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12월 26, 2007

다이어리

블로그의 이름처럼 종이를 담고 있는 다이어리는 내가 애지중지하는 물건중의 하나이다. 좋아하는 물건을 많이 갖게 되어 좋을거 같기도 하지만 그게 그렇지만도 않다. 필기를 대신할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이 있는 세상에서 한권의 다이어리를 채우는건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어서 대부분의 것들이 한동안 책꽂이에 꽂혀있다가 내지만 따로 빼서 쓰여지거나 쓰레기통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된다. 올연말에만 우리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지급한 것에서부터 협력업체들이 홍보용으로 배포하는것까지 대여섯권이 책꽂이를 차지하고 있다.

수많은 다이어리가 내손에 들어왔었지만 그중 기억에 남는 다이어리가 세권 정도 있다. 처음으로 다이어리를 소유했던건 고등학교때 아버지가 집에 가져오셨던 다이어리였다. 일반 노트 사이즈로 큼지막해 일기장으로도 적당해 그때부터 군대가기전까지 일기장으로 활용을 했었다. 없던 문장력을 그나마 확장시켜주었던 존재였었다. 질풍노도와 같았던 그 시기들의 상념들이 담겨 있다.

두번째는 군대 시절에 사용했던 다이어리 였다. 다이어리가 있으면 개인적인 영역이 생길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외출 나가던 이에게 부탁해서 구입했다. 컴팩트사이즈(10.8inch)를 말했었는데 클래식사이즈(14inch)를 받았었다. - 내지의 사이즈를 이렇게 말한다는 것도 최근에 안 사실이다. - 처음엔 조금 커보이는 다이어리가 못마땅했으나 이런저런 잡념과 넋두리들을 담아가기엔 안성 맞춤인 크기임을 알 수 있었다. 보안규정상 일기를 쓰는건 불법이라는 말에(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몰랐다 ) 검열때마다 숨겨 가면서 삶의 편린들을 기록으로 남긴 덕에 적어도 내게는 어떤 추억록 보다도 빛나는 추억록을 가지고 나올 수 있었다. 물론 소심했던 마음은 제대하느날 마지막 검문소를 통과할때까지 조마조마 해야 했었다.

세번째는 지금도 간간이 빈종이를 채워가고 있는 낡을데로 낡은 다이어리다. 처음 내손에 들어왔던건 서울에서 사회생활을 갓 시작했을 때쯤 진주집을 찾았을때였다. 몇장 쓰여지지 않은 다이어리가 눈에 띄길래 가져와 내가 사용했었다. 그때의 나는 알 수 없이 돌아가는 세상일들로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고 있을때이기도 했다. 마침 그때 처음으로 내 손에 들어왔던 지우개가 달린 오렌지색 Dixon연필과 함께 힘겨웠던 시간들을 내 하소연과 이야기들을 내내 묵묵히 들어 주던 고마운 존재가 되어 갔다. 어디에나 함께 다니는 존재가 되어 가방 없이도 다이어리 만큼은 손에 쥐고 다녔고 -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디자인적으로 봐도 별로인 그 무거운 다이어리를 손에 쥐고 다니는 모습을 떠올리면. - 산에 갈때 배낭속에 까지 넣어서 가지고 다닐만큼 분신과 다름없는 존재이기도 했다.


다이어리를 좋아하지만 그 물건 자체에 의미를 부여고 싶지는 않다. 물건 자체가 의미를 가지는 명품 다이어리를 소유하고 싶은 바램은 없다. 평범한 물건이 내 손에 들어와 의미를 부여 받는 과정이 좋다. 실용의 의미를 넘어 흐르는 생각들까지 틈틈이 담는 영혼의 교감까지 나누는 존재가 되는 그 과정 말이다. 시간의 효율적인 관리를 극대화 시켜주는걸로 광고되고 있는 어느 회사의 다이어리처럼 사용하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다. 내게는 모자란 기억의 보조장치와 일상의 소소한 감정들을 담는 도구로서의 역할만 하면 충분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