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4월 05, 2007

산속의 밤

주변에 산을 좋아하는 이들이 꽤 많으면서도 산에 대한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산을 좋아한다는 말에도 여러가지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산이 너무 좋아 주체를 못하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산에서 하는 것이면 뭐든지 했었다. 주말만 되면 배낭을 메고 나서는걸 미덕으로 생각하던 시절이 몇년이 흘러갈때쯤 해서 내가 좋아하는 산의 모습을 알게 되었다. 산을 좋아한다는 마음속 깊은곳에는 산에서의 밤이 자리잡고 있었다.

변화무쌍한 산의 모습은 아름다움운 모습을 보여주는 때도 예측이 힘들지만 나름대로는 해뜨는 무렵과 해지는 무렵이 일상적으로 그가 가진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때이다. 결국 당일 아침에 시작해서 마치는 산행은 앞서 말한 두 순간을 피해서 갔다오게 되기 때문에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산에서 무엇을 해서 산이 좋았던것이 아니라 결국 해질무렵과 해뜰무렵의 아름다움이 좋았고 산속의 밤에 찾아오는 산의 적막이 주는 묘한 느낌이 좋았다.

산속의 밤은 무섭다. 본능적인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그 순간을 지나고 나면 뭔지 모를 아늑함이 편안한 잠자리로 이끈다. 사실 나는 그런 어두움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다. 이런 두려움이 빛을 내는 도구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지는 건지 모른다. 하지만 어떤 도구들도 밤을 낮으로 바꾸지는 못한다. 어둠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알퐁스 도데의 별은 고등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소설이다. 스테파니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설레임을 품고 있는 목동의 마음에 공감이 갔었다. 그런 목동의 설레임외에 산속의 밤을 정말 아름답게 표현한 부분이 있음을 거의 20년이 지나 알게 되었다. 알퐁스 도데도 그런 어둠속의 적막이 주는 아름다움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

갑자기 사립문이 삐꺽 열리면서 아름다운 스테파네트가 나타났습니다. 아가씨는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양들이 뒤척이는 서슬에 짚이 버스럭거리며, 혹은 잠결에 '매' 하고 울 음 소리를 내는 놈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모닥불 곁으로 오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것을 보고, 나는 염소 모피를 벗어 아가씨 어깨 위에 걸쳐 주고, 모닥불을 이글이글 피워놓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둘이는 아무 말 없이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만일, 한번만이라도 한데서 밤을 새워 본 일이 있는 분이라면, 인간이 모두 잠든 깊은 밤중에는, 또 다른 신비로운 세계가 고독과 적막 속에 눈을 뜬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 때, 샘물은 훨씬 더 맑은 소리로 노래 부르고, 못에는 자그마한 불꽃들이 반짝이는 것입니다. 온갖 산신령들이 거침없이 오락가락 노닐며, 대기 속에는 마치 나뭇가지나 풀잎이 부쩍부쩍 자라는 소리라도 들리듯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들, 그 들릴 듯 말 듯한 온갖 소리들이 일어납니다. 낮은 생물들의 세상이지요. 그러나, 밤이 오면 그것은 물건들의 세상이랍니다. 누구나 이런 밤의 세계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은 좀 무서워질 것입니다만…….

그래서, 우리 아가씨도 무슨 바스락 소리만 들려도, 그만 소스라치며 바싹 내게로 다가드는 것이었습니다. 한번은 저편 아래쪽 못에서 처량하고 긴 소리가 은은하게 굽이치며 우리가 앉아 있는 산등성이로 솟아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찰나에, 아름다운 유성이 한 줄기 우리들 머리 위를 같은 방향으로 스쳐 가는 것이, 마치 금방 우리가 들은 그 정체 모를 울음 소리가 한 가닥 광선을 이끌고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저게 무얼까?"

스테파네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영혼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