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12월 24, 2009

평창 동계올림픽?


정말 끈질기다. 각설이 마냥 죽지도 않고 또 왔다. 각설이는 애교라도 느껴지지만 강원도 곳곳에 가득한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기원하는 팻맛들은 혐오감을 준다. 10년넘게 유치를 기원하는 이들의 정체는 뭘까. 그중에서 원주민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그동네에 땅을 사고 개발 이익을 보려는 이들의 비율은 또 얼마나 될까. 올림픽 유치의 득과실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채 " 온국민의 관심과 성원"을 들먹이며 유치가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도 똑 같다. 게다가 이번에는 불과 4개월전 한 술 더떠 아들한테 경영권을 승계해 주려고 비자금 조성하고 조세 포탈 및 각종 배임 혐의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벌금 1천 1백억 원을 때려맞은 이건희의 사면까지 들먹인다. 동계 올림픽 유치를 위해서 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법과 원칙"을 중요시 하는걸로 알려진 이명박이는“내 임기 중 일어난 사회 지도층의 권력형 부정과 불법에 대해선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그의 말과 행동은 전혀 상관관계가 없이 돌아가는 사기꾼의 그것과 다름 없는건 익히 알려져 왔던 일이기에 특사로 풀어줄 가능성이 아주 높아 보인다. 이건희는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하고 두번이나 떨어졌던 올림픽까지 유치시켜줄 수 있다는데 말이다.

올림픽 유치를 통해 얻게 되는 이익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 거길래 희대의 액수를 불법으로 증여한 범죄자에게까지 면죄부를 주게려는걸까. 스키장을 유지하기 위해 쉴새 없이 뿌려야 하는 인공눈 아니면 유지가 불가능한 나라에서 봅슬레이, 스키점프장까지 지어서 어떻게 유지할건지에 대한 의문따위는 그 경제적 가치라는 말 앞에서는 그저 헛소리가 되버린다.

법과원칙이 희화화되는 나라가 제대로된 나라가 아닐 것이다. 사기꾼이 대통령이 되어 '법과 원칙'을 희화하 시키고 있는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일까. 그런 사기꾼의 힘을 빌어 희대의 범죄자를 사면시키면서 까지 유치하려는 올림픽에서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 빌어먹을 '온국민의 관심과 성원'이라는 말을 그만 봤으면 좋겠다.

목요일, 12월 03, 2009

프로답지 못한


칸첸중가(8586m) 등정 의혹을 받고 있는 오은선씨가 기자회견에서 확실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는데 대신 이런 말을 했단다.

“제가 선 곳이 정상이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를 가져오면, 그때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8,000미터급 14개 봉우리의 세계 최초 등정기록을 목표로 하고 있는 산악인의 답변으로써는 대단히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에 올랐다고 주장하는 오씨가 확실한 증거를 내놓는게 당연한 일이 아닌가. 게다가 오씨는 칸첸중가를 오른 경험이 있는 이들과의 대화에서도 그녀가 오른길에 대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앞장서 올라가는 셰르파의 꽁무니만 쳐다보고 올라가는 바람에 길이 기억나질 않는다”고 까지 말했다고 한다. 차라리 명확한 증거를 내놓지 못해 안타깝지만 자신은 정말 올랐다고 했으면 더 낳았을 것이다.

휴먼원정대로 알려진 고 박무택씨와 같은 캠프를 사용했던 오은선씨가 박무택씨의 시신을 보고서도 에베레스트를 정상을 밟고 왔을때 어느 조선일보 기자는 히말라야 고봉에 가보지 못한 사람은( 모르는 사람은 ) 말도 꺼내지 말라는 식의 컬럼을 등산관련 월간지에서 보면서 기분이 불쾌해졌던 기억이 있다. 오늘 기자회견 내용을 보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또 받아야 했다.


오은선씨는 프로다. 14개 봉우리를 올라가는데 대해 '국민의 기대'를 들먹이는걸 봤다. 14개봉우리의 등정이 일반 대중에게 얼마나 가치를 가지는지 잘 모르겠다. 확실한건 그 기록이 오씨에게 돌아갈 실질적인 혜택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자기만족으로 올랐다면 객관적인 증거가 있고 없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남들이 뭐라 하건 뭐가 중요할 것인가. 오은선씨는 자기만족으로 오른 경우가 아니다. '세계최초, 여성최초, 국민'이라는 말로써 등반의 가치를 내세워 왔다. 그래서 더욱더 객관적인 증거가 필요한 것이다. 칸첸중가에 있었던 이는 오은선씨와 셰르파 두명밖에 없는데 누구에게 명확한 증거를 내놓으라는 말을 하는 것인가.

오씨의 해명에서 “칸첸중가를 세 번이나 올랐던 셰르파가 여기가 정상이라고 해서 사진을 찍고 바로 내려왔다"라는 말을 듣고선 황당함도 느꼈다. 셰르파를 등반의 보조 인력으로 활용한 것이 아니라 모든걸 맡겼다는 말이다. 스스로의 등반 가치를 깍아내린 부끄러운 말을 스스럼 없이 한것이다. 저렇게까지 해서 이루려는 '세계최초'가 어떤 가치가 있을지 미스테리할 뿐이다. 물론 '히말라야'에 가보지 못한 나의 생각일뿐인지도 모르고..

하긴 20여년전에 상명대의 운동장에 있던 고철더미를 쓰레기 수거업자가 처치곤란한 쇳덩이인줄알고 가져다 삼만원정도에 팔았다고 한다. 알고보니 그게 전시 위치를 바꾸기 위해 잠시 운동장에 놓아뒀던 조각품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오천만원정도의 손해를 봤다고 했나.. 갑자기 이 일이 생각나는건 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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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11월 30, 2009

골목 소경

신현림의 영상 에세이 "나의 아름다운 창"에서 이런류의 사진을 표현한 말을 읽었던 기억에서 다시 뒤적여 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시간과 함께 서서히 물들어 가는 풍경들이 좋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흔적이 배어나는 곳들에서는 뜻밖의 곳들에서 조형미를 가지게 되는 것들이 있다. 삶의 흔적이 배어있는 골목골목이 그런 곳들일 것이다. 그런 곳들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생활해온 곳들이다. 그리고 낯선이가 찍는 동의도 없이 사진을 찍는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주로 휴일날 아침 시간을 택해 카메라를 메고 어슬렁 거리고 다닌다. 딱히 정해진 곳이 없다보니 발길 닿는데로 간다고 생각하지만 평소 머릿속에서 맴돌던 장소의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하는거 같다.



을지로3가역에서 기업은행으로 나오는 출입구의 계단 이었다. 노숙자들의 잠자리용으로 쓰이는 듯한 박스들 옆으로 은행의 광고문구가 '신나게' 빛나고 있었지만 그저 쓸쓸한 풍경이었다.















화요일, 11월 24, 2009

칸첸중가만 아는 진실



'세계최초'로 여성산악인이 8,000미터급 14개 봉우리를 등정할 것으로 보였던 오은선씨가 이전에 오른 봉우리중 하나에서 등정의혹을 받고 있다는 뉴스를 봤다. 의혹을 받았으면 정상을 올랐다는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하면 깨끗이 정리될 텐데 그런 근거가 별로 없는 모양이어서 의혹이 자꾸 불거지는 모양이다.

의혹을 처음 제기했던 한겨레 신문과의 통화에서 오은선씨는 “그날 날씨가 흐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며 “앞서 가던 셰르파가 ‘여기가 정상’이라고 말해, 지쳐 있던 나는 ‘그냥 여기서 사진을 찍자’면서 정상보다 5m 아래, 10m보다는 위 지점에서 사진을 찍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결국 오은선씨는 셰르파를 따라 나선 길이었고 셰르파가 정상이라고 말한 곳이 정상인지 아닌지 확인하지도 못했다는걸 자인한 셈이다.

몇줄 되지 않는 기사였지만 그쯤에서 풍자소설 럼두들 등반기의 럼두들 등반대가 요기스탄 포터들에 이끌려 오르고 내려오는 희화화된 모습을 실감했다. 8,000미터급 14개 봉우리 최초 등정을 이루는 여성산악인의 등정 모습이 이런거였구나 하는 실망감도 함께.

등정을 증명할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었을 것이다. 화이트 아웃상태였다면 정상을 오른 다른 이들의 흔적을 사진에 담아왔던지 아니면 GPS의 궤적만 남겼으도 깨끗이 정리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상태로선 그저 나는 올랐으니 터무니 없는 소리는 닥치라는 말밖에는 없다.어느 국내의 산악인은 이런말도 했다.

"국내 산악인이 의혹 제기에 앞장서는 것은 스스로 공명심 때문에 국내산악인 모두를 스스로 평가 절하하는 일"이라며 "우리 산악인이 얼마나 출중한지, 일본의 경우 아직 남자산악인이 히말라야 11좌 밖에 못한 것을 상기해야 할 것" 산을 올랐는지를 묻는 의혹에 증거를 내밀면 그만인 문제에서 '평가절하', '일본의 남자산악인'이 대체 왜 등장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세계최초'를 강조하던 산악인이었으니 이쯤에서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논란의 가치도 없다고 했지만 왜 셰르파의 말만 믿고서 정상인지 확인을 하지 않았는지 부터 여러 가지 증명방법들을 하나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오은선씨가 그저 개인적인 취미로 올랐으면 그런 증명들이 무의미하고 논란의 가치도 없겠지만 이미 '세계최초'의 기록을 강조하며 언론에 올라온 사람이니 그런 증명을 하는게 당연한 일이라는건 '논란의 가치도'없는 일이다.

▶ 한겨레 신문
▶ SBS
▶ 마이데일리

월요일, 11월 23, 2009

럼두들 등반기


국가와 민족의 위대함을 증명하기 위해 극지 등반에 나선 등반대의 모습을 희화화 시킨 풍자소설이다. 포터들의 도움으로 결국 '세계 최초'로 럼두들을 오르게 되지만 포터들의 시큰둥한 반응은 그 가치를 우스꽝 스러운 해프닝으로 만들어 버린다. 옮긴이는 이 책을 읽으면서 추락할지도 모르니 위험한 곳에서는 읽지마라는 주의를 당부 했지만 웃음을 넘어 세상살이의 뒷모습과 그것들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데서 이 책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

포터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럼두들 등정은 사회이면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하고 있는 대중들의 역할과 가치를 역설한다. 대다수 사람들의 역할과 가치를 몇몇 지도자들의 이미지로 그리고 만들어 나가려는 세상에 대한 풍자로 읽혀졌다.

※ 이 책이 나온지 50년이 지났건만 극지 등반대의 모습을 희화화 시킨 무능하지만 유쾌한 럼두들 등반대의 가치는 지금도 유효하다. '세계최초'를 내세우며 인간한계를 극복하는 산악인의 모습들은 TV다큐멘터리의 단골 메뉴지만 주인공 등강기의 고정자일을 설치하고 갔을 셰르파들의 이야기는 끝까지 나오지 않는걸 보면 말이다.

목요일, 10월 15, 2009

Space Dog



동네 어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거 같고 호의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꼬리를 흔들며 다가올거 같은 발발이 같은 외모를 가진 '라이카'라는 이름의 개다. 모스크바 빈민가를 떠돌아 다니던 중 과학자들에 의해 발탁되어 라이카라는 이름을 얻었고, 친구들 알비나, 무슈카와 함께 우주로 가기 위한 훈련을 받았다.


라이카는 우주 공간에서 생명체의 생존 가능성을 실험하기 위해 처음 우주로 나간 지구의 생명체였다. 처음부터 돌아올 수는 없게 계획되어있던 스푸트니크 2호 안에서 일주일간 생존하며 인간이 우주로 나가기전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라이카의 임무 였다. 그런 다음 원래 계획 대로 안락사 했다는게 소련 당국의 발표였다.

그러나 2002년 라이카가 훨씬 고통스럽게 죽었다는 사실이 알려졌었다. 라이카는 위성 발사 직후부터 발사의 충격과 낯선 상황으로 인해 극심한 공포에 시달렸고, 그로 인해 라이카의 심장 박동은 평소의 세 배나 빨라졌다고 한다. 게다가 당시까지 미처 파악이 되지 않아 보호 장치가 없었던 우주선의 태양 열선과 방사능에 그대로 노출되고 말았다. 발사후 5~7시간 만에 그 고통 속에서 죽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주검이 되어 지구 궤도를 돌던 라이카는 지구 대기권에 재돌입하면서 발생하는 마찰열에 스푸트니크 2호와 함께 재로 사라졌다.


멜깁슨이 주연했던 영화 리셀웨폰 2편에서 봤던 장면으로 기억한다. 어느 악당의 소굴에 잠입한 멜깁슨 앞에 도베르만 한마리가 어르렁 거리며 나타난다. 동행했던 이가 어서 쏴 죽이라고 하지만 멜깁슨은 사람은 쏴조 개는 쏘지 못한다면서 그 개를 어르기 시작한다. 그에게 적의가 없음을 느낀 개는 나중에 멜깁슨을 향해 총을 쏘는 악당을 넘어 뜨리면서 악당들의 소굴을 뛰쳐 나가는 장면이었다.

개는 인간과 교감을 쉽게 느끼게 하는 동물이다. 그런 교감을 나눈것과 그것을 갖지 못한 동물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라이카의 모습에서 어릴적 우리집 마당에서 키우던 방울이라는 이름의 개가 떠올랐다.


지금도 비참하게 스러져 가는 숱한 생명들 앞에서 개 한마리의 생명에 대해 애도를 느끼는게 '과연' 합당한 느낌인지 잘 모르겠다. 로켓이 발사될때의 굉음과 진동이 저 갸냘픈 생명을 얼마나 두려움에 떨게 했을까. 고통속에 죽어가면서도 라이카가 주인처럼 좋아하던 연구원들의 얼굴을 떠올렸을까. 인간의 생명을 위해 희생된 라이카에게 애도를 표하고 싶다.



Sana "Space Dog"

Hello people! I'm a Space Dog
안녕 여러분! 나는 스페이스 도그에요.

To aim at going over stars. Can you hear me?
저 높은 별을 향해 갈꺼에요.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

I'm a Space Dog. The Earth is shining blue...
나는 스페이스 도그에요. 지구는 푸른빛으로 반짝이네요.

Hello people! I'm a Space Dog
안녕 여러분! 나는 스페이스 도그에요.

To seek new frontiers by my nose
새로운 개척의 냄새가 느껴져요.

Can you hear me? I'm a Space Dog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 나는 스페이스 도그에요.

The sun and planets go far away
태양과 저 별들은 아주 멀리에 있네요.

remember that time. when I was born he was watching to me
나는 그 때를 기억해요. 내가 태어났을 때 그는 나를 보고 있었어요.

in the cage that made by glass
유리벽 속에 있는 나를 말이죠.

One day, he told to me I'll board the new rocket
어느 날 그는 나에게 말했어요. 나의 새로운 로켓에 너를 태울거야.

a little scared but he smiled and said "Nevermind, you are good boy and brave"
약간 무서운 말투였지만 그는 웃으면서 말했죠. "겁낼 것 없단다. 넌 용감하고 멋진 아이란다."

Hello people! I'm a Space Dog
안녕 여러분! 나는 스페이스 도그에요.

Not first one, but the only one
처음은 아니에요. 하지만 유일하답니다.

Can you hear me? I'm a Space Dog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 나는 스페이스 도그에요.

To goes on with the speed of light
광속의 속도로 가고 있지요.

Hello people! I'm a Space Dog
안녕 여러분! 나는 스페이스 도그에요.

This journey takes a long long time
이 여행은 아주아주 긴 여행이 될거에요.

Don't forget me. I'm a Space Dog
나를 잊지 마세요. 나는 스페이스 도그에요.

I'll come back to the Earth and bringing in the piece of star
지구로 돌아올때는 별의 조각을 가지고 돌아올게요.

.

.

.

Don't forget me

Don't forget me



화요일, 9월 22, 2009

영원한.. (?)

한때 그런게 있을거라는 믿음을 가졌을 때가 있었다. '영원한 관계'라는거. 특히 '가족'같은 관계라는말이 의미하는 사회관계적인 한계를 뛰어 넘는 그런 관계가 있을거라는 믿음 같은것. 그러나 영원할거 같았던 관계들이 어이없는 이유들로 끝나는 경우가 있다. 무너지는 것은 금방이듯이 10년이상 이어진 관계가 무너지는데는 불과 몇달도 길었다.

시작은 사소한 문제들이 발단이었다. 서로간에 냉랭한 기운의 조짐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설마 '가족'같은 우리에게 그런 문제가 대수일까 싶었다. 그러나 뉴턴의 만유인력법칙이 전 우주를 관통하는 기본적인 법칙이듯이 결국 그 모임도 인간관계의 기본을 이루는 보편적인 원리를 벗어나서 존재할 수 없는 똑 같은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가족'이라는 말도 그와 같은 기본적인 법칙을 벗어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깨지는 관계들이 그렇듯이 문제는 벌어지고 있는데 아무도 신경써는 사람들이 없다는 사실이 사태를 더욱 악화 시켜갔던거 같다. '가족'이라 이야기 하던 구성원이 모임을 떠나는 상황인데 이렇게도 무관심할 수 있나 하는 배신감(?)은 그런 감정에 휘발유를 들이 붙었다. 구성원에대한 '관심과 배려'가 사라진 모임은 더 이상 그 개인에게 아무런 의미를 지닐 수 없는게 아닐까. 지금도 여전히 남은 이들끼리 '가족'이라는 호칭으로 서로를 부르고 있다. 결국 나는 그 '가족'도 아니었고 '식구'도 아니었던걸 혼자서 그렇게 여겼던 건지도 모른다.

'자일의 정'으로 맺어진 관계는 특별한게 있는줄 알았었다. 결국 똑 같은 사람들이었다. 더 잘난것도 못난것도 없는 그런 사람들.

목요일, 9월 17, 2009

우주


허블 울트라 딥 필드(The Hubble Ultra Deep Field; HUDF)로 알려진 허블 인공위성 망원경이 찍은 사진으로 지구에서 50억에서 80억 광년 떨어진 곳에 원시 은하들이 모여있는 모습의 사진이다. 우리가 보는 하늘 전체에서 손톱보다도 작은 공간에서 이정도의 은하계들이 있다. 1970년대 까지 북두칠성의 국자 부분정도의 크기에 담겨 있는 은하계의 숫자는 약 400개 정도가 있는것으로 관측되었으나 허블 인공위성 망원경의 관측 이후로 그 부분에만 1억 9천만개 이상의 은하들이 있는 걸로 밝혀졌다. 하늘에 점하나 찍으면 그 속에 수백개의 은하계가 있다는 말이된다.

저 속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과 문명이 발생해 발전하고 사라져 갔을까. 우주를 이루는 모든 것들이 제 각각의 특성과 성질을 유지하기 위해 나름의 원칙이 있듯이 인간이기에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경험과 직관을 넘어서는 크기의 우주앞에서 모든것이 하찮고 덧없어 보여 소소한 고민들은 정화되는거 같다.

1대 3억의 비율로 줄이면 지구는 지름 4센티미터의 공, 즉 골프공이 된다. 이 축적에서 지구가 여러분 앞에 있다면, 달은 팔 길이만큼 떨어진 곳에 있을 것이며 크기는 완두콩보다 약간 클 것이다. 화성은 둥글레 만든 풍선껌 크기일 것이며, 지구에 가장 가까이 올 때 240미터 떨어진 곳에 있을 것이다. 목성은 2.4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비치볼일 것이며, 태양은 460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지름 4.3미터의 불타는 공일 것이다. 태양계 전체의 지름은 19킬로미터이다. 작은 도시와 비슷한 크기인 것이다. 우주가 얼마나 공허한지 눈여겨보라. 이 작은 도시에는 중심에 버스 크기의 별이 하나 있고, 9개의 행성들( 가장 큰 행성이 비치볼 크기이다 )과 먼지 조각보다 작은 소행성들과 별똥별들이 있을 뿐, 그 이상 아무것도 없다. 1대 3억의 축적에서 가장 가까운 별들은 3만 2,00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다. 다시 말해서 만일 각각의 태양계가 "도시"라면, 우주는 지구의 표면 전체에 도시가 딱 하나일 정도로 비어 있다. "우주 생명 오디세이"에서 발췌

가까운 행성까지만 해도 도저히 다다를 수 없을거 같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넓은 우주. 행성 지구가 너무 외롭다는 생각이든다. 우주에서 올지도 모르는 외계문명의 신호를 잡기위한 노력들이나 보이저호에 실어 보낸 지구인의 메세지들도 그런 지구인들의 외로움이 그대로 묻어 나는 노력들이 아닐런지. 'UFO'나 '외계인'의 이야기들을 무시할 수 만은 없을것이다. 그러나 우주의 넓이를 넘어선다는게 '외계인'들에게 조차도 얼마나 어려운일인지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그런 이야기들에 회의감이 든다. 어쩌면 그런 이야기들도 외로운 행성 지구를 위로하는 한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수요일, 9월 16, 2009

칭다오 맥주


칭다오에 갔을 때였다. 저녁 밥상에 올라온 칭다오가 눈에 들어왔다. 맥주병을 보고서 참 맛있게 생겼다고 느꼈던건 처음이었다. 칭다오 맥주맛이야 세계적인 것이지만 맥주병에서까지 이런 느낌을 확인하게 될줄이야. 칭다오의 재래 시장에 갔을때 어느 노점상인이 이 맥주병을 들고 마시는 모습을 봤을때도 그랬다. 저렇게 맛있는 맥주를 쉽게 마실 수도 있구나 하면서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 대형마트에 갔을때 칭다오 맥주가 있길래 몇병 얼른 집어 들었다.

가을


가을이 왔다. 일거리 하나 마치고 보면 계절이 두어개는 후딱 지나버린다. 나이를 먹을 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더니 빈말은 아니었던거 같다. 방태산에서 '살며시' 고개를 내미는 가을을 담았다. 야영이 대중문화의 한코드가 되면서 여름철에는 어디 텐트 펼칠만한곳 찾는것도 힘들어져 버렸는데 여름끝무렵때문 인지 야영장은 텅비어 있었다. 그렇게 깊은 계곡과 숲속에서 지나가는 여름을 만끽하는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화요일, 9월 15, 2009

아옌데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대한 기사를 읽었다. 그 기사를 본 후 아옌데 대통령의 동상이 있는 모네다궁 앞에 가서 꽃한송이 바치고 싶어졌다. 기념사진 찍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의 동상앞에 서서 사진 한장 찍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가 꿈꾸던 좌파정권은 자리를 채 잡기도 전에 좌절되고 말았다. 세상은 레드컴플렉스에 휩쌓여 있었고 자기 발밑에 좌파정권이 들어서는걸 용납할 수 없었던 미국은 칠레가 가진 자원들의 가치를 무력화 시키며 옥죄어 나간다. 그리고 군부를 자극해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결국 그들의 꿈을 짓밟아 버렸다.

짤막한 기사를 통해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감동을 받았던건 저열한 인간들의 탐욕을 넘어서는 인간의 숭고한 가치를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탐욕과 절망으로 점철되어 더이상의 희망이 존재하지 않을거 같지만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숭고한 영혼들도 있다. 자진해서 유태인들을 나치에게 넘겼던 이들이 있었던 반면에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이 끝날때까지 그들을 보호해준 이들도 있었던 것이다.


대통령이 사는 모네다궁을 탱크와 비행기로 포위한 군부는 대통령의 국외 탈출을 권유했으나 아옌데는 단호히 거부했다. 그리고 죽음으로 맞서며 라디오 방송을 통해 칠레 국민에게 한 최후 연설 내용. 아옌데 대통령이 꿈꾸던 신생 좌파정권은 실패했으나 그 꿈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계속해서 영역을 확대해갈 것이다.

“역사적 순간에 서서 저는 민중의 충성에 대한 빚을 갚기 위해 제 목숨을 바치려 합니다. 그들은 무력을 갖고 있으므로 우리를 노예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의 전진은 범죄로도 무력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고, 민중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머지않아 위대한 길이 다시 열리고 이 길로 자유인들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걸어갈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칠레 만세!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저의 마지막 말입니다….”

☞ 기사원문
☞ 관련내용
☞ 아옌데 대통령 추모 싸이트

금요일, 9월 11, 2009

특전 U보트( Das Boot )


이 영화를 처음 봤던게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없는 용돈을 억지로 만들어 친구와 같이 영화관을 찾았다. 순전히 프라모델로 만들었던 U보트가 나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보러 갔던 영화였다. 그러나 영화는 당시 TV시리즈로 인기를 끌었던 '전투'나 2차 대전영화와 같이 단순히 적군과 아군이 싸우는 단순한 구조의 내용이 아니어서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U보트가 연합군의 구축함에 속절없이 당하다가 결국 침몰하고 마는 모습을 보고서는 영화전 신났던 마음마저 침울하게 변해서 극장을 나서야 했었다. 얼마전 EBS에서 이 영화를 방송하는걸 다시 봤다. 그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장면들의 이해를 통해 심란한 마음으로 극장문을 나섰던 마음을 이해 하게 되었다. 입구에서 괜히 초등학생들을 막아섰던게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장면이 있다. U보트가 연합군측 상선 세척을 향해 연달아 어뢰를 명중 시킨다. 곧 반격에 나선 연합군의 구축을 피해 잠수를 한다. 6시간 동안 연합군 구축함의 추격을 무사히 피한 U보트는 그들이 공격한 상선의 피해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부상한다. 그러나 세척중 한척이 여전히 불이 붙은채 그곳에 있었다. 침몰할거 같지 않은 그 유조선을 향해 다시 어뢰를 발사한다. 배위에서 그때까지 구조를 기다리고 있던 선원들이 바다에 뛰어 들며 그들을 격침시킨 U보트를 향해 살려달라며 헤엄쳐 오기 시작하지만 함장은 더이상의 인원을 수용할 여력이 없다며 구조를 하지 않는다. U보트는 아군과 적군 모두에게 버림받은 선원들을 애써 외면하며 무거운 분위기속에서 그곳을 벗어난다.

그 장면에서 또 다른 전쟁영화 씬 레드 라인"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는 곳을 향해 가던 미군들 앞으로 원주민 한명이 아무런 상관도 관심도 없는듯한 모습으로 터벅터벅 지나가던 그 장면. 전쟁은 국가와 민족을 위한 성스러운 것이라 정치가들은 선동하지만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에서 개별 구성원들은 전쟁의 부속물에 불과하다. 누가 점령군이던 상관없는 원주민이 미군앞을 무심히 지나가는 모습처럼 전투 당사자들의 문제가 아닌 나머지 '전쟁 부속물'들의 사정따위는 애당초 관심밖의 일이다. 연합군측의 상선이 침몰을 보면서도 구조를 하지 않았던 구축함들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그때까지 봐오던 2차대전 영화속의 독일군은 연합군 앞에서 추풍낙엽같은 존재이거나 감정이입의 여지가 없는 모습으로 그려졌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특별히 '어느편'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독일군이던 아니던( 연합군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았을 것이다 ) 잠수함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전쟁 수행의 모습을 통해 전쟁과 개인의 의미를 짚어 보게하는 수작으로 평가하고 싶다.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는 즐거움, 나이 먹는 즐거움을 알게 해준것도.

금요일, 9월 04, 2009

쓸쓸함

어느 길목에서 잡귀를 막으며 서있었을 돌장승이 어떤 사연을 겪으며 삼청동 골목에 오게 되었을까. 소품으로서의 장승이 쓸쓸한 느낌을 주었다. 우리 속에 갇혀 무기력하게 주는 먹이를 먹고 있는 맹수들의 모습을 보는 느낌이랄까.





수요일, 9월 02, 2009

늑대 '아리' 사살

얼마전 우리를 탈출했던 늑대 '아리'가 사살됐다는 뉴스가 있었다( ☞ 관련기사 ). 총에 맞아 죽은 '아라'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평생 우리속에만 있는 동물이 비단 늑대뿐은 아니지만 야생의 습성이 살아 있는 늑대에게는 얼마나 더 큰 고통이었을까. 탈출후의 짧은 외출의 마지막 자유를 제대로 누렸기를 빌었다. 야생의 습성을 가진 굶주린 늑대가 일으킬지 모르는 상황들에 대한 부담감에서 사살을 결정한 담당자들의 심정도 이해한다. 평생 우리속에 살던 늑대가 얼마나 위험한지 의문은 들지만 아마 내가 그자리에 있어으면 같은 결정을 내렸을거 같다.

90년대 말이었다. 경북 구미에서 잠시 동안 일을 할때 였다. 근처 관공서 알림판에 붙어 있었던 늑대를 목견한 이를 찾는 다는 포스터 한장을 보고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 야생동물이라고는 산토끼 정도 밖에 살지 못할 정도로 구석구석이 개발된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야생 늑대를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속에 가둬 키우던 늑대 한마리를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자연은 본질을 잃어 버렸구나 하는 씁쓸함이 든다.

뉴스에서 멸종한 동물들을 복원한다는 소식을 간간이 듣게 된다. 그러나 복원한 동물이 살아갈 자연이 없는 상태에서의 복원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구에서 원래는 그들도 함께 살아가는 존재 들이었음을 수용하고 그런 모습들이 당연한일로 받아들이게 되는 일은 불가능한 공상일까. 풍경좋은 경관의 기능으로써의 자연이 아닌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그런 숲을 가진 곳.



96년 늦봄이었다. 그때 산악회에서 같이 활동하는이와 북한산위쪽으로 한북정맥으로 이어진 호명산에 있던 폐군부대 건물에서 하룻밤을 묵었었다. 늑대 특유의 울음 소리를 듣고서 잠을 깼었다. 내 귀를 의심했었다. 같이 있었던 이도 역시 의아해 했다. 그때 그 소리는 뭐였을까. 집나간 개가 외쳤던 소리일까. 아니면 진짜 늑대였을까.

금요일, 8월 14, 2009

UP

대사 한줄 없이 이어지는 장면이 어찌 이리 사람의 삶을 애잔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아이들을 위해 보러 간 영화였지만 첫부분에서 뜻밖의 감동을 받았다. 여덟살 소년 칼과 엘리의 만남으로 영화는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마이클 지아치노 (Michael Giacchino)의 음악과 함께 대사 한줄없이 둘의 일생을 압축적으로 그려 나간다. 모험가 찰스 먼츠가 찾았던 곳을 가기 위해 만든 저금통이 생활의 질곡에 따라 깨지고 다시 쌓이는 모습을 통해 같이 나이를 먹어간다. 그리고 엘리가 항상 먼저 오르던 언덕길을 칼의 손에 이끌려 오르다 결국 엘리는 쓰러지고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만다. 78세의 노인이 된 칼은 양로원으로 가기직전 엘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풍선으로 집을 띄워 폭포위를 향해 날아 간다.

이 오프닝 장면은 영화의 감독이 아이들과 함께온 부모를 위해 배려한 장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본 아이들도 본격적인 '액션'이 벌어지는 후반부를 재미있게 기억 했고 감동을 느꼇던 부분은 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수요일, 7월 29, 2009

E-P1이 사고싶어졌다

장마전선이 남쪽으로 물러가며 찌든 공기들을 몰고간건지 가을 느낌이 드는 햇살이 비친 아침이었다. 고객사 들러 회의 마치고 나오던중 그 햇살을 '알싸'하게 받고 있는 풍경이 있어 똑딱이를 꺼냈다. 그러고선 최근에 나온 올림푸스의 E-P1이라는 카메라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뒤따랐다. 항상 휴대하고 다닐 수 있는 그런 비교적 고성능의 카메라. 지금 가지고 있는 것도 별로 찍을일 없는데 그것 생긴다고 별 수 있으랴 마는..

토요일, 7월 18, 2009

어느 봄날의 기억



지난 봄 중림동 약현성당을 찾았었다. 근처에서 일을 했을때 점심식사후 사진속의 벤치에서 커피한잔 뽑아 마시며 편안히 쉬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떤 곳을 다시 찾았을때 그때의 기분을 느끼는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닌거 같다. 초대받지 못한 어색한 기분이 들어 곧 나와서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성당후문으로 나오는 길이었다. 성모상앞에 흩어져 있는 목련잎들이 눈에 들어왔다.




추계예술대학교로 향했다. 여기서도 몇달간 상주했던 기억이 있는 곳이다. 학교 입구에서 샀던 커피가 맛이별로 였던것 외에는 잠시 머물렀던 시간이 좋았다. 공휴일의 학교가 그렇듯이 봄햇살을 느끼기도좋았고. 오래된 학교건물의 빛깔과 분위기가 어우려져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가족들을 기다리며 영락교회 앞마당에 잠시 앉아 있었다.



담벼락 및의 빈의자들이 눈에 띄었다.



버스 타고 지나갈때 마다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었다. 색깔이 바랜 세가지 색의 공중전화 부스를 사진으로 찍어 보고 싶었다.



집으로 오기전 저물어 가는 어느 봄날의 햇살을 마지막으로 외출은 끝났다.

Kelly Kettle형 주전자들



칭다오의 시장에 갔더니 Kelly Kettle형 주전자들을 아주 쉽게 볼 수 있었다. 화석연료를 쉽게 사용하기 힘든 지역이라면 아주 유용한 방식의 주전자인거 같다. 비슷한 시기를 지내온 우리나라에는 이런 물건이 없었다. 끓는 물만 있어도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식습관의 차이가 이런 물건의 발명을 이끌어 내지 않았을까 싶다. 부피가 나갈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문제이긴 하지만 어떤 날씨에서도 물을 끓일 수 있는 효율성에서는 최고의 도구일 것이다.

화악산을 다시 찾아갔다

화악산을 다시 찾았다. 촉대봉에서 매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매봉정상의 군부대 때문에 인적이 드문 편이었다. 그래서 아주 깊은 산속에 들어온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요즘은 찾는이가 늘어나서 인지 길의 흔적이 비교적 뚜렷해졌다.




하룻밤 묶을곳을 찾았다. 집다리골로 이어졌던 군사도로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에 넓은 자리가 있어 그곳으로 선택했다. 물론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멧돼지를 의식해 여차 하면 피할 수 있는 큰 나무도 봐뒀다.


BushBuddy를 사용해 간단한 조리를 했다. 그리고 혼자 있는 숲속의 어둠을 은은히 밝혀 주며 위안을 주었다.


매봉에서 바라본 화악산과 중봉의 모습. 정상의 군부대들이 오히려 이 산을 깨끗하게 지켜 준것인지도 모르겠다.


매봉에서 이칠봉으로 이어지는 군사도로의 흔적이다. 요즘은 사용하지 않는 곳이 되었는지 길의 흔적이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이길을 따라 가다 멧돼지 일가족과 마주쳐 가슴을 쓸어 내리기도했다.


이칠봉에서 대성목장쪽으로 하산하면서 진지공사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91년 가을의 진지공사를 했던 곳도 이 교통호 들과 이어져 있는 곳이었을 것이다. 다시 한번 찾아가보고 싶었지만 거기 까지 기억이 닿지는 못해 이 흔적들을 보며 아쉬움을 달랬다.

보낸 사람 화악산산행

목요일, 7월 16, 2009

8,000미터급 14좌, '세계최초'를 향한 비극


고미영씨가 8,000미터급 봉우리 14개를 등정하는 기록에 도전하던중 하산길에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월요일 아침이었다. 그 뉴스를 듣는 순간 안타까움과 함께 화가 났다.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위한 스폰서들의 경쟁과 압박이 빚어낸 사고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산이 좋더라도 그정도 고봉을 다녀오면 피로감이 적지 않았을텐데 일년에 8,000미터급 봉우리를 대여섯개씩 오르는걸 고미영씨와 오은선씨 스스로 원했을리 없을거 같다. '세계 최초' 타이틀을 위한 스폰서들의 과당 경쟁과 압박이 그들을 그렇게 내몰았을 것이다.

박영석씨가 남극점을 밟으면서 산악계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했을 때였다. 그때 때마침 14좌 등정의 경쟁자였던 엄홍길씨는 에베레스트에서 조난당해 숨졌던 고 박무택씨의 시신을 수습하는 '휴먼원정대'를 꾸려 떠났다. 아무도 공개적으로 뭐라 말하지 않았지만( '휴먼 원정대' 아니었던가 ) 나는 영원무역( 박영석씨의 스폰서 )의 성공을 물타기 하기 위한 트렉스타 측의 작전이 개입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강하게 가졌던적이 있다. 물론 그런일이 실제 있었다 하더라도 엄홍길씨의 개인적인 사심에서 비롯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또한 스폰서들간의 과당 경쟁과 견제가 배후에 있을것이라 여겼었다.

제국주의가 기성을 떨칠때 서구의 열강들은 각국의 강인함을 선전하기 위한 목적에서 경쟁적으로 히말라야의 고봉들을 오르기 시작했다. 등반의 내용, 도덕성 따위는 '세계 최초'의 타이틀 아래에 묻힐 수 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포터와 세르파들의 희생은 이야기 깜냥도 되기 힘들었다. 어떻게든 등정을 하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국가의 든든한 지원을 기반으로 한 대규모의 물자를 동원하는 '극지법'등반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는것이 목적이었다. 그리고 등정은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조국'에 바치는 '애국'활동이었다.

그러나 등반스타일도 세월과 함께 바뀌었다. 이제는 어느어느 봉우리를 올랐다는 것 보다는 얼마나 알차고 참신한 내용으로 오르지가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세계는 굳이 '14좌 등반', '세계 최초', '여성' 따위의 타이틀에는 그다지 관심 없어 보인다. 상업적 성취를 위해 희생을 감수하면서 정상을 오르는 행위는 이제 자제되어야 한다. 또 스폰서의 자금 지원, 대규모 인원, 셀파와 고소 포터, 산소, 고정 로프, 위성 통신을 사용하거나 이용하는 등반은 지양되어야 한다는 기준이기도 하다.

이런 흐름의 변화는 프랑스의 세계적 산악잡지 <몽타뉴>와 유럽고산등산협회가 해마다 뛰어난 등반가에게 주는 '황금피켈상'의 규정에도 나타난다.

황금피켈상 심사규정

1. 엘레강스한 등반 스타일인가?
2. 창의력과 혁신성이 있는가?
3. 탐험정신이 있는가?
4. 독창적인가? 남의 도움을 받았는가?
5. 원정대의 자율성이 있는가?
6. 고도의 등반기술이 있는가?
7. 참여와 자율성.
8. 위험한 등반행위는 아니었는가?
9. 파트너와 지역 원주민을 보호했는가?
10. 자연보호를 실천했는가?

일본이 17회 황금피켈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이팀의 등반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등반 장비만 봐도 구곡이나 토왕성 폭포를 등반할때의 것과도 별반 차이가 나지 않을 만큼 간결하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관심밖인 듯한 '7,000'미터급을 올라서 세운 기록이다.

Karmet(7756m) 남동벽 - 카주야 히라이데, 케이 타니구치(여)로 이루어진 혼성팀이 카멧 남동벽에 신루트를 개척했다. 카멧은 인도와 티베트의 국경에 있는 가르왈히말라야 제2위 고봉이다. 이들은 2008년 9월 28일 등반을 시작해 7박 8일간 남동벽 중앙을 알파인스타일로 등반, 10월 5일 정상에 섰고 1박 2일간 하산했다. 이들이 사용한 장비는 1.5킬로그램 텐트 1동, 50미터 로프 2동, 에일리언 1조, 주마 1조, 스크류 5개, 하켄 5개 등이었다. 신루트명은 사무라이 다이렉트다.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에 목매어 있는한 이런 안타까운 죽음은 또 다시 나올 것이다. 피할 수 있는 사고는 피해야 한다. 에베레스트에 하루동안 수백명씩 오르는 날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이제는 '결과' 보다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월요일, 7월 13, 2009

족제비를 봤다


여느때와 같은 시간에 나선 출근 길이었다. 화단 사이를 뭔가가 황급히 건너 뛰길래 처음에는 고양이인가 보다 했다. 그런데 모양과 모습이 달랐다. '족제비'였다! 길건너편 산에서 건너오지 않았을까 싶다. 지난 주말 내내 내린 비를 틈타 건너온 녀석일까. 콩크리트로 뒤덮인 아파트도 원래는 그들도 함께 살 수 있는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었던 곳이었을 것이다. 내 바램은 그 녀석이 원래(?) 살던 곳으로 무사히 돌아 가는 것이다.

목요일, 7월 09, 2009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영화를 보는 내내 '죽음'이 삶과 떨어져 있는게 아니라는걸 느끼게 해주었다. 아무리 말하고 느껴도 죽음이라는건 살아있는 인간에게는 언제나 어렵고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자기를 거두고 키워준 이의 죽음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눈빛, 선장의 죽음, 벼락을 일곱번이나 맞았던 노인의 죽음, 언제나 외출을 할 듯 옷을 깔끔하게 차려 입고 있던 노파의 죽음, 친 뉴올린즈 앞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죽음을 맞이하는 친아버지의 죽음을 벤자민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겪어 간다. 그리고 갓난애기의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는 벤자민의 죽음, 데이지의 죽음까지. 데이지와 밀월여행에서 돌아온 벤자민은 노인들로 북적대던 텅빈 양로원 모습에 의아해 하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이었다. '다시 못올 그곳'으로 떠난 이를 더이상 볼 수 없는 아픔을 이리도 절절이 표현할 수도 있구나 하는..

명박이 애완견들의 대테러 종합훈련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의 상흔이 깊어만 가고 있다. 유족들의 동의도 없이 이뤄진 부검을 당한 철거민들의 주검은 여전히 장례도 못 치른 채 차가운 냉동고에 갇혀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이 용산참사 현장을 그대로 재현해서 '대테러 종합훈련'을 벌였다. 건물옥상에 망루를 짓고 "생존권 보장"이라는 말을 써놨다. 가상의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컨테이너 박스를 기중기를 통해 건물 옥상으로 끌어올려 특공대를 투입시키는 장면까지 당시 진압장면을 그대로 재현했다. 진압과정에서 살수차로 시위대를 진압하는 모습까지 재현해 사실감을 더했다. .

이래 놓고서도 북한의 도발 위협이나 국가중요시설 등에 대한 긴급상황 발생시 신속한 대처를 위해 실시됐다고 한다. 세상에 어느 덜떨어진 테러범들이 건물 옥상에 "생존권 보장"이라는 말까지 써가며 망루를 설치하고 저항을 하겠는가. 덜떨어진 대통령을 따르는 덜떨어진 경찰들의 덜떨어진 훈련이었다. 이게 그저 그들끼리의 행사고 훈련이었다면 그냥 비웃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아직도 슬픔이 이어지고 있는 참사현장을 재현하고서는 '테러진압'운운 했다는 사실에서 분노와 절망감이 앞서지 않을 수 없다.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한없이 군림하려드는 경찰의 모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닐 것이지만 명박이를 주인으로 모시고 난 이후로 그들은 스스로 견찰이 되어 버렸다. 촛불시위가 있은지 1년이 지난 지금 유모차를 끌고 차도로 내려왔다는 이유로‘유모차 부대’를 소환하려 한다고 한다(관련기사). 힘없는 서민들에게는 한없이 강한 그들이 권력자편에서는 어찌그리 비굴 할까. 철거용역들의 행패앞에서 아무런 제지도 가하지 못하는 저 한심한 명박이 개들의 모습을 봐라. 경찰들이 가진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곳은 생존권을 요구하는 힘없는 서민들의 외침이 있는 곳 뿐이다. 이게 국민들의 세금으로 먹고사는 대한민국 경찰의 현재 모습이다. 이제는 명박이의 개가 되버린.

화요일, 7월 07, 2009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


좀 주제넘는 짓을 한거 같다.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 시리즈를 샀다. 평소 자연과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런저런 일반인들을 위한 교양과학책들을 여러권 보면서 자연과학의 근원이 물리학으로 닿는 다는걸 알게 되었지만 과학에 사전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이 대상이다 보니 왠지 본질에 다가서지 못하고 겉도는 느낌의 허전함이 들었었다. 그래서 본격적인 '물리학'서적을 사게 되었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펼쳐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픈 수학공식들이 몇페이지씩 이어지는 부분을 보면 괜한 책을 산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독서능력이 좋지 않아 좀 어려운 부분이 나오면 그저 건너뛰지 않고 책장을 넘겼다는데 위안을 받와 왔지만 그 호기심의 근원을 향해 한걸음더 내디뎠다는데에 의의를 가지며 기쁨을 얻었다. 좀더 세상의 본질에 다가가기를, 좀더 진실에 접근하기를 갈망하면서 공부한다는것. 그리고 이런 공부는 연륜이 쌓일수록 내 삶은 더 빛을 발하게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가져보며.

그저 쉽게 읽히던 책을 주로봐오던 내가 맘먹고 순전히 호기심의 충족을 위해 공부할 목적으로 이런 책을 사게 되다니 내 독서이력에서도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거 같다. 어쨋건 한때 심취했던 UFO, 외계인이야기들이 대부분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란걸 깨닫게 된것만으로도 '의미'는 벌써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월요일, 7월 06, 2009

헌책


책이라는게 상품으로써 새책일때의 상태와 누군가를 만나 행간의 의미들을 읽혀가며 한장한장 넘어갔던 책은 벌써 다른 물건이 되어있는 느낌을 준다. 언젠가 선물 받았던 우주선과 카누라는 책을 누군가 빌려가서 돌려 받지 못한적이 있었다. 나름 감명깊게 읽었던 책이고 소장하고 싶은 생각이 있던터라 새로 구입을 하려 서점에 갔었다. 그러나 내가 읽었던 책과는 전혀 다른 책이라는 느낌이 들어 그냥 포기하고 말았었다.

갖은 사연을 담고 있을 책이 한권 내 손에 들어왔다. 이 책은 내손에 들어오기까지 30년을 지나며 어떤 사연들을 봐왔을까. 저자의 친필 서명까지 들어있었다. 받는이의 이름까지 들어 있으면 둘의 관계는 예사 관계가 아니지 않았을까. 헌책도 좋아하다보니 저자의 서명이 들어있는 책이 이것까지 다섯권째다. 이런 책을 보면 내게 해준건 아니지만 마치 특별한 책을 선물 받은것같은 기쁨이 든다.

Q Drum


물을 긷기 위해 수킬로미터를 매일 걸어다녀야 하는 아프리카 오지의 주민들을 위해 개발한 물통( Q Drum ) 이다. 매체를 통해 보게되는 안타까운 모습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방안을 찾는 그런 이들의 마음이 인간을 '만물의 영장' 대열로 올리게 했던 인자가 아닐까. 약육강식의 동물성을 뛰어넘는 숭고한 가치가 인간에게는 분명히 있다. 앞서 말한 '동물성' 은 동물들보다 훨씬 잔인하기도 하지만. '이타적'인 숭고한 인자가 있었기에 인간의 파괴성을 극복하고 이제껏 생존할 수 있게 했을 것이다.

타인의 짐을 덜어주는 행위는 그 자체로 보상을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수요일, 7월 01, 2009

이명박, 아무래도 사이코패스 같다.

사이코패스

증상

사이코패시들은 감정을 관여하는 전두엽이 일반인들처럼 활성화되지 않기 때문에 감정을 느끼는 데 매우 미숙하다. 상대방의 입장을 해아리지 못해 이기적이며, 또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대신에 매우 이성적이고 계산적으라 일반적으로 유능하고 똑똑하다. 사이코패스는 주어진 환경적에 따라 다양하게 발현한다. 그렇기때문에 정치계나 업계의 상위 계층에 속한 사람들에도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계산적인 행동과 표정과 말투로 사회에서 능숙히 섞여지내고 환경에 따라 발현되는 정도가 달라 범죄를 했을때만 사이코패시를 일반인과 구분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진다. 그래서 보통 사이코패스를 '반사회적 인격장애' 라 부르기도 한다.

아무래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자는 "사이코패스"라는 확신이 든다. 물론 "... 이성적이고 계산적으라 일반적으로 유능하고 똑똑하다..."라는 부분에서 심각한 회의감이 들지만 노무현 대통령을 자살로 몰고간 치졸한 정치보복과 그 이후로도 반성의 기미라고는 찾을 수 없는 짓거리들은 그가 사이로패스라는 확신을 더욱 하게 만들었다.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 있었다면 그의 개들이 버스로 서울광장을 막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대한문 앞에 차려진 시민들의 빈소를 보호하라고 지시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저 사이코패스는 끝까지 속내를 숨기지 못했다.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마저도 속내를 드러내고야 말았다. 저런 사이코패스가 우리나라의 대통령이다. 아직도 3년반이 남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