같은 야지에서 운용하기에 제한이 있었다는 점이다. 더구나 평지에서와 달리 산과 구릉이 많은 지역에서는 제 성능을 100% 발휘하지 못한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어 왔었다.


대포병레이다 시스템은 존재 자체로써 북한의 포병에게 대단히 부담스러운 존재일 수 밖에 없는 존재다. 더구나 사격을 위해 지하갱도에서 나온 이후에는 별다른 방호시설 없이 포격을 해야 하는 그들로써는 대포병사격에 더욱 취약할 수 밖에 없다.

1차 걸프전때 이라크군의 경우 초탄을 쏜 야포가 2탄을 쏘지 못하고 대부분 파괴되다고 한다. 사격명령이 떨어졌음에도 이라크 포병들은 대포병사격의 두려움때문에 명령을 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초탄을 발사한 포대가 우선적으로 보복되는걸 목격하고서 사격을 할 수 있는 포병은 없었을 것이다.

Arthur의 추적 반경이 짧다는 의견도 있다. 장비 한대의 추적 반경이 40Km이나 여러대가 통합적으로 운영될 경우 더 늘어날 수도 있고 최대사정거리로 포격을 할일이 드물고 야포의 사정거리를 대부분 포함하기 때문에 운용하기에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추적 반경이 포의 사정거리보다 길어야만 제역할을 할 수 있는건지는 모르겠다. 포탄이 비행하는 일정 영역만 커버할 수 있으면 될거 같은데 이부분은 좀더 자료를 찾아 봐야 겠다.

장비사양

최대 추적 반경 : 40 km
탐색 면적 : 1600 miles
추적 능력 : >100 target/min
레 이 다 : Passive Phased Array
Transmitter : TWT (Travelling Wave Tube) air cooled
Receiver : MTI with adaptive wind compensation


금요일, 11월 30, 2007

무·배추 수확

초가을에 심었던 무우와 배추를 수확했다. 먼저 농사를 지었던 어르신들의 원래 배추가 잘되지 않는다는 말에 그냥 버리는셈 치고 모종 50포기만 심었었다. 그중 25포기가 속이 꽉차게 잘 익어 끝까지 자라 주었다. 무우는 굵은 뿌리만큼이나 억세게 모두 싹을 트고 자랐다. 이럴줄 알았으면 배추를 좀 더 심었을걸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흙살림에서 구했던 유기농 퇴비와 목초액을 사용했던게 크게 효과를 본거 같다.


하얗게 속이 꽉찬 배추를 보시며 어르신들은 농사를 지어봤던게 아니냐는 과찬의 말씀을 아끼지 않으셨다. 밭에서 도로까지 지고 내려오는 일이 보통이 아니었지만 직접 키운 채소를 먹는 기쁨을 넘어설 수 있을까.


막상 김장을 담고 나니 부피가 수확했을때보다 확 줄었지만 내년 여름까지 우리가족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김치가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우리를 든든하게 했다. 심었던 모종의 반밖에 수확하지 못한 배추였지만 씨앗을 뿌렸던 무우는 솎아 내면서 까지 키워야 했다. 덕분에 무우 한박스는선물로 보낼 수 있었다.


밭사이를 다니며 노는 진성이와 윤성이는 엄마·아빠의 수확에 대한 기쁨에는 안중에도 없이 자기들만의 시간을 누리고 있다. 바쿠칸이나 파워레인저의 영향을 벗어나 그나마 흙과 채소를 통해 자연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소중한 경험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램이 다.

수요일, 11월 28, 2007

ZebraLight

플래쉬라이트 매니아들의 포럼인 CandlePowerforum에서 선풍적인 화제를 모았던 ZebraLight가 도착했다. 제품 제작자는 미국사람인데 생산공장은 중국에 있는 모양인지 상하이에서 배송되어 왔다. 덕분에 5$라는 비교적 아주 저렴한 배송비만 지불했고 주문한지 딱 1주일만에 배달되어왔다( 미국에 있는 주문자들의 경우 2주이상씩 소요된 모양이었다 ).


배송봉투를 뜯으니 메이저급 회사제품만큼은 아니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깔끔한 형태로 포장 되어있었다. ZebraLight는 Head Band에 부착되어 있고 나머지 악세사리 들이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헤드밴드의 품질도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일전에 주문했던 Inova 24/7에 딸려왔던 것에 비하면 훨씬 부드럽고 좋았다. 그 외의 악세라리로는 방수를 위한 O-ring이 두개, 여분의 부드러운 야광 실리콘 장착대 두개와 목걸이, 주머니등에 장착할 수 있는 클립으로 알찬 구성을 이루고 있다.


ZebraLight의 몸통만 찍은 사진이다. Type-III로 아노다이징처리된 알루미늄 합급으로 된 몸체를 가지고 있으며 반사경없이 Cree-Q5 LED가 작은 폴리카보네이트렌즈로 덮여있다.


클립을 장착한 형태로 주머니나 기타의 곳에 간단히 꽂아서 사용할 수 있다.


목에 걸어서 사용할 수 있도록 줄과 글로우 장착대를 제공하는데 야광이어서 밤에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한다.


헤드밴드에 장착한 모습이다. 헤드랜턴으로써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 AA 건전지 하나만 들어가기에 아주 가볍다. 단점일 수도 있지만 집중되는 부분없이 넓게 퍼지는 형태의 빛이어서 근거리 작업을 할때 매우 유용하다.



등산용 헤드랜턴은 몇년새 가장 큰 변화를 겪은 장비다. 그전까지는 필라멘트 전구를 사용한 헤드랜턴들에서 페츨, 내쇼널등의 메이커 제품들이 거의 정점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에 LED가 사용되면서 부터 페츨과 내쇼널은 순식간에 최고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제품자체의 완성도는 높은 편이지만 건전지의 전원을 일정하게 사용할 수 있는 레귤레이터 회로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눈이 높아진 사용자들로 부터 외면을 받게 되었다.

산속에서는 대체로 희미한 불빛만 있으면 별무리 없이 즐거운 야영을 할 수 있다. 때때로 밝은 빛을 필요로 할때도 있다. 레귤레이터의 제어를 받는 제품의 밝기 조정이라면 하이레벨의 빛의 양을 믿을 수 있지만 페츨과 같이 꾸준히 하향곡선을 그리게되는 제품에서는 그러지 못하다. 모르고 있으면 별거 아니지만 그런 기능을 알고 나면 레귤레이터회뢰가 없는 제품은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된다.

빛을 내는 효율도 반도체의 발전속도 만큼이나 발전을 했다. 초창기의 1.5V 건전지 세개를 사용해도 15루멘 이상 넘기 힘들고 그것도 한시간 남짓 유지되던 빛이 이제는 건전지 하나를 사용해서도 60루멘을 훌쩍 뛰어넘어 버려 두시간을 가볍게 넘어버린다. Zebralight의 밝기와 유지시간은 다음과 같다.

Low 2.6 루멘 : 사흘반
Medium 13 루멘 : 19시간
High 66 루멘 2시간 20분

아무리 밝은 후레쉬라도 밤을 낮으로 바꿀 수는 없다. 어둠을 받아 들이는 순응이 필요하다. 자연속에서 문명화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잠시 보완하는 용도와 목적으로써의 도구로 생각하는것이 옳은일이 아닐까.

Zebra Light Co.

목요일, 11월 22, 2007

인간 없는 세상

오염된 강물을 볼때 사람이 한 일년정도 없어지거나 오염물질을 내보내지 않으면 강물 색깔이 맑게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적 있다. 또는 영화 'Omega Man'처럼 전쟁으로 인류가 멸망하고 영화속의 오메가맨이 내가 되면 지구가 바뀌어 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했다.

저자는 인류가 갑자기 지구에서 사라진다는 가정을 할 경우 이제까지 이룩해온 문명의 자리에 어떻게 자연이 되돌아 오는지를 이야기 한다. 그러면서 자연의 자정능력을 넘어서는 생산활동과 훼손으로 스스로를 위험에 빠트리고 있는 인류문명의 문제들을 역설적으로 설명하고 이해시킨다.

사람이 만들고 이용하는 문명은 사람에 의해 끊임없이 관리되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다. 사람의 관리가 중단되고 가동도 멈추게 되면 시간적인 차이만 있을 뿐 원래 그 땅의 주인이었던 물, 풀, 나무들과 동물들이 다시 자리를 잡아 나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문명에 의해 사라진 동물들이 있고 그것들의 흔적들이 길게는 수백만년까지 영향을 미칠것이기에 문명이 들어서기 전과는 다른 모습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의 손길이 끊긴 자리에 자연이 되돌아 오는 광경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인적이 드문 길을 가면 어김없이 보도블록 사이로 틈틈이 자라고 있는 풀들을 볼 수 있다. 그중 일부는 뚫고 올라오다시피해 두꺼운 보도블록을 깨트린 것들도 있다. 끈질긴 생명력이라고 표현하지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그렇게 금새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지난 봄부터 일궈온 텃밭에서도 끊임없이 자라는 잡초들도 원래 그 땅의 주인들이 었던 그들이 자기 자리를 잡아 나가려는 것 뿐이었을 것이다. 사람이 심은 채소 씨앗들은 애당초 그곳이 살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토요일, 11월 17, 2007

야근

IT업체들을 보면 직원을 풀어놓으면 돈벌어오는 앵벌이 수준으로 생각하는 회사의 경영자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멋모르고 회사생활을 시작한 이들에게 정시퇴근은 회사의 사정상 불가능한 일임을 일찌감치 주입을 시키며 그가 가진 기대와 열정을 12시간 이상씩 뽑아 먹으며 부려먹는 것이다.

진행되는 일을 돗보이게 하기 위해 야근 자체를 목적으로 야근을 종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우리는 수시로 철야를 하고 주말까지 반납하고 일을 하고 있다는걸 보여줌으로써 더디게 진행되는 일정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대신 몸으로 떼우는 방식이었다.

많은 이들은 살인적인 강도의 일감에 제풀에 지쳐 나가거나 그동안의 일들을 경력으로 더 낳은 조건의 회사를 찾아 나섬으로써 정리가 된다. 물론 그러는 동안에도 프로그래밍에 대한 열정과 기대로 가득찬 신입사원들은 계속해서 들어오고 비슷한 과정을 겪어가게 된다.

아무리 야근이 일상화 되어도 개인적으로 처리해야 할일이 있게 마련이다. 일찍 나갈일이 있어 그때의 팀장에게 사정을 설명하니 일을 보라고 하면서도 끝을 흐리는 말로 업무로스가 생겨서 걱정이라고 했다. 또 한번은 칼퇴근을 했는데 같이 퇴근을 하던 회사의 임원이 되게 바쁜일이 있는 모양이다라는 말을 했다. 덕분에 오랫만에 누리고자 했던 퇴근후의 여유로운 기분을 잡치고 말아야 했다. 수십, 수백시간을 초과 근무했는데도 그것에 대한 권리는 애당초 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야근때문에 특별히 일을 많이 하거나 못할일을 해내거나 했던 기억은 없는거 같다. 어차피 밤늦게까지 있어야 하니 대게 아침시간부터 점심무렵 넘어 까지는 집중해서 일을 하지 않게 된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몇달을 계속해서 12시간 이상씩 일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은 칼퇴근을 트집잡는 이는 아무도 없지만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박혀 있는 탓인지 맘이 편한건 아니다.

애니메이션 감독 연상호

수요일, 11월 14, 2007

2007 서울 에어쇼

실망스러운 행사였다. 9,000원이었던 입장료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신 비행기라고는 KAI가 록히드마틴의 도움으로 제작한 훈련기인 T-50 한대였다. 지상에 전시된 비행기들도 예년에 비해 초라한 정도였다. 우리공군의 최신예기라는 F-15K 근처에만 예의 에어쇼에서 볼 수 있는 장비들이 전시되어 있는 정도였다.

비행시범을 볼때는 한·미공군이 개최하는 행사장에 온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미공군의 F-15C와 한·미공군의 F-16 시범비행이 전부였다. 특히 이해할 수 없었던건 F-16의 시범비행이었다. 같은 기종을 그것도 별로 다를게 없는 비행시범을 한·미공군이 각각 별도로 진행시킨 이유가 궁금했다. 내용이 없으니 양으로라도 채우려는 의도는 아니었는지.

블랙이글의 경우 고별비행이라고해 일부러 블랙이글팀이 주기되어있는 활주로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잡고 지켜보기로 했다. 마지막 비행이니 뭔가 특별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했었지만 태극문양을 그리는 비행마저 보이지 않더니 여섯대의 비행기가 편대비행을 하고 T-50 다섯대가 뒤따라 비행하더니 끝을 맺어 버렸다. 갑자기 끝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고별 비행치고는 이마저도 실망스러웠다. 비행이 끝난 후 해단식을 가지는 모양이었는데 별로 보고 싶지 않아 자리를 떠났다.

국제에어쇼가 이렇게 초라하게 된건 미국의 전투기를 도입하기 위해 공군부터 유럽과 러시아의 업체들까지 멋있게 뒤통수를 쳤던 국방부의 자업자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 결과로 아무도 찾지 않는 썰렁한 국제 에어쇼가 되어버렸고 전투기를 구매하겠다고 공개입찰을 해도 아무도 응하지 않는( 짜고 치는 고스톱판이기에 )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게 아닐까.

98년 2회 에어쇼 때부터 매회 관람을 했지만 다음 에어쇼가 열릴 수 있을지 걱정이 들었다.

화요일, 11월 13, 2007

먼지와 함께 사라지다

지난 11월 11일에는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다. 1988년 11월13일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과 노동법 개정을 목표로 시작된 전국노동자대회는 지난 20년 동안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치러진 노동계 최대 행사다. 노태우 정권 시절에는 정부가 원천봉쇄하더라도 경찰과 숨바꼭질하면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치러냈고, 문민정부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불허된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참여정부는 올해 노동자대회를 원천봉쇄함으로써 20년 전통의 전국노동자대회에 새로운 역사를 보탰다. ‘문민정부 이후 최초의 전국노동자대회 원천봉쇄’. 경찰은 도심의 극심한 교통체증과 시민불편 운운하며 집회금지를 통고했고, 노동부 등 네 부처 장관은 연명으로 담화문을 발표했으며, 지방에서는 대회 참가자 상경을 원천봉쇄했다.

그럼에도 전국노동자대회는 치러졌다. 서울 남대문에서 시청까지 거리에서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리는 동안,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광화문까지 거리에서는 집회 참가자 수와 맞먹는 2만여 전경이 도심의 교통체증과 시민불편을 야기했다. 노태우 정권때에는 집회에 최루탄으로 대응했는데, 2007년 참여정부는 물대포와 도심 상공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집회를 방해하는 헬리콥터로 대응 방식을 바꾸었다.

시위현장을 기록하고 방해할 목적으로 뜬 경찰 헬리콥터가 시위대 머리위를 계속 빙글빙글 돌며 시끄러운 소음과 바람으로 시위를 방해하고 있었다. 그 소리가 비정규직과 고용불안이라는 방식으로 더욱 교묘하게 지배방법을 발전시키고 있는 지배층의 노동자 계급에 대한 요란한 조롱 소리로 들렸다. 노무현정권의 참여정부는 집권 5년만에 본색을 그렇게 대놓고 드러냈다.

공권력이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한없이 군림하려드는 행태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시민들의 불편을 시위를 원천봉쇄한다며 길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던 전·의경들의 모습은 누구나 추억할 수 있는 군생활을 하는 청년의 모습이 아니라 환갑이 넘은 노인을 때려 죽여도 아무도 죄를 묻지 않는 무시무시한 공권력의 폭력 집단으로 보였다. 시위대보다 더한 불편을 주면서 길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경찰들과 시위대가 내는 소음보다( 그래도 여기엔 알리고자 하는 외침이라도 있다 !) 더 큰 소음을 내며 불편을 초래하는 그들이 말하는 시민은 대체 누구일까.

5년전 그때의 나는 이런 노무현의 본질을 간파할 능력이 없었다. 진정 노동자의 입장을 헤아릴 줄 알고 그에 맞는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사람일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랬던 그가 노동자들에게 미칠 영향이 어떤 것인지 분명한 FTA협상을 일방적으로 추진시켜 버리고 비정규직 양산과 고용불안을 한층더 강화시켰다. 그에게는 그것들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분신하고 맞아죽은 사람들은 그가 생각하는 시민이 아니고 국민이 아니었던 것이다. 노동자들의 머리위에 뜬 공권력의 헬리콥터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그렇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마지막 남은 기대의 미련까지도 몰아내버린 일요일 오후였다. 먼지와 함께 사라졌다.

금요일, 11월 09, 2007

단순함

휴대폰을 새로 구입했다. 핸드폰에 있는 부가기능을 좋아하지 않고 거의 사용하지 않기때문에 단순한 기능의 모델을 찾았으나 쉽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슬라이드형과 얇은 형태를 싫어해 바(Bar)형의 단순한 모델을 좋아한다. 결국 스카이의 im-u130으로 선택했다. 이것도 단순한 기능의 핸도폰은 아니다. DMB기능만 빼면 최신 핸드폰의 기능은 모두 가지고 있는 모델이다. 그래도 바형에다 묵직한 느낌을 주기때문에 그나마 내가 원하는 타입에 근접한 사양이어서 선택했다. 게다가 단종된 모델이기 때문에 기기변경인데도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

이전에 가지고 있던 핸드폰에 있던 데이타서비스 버튼과 카메라기능은 거의 사용할일이 없었다. 이런 기능만 제외시켜도 가격이 더 저렴해 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졌었다. 복잡한 기능을 싫어하는건 핸드폰에서만 그런것도 아니다. 이런저런 군더더기 기능을 없애고 제품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단순함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통신사들은 이용자의 데이타통신 서비스의 사용을 유도하기 위해 카메라기능과 데이타통신 버튼을 대부분의 모델에 적용시킨다고 한다. 해외로 수출되는 제품에는 전화기능만 있는 저가폰들이 있지만 국내에서는 판매하지 않고 있는 사실이 뉴스에 방영되기도 했다. 국내 핸드폰들의 출고가가 떨어지지 않는 큰 이유일 것이다. 본연의 목적보다 부가적인 기능에 더 눈독을 들이고 있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으니 소비자는 전혀 쓰지 않는 기능을 위해 필요 없는 비용을 지불할 수 밖에 없는 셈이다.

제3세계 아이들에게 100달러 짜리 저가 노트북의 보급운동을 벌이고 있는 니컬러스 네그로폰테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도 합리적 가격에도 높은 품질을 갖춘 제품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부품·소재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휴대전화나 노트북컴퓨터 같은 전자제품의 부품 가격은 18개월마다 한 번씩 절반으로 떨어지는데 전자업체들이 필요없는 기능들을 추가해 완제품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기능 비대증’에 빠진다는 주장을 한다. 싸지만 양질의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비결로, 네그로폰테 교수가 제시하는 것은 ‘단순성’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단순함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 정확한 리듬으로, 그저 척척 써나간다는 것. 그렇게 6개월정도 정해진 시간에 일을 끝내고 나오는 것, 그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글쓰기이다. 이런 단순함은 마치 열대지방의 북소리와 같아서, 몽환적인 집중력과 같은 것을 사람에게 일으킨다고 했다. 정해진 일을 정해진 시간의 정확하게 수행하는 것, 단순함은 결국 스스로에게 주는 안정감의 힘이다. ...

돌이켜 보면 내 생활에도 필요없는 군더더기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중 많은 것들을 떠안아 가고 있다. 그런 고민과 행동들 때문에 정작 중요한 일들을 놓치는 경우도 많다. 본질적인 사항들이 군더더기들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단순함의 미학을 내 생활에도 적용시켜야 겠다. 그럼으로써 삶의 본질에 한걸음더 다가설 수 있을거 같다.

"싼것과 싸구려는 다른다.

목요일, 11월 08, 2007

악몽

다시 반복하기 싫은 일이 꿈에서 반복해서 이뤄질때가 있다. 군에 다시 입대하는 상황도 좋은예 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걸 악몽이라고 부를 수 있다.

첫직장에서의 일이었다. 프로젝트를 마치고 다른팀의 일을 잠시 지원하고 있을때 회사의 임원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구미에 사람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는데 갈 수 있겠느냐는 내용이었다. 그때까지는 지방의 업체에 파견근무를 하는것이 일반화된 회사였고 이미 그 업체에 나가 있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고민없이 갈 수 있다고 대답했다.

반년이상을 서울을 떠나게 됨으로써 많은것을 미루거나 포기해야 했다.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취미생활과 만남들, 정이들었던 노량진의 옥탑방을 정리하기에는 사흘의 시간은 짧기만 했다. 그때 회사 사무실의 이전까지 있어 심란함은 더욱 깊었고 가을의 풍경은 단풍의 아름다움 보다는 스산함 자체였다.

오늘 새벽에 꿈에서 그때의 상황이 재현 되었다. 지방에 있는 어느 기업의 공장으로 파견을 나가게 되었다. 그것도 갑자기 일이 닥쳐 허둥지둥 짐을 싸서 내려 가면서 느껴야 했던 스산한 분위기속의 심란함으로 가득했던 꿈이었다. 이제는 가족까지 더해진 상황이었다.

나중에서야 그일이 꼭 필요해서 가게된것도 아니었고 기대없이 던졌던 말에 내가 흔쾌히(?) 대답을 함으로서 이뤄졌다는걸 알게 되었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죄도 죄라고 하면 할말이 없다. 처음으로 프로젝트다운 프로젝트를 갓 수행했었고 회사와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렴풋이 느껴가고 있었을 그때의 나는 그런 상황을 간파할 능력이 없었다.

개인에게는 악몽으로 떠오르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던 사람들을 이후로도 한참동안 인생의 선배로써 상사로써 여기며 지냈다. 그것들이 잘못된 일이라는걸 깨닫게 된 일은 한참후의 일이었고 그때는 이미 그곳을 떠난 후 였다.

수요일, 11월 07, 2007

삼성과 검찰

삼성 그룹의 고위 재무담당자였던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의 비자금과 자금운용에 대해 고백을 하여 파문이 이어지고 있다. 그의 고백에 따르면 검찰에 정기적으로 1인당 수백~수천만원의 '떡값'을 상납했으며 여론 조성을 위해 대학교수,기자들도 매수하고 심지어 시민단체에까지 '지원'을 하려고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돈을 받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와인과 호텔이용권을 주도록하여 정관계 및 언론, 학계,시민단체 까지 로비를 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수사를 차일피일 미루던 검찰은 떡값을 받은 검사들의 명단을 발표하기 전까지 수사를 하지 않겠다는 말까지 했다. 수사의 공정성을 지키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다. 검사들도 검사를 못믿겠다는 말이고 스스로 떡값을 받아왔다는 사실을 인정한 셈이다. 검사라면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 국가 최고의 기관에서 명예와 사명감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한기업의 로비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니 뭔가 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기업의 회장들이 그들의 부정과 탈법으로 구속되었을 때마다 나왔던 말이지만 이번에도 역시 국가경제를 위해서 그냥 넘어가야 한다는 말들이 설득력 있게 나오고 있다. 자본이 한국의 관료집단을 장악한데 이어 나라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 갔다던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빈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삼성이 일류회사라는건 별다른 이견이 없다. 이건희 회장 일가의 탈법과 부정을 단죄한다고 해서 삼성이라는 기업을 부정하고 해치려는건 아니다. 회장일가의 제왕적 군림과 탈법행위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일류기업을 제위치로 바로 잡아주려는 노력이다. 돈으로 온 나라를 주무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전근대적인 사고를 가진 총수로부터 일류기업을 구해내기 위한 작업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돈만 벌면 또는 있으면 모든게 합리화 될 수 있는 천박한 사회풍토를 바로 잡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자본의 힘에 법과 상식마저 굴복한 나라와 사회에 더이상의 희망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삼성제국과 언터처블

화요일, 11월 06, 2007

종이와 연필

[시인의 산문]

종이와 연필

내가 힘에 겨워할 때, 주위엔 아무도 없었고, 나는 연필과 종이와 씨름을 하며 그 힘겨운 시간들을 이겨내야 했다. 그리하여 난 지금도 이 종이와 연필을 소중히 생각한다. 내게 유일한 위로가 되어주었던 친구들. 그러나 이제사 생각해보니 이 종이와 연필은 나의 뜻과는 다르게 수많은 과거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기록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 기록들을 다시금 꼼꼼히 읽어보니 그 속에 그려져 있는 나는, 나를 혹독히 저주하여 더 이상 저주할 수조차 없는 하찮은 존재로 전락시켜버린 나였고, 그 속에 그려진 세상은, 증오와 욕설, 위선과 무기력함으로 가득 찬 세상이었다. 난 이 놀라운 기록의 집행자였던 종이와 연필을 쳐다본다. 종이와 연필은 책상 한 모퉁이에 어질러져 나의 뾰족한 시선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다. 그들의 순진무구함이 나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나는 그래도 여전히 종이와 연필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나에게 속한 직공들. 저주받은 날 다시 위로하고 다시 저주할 테니, 그리하여 난 이 충실한 직공인 종이와 연필을 소중히 생각하는 것이다.

저자 및 역자 소개

이철성
1970년 충북 보은에서 출생,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했으며 동대학원 불문과를 수료했다. 1996년 『문학과사회』 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시단에 데뷔했다. 시집으로 『식탁 위의 얼굴들』이 있다.

식탁 위의 얼굴들 (이철성 시집)

1998년06월17일
신 4X6 판, 145 쪽
ISBN : 89-320-1009-9 02810

토요일, 11월 03, 2007

비단꽃 넘세

평소 기독교인들의 독선적인 믿음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나는 우리나라에 들어온 기독교가 무속신앙을 대체한게 아니라 오히려 무속화 되어버렸다고 여겨 왔었다. 독선적인 기독교에 빗대어 무속 신앙을 같이 비하시켜 왔던 것이다. 그렇게 이땅에서 수천년을 함께 해오던 신들과 그의 대리인들은 미신으로 치부되면서 없어져야할 서글픈 존재가 되어갔던 것이다.

내가 무속신앙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된건 최근에 들어서였다. 눈에 보이는 세계외에 또 다른 세계가 있을 수 있음을 조심스럽게 인정하게 있었고 사후세계가 충분히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 부터였다. 그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무속인들의 세계가 궁금해지는건 당연한 순서였다. 그리고 그래이엄 핸콕의 Super Natural(초자연)이라는 책을 통해 종교의 원래 모습이 영적세계를 체험한 이들, 즉 무당들의 경험을 토대로 형성되었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종교와 무속신앙들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막연히 무속신앙을 미신으로 치부하거나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가져왔던걸 반성하게 되었다. 다른 신들과 다를 바 없는 신이었고 그 대리인들, 즉 무당들이야말로 이땅에서 이어져온 종교인이고 성직자였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삶을 돌보고 때로는 호통을 치고 때로는 도움을 주기도 하는 이땅의 신들은 여전히 그자리에 있어 왔던 것이다.

무속인들의 삶과 경험을 이 한권의 책을 통해 알 수 있으리고 기대하지 않았다. 김금화씨(76)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이나마 그들의 삶을 엿보고 이해하고 싶었다. 300페이지 조금 넘는 책이 그들의 세계를 설명해 주기에는 너무도 모자를 것이다. 막연히 무섭고 우리와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던 그들의 세계가 오히려 흔히 알고 있는 일반 종교보다 더 우리 생활에 가까이 있을 수 있음을 알게 된것이 이 짧은 독서를 통해 얻은 가장 큰 기쁨이고 수확이었다.

" ... 셋방살이를 해도 주인과 세입자가 존중하며 공존하는 것이 법칙이다. 당연히 종교를 두고 내 것만 옳고 다른 이의 것은 미신이라고 단정 지으며 배척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무속도 엄연한 종교다. 그것도 우리 민족 대대로 내려온 전통의 종교다. 자신들과 다른 신을 섬긴다고 해서 무조건 배척하는 것은 종교인으로서도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어떤 이는 굿에 쓰이는 울긋불긋한 깃발이나 작두, 한 서린 소리가 무섭다고 한다. 하긴 조용하고 엄숙한 교회 예배에 비하면 시끄러운 징, 장구 소리에 무당 호통까지 어우러진 굿이 사람의 마음을 끌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죽고 사는 것, 삶을 이어나가는 것이 평화로운 일만은 아니다. 오히려 삶은 적나라한 고통이고, 그것을 이겨내는 단단한 마음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더 많다. 무속은 굽이굽이 곡절 많고 시련 많은 인간사를 질긴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더 큰 의지가 되는 종교가 될 것이다. ... "

금요일, 11월 02, 2007

잘난 사람들의 인정

내가가진 고충을 얘기하면 이런 말을 들을때가 있었다. " 다 똑같다. 모두 힘들다. " 이 말을 듣는 순간 내가 가진 문제들은 그저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버린다. 쓸데 없는 소리를 한것이다.

학교 졸업 후 처음 들어갔던 회사에서의 일이었다. 한참 일을 배워야 할때 주변일들이 맡겨지는 기분을 느꼈다. 빨리 자리를 잡고 싶어하는 마음과 미래에 대한 걱정을 선배직장인에게 얘기했었다. 그때 들려오는 대답이 그거 였다. '모두가 그렇다. 그건 니가 알아서 해야 한다'. 거기에는 제대로 된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일을 제대로 배우고 있는 이들과 내가 일을 배우는 차이와 발전의 정도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빠져 있었다.

내가 어느정도 그들의 나이가 되었고 처지가 되어서 생각해보니 그때 그들은 그저 귀찮아서 그런 대답들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때는 그런줄로만 알았었다.

세상을 살면서 드는 의문들에 대한 답들을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하는게 많다. 괜찮은 책과 글을 찾아 읽어려는 노력들의 의미도 여기에 한 목적이 있다. 생각과 느낌들을 매끄럽게 표현하는 능력이 아직 모자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공감을 가지게 되는 좋은글들을 만나게 되면 스스로 깨달은양 기쁨을 느끼게 된다. 다음의 글도 그런 글이었다.

" ... 난 왜 이런 말들이 자꾸 “나 니들보다 덕 본 거 없어. 나도 니들이랑 똑같은 세상을 살고 있어”라는 소리로 들리지?
혹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신의 자본을 부정함으로써 자신이 누려온 혜택을 은폐함과 동시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겪었을 고통도 애초에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기 위한 작전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 "

잘난 사람들의 인정-한겨레21

화요일, 10월 23, 2007

자유

영화 "아이로봇"의 끝부분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NS-5 로봇 ‘써니’가 스프너에게 "이제 저는 어떻게 해야 하지요"라면서 자신의 불안한 미래에 대해 묻는다. 그러자 스너프는 "힘들어도 니가 알아서 해나가야해. 그게 바로 자유라고 하는거야."라고 대답을 한다.

자유의 의미를 느끼게 해준 명대사였다.

화요일, 10월 16, 2007

실망

좋아하던 지식인이 있었다. 그중 몇명은 실망감을 받았는데 공교롭게도 그들의 북한에 대한 입장을 확인하고 나서였다. 현실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손한 태도를 거침없이 비판하던 이가 대상이 북한이 되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돌변하는 점을 선뜻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떤 이의 도움으로 북한을 방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출입국 심사를 받는 자리에서 앞에선 이가 북한의 관리로 부터 호된(?) 질책을 받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했다. 그 사람은 집을 두채를 가지고 있었고 세금 절감의 목적으로 부부이면서 호적을 별도로 가지고 있은 모양이었다. 그 북한 관리는 이 부분을 문제 삼아 '아주 돈이 많은 모양이구만요' 라는 말을 하면서 여권을 팽개쳤다고 한다. 그 장면을 본 그 평론가는 북한관리의 불손한 태도는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단지 돈이 많은 것이 불편한 세상에서 겪어야 할 당연한 일로서만 언급하고 있었다. 그러고서는 고난의 행군을 겪어나온 북한인들의 단결성을 칭찬하는 이야기로 이어졌었다. 평소에 보여주던 그의 모습에 비춰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북한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말로써 끝을 흐렸다.

이번 남북정상회담때 도올 김용옥씨도 같이 방문했었다. 5만명이 동원된다는 아리랑 공연에 대한 감상을 쓴 기사를 읽었다.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을정도로 웅장한 스케일로 벌어지는 공연앞에서 온전한 판단력을 유지하는건 쉽지 않은 일일거 같다. 하지만 감상과 이성적인 판단은 구분할 수 있는 지식인으로 생각했고 그런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감상은 어떤것일지 궁금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기대 이하의 반응을 보고서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플라톤의 국가론까지 들먹이며 북한체제를 찬양을 하는데 대해서는 실소를 머금어야 했다. 학교 단위의 운동회를 위해서도 교사들의 폭행을 당하면서 준비를 한 기억들이 드문건 아닐 것이다. 5만명이 동원되어 벌어지는 행사가 체제를 찬양하게까지 하는 의미를 가진데 대해서 이해 할 수 없다.

홍수에 떠내려 가는 다섯살짜리 딸을 구하는것 대신 김정일의 초상을 먼저 구해낸것을 자랑으로 생각하는 나라가 그렇게 대단한 집단일 수 있을까. 그런 체제를 선전하는 행사가 그렇게 대단한 것일까.

플라톤은 '이상국가'를 말한다। 그가 사용한 단어는 '폴리테이아'인데, 그것은 스파르타를 모델 중의 하나로 삼은, 최고선(The Supreme Good)을 구현하기 위하여 엄격히 통제된 정체(政體)를 말한다. 인간의 출생부터 우생학적 고려를 거쳐 집체적으로 교육되는데,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사실은 사유재산의 부정을 위해 가족까지도 파괴된다는 것이다. 이상국가에는 '엄마' '아버지'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북한 사회는 플라톤의 이상국가에 비하면 훨씬 더 인간적이다.


'유토피아(Utopia)'라는 말은 영국의 토머스 모어(Thomas More, 1477~1535)가 처음 쓴 말인데 그것은 우(ou)라는 부정사와 토포스(topos)가 합쳐진 희랍어로서 "아무 데도 없는 곳"이라는 뜻이다.

북한은 사실 이 지구상 어느 곳에도 존재하기 어려운 정체를 가진 나라임에 틀림없다. 아리랑에 출연하는 5만여 명의 동작이 변검(變)의 탈처럼 순식간에 변하여 일초일촌의 오차도 있을 수 없다. 거대한 경기장을 안방 파리처럼 날아다니는 교예사들의 아슬아슬 곡예는 간담을 서늘케 하지만 그 절제 있는 동작의 미학은 찬탄을 자아낸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쇼가 아니다. 이것은 그들 유토피아의 삶이며 역사며 가치이며 희망이다. 이러한 집체적 훈련에 참여함으로써 그들은 교육을 받고 의식화된다.

플라톤의 이상국가에서도 가장 중요한 교과목은 용맹스러운 음악과 집체적인 체조였다.

"보지 않으면 몰라. 좌우지간 보고 말해야겠구먼." 민노당 천영세 의원의 소감이다. 해석은 자유다. 남한 사람들의 해석을 북한 사람들이 강요할 수는 없다. 단지 우선 보아야 하고, 우선 정확히 그 실상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기대 이상의 성과가 나왔다. 성과의 조목도 매우 구체적이다. 전일한 목적을 위해 집체적으로 통합된 사회! 과연 그 최고선의 목적이란 무엇일까? 그것이 불변의 고정적 목적일 수는 없다. 변증법적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의 기대는 이러하다. 집체적으로 통합된 에너지를 과연 그들은 '경제강국'이라는 목표를 위해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단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은 물질적으로 잘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를 안내한 조평통의 여성 동지가 말한다 : "잘사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올바르게 사는 것이 목표입네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는 탐욕이 배제된 지성(nous)이 실현되는 나라였다. <도올 김용옥 기자: http://news.joins.com/>

NLL

2007년 남북정상회담이후 NLL문제가 불거져 나오고 있다. 정상회담 직전부터 NLL이야기가 솔솔 흘러나올때 부터 재설정 문제의 공식화는 분명해 보였다.

사실 유엔 해양법 등 국제 규약에 따르면 NLL에 대한 남쪽 주장이 성립되기 어렵다고 한다. 이같은 재설정 문제의 합리성에 대한 이야기들을 여기저기에서 들을 수 있으나 왠지 석연치 않은 느낌이 함께 들었다. 좀더 솔직이 말하자면 재설정문제에 찬성하는 입장이 아니면 수구꼴통세력으로 몰아붙이는 반응들에 불편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헌법의 적합성을 떠나 남북이 현실적으로 독립적 국가로 기능한다고 볼 때 NLL은‘경계선’의 의미로 작용해왔다. ‘헌법’과 ‘정치적 현실’의 구도에서 보면, NLL은 후자의 측면에서 존재 의미가 있을 것이다. 수복해야할 괴뢰정권인 북한과의 남북정상회담이 가능한 것과 마찬가지 측면이라는 이야기다. 반대로 미제 앞잡이들의 괴뢰도당인 남한정부의 괴수에게 의장대 사열까지 벌였던 북한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일것이다.

북한도 이제껏 그네들이 지켜왔고 사실상 인정해 왔던 경계선으로서의 NLL을 새삼 문제 삼고 나오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이 국제법적으로 영해를 규정하는 경계선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으나 사실상 북한 당국도 받아들인 현실적 경계선이었다. NLL은 1953년 정전협정 서명 직후 마크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이 설정했다.

정전협정에선 전쟁 전 남북 경계선에 근거해 서해의 섬들에 대한 관할권을 나눴다(제2조 13항). 당시 유엔군은 북한의 군수물자가 집중돼 있던 서해 연안에서 압도적 제해권을 갖고 있었으나 협정 체결을 위해 양보한 것이다.

유 엔군은 북위 38도선 북쪽 지역의 섬에서 철수했다. 바다를 봉쇄한 상태에선 휴전이 성립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클라크 사령관은 38도선 아래의 일부 섬까지 북한에 내줬다. 문제는 해상 경계선 설정에 합의하지 못해 갈등의 불씨를 남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발적 충돌을 우려한 클라크 사령관이 NLL을 일방적으로 선포한 것이다.

북한은 53년 이후 20년 동안 NLL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준수했다. 63년엔 북한 간첩선 문제로 열린 군사정전위원회에서 북한 대표가 "우리 배는 NLL을 넘어간 적이 없다"고 말했을 정도다. 실질적으로 관할권을 받아들인 것이다. 73년 들어 북한은 백령도.연평도 인근 NLL을 43차례 넘나드는 등 NLL을 분쟁수역화하려 했다. 그럼에도 북한은 84년 수해물자를 싣고 오가는 선박의 통행 기준선을 논의할 땐 NLL을 해상 경계선으로 인정했다.

92년 남북기본합의서 제11조에선 "남북 불가침 경계선은 정전협정 이후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해 온 구역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93년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NLL을 기준으로 한국의 비행정보구역을 수정했을 때도 북한은 토를 달지 않았다.



NLL은 시작이야 어찌되었건 50년이상 실질적인 경계선 역할을 해왔다. 남북한의 경계선을 보더라도 합리적으로 선이 그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 북한이 문제를 제기 하면서 말하는 경계선의 개념이 얼마나 억지스러운가는 위의 사진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목요일, 10월 11, 2007

유치원 가을행사

진성이 유치원에서 가족들이 참여하는 행사를 가졌다. 가까운 불곡산의 중턱까지 갔다오면서 중간중간 준비해둔 이벤트를 진행하는 형식이었다.


혹시라도 비가오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행사가 끝난후부터 빗방울이 날리기 시작했다. 씩씩하게 산을 타는 진성이가 커서도 산의 묘미를 알게되어 그의 영혼에 쉼터같은 존재로 자리잡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았다.


행사 마지막에 종이찰흙으로 목걸이를 만드는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었다. 왼쪽부터 진성엄마, 나, 진성이가 만든 결과물.

웃으라는 주문에 적극적으로 반응해주는 진성이.

주변의 사람들과 또는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알고 창조적인 힘을 가질 수 있도록 키우고 싶다. 어떻게 하는건지는 아직 잘 모른다.

아파트촌의 석양

외출후 집에 들어설때 였다. 그리 맑지 않은 날이었는데 지는해의 모습이 참 예뻐 카메라에 담았다.

어릴적에 살던 집에서 보면 산비탈에 있던 학교 건물 옆으로 해가 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는 해의 집이 그 산비탈 넘어 어느곳에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산비탈에 사는 사람들은 저녁해를 직접 만져볼 수 있는것으로 알고 부러워 했다. 이제 그 집에 다시 갈일이 없어졌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친근하고 따뜻하게 느껴졌던 저녁해의 느낌은 계속 마음속에 남아 있을거 같다.

토요일, 10월 06, 2007

존재미학

예전에 읽었던 책을 책꽂이에서 한권 뽑았다. 재생지를 사용했기에 묵은 종이냄새가 알싸하게 다가왔다. 그중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다. 일주일넘게 가방속에 있으면서 출퇴근때마다 몇번씩 반복해서 읽었다.

이책을 샀을때가 2001년도 였을 것이다. 그때 나는 옥죄어 오던 주변의 상황과 힘에 무지하고 무력하게 밀려가고 있었고 출구를 찾아 무던히도 헤매고 있었다.
연필로 줄까지 그어가며 읽었던 흔적이 남아 있는데도 내용이 전혀 새롭게 다가오는걸 보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 내면의 준비가 덜되었던거 같다. 어쩌면 그때 운명의 힘이 그런 비루한 상황을 벗어나게 해줄 실마리를 던져주었던 건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지금의 내 삶에도 창조적인 힘을 발휘할 여지가 많음을 알게 되었다. 그 비루한 일상에서 출구를 찾고 나서는 용기와 행동은 지금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계속 유효할 것이다.

세월이 한참 지나서도 새롭게 읽게되는 기쁨이 있다니 좋은 책과 글을 읽는것의 즐거움이 이런것인 모양이다. 그리고 이사가게 되면 근사한 책꽂이를 가져야 되는 이유가 또 하나 생긴거 같다.

주체는 권력의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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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에 따르면 권력은 일방적인 강제만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주체의 자발적 동의를 얻어 움직인다. 다시 말해 푸코적 의미에서 권력이란 주체의 자발적 동의를 얻어 주체를 무력화 시키는 힘이다. 거시권력은 바로 이 미시권력의 망을 토대로 비로소 작동을 하기에, 거시권력을 무너뜨리는 것만으로는 부당한 권력의 횡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것이 푸코로 하여금 미시권력에 대한 분석에 착수하게 만든 동기였을 게다. 사실 군사독재가 물러간지 10년이 다 되어 가도록 아직도 우리 사회 전체가 국방색을 띠고 있는 것은 거시권력을 지탱하는 토대가 되었던 그 미시권력의 망이 얼마나 집요하고 완강한지 잘 보여준다.

사실 사회 속에서 개인은 이처럼 촘촘한 인간관계의 망으로 둘러 쌓여 있고, 이 속에서 주체는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한 주체가 하는 말, 한 주체가 하는 행동, 아니 한 주체의 정체성 자체가 바로 이 '관계'라는 이름의 권력효과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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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배려

프랑스어로 '주체'(=subject)라는 말은 '자기 자신의 주인'이라는 뜻과 아울러 그 정반대, 즉 '충실한 신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종종 간과되곤 하는데 푸코가 근대적 주체의 형성과정을 동시에 권력의 신민화 과정으로 파악하는 바탕에는 암암리에 이런 언어놀이가 깔려 있다. 초기의 푸코는 다분히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주체를 권력의 효과로, 주체의 발언을 담론의 효과로 파악했다. 말하자면 근대철학에서 말하는 근대시민의 이상, 즉 '자율적 주체'란 한마디로 환상이라는 얘기다. 자율적 주체란 실은 외부의 감시의 눈을 자기의 내부로 옮겨놓은 사람, 즉 타인의 감시가 없어도 스스로 알아서 자신을 감시하는 사람, 한마디로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알아서 기는' 사람이라는 얘기다.

이런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주체'란 그야말로 권력의 망이라는 거미줄에 걸린 가련한 벌레들과 다르지 않다. 그 벌레들은 머리로는 자기가 자유롭다는 착각 속에 사나 그의 행동만은 거미줄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가 없다. 이런 유물론적인 권력 분석의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망에 걸린 벌레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자기가 자유로운 존재(=자율적 주체)가 아니라 실은 죽음의 망에 걸린 구속된 존재(=타율적 대상)라는 쓰디쓴 진리를 깨닫고, 일체의 쓸데없는 저항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을 게다. 바로 이것이 90년대에 우리 사회에서 푸코를 수용한 방식이었다. 이 경우 푸코는 앞서 내게 자기의 "인생공부"를 충고한 네티즌처럼 우리에게 일체의 저항을 포기하라고 가르치는 실천적 보수주의자로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자기의 "왜소한" "인생"을 남에게 권고하는 것이 푸코가 권력분석을 한 동기는 분명히 아니었으리라.

<성의 역사> 제2권, <쾌락의 활용>에서부터 푸코는 문제의식의 전환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권력의 망이라는 구조로부터 주체를 객관화하여 바라보았다면, 이제는 주체의 관점에 서서 권력의 망을 변화시키는 실천적 방안을 찾는 방향으로 선회를 한 것이다. 즉 냉철한 권력분석의 과학에서 권력의 자기장 속의 인간이 자기를 주체적으로 형성하는 윤리학으로 문제의식을 변화시킨 것이다. 이 새로운 윤리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권력의 망은 더 이상 '나'라는 주체를 구성하고 결정하고 형성하는 힘이 아니라 동시에 나에 의해 변화될 수도 있는 어떤 것으로 등장하게 된다. 내가 권력의 망 속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바로 이 질문 앞에서 부당한 권력에 대항하는 전략으로써 푸코가 제시하는 것이 '자기의 배려'라는 존재미학이다. 존재미학은 주체를 한갓 사물로 대상화하는 권력의 힘에 맞서 자기를 다시 주체로 형성할 미적인 윤리학이다. 다시 말해 권력의 힘 앞에서 무력하게 자기를 포기하지 말고 자기를 배려하고, 이로써 자기의 삶을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하는 실천적 테크닉의 체계가 필요하며, 이것이 이 사회의 새로운 미적 에토스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권력이 강고하다 하더라도 그 권력의 망 속에서 미리부터 자기를 포기하고 스스로 망가질 필요는 없다. 다른 삶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권력 앞에서 미리 망가지는 것이 삶의 지혜로 통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가진 유일한 도덕은 반공도덕이고, 우리가 가진 유일한 윤리는 국민윤리다. 우리에게는 자기의 삶을 배려하는 개인윤리가 없었다. 파시스트적으로 구조화된 사회는 굳이 그런 걸 필요로 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그 속에서 자란 우리는 그것을 배울 기회도 없었던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국가 속에서 나를 잊으라고 요구하는 국민윤리나 반공도덕이 아니라 시민 사회의 일원으로서 동료시민들과 평등하게 소통을 하는 테크닉으로서의 시민윤리이다. 이때 푸코가 말한 존재미학은 권력의 망 속에서 자기를 포기하고 살아가야 했던 수많은 비루한 존재들에게 권력의 망 속에서 저항과 자기의 배려를 위한 실천적 테크닉을 언어적으로 분절화한 새로운 윤리, 성숙한 시민 사회를 위한 미적 에토스가 될 수 있다.

권력욕과 권력의지

니이체에게서와 마찬가지로 푸코에게도 '권력'이란 낱말은 부정적인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것은 선악의 기준을 대기 이전에 존재하는 하나의 물리적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이세상은 권력으로 가득 차 있으며, 또 권력이 없으면 이 세상은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세상을 가득 채우고 세상을 움직이는 권력들 주의 어떤 것은 정당하며, 어떤 것은 부당할 수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것이 권력이고 대항권력도 역시 권력이므로 일체의 권력을 행사하기를 포기해야 한다는 처녀성의 도덕은 니이체나 푸코의 생각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90년대의 푸코 수용은 다분히 저항권력 자체의 정당성을 공격하는 뻔뻔한 보수적 논리로 귀결된 감이 있다. 푸코의 주장은 권력으로부터 도피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거 권력의 노예가 되지 말고 그것의 주인이 되어 그것을 올바르게 활용하는 실천적 테크닉을 찾으라는 것이다.

니이체가 말한 '권력의지'는 흔히 말하는 '권력욕'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다. '권력의지'란 본디 한 인간이 가진 창조적인 힘(puissance)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것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력일 수도 있고, 어떤 일을 해나가는 추진력일 수도 있고, 그 밖에 한 개인이 갖고 태어난 이론적, 실천적 능력일 수도 있다. 자기 자신의 '힘'을 의식하고 있는 사람은 굳이 '권력욕'이라는 것을 가질 필요가 없다. 거기엔 아예 관심이 없다. 외려 무능한 사람들이 자신의 존엄을 확인받고 싶을 때 흔히 말하는 '권력욕'에 목을 매고, 남들에게 자신의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법이다. 그것이 자기가 중요하다고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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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루한 자들의 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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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권력에 대항하는 싸움에는 거창한 대의가 있었고 위대한 영웅이 있었으며, 그들의 무용을 찬양하는 서사시가 있었다. 하지만 미시권력에 대항하는 싸움은 우리처럼 비루한 존재들이 치러야 하는 재미없고 지루한 산문적 성격의 전투다. 거시권력에 대한 싸움의 주체가 화려한 중세의 기사라면 사회의 모든 곳에 깔려 있는 미시권력에 대한 싸움의 주체는 이름 없는 산업사회의 보병들이다. 흔히 푸코의 존재미학에 가해지는 비판 중의 하나는 '댄디라는 이름의 소수의 엘리트를 위한 윤리가 아니냐'는 것이다. 굳이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 사실 미시권력에 대항하는 미시정치학의 주체는 소수의 엘리트가 아니라 다수의 이름 없는 보병들이다. 이들 역시 자기의 존재미학을 가질 자격이 있다. 자기의 몸을 촘촘히 감싸고 있는 권력의 망 속에서 자기를 포기하지 않고 그 관계의 성격을 변화시키는 가운데 자기를 배려하는 실천적 테크닉. 이를 통해 제 존재를 완성으로 이끄는 실천의 미학은 무엇보다도 우리처럼 비루한 자들을 위한 미적 에토스다.

자기를 소외시키는 반공도덕이나 국민윤리가 아니라 나 자신의 존재를 배력하기 위한 시민적 에토스를 형성해야 한다. 진정한 엘리트는 그 잘난 1류 대학을 나와 기껏 자신을 포기하고 제 삶을 망가뜨리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소위 '엘리트'들의 천민적 행태를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가정, 학교, 직장 등 사회의 모든 곳에서 자기 둘레릐 권력의 망, 즉 자기를 둘러싼 관계들을 변화시켜 사회를 항상 새롭고 젊게 만드는 사람들. 그런 미시정치학을 통해 자기를 포기하지 않고 제 삶을 예술작품으로 끌어올릴 줄 아는 사람들, 자기를 배려하는 존재미학을 가진 이 비루한 현대판 폴리스의 인간들이야말로 현대의 귀족이며 진정한 의미의 엘리트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엘리트가 되는 길은 우리처럼 비루한 모든 이에게 열려 있다.

아웃사이더_04 / 진중권, "존재미학, 비루한 자들의 미적 에토스" 중에서.

토요일, 9월 29, 2007

야근에 대한 기억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회사( 지금은 없어졌다 )에서의 일이었다. IT SI업체였고 부사장격인 사람이 신입사원까지 관리하는 수준의 조직관리가 이뤄지고 있었다. 국문과를 졸업하고 취직을 위한 지렛대로 IT학원을 다녔었다. 수료 후 그 학원의 중개로 들어간 회사였다.

그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관리하는 책임자는 없었다. 과,차장급 중간관리자는 한명도 없었다. 부사장격인 이사라는 사람이 말단직원까지 모두 체크를 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추진하는 일들도 그 이사의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스케줄과 사람에 대한 평가로 이뤄지고 있었다. 시스템과 체계라는걸 기대할 수 없는 조직이었다. 그렇게 중구난방으로 이뤄지는 일들앞에서 유일하게 통하는 생존법칙은 알아서 배우는거였고 알아서 일을 찾아 나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이 능력있는 사람이었고 유망한 사람이었다.

현실파악능력이 뛰어나지 못했던 나는 한참을 헤매야 했었다. 나는 왜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을까, 왜, 내가 하는 일들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하는 라는 끝없이 이어지는 의문들을 가슴속에만 품고 지내야 했다. 내가 어디를 가고 있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늠할 수 없었던 나는 일이 있으면 무작정 밤까지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툭하면 주말에도 일하는 곳에 나와 있었다. 최소한 그렇게는 해야 된다고 여겼었다. 한번씩 있는 회식자리에서 야근과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누구나 그렇게 한다'라는 말을 어김없이 듣곤 했기에.

한참이 지난 후 그때의 일들이 회사의 횡포였고 무책임한 직원관리에서 비롯되었다는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의 기억과 버릇들이 여전히 내게 남아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퇴근시간이 지난 후 일어서는 것이 왠지 불안하고 어색하게 느껴진다.

공감이 가는 기사를 읽었다.

프레시안 기사 - '순진하면 사회생활 못 한다'는 사회가 정상인가

토요일, 9월 08, 2007

죽음과 함께 춤을

이책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던 계기는 목차에 들어있는 "천국에서 그가 본 것들"이라는 소제목 때문이었다. 죽음이 주는 허망함을 사후세계라는 것에서 그나마 위로를 받아 왔던 나는 현직의사의 입장에서 시후세계에 대한 이야기에 무척 관심이 끌렸다. 서점에 갔을때 내가 생각하던 책이 맞을까 확인을 하려 했는데 재고가 없었다. 좀처럼 이용하지 않는 인터넷을 통해 책을 샀다.

좀 실망을 했다( 내가 바라던 내용이 아니었음 ). 저자는 현직 의사의 자격을 가진이로써 철저히 과학의 입장에서 환자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안락사 시킨 환자의 마지막 모습에서 신비한 느낌을 잠시 언급하기는 했으나 전체적으로 이 사람은 임사체험과 사후세계와 같은 비과학적인 영역은 처음부터 고려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의사의 능력을 필요이상으로 높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오해와 편견을 재치있게 이해시켜 준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삶에 대한 미련과 의사에게 의존하는 모습들을 익살스럽게 표현을 한다. 그런 환상을 심어준 의사들의 한계와 오만을 비판한다.

현대의 의학이 자리잡은 시점을 19세기말 정도로 볼때 눈부시게 발전한 부분은 "병리학, 세균학, 마취학" 이렇게 딱 세부분이라고 말한다. 그 이외의 눈부시게 발전해 보이는 부분들은 각종 편의장치들이 잔뜩 추가되었지만 본질적으로 변한게 없는 100년전의 자동차와 현대의 자동차의 차이를 비유해가며 이해시킨다.

잊을만 하면 심심치 않게 암을 치료할 수 있는 특별한 기술이 개발되었다는 뉴스가 들린다. 심지어는 암치료 성공율이 50%정도라고 선전 하면서 발전된 의학의 성과를 광고 하지만 이런 뉴스들은 1950년대에 발표되었어도 비슷한 성공율도 발표되었을 것이라면서 과장된 현대 의학수준의 현실을 설명한다.

불치병에 걸린 환자에게 행해지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환자 본인과 가족들에게 많은 고통을 주게 된다. 자연스럽게 안락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과연 가능하게 될지는 의문이다. 존엄한 죽음의 문제를 벗어나 치료비 부담의 문제로 안락사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도 숱하게 생기게 될지 모른다.

병원비의 문제가 아닌 존엄한 삶의 마감의 문제로써 안락사를 고민하고 시행할 수 있는 네델란드의 환경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삶과 한번도 떨어진적이 없으며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일이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맞이하기도 힘든 문제이다. 그러기에는 현세에서 맺고 있는것들이 너무나 많다. 모든것들을 포기한다고 치더라도 아이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문제 앞에서 죽음을 쉽게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래서... 내세라도 있으면 거기에서 다시 만난다는 위안이라도 가질 수 있으면..


금요일, 9월 07, 2007

지적 독립

상대의 권위를 너무 쉽게 인정하고 따라가려고 하던 때가 있었다. 벗어난거 같지는 않고 내가 그렇다는걸 느끼게 된지가 얼마 되지 않은거 같다. 가깝게는 주변의 사람들 부터 책을 통해 알게된 사람들의 면면까지 귀감이 될만한 사항들을 하나라도 알게 되는 순간부터 그사람은 멋있는 사람이고 좋은 사람이고 본받아야 할 사람이 되었다.

졸업 후 한참동안 창작과 비평을 계속 정기구독을 했던 이유도 거기에 나오는 내용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진실의 이야기들고 내가 당연히 따라가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한동안 이보다 더 완벽한 생각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경외감까지 가졌던 어느 시사평론가의 경우도 마찬가지 경우였다. 그 사람과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도 있음을 느끼게 되었을때 스스로를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대학다닐때 학생회의 주장들을 가슴한켠으로 드는 의구심들을 애써 묻고 자발적인 의식화(?)의 길을 걸어갔던 것과 같이.

"지적 독립"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좋은 글을 하나 읽었다. 최근들어 내게 일어나는 변화의 의미와 이유를 명쾌하게 이해시켜 주었다.

"...지적 도덕적 권위에 주눅들어 최소한의 합리적 의심마저 내던지고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던 것 같다. 그런 식의 독서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걸 깨달은 건 서른이 다 돼서였다. 어떤 공인된 전문가도, 어떤 공인된 대가(大家)도 틀릴 수 있다. 술에 취해 한 말이라 그럴 수도 있고, 격정이나 편견이나 이해관계에 휘둘려 쓴 글이라 그럴 수도 있고, 그가 본디부터 이름에 미치지 못하는 헐렁이여서 그럴 수도 있다. 그것을 잊지 않는 것이 지적 독립의 첫걸음이다...."

말의 힘 - 고종석

일요일, 9월 02, 2007

가을 문턱에 돋아난 새싹들.

조그만 텃밭을 일구고 있다. 지난주에 뿌렸던 무우씨와 배추 모종이 싹을 돋기 시작했다. 배추모종을 처음 받고서 심었을때 너무 연약해 보여 이중에서 몇개나 자리를 잡게 될까 걱정했었는데 오늘 보니 모두 자리를 잡아 파릇파릇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뿌렸던 무우씨들은 그물망을 덮어두었었지만 비둘기등 날짐승들은 그물망을 헤짚고 주변의 씨았을 파먹었다. 그런 무우씨들도 이제 싹을 돋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텃밭 농사를 먼저 했던 사람들이 배추는 잘되지 않는다고 했다. 배추를 키우기 위해 화학 농약을 뿌리기 싫던 차에 유기농 농약이 있음을 알았고 한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예쁘게 자리를 잡은 배추와 무우가 잘자라 기쁨을 수확할 수 있으면 좋겠다. 텃밭농사는 노동의 의미와 우주원리를 체득할 수 있게 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밭에 사마귀 한마리가 있었다. 둘째 윤성이가 호기심가득한 눈으로 보고 있다. 자연으로부터 너무 멀어져 버린 아이들에게 곤충들이 사람과 같이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임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교육의 기회도 된다.
박각시 한마리가 주변밭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밤에 주로 활동하는 나방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놈은 해가 없어서인지 연신 빨대처럼 길다란 대롱을 꽃에다 꽂고 있었다.

수요일, 8월 29, 2007

아프카니스탄 인질석방

어제 밤에 남아 있는 인질들 모두를 석방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찌되었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민족, 조국이니 하는 말들이 얼마나 공허한 개념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한민족, 단일민족, 대한민국을 외치던 나라의 국민들이 자기나라 사람들의 위태로운 목숨앞에서 어떻게 냉소를 보내고 외면할 수 있을까. 인질들이 선교를 목적으로 그곳에 갔음을 알려주는 내용의 글들을 번역까지 해서 탈레반의 홈페이지에 게재까지 한 사람이 있었다니 그런 잔인한 사람들과 같은 민족, 국민이라는 사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건지 의아하기 까지 하다.

목요일, 8월 02, 2007

비슷한 취향

나는 왜 끈 달린 수첩에 껌뻑 죽는가

연필과 종이에 집착하는 나의 성향을 닮은 사람의 기사를 봤다. 사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지우개가 달린 연필과 메모하기 좋은 종이류들만 보면 한참 망설임을 겪어야 하는 기분이 어떤건지를 잘 알기 때문에 내내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우연히 만났던 Dixon의 연필은 모두 세타스를 샀고 그중 한타스는 평생 소장의 의미로 포장을 뜯지 않은 상태로 두고 있다. Faber Castell의 GoldFaber는 개별로 손에 들어온거 까지 합하면 얼추 세타스 정도 되는거 같다. 또 연필을 손수 깍는걸 좋아하다보니 연필만큼은 아주 근사하게 깍아 놓을 수 있게 되었다.

하찮아 보이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것도 삶의 소소한 기쁨이지 않을까.

화요일, 7월 31, 2007

아프카니스탄 납치자 석방노력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사람들부터 구해야 한다. 이런저런 저주에 가까운 말들을 쏟아내는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더 바란다면 속이 타고 있을 인질 가족들의 처지를 조금이라도 이해를 해보라고 하고 싶다.

우리나라 정부에서 보낸 대통령특사와 아프카니스탄의 대통령이 무슨 긴밀한 협의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다지 영양가 있는 내용은 아니었을것으로 보인다. 아프카니스탄 대통령은 포로석방은 절대 없다고 하고 미국정부도 테러리스트와의 협상은 절대 없다는 영화속에서나자주 듣던 말을 반복하고 있다. 누구도 한국인질의 안위에는 별로 관심 없다는 말이다. 탈레반이 원하고 있는 포로의 석방문제가 빠진 그들의 원칙은 문제를 파멸로 이끌고 가겠다는 말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자국민이 테러범들에게 붙잡혀 있어도 저런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을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말들이 참으로 허무해 보이기 짝이 없다. 조금만 생각을 해도 탈레반 포로석방의 열쇠를 쥐고 있는건 미국이라는걸 알 수 있다. 미국이 벌인 아프카니스탄 침략이었고 미국이 만들어준 현재의 아프카니스탄 정부가 아닌가. 탈레반과의 협상을 위해 사소한 문제도 민감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때에 오히려 탈레반 세력 소탕작전의 강도를 더해가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한국인 납치자의 죽음을 오히려 그들이 벌인 전쟁을 합리화의 좋은 도구로 사용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들게 한다.

이런 일련의 흐름을 볼 때 정부가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노력들이 문제의 과녘을 한참 비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 특사를 아프카니스탄으로 보낼게 아니라 부시대통령에게 보냈어야 했다. 원만한 해결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 탈레반에 대한 공세작전, 테러단체, 사악한 따위의 것들이나 테러범들에게 양보가 없다는 그들의 원칙을 잠시라도 중단해달라고 해야한다.

굳건한 한미동맹이라는게 겨우 이런것이었을까.

토요일, 7월 28, 2007

Sierra Zip Stove

눈여겨 보던 버너를 샀다. 이름이 Sierra Zip Stove여서 환경보호단체인 Sierra클럽과 관계가 있나 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Ultralight Backpacking에 대해 알무렵 눈에 띄었던 물건이었다. 한 3년쯤 지났나? 잊을만 하면 머릿속을 맴돌아 맘먹고 주문했다. 본사에 직접 주문했었으나 2주이상 기다릴 수 있냐고 묻길래 포기하고 다른곳을 찾았다. 언뜻 보기에 가장 문제가 될듯 싶은 모터를 같이 구입하려 했는데 마침 캐나다에 있는 쇼핑몰에서 부품을 같이 파는 곳이있었다.

AA사이즈 배터리 하나로 10시간정도 팬을 돌릴 수 있다니 이로써 캠핑에서 연료걱정은 끝난셈이다.( 물론 간단히 조리할 정도의 개스버너는 보조로 가지고 있는게 좋다. )

생각보다 튼튼하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터도 외부에 노출되어 있고 배터리 넣는 부분도 방수기능은 고려되지 않아 내구성에는 썩 신뢰가 가지 않는다.

성능은 기대한만큼 나왔다. 정확한 화력을 잰다는게 애당초 힘든 물건이다. 화력은 넣는 나무조각과 양에 따라 결정된다. 나무조각이 들어가는 부분에 차곡차곡 넣지 않는 이상 불이 계속 붙을 수 있도록 연료를 보충해 줘야 한다.

비오는 날에는 어떻게 사용하나 걱정을 했었다. 마침 처음사용했던 때가 장마철이고 전날 많은 비가 내린 후여서 구할 수 있는 나무조각들은 죄다 젖어 있었다. 처음 불씨만 살려 주니 젖은 나무들도 문제없이 타기시작했다. 날씨 영향은 거의 받지 않는 셈이다.

산이 많다고는 하지만 오지라고 부를 수 있을만큼 사람사는곳과 떨어진 곳이 별로 없는 우리나라의 등산문화에서는 좀처럼 소용이 없을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직까지 수입이 되지 않은지도 모른다. 산속으로 들어가면 몇일씩 문명과는 떨어져 있어야 하는 북미쪽의 등산 문화에 꼭 맞는 제품인거 같다.

목요일, 6월 07, 2007

불가항력적인 일들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겪을때가 있다. 개인의 역량을 훨씬 넘어서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결과를 지켜보고만 있어야 할때 어떻게 하면 이런 무기력한 순간을 지혜롭게 헤쳐 나가는 방법일까. 그 일을 겪은 이후, 삶이 바뀔정도의 일이라면 어떻게 받아 들이는게 현명한 일일까. 곧바로 받아들이기엔 너무 야박한 교과서적인 답안들은 이미 머릿속에 있거나 어디에나 널려있다. 그런때 필요한건 속깊은 이해와 동감이 아닐까.

확실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주변인으로 맴돌던때가 있었다. 한심한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제자리 뜀박질 마냥 현실의 늪에서 허우적 거리면서 그렇게 서서히 망가져 가고 있을때가 있었다. 물론 세상살이는 오롯이 제가 책임지고 헤쳐 나가야 한다고 다짐 정도는 몇번씩 했었다. 하지만 직장생활에 첫발을 막 내디뎠을때의 나는 그런 현실을 깨닫고 헤쳐나가기엔 너무나 어리숙하고 여리기만 했었다. 어쩌면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야박함을 느낄 정도로 아무런 귀띔을 해주지 않았던 이들에게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일거다.

그렇게 돌아갔던 내 세상이었지만 그런와중에서도 위로와 이해를 주었던 것들도 있었다. 퐁네프의 연인들에서 시력을 잃어가는 미쉘을 치료하기 위해 붙인 벽보를 알렉스가 불태우는 장면이 있었다. 미쉘을 뺐기고 싶지 않은 알렉스의 절박한 마음에서 알수없는 뭉쿨한 마음을 느꼈다. 그리고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이끌었다.

사무실 이전

근무하던 사무실이 이전을 했다. 익숙했던 3호선을 벗어나 서울의 서쪽으로 갔다. 회사 생활의 시작이후 줄곧 3호선을 오가는 곳에 사무실이 있었다. 처음 들어갔던 곳은 신사역에 있었고 이전을 했던 곳도 3호선 양재역 근처였다. 두번째 회사도 3호선 동국대 입구역 근처에 있었다. 그리고 세번째 직장도 본사는 다른곳에 있었지만 근무처는 3호선 충무로역에 있었기에 줄곧 3호선을 오가며 직장생활이 이어진 셈이다. 그리이전한 후 타고 다니는 버스번호도 역시 3500번 아니면 303번이어서 3이라는 숫자가 내 삶과 우연한 인연을 가지고 있는게 아닐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이사를 하는날, 마지막으로 9000번을 타고 중앙극장앞에서 내려 사무실로 향했다. 매일 지나쳤던 충무로 사진골목의 모습을 담았다. 카메라 상점 진열대위의 장비들이 설레임도 익숙해진 느낌이었는데 이곳을 찾는것도 큰행사가 되지 않을까.
사무실에서는 북한산이 보였다. 비가 갠 오후면 손에 잡힐듯이 보였다. 아래로 오래된 동네의 흔적들을 보여주는 복잡하지만 왠지 정감이 가는 풍경이 있었다. 새로 만들어진 동네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골목 구석구석 잔뜩 사연들을 안고 있을 듯한 그런 정감.

또 창문너머로는 외국계 은행의 파란색 간판이 눈에 들어왔었다. 비오는 저녁에 젖은 아스팔트 위로 흩어져 비쳐진 파란색 간판의 모습이 참 예뻤다는 기억이 있었다. 다시 보기 힘들지도 모르는 파란색 색감의 기억을 담았다.

수요일, 6월 06, 2007

이리듐 펜촉

우연히 손에 들어와 쓰고 있는 만년필의 펜촉이 이리듐이었다. HP에서 판촉물로 나눠줬던거 같고 원래주인이 누구였는지는 모르지만 그다지 신경써지 않는 자리에서 먼지가 잔뜩 쌓인 모습으로 내 눈에 띄었었기에 고급 만년필촉에 사용하는 이리듐촉이 붙어 있을거라고는 생가지도 못했다.

인터넷에서 이리듐에 대해 찾아 보았다.

※ 이리듐( Iridium )

원자번호 77
원자량 192.2
녹는점 2,447℃
끓는점 4,527℃
비중 22.42(17℃)



이리듐이란 이름은 무지개를 뜻하는 라틴어 Iris에서 온 것으로 이리듐 염이 무지개 빛으로 빛나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약자로는 Ir이라고 쓰는데 무겁고 잘 깨지는 흰색 금속으로 공기, 물, 산에는 반응하지 않은데 가성소다(수산화 나트륨)에 의해서 녹일 수 있다.

이리듐은 세상에 존재하는 금속 중 부식에 가장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덕분에 화학적으로 안정한 특수한 용기를 만들거나 고온으로 가열하는 도가니를 만들 때 쓰인다. 그리고, 백금을 강하게 만드는 성분으로 첨가되는데 90% 백금에 10% 이리듐을 섞어서 만든게 파리에서 kg 단위를 재는 국제 표준으로 이용되고 있다. 미터 단위의 표준으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지금은 크립톤의 동위 원소 스펙트럼의 파장을 재는 걸로 대신하고 있다.

몽블랑은 고급 모델에다 14k, 18k 촉을 쓰며 실제 써지는 부분은 이리듐 합금을 써서 보강해 놓고 있다. 이 이리듐 펜 촉이 개발된 게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 때문이었다고 한다. 메모광)이었던 제퍼슨은 무쟈게 깃털펜을 사용했고 그 와중에 알고 있던 호킨스란 발명가에게 이 얘길 하게 된다. 제퍼슨은 계속 펜을 연구하여 1834년 만들긴 했으나 이리듐이란 게 원체 강하다 보니 가공이 힘들고 비싸서 결국엔 이리듐 펜 촉을 가진 펜이나 만년필도 아무나 쓸 수 없는 물건이 되어버려 개발한 지 1년만에 특허를 팔아 버렸다.

이리듐 펜 촉이 쓰인 펜은 무척이나 고급 펜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왜냐고? 이리듐 자체도 비싼데다 이리듐 가공도 무쟈게 힘들기 때문이다. 참고로 현재에는 몽블랑을 포함한 몇몇 고급 메이커만 이리듐 펜 촉을 끼운 펜을 만들고 있는데 가끔 색깔만 이리듐처럼 은색을 띤 펜을 속여서 파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http://monthly.chosun.com/board/view_content.asp?tnu=200310100039&catecode=&cPage=1

일부 자동차의 부품에도 쓰이는 모양이다. 점화플러그에도 쓰이는 경우가 있는 모양이다. 자동차에 쓰이는 이리듐 플러그의 장점은 백금보다 700도 정도나 높은 녹는 점 때문에 고온에서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성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조 : 산업 기술 프로슈머들의 놀이터 ( http://www1.enfun.net )

화요일, 6월 05, 2007

놋쇠


방짜 유기 그릇들을 주문했다. 구리조각들이 눈에 띄면 어떻게든 손에 넣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그래서 주변에 구리로 된 것들이 꽤 있는 편이다. MIT의 열쇠고리, 도끼모양의 부적, 알콜버너 두개( Turbo II-D, WestWind ), 묵직한 느낌이 좋은 호주 동전등등. 매일 휴대하는 가방을 뒤져도 당장 여러가지 구리조각들을 몇개 발견할 수 있다.

쉽게 구매하기엔 가격이 높은 편이라 꽤 많은 고민을 나눈 후 구입을 했다. 그리고 그동안 인사동에 갈때마다 유기점들을 둘러보며 눈썰미를 키워왔었다. 그러던중 결국 구입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놋쇠의 따뜻한 느낌이 좋다. 철, 스테인레스, 마그네슘등 가까이 접하는 금속과 가장 큰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구리조각들을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잘모르겠다. 잘 닦아 놓으면 반질반질 거울처럼 빛나는게 좋았던건지. 군대 생활때 총의 약실에 탄환이 장전되는 소리가 참 좋았던 기억은 있다. 결국 밥그릇까지 놋쇠로 바꾸게 되었다.

※ 구리, Copper. 원소 기호 Cu는 Cuprum이란 라틴어로 구리 원광이 풍부했던 사이프러스 섬을 뜻한다고 한다.원자량은 64. 비중은 8.92, 철보다 약간 무겁다. 원자번호 29번, 4주기, 11족.

발견된지는 기원전 5000년 이전으로 철보다 근 2500년 앞선다.

구리 합금은 크게 황동과 청동이 있는데 놋쇠라고 부르는 황동은 구리에 아연(Zn)을 합금한 것이고 청동은 주석(Sn)을 합금한 것이다. 금속은 보통 합금하면 녹는 점이 떨어지는데 황동은 950도, 청동은 1060도 정도가 된다.

목요일, 5월 17, 2007

눈에 띈 분홍색.

충무로에 사무실의 계단에 창문이 있었다. 건물들 틈새를 간신히 보여주는 위치에 있어 통풍구로써의 역할만 하다시피하는 창문이었다. 언제부터인지 틈새로 보이는 건너편 건물 외벽에 대형 영화포스터 걸게 그림이 걸리기 시작했다.

사무실을 이전하던날에도 어떤 걸개그림이 걸려 있었다. 침침한 건물틈새로 보여진 분홍색깔 뮤지컬 광고가 짠~ 하는 느낌을 주었다.

토요일, 5월 12, 2007

2차 FX사업, 두번의 공고와 보잉사의 단독입찰

냉전이 끝난 세계 항공시장은 포화상태를 맞았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국지적인 분쟁가능성은 여전하고 전투기의 교체는 계속 이뤄질 수 밖에 없기때문에 각국은 계속 첨단 기술을 적용한 전투기들을 군수시장에 내놓고 있다. 성능과 개념이 기존의 전투기를 훨씬 뛰어넘게 되다 보니 가격도 1000억대를 가볍게 넘어서고 있다. 제작사 입장에서도 판매대수가 증가할 수록 투자비 회수와 생산단가를 낮출 수 있기에 새로운 판로를 뚫기 위해많은 노력을 한다.

이런때에 우리나라가 전투기 20대를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세계적으로도 1000억대를 호가하는 전투기를 구매할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거기에다 선택의 여지도 적은편이 아니다. 미국, 러시아, 중국, 유럽의 여러나라들이 각자의 최신 전투기를 만들고 판로를 모색하고 있다. 당연히 여러 나라의 업체들이 줄지어 팔겠다고 하는게 정상적인 상황일 것이다.

두번의 사업계획 공고를 냈으나 모두 보잉사 외에는 아무도 입찰을 하지 않았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1차 FX사업의 진행 모습을 떠올리면 쉽게 답을 얻을 수 있다. 한국에서는 어떤 첨단기술의 전투기도 한미동맹을 절대 뛰어넘을 수 없다는것을 전세계 군수시장에 선전했던 자리였다. F-15K가 평가에서 계속 밀리니 공개평가도중에 평가기준까지 F-15K에 유리하게 바꿔주고 그래도 일등을 못할 거 같으니 한미동맹을 고려해 선정한다는 상식밖의 공개입찰 이었다. 요즘 CF에서 나오는 '쇼를 하라 쇼를' 이 이런 상화에 정확히 들어 맞지 않을까.

이번에도 보잉사는 당연히 자기회사 전투기 밖에 선정할 수 밖에 없다는것을 알고 입찰에 응했고 나머지는 아무도 들러리 서기가 싫었던 것이다. 사업목적에서 부터 F-15K급으로 못박아 F-15K를 추가 도입하기 위한 수순이라는 분위기를 강하게 느낄 수 있는데 어떤 정신나간 책임자가 엄청난 예산과 노력이 소요되는 전투기 입찰에 응하겠는가.

고가의 무기를 사면서도 구매자의 권리와 이권을 누리지 못하는 이런 한심한 지경에 이르게한 자들은 이번 일을 겪으면서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지금도 한미동맹이 최고라면서 후회없는 행동이었다고 여기고 있을까?

목요일, 4월 05, 2007

산속의 밤

주변에 산을 좋아하는 이들이 꽤 많으면서도 산에 대한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산을 좋아한다는 말에도 여러가지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산이 너무 좋아 주체를 못하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산에서 하는 것이면 뭐든지 했었다. 주말만 되면 배낭을 메고 나서는걸 미덕으로 생각하던 시절이 몇년이 흘러갈때쯤 해서 내가 좋아하는 산의 모습을 알게 되었다. 산을 좋아한다는 마음속 깊은곳에는 산에서의 밤이 자리잡고 있었다.

변화무쌍한 산의 모습은 아름다움운 모습을 보여주는 때도 예측이 힘들지만 나름대로는 해뜨는 무렵과 해지는 무렵이 일상적으로 그가 가진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때이다. 결국 당일 아침에 시작해서 마치는 산행은 앞서 말한 두 순간을 피해서 갔다오게 되기 때문에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산에서 무엇을 해서 산이 좋았던것이 아니라 결국 해질무렵과 해뜰무렵의 아름다움이 좋았고 산속의 밤에 찾아오는 산의 적막이 주는 묘한 느낌이 좋았다.

산속의 밤은 무섭다. 본능적인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그 순간을 지나고 나면 뭔지 모를 아늑함이 편안한 잠자리로 이끈다. 사실 나는 그런 어두움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다. 이런 두려움이 빛을 내는 도구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지는 건지 모른다. 하지만 어떤 도구들도 밤을 낮으로 바꾸지는 못한다. 어둠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알퐁스 도데의 별은 고등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소설이다. 스테파니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설레임을 품고 있는 목동의 마음에 공감이 갔었다. 그런 목동의 설레임외에 산속의 밤을 정말 아름답게 표현한 부분이 있음을 거의 20년이 지나 알게 되었다. 알퐁스 도데도 그런 어둠속의 적막이 주는 아름다움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

갑자기 사립문이 삐꺽 열리면서 아름다운 스테파네트가 나타났습니다. 아가씨는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양들이 뒤척이는 서슬에 짚이 버스럭거리며, 혹은 잠결에 '매' 하고 울 음 소리를 내는 놈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모닥불 곁으로 오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것을 보고, 나는 염소 모피를 벗어 아가씨 어깨 위에 걸쳐 주고, 모닥불을 이글이글 피워놓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둘이는 아무 말 없이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만일, 한번만이라도 한데서 밤을 새워 본 일이 있는 분이라면, 인간이 모두 잠든 깊은 밤중에는, 또 다른 신비로운 세계가 고독과 적막 속에 눈을 뜬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 때, 샘물은 훨씬 더 맑은 소리로 노래 부르고, 못에는 자그마한 불꽃들이 반짝이는 것입니다. 온갖 산신령들이 거침없이 오락가락 노닐며, 대기 속에는 마치 나뭇가지나 풀잎이 부쩍부쩍 자라는 소리라도 들리듯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들, 그 들릴 듯 말 듯한 온갖 소리들이 일어납니다. 낮은 생물들의 세상이지요. 그러나, 밤이 오면 그것은 물건들의 세상이랍니다. 누구나 이런 밤의 세계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은 좀 무서워질 것입니다만…….

그래서, 우리 아가씨도 무슨 바스락 소리만 들려도, 그만 소스라치며 바싹 내게로 다가드는 것이었습니다. 한번은 저편 아래쪽 못에서 처량하고 긴 소리가 은은하게 굽이치며 우리가 앉아 있는 산등성이로 솟아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찰나에, 아름다운 유성이 한 줄기 우리들 머리 위를 같은 방향으로 스쳐 가는 것이, 마치 금방 우리가 들은 그 정체 모를 울음 소리가 한 가닥 광선을 이끌고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저게 무얼까?"

스테파네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영혼이지요."


...

수요일, 4월 04, 2007

FTA 체결

미국과의 FTA체결 자체가 목적이고 꼭 달성한다는 결정을 내려놓고 진행하는 것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왔었다. 졸속협상진행에 대한 얘기들을 들을 때마다 화가 치밀었다. 대통령의 말대로 이미 권력을 잡은 자본의 논리대로 흘러가는 세상에 무기력하고 불안한 미래에 대한 걱정은 끝이 없었다.

이번 체결의 대차대조표에 대한 공방은 분분하지만 예측되었던데로 미국의 의도는 대부분 관철되었다. 우리측의 이득이라고 내세우는 자동차와 섬유도 속이 비었다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 자동차는 이미 미국공장을 통해 미국시장의 수요를 충당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으며 원사의 원산지가 대부분 수입인 상황에서 섬유시장의 개방은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FTA를 지지했던 이들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될 수 있는 보증수표를 받은양 말들을 한다. 하지만 이것을 통해 선진국이된 나라가 세상에는 없다. 오히려 서민들의 삶이 망가지고 양극화가 심화되어 더욱 힘들어질거라는 말들이 훨씬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미 미국과 FTA를 체결했던 캐나다, 호수, 멕시코등의 사례만 봐도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지금의 대통령을 한때나마 지지했던 이유는 경쟁과 생존이 상식이 되어가고 있는 세상에서 그나마 뒤처지는 사람들을 돌아보고 함께갈 수 있도록 이끄는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기대였다. 그러나 기대했던 그가 누구보다도 더 서민을 옥죄고 자본의 힘들 더해주는데 앞장서고 있다. 서민층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되었던 그가 서민들의 삶을 한층더 매몰차게 몰아나가고 있다.

생존경쟁에서 뒤처진 놈들은 어쩔 수 없다. 강자만이 살아 남는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를 지지했던 많은 이들은 뒤통수를 얻어맞는 느낌을 가져야 했다.

경쟁, 효율 같은 말들은 기업에서만 써도 충분하다. 이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충분히 스트레스를 받고 아둥바둥 살아나가려 하고 있다. 대통령이 나서서까지 강조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었다.

개방과 경쟁의 파도는 피할 수 없는 길이고 당당히 맞서야 된다며 서민들을 그 파도속으로 밀어 넣었다. 이제 까지의 경쟁의 파도속으로 밀어넣는 것으로도 모잘라 아예 미국이라는 무한 자본주의 시장으로 편입시켜 버렸다.

그리고 그는 올해말 그 자리에서 물러나면 그만이다. 그리고 서민들의 목숨을 건 파도타기를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새 시대 주기도문

권력의 꼭대기에 앉아 계신 우리 자본님
가진자의 힘을 악랄하게 하옵시매
지상에서 자본이 힘있는 것같이
개인의 삶에서도 막강해지이다
나날에 필요한 먹이사슬을 주옵시매
나보다 힘없는 자가 내 먹이가 되고
내가 나보다 힘있는 자의 먹이가 된 것같이
보다 강한 나라의 축재를 복돋으사
다만 정의나 평화에서 멀어지게 하소서
지배와 권력과 행복의 근본이 영원히 자본의 식민통치에 있사옵니다(상향~)

(고정희,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일요일, 4월 01, 2007

스타일

시오노 나나미의 글들을 읽다보면 그만의 예리한 인간관을 옅볼 수 있는 많은 글귀를 만나게 된다. 다음은 로마인 이야기15권에서 나온 얘기중 일부이다.

"...자질이 대등한 이 두 사람도 스타일에는 차이가 있었다. 어쩌면 인간의 차이는 자질보다 스타일 즉 '자세'에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세'야 말로 그 사람의 매력이 되는게 아닐까.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매력이 짧지만 충일했던 그의 생활방식에 있었던 것처럼..."

삶을 대하는 자세, 눈앞에 일어나는 일들을 대하는 자세, 타인을 대하는 자세들이 그 사람의 스타일이이 되는건 조금만 머릿속을 정리해도 쉽게 떠오른다. 비슷한 상황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일들이 많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다른 반응과 느낌을 받을때가 있다. 냉정하게 할일과 할만만 하거나 그마저도 제대로 안하려는 자세를 가진 사람도 있지만 부연설명까지 곁들인 친절한 자세를 보여주는 사람도 있다.

사람이 다 똑깥다고 말들 하지만 모든 경우에 맞는 말은 아니다. 사람이라는 명제는 같지만 앞서 말한 스타일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스타일을 기꺼이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 나가고 싶다. 매력있는 인간으로 사는게 더 즐겁고 유쾌한 인생으로 이끌게 될테니.

로마인 이야기의 끝을 읽고

로마인 이야기15권을 읽었다. 그동안 로마에 동화가 된것인지 다시 돌아가지 못할 애틋했던 순간들을 대하는 것 만큼이나 뭉쿨함과 아쉬움으로 마지막을 읽어갔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一紅 權不十年)이라는 사람사는 세상의 이치처럼 그들도 결국에는 끝을 맺고 말았지만 둑이 무너지고 방벽이 스러져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극적인 멸망은 없었다. 오랫동안 그 모습을 조금씩 잊어가고 변질되어 가며 해체되어 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북아프리카의 대제국이었던 카르타고를 정복했던 스키피오 장군의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로마의 마지막을 읽어간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

"...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는 적국의 이런 운명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비록 승자였지만, 인간만이 아니라 도시와 국가 제국도 언젠가는 멸망할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트로이, 아시리아, 페르시아, 그리고 20년전의 마케도니아 왕국에서, 번성하는 자는 반드시 쇠퇴한다는 것을 역사는 인간에게 보여주었다.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는 모르나, 승리한 로마 장군은 로메로스의 서사시에 나오는 트로이군 총사령관 헥토르의 말을 입에 올렸다.

언젠가는 트로이도, 프리아모스왕과 그를 따르는 모든 전사들과 함께 멸망할 것이다.

뒤에 서 있던 폴리비오스가 왜 하필이면 지금 그 말을 하느냐고 물었다.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는 폴리비오스를 돌아보며, 그리스인이지만 친구이기도 한 그의 손을 잡고 대답했다.

폴리비오스, 지금 우리는 과거에 영화를 자랑했던 제국의 멸망이라는 위대한 순간을 목격하고 있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 가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승리의 기쁨이 아니라, 언젠가는 우리 로마도 이와 똑깥은 순간을 맞이할 거라는 비애감 이라네! ..."

불나방처럼 뛰어들어 시작했던 사회생활 초년 시절에 읽기 시작해 10년이 넘게 계속 다음편을 기다리며 읽어온 셈이다. 그동안 직장은 두번이 바뀌었고 사는곳은 4번이 바뀌었고 두자녀의 아빠가 되어있다. 개인적으로도 많은게 바뀐 시간이었다. 10권을 넘어설 무렵부터는 저자와의 생각의 차이를 느끼는 부분을 스스로 느낄만큼 내면도 바뀌어 있었다.

로마가 그토록 오랫동안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개방과 준비성이라는 말로 축약할 수 있는 문화적 특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순탄하지 않았던 지난 10여년을 묵묵히 지켜봐주고 도와주었던 고마운 책이었다. 그 로마의 마지막을 읽었지만 내 삶의 여정이 이어지는 동안 동반자로써 로마는 마음속에 계속 남아있을 것이다.

화요일, 3월 06, 2007

천사의 탈을 쓴 악마

김규항씨의 블로그를 보다가 인상깊은 만화를 봤다.

"세상엔 그런 가짜 천사들이 참 많습니다. 무작정 운명에 순응할 것을 강요한다든가 현실의 모순에 눈을 감고 내세에만 관심을 갖게 한다든가 억압받는 사람들의 저항을 폭력이라 몰아 붙인다거나 하면서 힘센 사람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가짜 천사들 말입니다.아무 죄없는 사람이 일생을 그 가짜 천사에 속아 살았다면 그에겐 분노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김규항"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함을 알았을때 내 영혼은 또 한번의 성장을 위한 탈피를 했던거 같다. 그러지 못했다면 추악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당하기만 하는 사람이 되거나 그런 추악한 현실에 같은 추악함으로 적응하는 비루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세상에는 부조리와 모순되는 일들이 많다. 외면한다고 피해갈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최규석, 공룡 둘이에 대한 슬픈 오마주

일요일, 2월 25, 2007

무관심

가족이랑 인사동을 찾았다가 집에 오는길이었다. 집으로 가는 9000번 버스의 마지막 자리에서 황급히 대오를 맞춰 뛰어가는 여경의 무리가 눈에 띄었다. 보통 그와같이 여경들이 모여 있는 모습은 집회때만 볼 수 있는 모습이고 마침 삼성본관 근처를 지나던 찰라였기에 삼성과 관련된 집회가 있나보다 했다.

곧 시위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전,의경들이 에워싼 시위대들 틈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그들이 '여수 참사' 항의 집회라는 사실까지는 알아채지 못했다.

오늘(2월 25일 오후) 서울역에서 5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추모제와 정부 규탄 집회를 열었다고 한다. 처음 열린 상경 집회였지만 경찰의 '행진 불허' 방침으로 제대로 된 항의조차 못한 채 끝난 모양이다. 경찰은 여수참사 공대위의 행진과 정리집회 장소가 '도심 주요도로'라는 이유로 불허했다고 한다. 저녁에 본 뉴스에도 나오지 않았다. 사회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그들의 죽음과 외침은 그렇게 간단하게 무시되고 있었다.

어떤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면 그렇게 끝날 수 있었을까? 무서운건 아무도 귀기울여 주지 않는 사회 아닐까? 제몸을 던지고 불살라야 겨우 눈길을 돌릴 수 있는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은, 구성원들은 서로 어떤 의미일까.

건강한 사회란 구성원중 약자의 처지를 헤아리고 보살필 수 있는 사회가 아닐까? 강하고 건강한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로 자기의 영역을 확보하고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쓰러지고 뒤쳐진 사람들을 돌아보고 배려하는 정도가 사회의 수준일 것이다. 그 수준이 뒤떨이지고서 아무리 세계 몇위의 경제대국이되고 발전을 해도 개개의 구성원에게는 그저 공허한 외침에 그치고 말것이다.

목요일, 2월 22, 2007

Hensoldt DF 8x30 도착


이베이에서 주문한 쌍안경이 도착했다. 괜찮은 쌍안경을 하나쯤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은 많은 이들의 공통된 바램일것이다. 처음에는 러시아군의 현용 쌍안경인 Bpoc 7x30을 눈여겨 봤었다. 하지만 들쑥날쑥한 가격대와 좀처럼 믿을만한 셀러가 눈에 띄지 않던차에 이 물건을 알게 되었다. 평가도 좋은 편이고 휴대성이 뛰어나 보여 눈을 돌렸다. 뭣보다 이베이에서 페이팔을 통한 결재를 할 수 있었던 큰 이유였다. 만약의 경우 중재를 서줄 수 있는 조직을 가지게 되는 셈이니.

서독군이 사용하던 장비였기 때문인지 새물건은 찾을 수 없었다. 중고물건을 사는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상태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것이 가장 답답한 일이었다. 올려진 사진으로는 조금의 사용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여졌지만 그다지 선명하지 않아 정확한 상태를 파악하기에는 미치지 못했다.

조금은 저지르는 마음으로 구매결정을 내렸다. 쌍안경을 하나 가져야 겠다는 마음을 먹은지 횟수로 몇년은 지났고 봄으로 들어선 날씨가 더는 망설여서는 안되겠다고 부추겼다.

상태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솔직이 신품같은 중고를 원했었다. 사용흔적이 있고 오른쪽 대물렌즈의 고무캡에는 어디에 찍힌건지 긁힌건지 모를 흠집이 있었다. 쌍안경에서 가장 치명적인 문제인 광축이 뒤틀어지기라도 한건 아닐까 하는 염려가 먼저 일었다. 광축이 뒤틀어 졌을때의 현상들을 찾아 보니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말들을 했다.

첫째, 두개의 상이 하나로 동그랗게 합쳐지지 않는다.
둘째, 사물이 하나로 보이지 않는다.
셋째, 별을 봤을때 하나로 보이지 않고 혜성처럼 흔적이 남는다.

다행히 어느것에도 포함되지 않았지만 첫째,둘째 조건을 만족하고도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미세하게 틀어져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 있어 좀 걸리기는 하지만 뭐 그냥 써기로 했다. 중고제품임을 알고 구매했고 상태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없음을 미리 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 이외에는 눈에 띄는 문제가 없기에.

다른 쌍안경을 특별히 사용했던 기억이 없기에 광학적 성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파인더를 통해서 본 광경은 대단한 물건을 장만했다는 첫느낌이 들었다. 있었으면 했던 거리표시 눈금선이 있어 더욱 좋았다.

사실 이 물건 구매하면서 셀러와 분쟁이 생길뻔 했다. 그는 DHL을 통해 물건을 보냈고 배송번호까지 알려 줬지만 한국의 DHL홈페이지를 통해서 배송추적이 되지 않았고 사용하지 않는 배송번호체계라는 대답까지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모든게 오해 였었다. DHL이 우리나라로 치면 독일의 우체국을 모회사로 하고 있는 회사였으며 Express이상의 배송상품을 특화시켜서 만들어진게 보통 알고 있는 DHL이라는 특송회사였던 것이다. 즉, 그는 독일 우체국을 통해 배송추적이 되는 상품으로 물건을 보냈다는 말이었는데 나는 국제특송회사인 DHL을 통해 보냈다는 말로 이해를 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우체국과 한국DHL에서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

결국 우체국 상담원과 몇번의 전화 통화끝에 물건이 배달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말로만 듣던 이베이 사기꾼을 드디어 만났구나 하는 생각에 몇번의 경고성 메일을 보내고 정식 클레임을 준비하고 있었던 나는 안도감과 미안함이 섞인 웃음을 살짝 터뜨렸다. 그리고 그 독일의 셀러에게 미안하다는 메일과 함께 Positive feedback을 남겼다.

"DIENSTGLAS" FERO -D16 of german army forces from Hensoldt / Wetzlar (Carl Zeiss Group) 8x30M.

Hensoldt is the leading company in the optical industry and is since 1928 in the Carl Zeiss Group.

Hensold ist facturing high qualitative and robust binoculars, you can use at camping, on sea, mountain rambling or to hunt.

The features of the FERO D16:

* the weight is 700gramm
* 3 eyepiece protective caps
* rubber armouring
* water proof
* shock resistance
* single eyepice focusing, scale from -5 to +5
* reticle pattern
* high light itensity, you have a good view in the dawn
* protecting filter against laser 1064nm L5
* optic magnification of 8x30 mm
* the tubes are filled with nitrogen to avoid steamy lens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