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11월 17, 2007

야근

IT업체들을 보면 직원을 풀어놓으면 돈벌어오는 앵벌이 수준으로 생각하는 회사의 경영자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멋모르고 회사생활을 시작한 이들에게 정시퇴근은 회사의 사정상 불가능한 일임을 일찌감치 주입을 시키며 그가 가진 기대와 열정을 12시간 이상씩 뽑아 먹으며 부려먹는 것이다.

진행되는 일을 돗보이게 하기 위해 야근 자체를 목적으로 야근을 종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우리는 수시로 철야를 하고 주말까지 반납하고 일을 하고 있다는걸 보여줌으로써 더디게 진행되는 일정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대신 몸으로 떼우는 방식이었다.

많은 이들은 살인적인 강도의 일감에 제풀에 지쳐 나가거나 그동안의 일들을 경력으로 더 낳은 조건의 회사를 찾아 나섬으로써 정리가 된다. 물론 그러는 동안에도 프로그래밍에 대한 열정과 기대로 가득찬 신입사원들은 계속해서 들어오고 비슷한 과정을 겪어가게 된다.

아무리 야근이 일상화 되어도 개인적으로 처리해야 할일이 있게 마련이다. 일찍 나갈일이 있어 그때의 팀장에게 사정을 설명하니 일을 보라고 하면서도 끝을 흐리는 말로 업무로스가 생겨서 걱정이라고 했다. 또 한번은 칼퇴근을 했는데 같이 퇴근을 하던 회사의 임원이 되게 바쁜일이 있는 모양이다라는 말을 했다. 덕분에 오랫만에 누리고자 했던 퇴근후의 여유로운 기분을 잡치고 말아야 했다. 수십, 수백시간을 초과 근무했는데도 그것에 대한 권리는 애당초 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야근때문에 특별히 일을 많이 하거나 못할일을 해내거나 했던 기억은 없는거 같다. 어차피 밤늦게까지 있어야 하니 대게 아침시간부터 점심무렵 넘어 까지는 집중해서 일을 하지 않게 된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몇달을 계속해서 12시간 이상씩 일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은 칼퇴근을 트집잡는 이는 아무도 없지만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박혀 있는 탓인지 맘이 편한건 아니다.

애니메이션 감독 연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