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10월 31, 2008

서점

점점 '오프라인' 서점에 갈일이 줄어들고 있다. 매일 2시간 이상 이용하는 지하철속에서 책을 읽는 습관을 들이다 보니 독파력이 조금 늘으난데다 보고 싶은 책이 많아져 인터넷서점의 10%할인 가격을 무시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보고 싶은 책들은 인터넷 서점을 통해 구매고서는 서점은 '특별히'지날일이 있을때 들러 서점의 분위기를 느끼며 '우연히' 눈에 띄는 책을 한,두권 골라서 사는 곳이 되었다.

서점이 가진 특별한 매력을 느끼게 된건 한 7,8년전 교보문고를 찾을때 부터였다. 지금 사는곳으로 이사 온후 광화문이 특별한 일이 없어도 가볼 수 있는 곳이 되었다. 근,현대사를 아우러는 유적이 많은 세종로 일대는 그저 걷는것만으로도 기쁨을 주는 곳이 많아 카메라 하나 매고 어슬렁 거리는 맛이 참 좋은 곳이었다. 물론 구석 구석 유쾌하지 않은 모습으로 서 있는 경찰들의 모습만 빼면. 그런 외출의 마지막은 꼭 교보문고를 찾는 것으로 끝났다. 세상에 가진 호기심과 수많은 대답들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그곳이 점점 특별한 존재로 자리 잡아갔다.

예전처럼 서점을 자주 찾지는 못하지만 인터넷서점의 '효율, 편리성'을 뛰어넘는 무엇이 '오프라인' 서점에는 있다. 사람의 오감을 자극하고 만족시켜주는 느낌을 인터넷서점은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언젠가 광화문을 지나면서 길 건너편 교보문고에 걸려 있는 글판의 글귀가 눈에 들어왔던 적이 있었다. 그 글귀를 보는 순간 무엇에 홀린듯이 종이를 꺼내 적기 시작했었다.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


'짠'하게 와 닿았던 이 글귀대로 실천한적은 없는거 같지만 마음 한켠에 자리잡은 뭉쿨한 글귀였다. 지금도 그곳을 지날때면 때때로 바뀌어가는 글귀들을 바라보는것도 즐거운 일이다. 처음 봤던 그 글귀는 시인 고은님의 '낯선 곳'이라는 시에서 따온 글귀였다. '짠'하는 감동을 느낀 후 10년만에 인터넷에 검색해 봤다.


낯선 곳 - 고은

떠나라
낯선 곳으로

아메리카가 아니라
인도네시아가 아니라
그대 하루하루의 반복으로부터

단 한 번도 용서할 수 없는 습관으로부터
그대 떠나라

아기가 만들어낸 말의 새로움으로
할머니를 알루빠라고 하는 새로움으로
그리하여
할머니조차
새로움이 되는 곳
그 낯선 곳으로

떠나라
그대 온갖 추억과 사전을 버리고
빈주먹조차 버리고

떠나라
떠나는 것이야말로
그대의 재생을 뛰어넘어
최초의 탄생이다 떠나라



서점 이야기

수요일, 10월 29, 2008

카바이드 램프


아버지께서 낚시를 가거나 오실때 가방을 열면 특유의 냄새를 내던 카바이드향이 생각난다. 야외에서 사용할 별다른 조명기구가 없었던 그때에는 빠트릴 수 없는 도구였을 것이다. 개스, 휘발유, LED등도 사용해 봤지만 소음(개스,휘발유)과 차가운 느낌(LED)을 주는 것과 달리 '은은한' 불빛과 '따뜻'한 기분을 주던 기억이 아련히 남아 있다. 은은한 느낌의 카바이드 불빛을 캠프장에 켜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파는곳이 있을까 검색을 했다. 국내에서는 찾을 수 없었고 해외에서도 드물게 판매하는곳이 있는데 대부분 카바이드 램프가 만들어졌던 초창기(1900년대초?) 광부들을 위해 만들어졌던 것들중 재고로 남아 있던것이거나 상태가 좋은것들이 판매되고 있었다. 그리고 예전에 만들어졌던 것들을 재제작해 판매하는 곳도 찾았는데 환율이 진정되면 구입을 적극 고려해야 겠다. 그런데 연료인 '칼슘 카바이드'가 폭탄제조의 가능성때문에 판매금지 품목으로 묶여 있다. 쩝~

칼슘카바이드에 물이 들어가면 발화성 가스인 아세틸렌으로 변성되는데 여기에 불을 붙이게 된다. 보통 몸체의 구조는 물이 들어 있는 상부와 칼슘카바이드가 있는 하부로 이루어져 상부에서 하부로 조금씩 떨어뜨리는 물의 양을 조절하면서 아세틸렌 가스의 양이 조절하는 방식으로 밝기를 조절하게 된다. 반짝이는 황동 몸체를 가지고 있는 저 카바이드등이 켜진 캠프장에서 소주한잔 기울이고 싶다.


화요일, 10월 28, 2008

Solar Spark Lighter


햇빛을 이용한 점화기도 있었다. 앞서 말한 '콜라캔과 초코바'를 이용한 점화 방식과 동일한 원리의 물건인데 촛점이 맞춰지는 부분에 지지대가 있어 부싯깃을 끼울 수 있게 했고 지지대가 접히기도해 휴대성도 높였다.

콜라캔과 초콜렛바로 불붙이기.

이렇게도 불을 붙이는 방법이 있었다. 콜라캔의 바닥을 거울처럼 매끈하게 연마하면 돋보기 처럼 햇빛을 모아 촛점을 만들어 불을 붙인다는 것.


모든 캔은 다음과 같이 바닥이 까칠하게 생겼다. 빛을 산란시키기 때문에 빛을 모으지는 못한다. 


여기에 초콜렛을 뭍힌다음 헝겊이나 여타의 연마할 수 있는것들로 맨들맨들하게 닦아낸다. 거친 헝겊을 사용할 경우 1시간정도 문지르면 원하는 만큼의 광택을 낼 수 있다. 단 이과정에서 남은 초콜렛은 절대 먹으면 안된다. 알루미늄 조각이 미세하게 묻어 나면서 독소(Toxie)를 포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사진에 나오는 정도면 불을 붙일 수 있을 만큼의  빛을 모을 수 있다. 

캔에서 3,4센티 정도 떨어진 곳에 불이 붙기 쉬운 나무막대등을 갖다 대면 불이 붙는걸 확인할 수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햇빛이 충분할때 붙이는 것이 효과도 좋을 것이다. 


다음의 사진은 촛점이 잡히는 위치를 보여주는 사진이다. 종이 조각을 갖다 대면 어느정도 거리에서 최적의 촛점이 맺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 동영상(Youtube)


☞ 원문보기 : Fire from a Can of Coke and a Chocolate Bar

희망과 용기

"... 자기 기만이 없다면 희망은 존재할 수 없지만, 용기는 이성적이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 희망은 소멸할 수 있지만 용기는 호흡이 길다. 희망이 분출할 때는 어려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쉽지만 그것을 마무리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전쟁을 이기고, 대륙을 제압하고, 나라를 세우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희망 없는 상황에서 용기가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줄 때 인간은 최고조에 달할 수 있다... " 에릭호퍼 자서전 중 '길 위의 철학자 - 인간에게는 희망보다 용기가 필요하다' 에서.

'희망과 용기', 곧잘 붙어서 사용되는 말이기도 해 하나로 묶일 수 있는 비슷한 단어려니 했다. 그런데 에릭 호퍼의 책에 두말의 차이에 대한 부분이 있었다. 곰곰이 생각을 하니 곧 공감을 가질 수 있었다. 내게도 어려운 시간들이 있었다. 그것들을 지나오게 지탱해 준건 '희망'이었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가 있었다면 시간들이 짧아졌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희망'은 끊임 없는 '자기 기만'을 통해 버텨갔다. 결국에 희망이라 믿었던 것들이 한낱 신기루 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게되고 '용기'가 없는 희망이 열정과 에너지를 소진시키기만 하는건지를 깨닫게 되었다.

'용기', 싸움터에 나가 적을 무찌를때만 사용되는 단어로만 여겨왔었다. 당면한 문제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오롯이 받아들일 수 있을때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말이었다.

금요일, 10월 24, 2008

나라 말아먹기


“정권이 바뀌고 내가 당선되는 효과만으로도 내년엔 주가가 3000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실물경제를 한 사람이기 때문에 허황된 정치적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아마 임기 5년 중에 제대로만 되면 (주가가) 5000까지 가는 게 정상”이라며 747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꿈을 키워주던 명박이의 장미빛 미래는 '경제파탄 대통령' 시절 1895.05 포인트까지 올라갔던 코스피지수가 930대 포인트로 반 토막이 나면서 1997년 환란’에 버금가는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남탓 좋아하는 그가 이번 사태를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촉발됐음을 강조하는 '남탓(대외 여건)' 탓으로만 돌리는건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물론 지금의 상황을 모두 명박이 탓으로 돌리는건 맞지 않다. 미국발 금융위기와 유가불안정은 누가 대통령이 되었건 피해갈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위기를 맞았다는데 있지 않다. 나라안밖에서 들려오는 위기 신호를 무시해오다 이제서야 상황이 심각하다는걸 깨닫고 과도하게 불안감을 불러일으키는 발언을 쏟아내는 것이 문제이다. 풍랑이 닥쳐오고 있고 여기저기서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는데 선장은 태평하게 괜찮다는 말만 하며 아무것도 하지않고 있다 뒤늦게 허둥지둥 키를 잡고 배를 바로 세우려는 격이다. 그마저도 제대로 하면 모를까. 혼란과 불안만 가중시키는 정책만 연달아 내놓고 있다. 다음은 명박이가 이제껏 내뱉어온 말들이다. 대통령이라는 이의 상황인식과 대응능력은 참담할 정도 이다.


9월9 일 "외환위기 때와 상황이 다르다. 어려움은 있지만 위기는 전혀 없다"

10월 7일 "현재 위기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와는 다르다"

10월 13일 "우리가 지금 어렵긴 하지만 IMF 외환위기 당시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10월 20일 "오히려 지금이 기호일 수 있다". "IMF 때는아시아만의 위기였기 때문에 우리만 정신 차리면 외국에 수출을 늘려 충문지 극복할 수 있는 환경이었으나, 지금은 세계 전체가 실물경기 침체로 어려운 만큼 회복이 쉽지 않은 상황"

10월 21일 "총괄적으로 지금 상황이 IMF 위기 때보다 심각하다. 그때는 아시아만의 위기였지만 지금은 세계경제 전체가 실물경제 위기에 빠져들고 있기 때문에 우리만 회복된다고 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 그린스펀조차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시장 독재의 폐해를 지적하는 판에 쥐박이는 뭐가 그렇게 잘났는지 자기 잘못은 조금도 없다며 잘못된 시장 독재 정책을 계속 강행하겠다고 핏대를 올린다. 오히려 시장의 규제완화를 통해 시장의 자유를 확대해야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고 짖어대고 있다. 예컨대 놀랍게도 강만수 장관은 이 위급한 와중에도 종부세 완화를 계속 강행하고, 덧붙여서 양도세도 인하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주에 잇따라 발표된 건설업에 9조2000억 원의 혈세를 퍼주겠다는 것과 은행에 대해 역시 엄청난 혈세를 퍼주겠다고 한 것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기가 막힐 따름이다. 도대체 어쩌다 이런 돌대가리를 대통령으로 뽑고 말았을까?

문제는 그냥 소망교회에서 열심히 기도하는것이 더 어울렸을 자를 대통령자리에 앉힌 죄를 고스란이 서민들이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명박이는 "제가 가장 무거운 짐을 지고 앞장서겠다"며 "서로 믿고, 자신감을 갖고, 다함께 힘차게 나아가자"고 하면서 함께 가자고 한다. 그자가 진다고 한 '가장 무거운 짐'이 뭘까?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서민들의 불안한 현실과 미래만큼 '가장 무거운 짐'이 있을까? 여론은 개무시한 채 상식부재, 소통부재, 막가파 식의 정치행태를 펼쳐온 그에게 그런 의미를 생각하리라 기대하는것 조차 벅찬 일이다. 명박이는 아마 지금쯤 30년지기 소망교회 교우 만수와 함께 '환난과 고통을 헤쳐'나가게 해달라는 기도나 하고 자빠져 있을 확률이 99%이다.

버너수리 부품 구입

등산장비의 무게줄이기 필요성을 느끼고 휘발유 버너의 환상(?)을 벗어날때쯤 구입했던 소형버너였다. 한동안 손질을 하지 않았더니 손잡이 연결 부위에 부식이 생겼던 모양이었다. 뻑뻑해진 손집이를 억지로 돌렸더니 손잡이 연결부위가 똑 부러져 버렸다. 나머지 부위는 멀쩡한데 사소한 문제때문에 무용지물이 될거같은 속상함이 들었다. 손잡이 부품만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국내에 있는 스노피크 취급 업체에 메일을 몇번 보냈으나 답을 받지 못했다. 비슷한 검색어로 해외싸이트를 검색해보니 부품을 판매한다는걸 알았다. 만원정도의 가격에 판매되고 있길래 다른 물건을 구입하는 편에 같이 주문했다.


버너 제조사에서 공식적으로 판매하고 있는 수리부품을 국내에서는 전혀 취급되고 있지 않았다. 그 이유가 궁금했고 불쾌한 생각이 들었다. 부품망가지면 수리할 생각하지 말고 새로 사라는 건 아닌지. 대부분의 업체가 수입물건에 매기는 터무니 없는 가격에 질렸었고 특별한 이유가 없는한 해외구매를 해왔다. 이번에 또 그렇게 할 이유가 더 늘어난 경험이었다.

월요일, 10월 13, 2008

Discovery Channel - I Love the World

The World is Just Awesome!

세상이 얼마나 흥미로운 곳으로 가득찬 곳인지를 알려주는 다큐채널이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The World is Just Awesome!'(세상은 정말 멋있는곳!) 한마디로 정리 된다. 15분마다 나오는 광고가 '흠'이지만 그 중에 'I Love The Whole World' 만큼은 볼때마다 즐거운 상상과 호기심을 일깨워주다 못해 감동까지 느끼게 한다.

Discovery Channel - I Love The Whole World (Boom-De-Ya Da)

마우스를 화면에 올리면 자막이 나옴.


(Dialogue)
Astronaut 1: It never gets old, huh?
Astronaut 2: Nope.
Astronaut 1: It kinda makes you want to... Break into song?
Astronaut 2: Yep.

I love the mountains
I love the clear blue skies
I love big bridges
I love when great whites fly
I love the whole world
And all its sights and sounds

Boom De Ah Dah, Boom De Ah Dah (twice)

I love the oceans
I love real dirty things
I love to go fast
I love Egyptian kings
I love the whole world
And all its craziness

Boom De Ah Dah, Boom De Ah Dah (twice)

I love tornadoes
I love arachnids
I love hot magma
I love the giant squids
I love the whole world
It's such a brilliant place

Boom De Ah Dah, Boom De Ah Dah (repeating until fade)



다음건 고화질(비교적)

일요일, 10월 12, 2008

나쁜 사마리아인들



정말 명쾌했다. '개방, 경쟁'을 부르짖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을 명쾌하게 파헤치고 문제점들을 까발려 놓는다. 시장개방을 찬성하는 이들이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경쟁'이 필요하다. '온실'속에 있어서는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는 누가 들어도 지당한 이야기를 할때면 어떤 이의를 제기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숨통이 틔는 기분이었다.

'경쟁'이라는 말을 들으면 비슷한 수준의 선수가 실력을 가늠하는 경기장의 모습을 떠올린다. 미묘한 차이로 승부가 갈라지는 시합장에서의 경쟁은 보는이에게 재미와 박진감을 준다. 그런 경쟁이 이어질 수록 선수의 실력은 더 발전해 멋진 경기를 보여주게 될것이다. 그러나 두 선수의 실력차이가 확연하게 난다면 어떻게 될까. 결과는 이미 정해진거나 마찬 가지이며 한 선수는 경쟁 상대로써의 의미조차 없어지게 될 것이다. 비슷한 실력의 선수들과 연습하며 실력을 쌓지 않는한 잘되어 봐야 그저 만만한 기술연습상대 정도에 머무르다 선수 생명이 다하게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 자들이 말하는 '개방'과 '경쟁'의 이면에는 이미 수십년에서 100년이상까지 기술과 산업구조를 발전시켜온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런 선진국의 기업들과 제대로 자리잡지못한 개발도상국의 기업의 공정한 경쟁은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다. 이는 저개발 국가의 발전을 도우는 '착한사마리아인'이 아니라 영원히 상대방의 우위에 서서 이윤을 얻어 내겠다는 '나쁜사마리아인'이 되겠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방법이 정답이 아님은 확실해 보인다. 그들의 방법대로 개방과 경쟁을 시도한 나라의 대부분이 빈곤이 심화되고 있는 자료를 곳곳에서 보여주고 있다.

다음은 이 책의 표지에 나오는 말이다. 책의 기본적인 내용을 잘 표현해 내고 있다.


내게는 여섯 살 난 아들이 있다. 이름은 진규다. 아들은 나에게 의존하여 생활하고 있지만, 스스로 생활비를 벌 충분한 능력이 있다. 나는 아들의 의식주 비용과 교육 및 의료 비용을 지불하고 있지만, 내 아들 또래의 아이들 수백만 명은 벌써부터 일을 하고 있다. 18세기에 살았던 다니엘 디포는 아이들은 네 살 때부터 생활비를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뿐인가. 일을 하면 진규의 인성 개발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아이는 지금 온실 속에서 살고 있기에 돈이 중요한 줄 모르고 지낸다. 아이는 자기 엄마와 내가 저를 위해 노력하는 것에 대해, 자신의 한가로운 생활을 보조하고 자신을 가혹한 현실로부터 보호해 주는 것에 대해 전혀 고마움을 모른다. 아이는 과잉보호를 받고 있으니 좀 더 생산적인 인간이 될 수 있도록 경쟁에 노출시켜야 한다. 아이가 경쟁에 더 많이, 그리고 더 빨리 노출될수록 미래에 아이의 발전에는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이고, 아이는 힘든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정신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나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말고 일을 하게 해야 한다. 아이에게 더 많은 직업 선택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 아동 노동이 합법적이거나 최소한 묵인이라도 되는 나라로 이주를 생각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내 귀에는 여러분이 나를 보고 미친 사람이라고 욕하는 소리가 들린다. 생각이 짧다고, 매몰찬 사람이라고. 여러분은 나에게 아이를 보호하고 양육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내가 여섯 살 먹은 아이를 노동 시장으로 몰아넣는다면 아이는 약삭빠른 구두닦이 소년이 될 수도 있고, 돈 잘 버는 행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뇌수술 전문의나 핵물리학자가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만일 아이가 그런 직업을 가지려면, 내가 앞으로 적어도 10년 이상의 세월 동안 보호와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여러분이 단순히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아도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아 절약되는 돈을 보고 히죽거리는 것보다는 아들의 교육에 투자를 하는 편이 현명하다고 말할 것이다. 

어쨌든 내 생각이 옳다면, 올리버 트위스트는 생각이 짧은 착한 사마리아인 브라운로우 씨의 손에 구조되는 것보다는, 늙은 악당 페긴을 위해서 소매치기를 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브라운로우 씨는 소년 올리버에게서 노동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은 것이다.

나의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은 개발도상국에는 급속하고 대대적인 무역 자유화가 필요하다는 자유 무역주의 경제학자들의 주장과 근본적으로 논지가 일치한다. 이들은 개발도상국의 생산자들이 생존을 위해 자신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려는 동기를 가질 수 있도록 지금 당장 가능한 한 경쟁에 많이 노출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호는 안이함과 나태함만 유발할 뿐이므로, 경쟁에 노출되는 것이 빠르면 빠를수록 경제 발전에 더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기 부여 외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능력이다. 진규가 여섯 살에 학교를 그만둔다면 설령 2,000만 파운드라는 엄청난 보수를 주겠다는 제의나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겠다는 무시무시한 협박이 있다 해도, 어려운 뇌수술을 성공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개발도상국의 산업 역시 너무 일찍부터 국제적인 경쟁에 노출되면 살아남지 못한다. 이들에게는 선진 기술을 익히고 효율적인 조직을 만드는 등의 능력을 키워 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내가 앞 장에서 미국의 초대 재무 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이 처음으로 이론화하고, 그 이전과 이후의 정책 입안자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서 사용해 온 것이라고 소개한 유치산업 이론의 핵심이다.


마지막으로 이책을 읽도록 일부러 기회를 만들어준 국방부 관계자들에게 다시 한번더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이 책을 '반정부, 반미 도서'로 규정한 국방부 담당자의 사고수준을 함께 점검해보라는 말도 함께 전하고 싶다. 군간부들이 읽었을리는 없고 계원하나 잡아 시켜 대충 만들어낸 자료일 가능성이 99%라고 보지만 정말 읽고도 이런 선택을 했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기본적으로 한나라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상황을 인식하고 판단해야 하는지( 우리나라의 예도 수시로 나온다 )에 대한 내용이 반복되어 나오는 걸 보고도 '반미, 반정부 도서'라고 규정했다면 그 장교의 머리가 돌로 만들어져 있거나 북한이나 미국에서 보낸 간첩일 가능성이 100% 이기 때문이다. 자기돈 들여 그짓을 한다면 모를까 엄연히 국민의 세금을 먹고 사는 존재들 아닌가.

토요일, 10월 11, 2008

신은 위대하지 않다. 진짜 그렇다.


세상을 구원해 준다고 믿었던 '신'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지는 오래지만 세상은 여전지 그것들을 들먹이며 돈을 벌어들이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다. 한때는 천주교의 영세까지 받으며 목회자의 길을 걸을지를 꽤 진지하게 고민하던 때도 있었다. 성당 정문을 통과하면 포근하고 정겨운 모습의 '성모'님 동상과 본당에 들어섰을때 탁 트인 천장과 커다란 십자고상앞에서 왠지 위축되는 느낌과 함께 숙연해지는 기분 그리고 내가 모르고 있는 '비밀'들이 무궁무진하게 들어있을거 같은 느낌이 좋았다. 영세를 받았을땐 드디어 그 조직의 일원이 되었다는 커다란 안도감도 가질 수 있었다.

천주교가 타종교에 비해 청렴하다는 인상을 가질 수 있는건 교구차원에서 관리하는 '헌금'과 독신인 성직자들의 생활은 상대적으로 부정부패가 생길 가능성이 적은 것이 이유일 것이다. 나라에 어려운 일이 있을때마다 든든한 지원군으로 나선 정의구현사제단의 역할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런 이미지들은 관련된 것들에 까지 그대로 이어지게 된다. 일단 신자들은 예의 '하느님'을 믿는 종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막무가내식의 전도를 하지 않을거라는 기대를 가지게 된다. 복지시설은 이상적으로 운영될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이름으로 칭해지는 '집단'을 하나의 성격으로 규정짓는건 정말 어려운 일인거 같다. 어느 종교의 이름을 가지고( 천주교, 개신교 등 ) 거기에 속한 이들의 특성을 논한다는건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일로 생각해도 무방하다는 말이다. 오늘도 그런 기사 하나를 봤다. '성모'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는 그들이 운영하는 병원은 흔히듣게되는 의료비리와는 거리가 멀거라는 생각을 했던건 '성모'와 '천주교'라는 이미지의 후광효과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자본'의 논리를 휘두르며 인건비 절감을 위해 일하던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들어 사용한 붕대조각마냥 마음껏 쓰레기통으로 버리는 더러운 작태는 그곳에서도 한치 다름없이 이뤄지고 있다. 그것도 '성모'의 이름을 내걸고서 말이다. 사실 '하느님, 예수, 성모'들의 이야기들이 어디까지가 객관적인 사실이고 꾸며진 이야기들인지 의심이 가지 않으면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저렇게 '성모'의 이름을 내걸고서 '하느님이 사랑하는' 백성들을 쓰레기처럼 탄압하고 있는데 대체 그 전지전능하다는 '하느님'과 사랑의 '성모'님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사람은 어느 집단에 있다고 해서 뭉뚱거려 특징을 판단할 것이아니라 어떤 생각을 하고 실천을 하느냐로 판단해야 한다. 그깟 '하느님'따위가 인간에게 해줄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다. 그래 '하느님'이 할 수 있는게 있다면 당장 '성모'의 이름을 내걸고 의료사업을 하면서 노동자를 탄압하는 저 병원에 벼락을 내리쳐 봐라.

봐라 아무일 없지?

목요일, 10월 09, 2008

달러 모으기.

평소 수입품을 살때 이용하는 인터넷 직구매가 '환율'의 변화를 나름대로 느끼는 방법이었다. 고가의 물건을 구매하지 않기 때문에 몇십원정도 오르락 내리락 하는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니나 1,500원에 육박하는 정도면 그냥 구매를 포기하는게 낳다. 10년전 생각이 떠올랐다. 환율 폭등으로 장비점마다 가격표를 두배씩 올려 놓은 모습을( 폭등전에 들여놓은 것이면서 왜 그랬는지 의아해 했었다 ). 우리나라에 위기가 닥쳤음을 나름대로 느낀 방법이었다.

그렇게 환란이 난지 10년 만에 우리는 또 다시 그때의 일이 반복되는 위기에 직면했다. 그것도 또 한나라당에 의해서. IMF의 장본인들인 한승수와 강만수를 국무총리와 장관으로 임명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0년간의 국민의 노력을 폄훼하고 모욕해왔다. 그런 그들이 혼란과 환란을 또다시 초래해 놓고서 아니나 다를까 모든 게 다 전 정권 탓이란다.

현재와 같은 위기발생 가능성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명박이와 소망교회 교우인 강만수는 2천억달러가 넘는 외환 보유고를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며 줄곧 위기설을 부인해 왔었다.

"우리나라는 세계 수위권에 드는 외환 보유고를 자랑한다. 외환 유동성에 대한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현재는 IMF 때와는 경제적 펀더멘털(fundamental)이 다르기 때문에 외환위기는 없을 것이다."

그러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게 되자 이 대통령과 강 장관은 위기라고 하기도 하고 아니라고 부인하기도 하다가, 급기야 강만수 장관이 위기를 시인하기에 이르렀다.

"금융 위기가 실물 위기로 퍼져나갈 것으로 생각되며, 이미 시작되고 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집에 있는 달러를 모으자고 한다.

"취지는 십분 이해하고 필요성에는 동의하지만 정부가 나서서 하긴 어렵다. 민간 차원에서 먼저 하는 건 좋다고 생각한다."(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애당초 서민들의 힘겨운 삶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통한 경제회복과 그로 인한 양극화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살림살이 나아지기'에 대한 갈망은 명박이의 '경제 살리기'를 향했고 그를 대통령으로 뽑기에 이르렀다.오락가락하는 환율정책을 보면 위기에 대처하는 대통령과 기획재정부 장관의 책임이 크다. 그러나 “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다”라고 반응하는 건 사태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그들이 모든게 '놈현탓'이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들에게 변명할 여지를 너무 많이 주게 된다.

문제의 핵심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추구하는 '경제살리기' 욕망이 지속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아닐까. 세계10위의 경제대국인 나라에서 7%성장 따위의 것들은 애당초 불가능한 목표였다. 그보다 성장의 열매를 분배하는 문제로 무게중심을 옮겼어야 하는 상식을 져버렸다. 이명박은 그 불가능한 짓을 끝까지 밀어붙여달라는 요구를 받고 등장한 해결사였다. 그런 의미에서 도저히 해결이 안 될 듯한 그의 무능은 우리의 무능이며 여기서 혼란과 위기가 닥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집집마다 있는 달러를 모으자는 소리를 해대고 있는 것이다.

최진실



드라마 <질투>와 주제곡을 들을때면 그해(1992)여름이 생각난다. ATT훈련이 끝나고 야전선을 회수해 부대로 가는 차를 기다리고 있던중이었다. 근처 가게에서 나오던 피서온 아가씨들이 이것좀 드시라며 아이스크림을 주었다. 인정 넘치던 그 아가씨들에게서 드라마속 최진실씨의 이미지가 그려졌다. 온 부대의 활동이 멈출만큼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였고 세상의 여자를 보는 기준이 될 정도의 인기를 얻었던 이였다.

그러던 그녀가 자살을 했다. 사생활이 사람들의 입방앗가에 오르내리는게 '숙명'인 연예인 생활은 보통 사람으로써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토록 사랑하던 아이들을 남겨놓고 어떻게 혼자서 먼저 갈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난망이고 정말 나쁜 여자 라는 소리가 절로 가슴속을 맴도는건 어쩔 수 없다.

부디 더 좋은 곳에서 영면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