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9월 02, 2009

늑대 '아리' 사살

얼마전 우리를 탈출했던 늑대 '아리'가 사살됐다는 뉴스가 있었다( ☞ 관련기사 ). 총에 맞아 죽은 '아라'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평생 우리속에만 있는 동물이 비단 늑대뿐은 아니지만 야생의 습성이 살아 있는 늑대에게는 얼마나 더 큰 고통이었을까. 탈출후의 짧은 외출의 마지막 자유를 제대로 누렸기를 빌었다. 야생의 습성을 가진 굶주린 늑대가 일으킬지 모르는 상황들에 대한 부담감에서 사살을 결정한 담당자들의 심정도 이해한다. 평생 우리속에 살던 늑대가 얼마나 위험한지 의문은 들지만 아마 내가 그자리에 있어으면 같은 결정을 내렸을거 같다.

90년대 말이었다. 경북 구미에서 잠시 동안 일을 할때 였다. 근처 관공서 알림판에 붙어 있었던 늑대를 목견한 이를 찾는 다는 포스터 한장을 보고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 야생동물이라고는 산토끼 정도 밖에 살지 못할 정도로 구석구석이 개발된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야생 늑대를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속에 가둬 키우던 늑대 한마리를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자연은 본질을 잃어 버렸구나 하는 씁쓸함이 든다.

뉴스에서 멸종한 동물들을 복원한다는 소식을 간간이 듣게 된다. 그러나 복원한 동물이 살아갈 자연이 없는 상태에서의 복원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구에서 원래는 그들도 함께 살아가는 존재 들이었음을 수용하고 그런 모습들이 당연한일로 받아들이게 되는 일은 불가능한 공상일까. 풍경좋은 경관의 기능으로써의 자연이 아닌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그런 숲을 가진 곳.



96년 늦봄이었다. 그때 산악회에서 같이 활동하는이와 북한산위쪽으로 한북정맥으로 이어진 호명산에 있던 폐군부대 건물에서 하룻밤을 묵었었다. 늑대 특유의 울음 소리를 듣고서 잠을 깼었다. 내 귀를 의심했었다. 같이 있었던 이도 역시 의아해 했다. 그때 그 소리는 뭐였을까. 집나간 개가 외쳤던 소리일까. 아니면 진짜 늑대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