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11월 30, 2007

무·배추 수확

초가을에 심었던 무우와 배추를 수확했다. 먼저 농사를 지었던 어르신들의 원래 배추가 잘되지 않는다는 말에 그냥 버리는셈 치고 모종 50포기만 심었었다. 그중 25포기가 속이 꽉차게 잘 익어 끝까지 자라 주었다. 무우는 굵은 뿌리만큼이나 억세게 모두 싹을 트고 자랐다. 이럴줄 알았으면 배추를 좀 더 심었을걸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흙살림에서 구했던 유기농 퇴비와 목초액을 사용했던게 크게 효과를 본거 같다.


하얗게 속이 꽉찬 배추를 보시며 어르신들은 농사를 지어봤던게 아니냐는 과찬의 말씀을 아끼지 않으셨다. 밭에서 도로까지 지고 내려오는 일이 보통이 아니었지만 직접 키운 채소를 먹는 기쁨을 넘어설 수 있을까.


막상 김장을 담고 나니 부피가 수확했을때보다 확 줄었지만 내년 여름까지 우리가족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김치가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우리를 든든하게 했다. 심었던 모종의 반밖에 수확하지 못한 배추였지만 씨앗을 뿌렸던 무우는 솎아 내면서 까지 키워야 했다. 덕분에 무우 한박스는선물로 보낼 수 있었다.


밭사이를 다니며 노는 진성이와 윤성이는 엄마·아빠의 수확에 대한 기쁨에는 안중에도 없이 자기들만의 시간을 누리고 있다. 바쿠칸이나 파워레인저의 영향을 벗어나 그나마 흙과 채소를 통해 자연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소중한 경험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램이 다.

수요일, 11월 28, 2007

ZebraLight

플래쉬라이트 매니아들의 포럼인 CandlePowerforum에서 선풍적인 화제를 모았던 ZebraLight가 도착했다. 제품 제작자는 미국사람인데 생산공장은 중국에 있는 모양인지 상하이에서 배송되어 왔다. 덕분에 5$라는 비교적 아주 저렴한 배송비만 지불했고 주문한지 딱 1주일만에 배달되어왔다( 미국에 있는 주문자들의 경우 2주이상씩 소요된 모양이었다 ).


배송봉투를 뜯으니 메이저급 회사제품만큼은 아니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깔끔한 형태로 포장 되어있었다. ZebraLight는 Head Band에 부착되어 있고 나머지 악세사리 들이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헤드밴드의 품질도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일전에 주문했던 Inova 24/7에 딸려왔던 것에 비하면 훨씬 부드럽고 좋았다. 그 외의 악세라리로는 방수를 위한 O-ring이 두개, 여분의 부드러운 야광 실리콘 장착대 두개와 목걸이, 주머니등에 장착할 수 있는 클립으로 알찬 구성을 이루고 있다.


ZebraLight의 몸통만 찍은 사진이다. Type-III로 아노다이징처리된 알루미늄 합급으로 된 몸체를 가지고 있으며 반사경없이 Cree-Q5 LED가 작은 폴리카보네이트렌즈로 덮여있다.


클립을 장착한 형태로 주머니나 기타의 곳에 간단히 꽂아서 사용할 수 있다.


목에 걸어서 사용할 수 있도록 줄과 글로우 장착대를 제공하는데 야광이어서 밤에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한다.


헤드밴드에 장착한 모습이다. 헤드랜턴으로써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 AA 건전지 하나만 들어가기에 아주 가볍다. 단점일 수도 있지만 집중되는 부분없이 넓게 퍼지는 형태의 빛이어서 근거리 작업을 할때 매우 유용하다.



등산용 헤드랜턴은 몇년새 가장 큰 변화를 겪은 장비다. 그전까지는 필라멘트 전구를 사용한 헤드랜턴들에서 페츨, 내쇼널등의 메이커 제품들이 거의 정점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에 LED가 사용되면서 부터 페츨과 내쇼널은 순식간에 최고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제품자체의 완성도는 높은 편이지만 건전지의 전원을 일정하게 사용할 수 있는 레귤레이터 회로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눈이 높아진 사용자들로 부터 외면을 받게 되었다.

산속에서는 대체로 희미한 불빛만 있으면 별무리 없이 즐거운 야영을 할 수 있다. 때때로 밝은 빛을 필요로 할때도 있다. 레귤레이터의 제어를 받는 제품의 밝기 조정이라면 하이레벨의 빛의 양을 믿을 수 있지만 페츨과 같이 꾸준히 하향곡선을 그리게되는 제품에서는 그러지 못하다. 모르고 있으면 별거 아니지만 그런 기능을 알고 나면 레귤레이터회뢰가 없는 제품은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된다.

빛을 내는 효율도 반도체의 발전속도 만큼이나 발전을 했다. 초창기의 1.5V 건전지 세개를 사용해도 15루멘 이상 넘기 힘들고 그것도 한시간 남짓 유지되던 빛이 이제는 건전지 하나를 사용해서도 60루멘을 훌쩍 뛰어넘어 버려 두시간을 가볍게 넘어버린다. Zebralight의 밝기와 유지시간은 다음과 같다.

Low 2.6 루멘 : 사흘반
Medium 13 루멘 : 19시간
High 66 루멘 2시간 20분

아무리 밝은 후레쉬라도 밤을 낮으로 바꿀 수는 없다. 어둠을 받아 들이는 순응이 필요하다. 자연속에서 문명화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잠시 보완하는 용도와 목적으로써의 도구로 생각하는것이 옳은일이 아닐까.

Zebra Light Co.

목요일, 11월 22, 2007

인간 없는 세상

오염된 강물을 볼때 사람이 한 일년정도 없어지거나 오염물질을 내보내지 않으면 강물 색깔이 맑게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적 있다. 또는 영화 'Omega Man'처럼 전쟁으로 인류가 멸망하고 영화속의 오메가맨이 내가 되면 지구가 바뀌어 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했다.

저자는 인류가 갑자기 지구에서 사라진다는 가정을 할 경우 이제까지 이룩해온 문명의 자리에 어떻게 자연이 되돌아 오는지를 이야기 한다. 그러면서 자연의 자정능력을 넘어서는 생산활동과 훼손으로 스스로를 위험에 빠트리고 있는 인류문명의 문제들을 역설적으로 설명하고 이해시킨다.

사람이 만들고 이용하는 문명은 사람에 의해 끊임없이 관리되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다. 사람의 관리가 중단되고 가동도 멈추게 되면 시간적인 차이만 있을 뿐 원래 그 땅의 주인이었던 물, 풀, 나무들과 동물들이 다시 자리를 잡아 나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문명에 의해 사라진 동물들이 있고 그것들의 흔적들이 길게는 수백만년까지 영향을 미칠것이기에 문명이 들어서기 전과는 다른 모습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의 손길이 끊긴 자리에 자연이 되돌아 오는 광경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인적이 드문 길을 가면 어김없이 보도블록 사이로 틈틈이 자라고 있는 풀들을 볼 수 있다. 그중 일부는 뚫고 올라오다시피해 두꺼운 보도블록을 깨트린 것들도 있다. 끈질긴 생명력이라고 표현하지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그렇게 금새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지난 봄부터 일궈온 텃밭에서도 끊임없이 자라는 잡초들도 원래 그 땅의 주인들이 었던 그들이 자기 자리를 잡아 나가려는 것 뿐이었을 것이다. 사람이 심은 채소 씨앗들은 애당초 그곳이 살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토요일, 11월 17, 2007

야근

IT업체들을 보면 직원을 풀어놓으면 돈벌어오는 앵벌이 수준으로 생각하는 회사의 경영자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멋모르고 회사생활을 시작한 이들에게 정시퇴근은 회사의 사정상 불가능한 일임을 일찌감치 주입을 시키며 그가 가진 기대와 열정을 12시간 이상씩 뽑아 먹으며 부려먹는 것이다.

진행되는 일을 돗보이게 하기 위해 야근 자체를 목적으로 야근을 종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우리는 수시로 철야를 하고 주말까지 반납하고 일을 하고 있다는걸 보여줌으로써 더디게 진행되는 일정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대신 몸으로 떼우는 방식이었다.

많은 이들은 살인적인 강도의 일감에 제풀에 지쳐 나가거나 그동안의 일들을 경력으로 더 낳은 조건의 회사를 찾아 나섬으로써 정리가 된다. 물론 그러는 동안에도 프로그래밍에 대한 열정과 기대로 가득찬 신입사원들은 계속해서 들어오고 비슷한 과정을 겪어가게 된다.

아무리 야근이 일상화 되어도 개인적으로 처리해야 할일이 있게 마련이다. 일찍 나갈일이 있어 그때의 팀장에게 사정을 설명하니 일을 보라고 하면서도 끝을 흐리는 말로 업무로스가 생겨서 걱정이라고 했다. 또 한번은 칼퇴근을 했는데 같이 퇴근을 하던 회사의 임원이 되게 바쁜일이 있는 모양이다라는 말을 했다. 덕분에 오랫만에 누리고자 했던 퇴근후의 여유로운 기분을 잡치고 말아야 했다. 수십, 수백시간을 초과 근무했는데도 그것에 대한 권리는 애당초 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야근때문에 특별히 일을 많이 하거나 못할일을 해내거나 했던 기억은 없는거 같다. 어차피 밤늦게까지 있어야 하니 대게 아침시간부터 점심무렵 넘어 까지는 집중해서 일을 하지 않게 된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몇달을 계속해서 12시간 이상씩 일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은 칼퇴근을 트집잡는 이는 아무도 없지만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박혀 있는 탓인지 맘이 편한건 아니다.

애니메이션 감독 연상호

수요일, 11월 14, 2007

2007 서울 에어쇼

실망스러운 행사였다. 9,000원이었던 입장료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신 비행기라고는 KAI가 록히드마틴의 도움으로 제작한 훈련기인 T-50 한대였다. 지상에 전시된 비행기들도 예년에 비해 초라한 정도였다. 우리공군의 최신예기라는 F-15K 근처에만 예의 에어쇼에서 볼 수 있는 장비들이 전시되어 있는 정도였다.

비행시범을 볼때는 한·미공군이 개최하는 행사장에 온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미공군의 F-15C와 한·미공군의 F-16 시범비행이 전부였다. 특히 이해할 수 없었던건 F-16의 시범비행이었다. 같은 기종을 그것도 별로 다를게 없는 비행시범을 한·미공군이 각각 별도로 진행시킨 이유가 궁금했다. 내용이 없으니 양으로라도 채우려는 의도는 아니었는지.

블랙이글의 경우 고별비행이라고해 일부러 블랙이글팀이 주기되어있는 활주로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잡고 지켜보기로 했다. 마지막 비행이니 뭔가 특별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했었지만 태극문양을 그리는 비행마저 보이지 않더니 여섯대의 비행기가 편대비행을 하고 T-50 다섯대가 뒤따라 비행하더니 끝을 맺어 버렸다. 갑자기 끝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고별 비행치고는 이마저도 실망스러웠다. 비행이 끝난 후 해단식을 가지는 모양이었는데 별로 보고 싶지 않아 자리를 떠났다.

국제에어쇼가 이렇게 초라하게 된건 미국의 전투기를 도입하기 위해 공군부터 유럽과 러시아의 업체들까지 멋있게 뒤통수를 쳤던 국방부의 자업자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 결과로 아무도 찾지 않는 썰렁한 국제 에어쇼가 되어버렸고 전투기를 구매하겠다고 공개입찰을 해도 아무도 응하지 않는( 짜고 치는 고스톱판이기에 )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게 아닐까.

98년 2회 에어쇼 때부터 매회 관람을 했지만 다음 에어쇼가 열릴 수 있을지 걱정이 들었다.

화요일, 11월 13, 2007

먼지와 함께 사라지다

지난 11월 11일에는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다. 1988년 11월13일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과 노동법 개정을 목표로 시작된 전국노동자대회는 지난 20년 동안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치러진 노동계 최대 행사다. 노태우 정권 시절에는 정부가 원천봉쇄하더라도 경찰과 숨바꼭질하면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치러냈고, 문민정부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불허된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참여정부는 올해 노동자대회를 원천봉쇄함으로써 20년 전통의 전국노동자대회에 새로운 역사를 보탰다. ‘문민정부 이후 최초의 전국노동자대회 원천봉쇄’. 경찰은 도심의 극심한 교통체증과 시민불편 운운하며 집회금지를 통고했고, 노동부 등 네 부처 장관은 연명으로 담화문을 발표했으며, 지방에서는 대회 참가자 상경을 원천봉쇄했다.

그럼에도 전국노동자대회는 치러졌다. 서울 남대문에서 시청까지 거리에서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리는 동안,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광화문까지 거리에서는 집회 참가자 수와 맞먹는 2만여 전경이 도심의 교통체증과 시민불편을 야기했다. 노태우 정권때에는 집회에 최루탄으로 대응했는데, 2007년 참여정부는 물대포와 도심 상공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집회를 방해하는 헬리콥터로 대응 방식을 바꾸었다.

시위현장을 기록하고 방해할 목적으로 뜬 경찰 헬리콥터가 시위대 머리위를 계속 빙글빙글 돌며 시끄러운 소음과 바람으로 시위를 방해하고 있었다. 그 소리가 비정규직과 고용불안이라는 방식으로 더욱 교묘하게 지배방법을 발전시키고 있는 지배층의 노동자 계급에 대한 요란한 조롱 소리로 들렸다. 노무현정권의 참여정부는 집권 5년만에 본색을 그렇게 대놓고 드러냈다.

공권력이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한없이 군림하려드는 행태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시민들의 불편을 시위를 원천봉쇄한다며 길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던 전·의경들의 모습은 누구나 추억할 수 있는 군생활을 하는 청년의 모습이 아니라 환갑이 넘은 노인을 때려 죽여도 아무도 죄를 묻지 않는 무시무시한 공권력의 폭력 집단으로 보였다. 시위대보다 더한 불편을 주면서 길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경찰들과 시위대가 내는 소음보다( 그래도 여기엔 알리고자 하는 외침이라도 있다 !) 더 큰 소음을 내며 불편을 초래하는 그들이 말하는 시민은 대체 누구일까.

5년전 그때의 나는 이런 노무현의 본질을 간파할 능력이 없었다. 진정 노동자의 입장을 헤아릴 줄 알고 그에 맞는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사람일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랬던 그가 노동자들에게 미칠 영향이 어떤 것인지 분명한 FTA협상을 일방적으로 추진시켜 버리고 비정규직 양산과 고용불안을 한층더 강화시켰다. 그에게는 그것들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분신하고 맞아죽은 사람들은 그가 생각하는 시민이 아니고 국민이 아니었던 것이다. 노동자들의 머리위에 뜬 공권력의 헬리콥터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그렇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마지막 남은 기대의 미련까지도 몰아내버린 일요일 오후였다. 먼지와 함께 사라졌다.

금요일, 11월 09, 2007

단순함

휴대폰을 새로 구입했다. 핸드폰에 있는 부가기능을 좋아하지 않고 거의 사용하지 않기때문에 단순한 기능의 모델을 찾았으나 쉽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슬라이드형과 얇은 형태를 싫어해 바(Bar)형의 단순한 모델을 좋아한다. 결국 스카이의 im-u130으로 선택했다. 이것도 단순한 기능의 핸도폰은 아니다. DMB기능만 빼면 최신 핸드폰의 기능은 모두 가지고 있는 모델이다. 그래도 바형에다 묵직한 느낌을 주기때문에 그나마 내가 원하는 타입에 근접한 사양이어서 선택했다. 게다가 단종된 모델이기 때문에 기기변경인데도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

이전에 가지고 있던 핸드폰에 있던 데이타서비스 버튼과 카메라기능은 거의 사용할일이 없었다. 이런 기능만 제외시켜도 가격이 더 저렴해 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졌었다. 복잡한 기능을 싫어하는건 핸드폰에서만 그런것도 아니다. 이런저런 군더더기 기능을 없애고 제품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단순함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통신사들은 이용자의 데이타통신 서비스의 사용을 유도하기 위해 카메라기능과 데이타통신 버튼을 대부분의 모델에 적용시킨다고 한다. 해외로 수출되는 제품에는 전화기능만 있는 저가폰들이 있지만 국내에서는 판매하지 않고 있는 사실이 뉴스에 방영되기도 했다. 국내 핸드폰들의 출고가가 떨어지지 않는 큰 이유일 것이다. 본연의 목적보다 부가적인 기능에 더 눈독을 들이고 있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으니 소비자는 전혀 쓰지 않는 기능을 위해 필요 없는 비용을 지불할 수 밖에 없는 셈이다.

제3세계 아이들에게 100달러 짜리 저가 노트북의 보급운동을 벌이고 있는 니컬러스 네그로폰테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도 합리적 가격에도 높은 품질을 갖춘 제품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부품·소재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휴대전화나 노트북컴퓨터 같은 전자제품의 부품 가격은 18개월마다 한 번씩 절반으로 떨어지는데 전자업체들이 필요없는 기능들을 추가해 완제품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기능 비대증’에 빠진다는 주장을 한다. 싸지만 양질의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비결로, 네그로폰테 교수가 제시하는 것은 ‘단순성’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단순함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 정확한 리듬으로, 그저 척척 써나간다는 것. 그렇게 6개월정도 정해진 시간에 일을 끝내고 나오는 것, 그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글쓰기이다. 이런 단순함은 마치 열대지방의 북소리와 같아서, 몽환적인 집중력과 같은 것을 사람에게 일으킨다고 했다. 정해진 일을 정해진 시간의 정확하게 수행하는 것, 단순함은 결국 스스로에게 주는 안정감의 힘이다. ...

돌이켜 보면 내 생활에도 필요없는 군더더기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중 많은 것들을 떠안아 가고 있다. 그런 고민과 행동들 때문에 정작 중요한 일들을 놓치는 경우도 많다. 본질적인 사항들이 군더더기들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단순함의 미학을 내 생활에도 적용시켜야 겠다. 그럼으로써 삶의 본질에 한걸음더 다가설 수 있을거 같다.

"싼것과 싸구려는 다른다.

목요일, 11월 08, 2007

악몽

다시 반복하기 싫은 일이 꿈에서 반복해서 이뤄질때가 있다. 군에 다시 입대하는 상황도 좋은예 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걸 악몽이라고 부를 수 있다.

첫직장에서의 일이었다. 프로젝트를 마치고 다른팀의 일을 잠시 지원하고 있을때 회사의 임원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구미에 사람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는데 갈 수 있겠느냐는 내용이었다. 그때까지는 지방의 업체에 파견근무를 하는것이 일반화된 회사였고 이미 그 업체에 나가 있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고민없이 갈 수 있다고 대답했다.

반년이상을 서울을 떠나게 됨으로써 많은것을 미루거나 포기해야 했다.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취미생활과 만남들, 정이들었던 노량진의 옥탑방을 정리하기에는 사흘의 시간은 짧기만 했다. 그때 회사 사무실의 이전까지 있어 심란함은 더욱 깊었고 가을의 풍경은 단풍의 아름다움 보다는 스산함 자체였다.

오늘 새벽에 꿈에서 그때의 상황이 재현 되었다. 지방에 있는 어느 기업의 공장으로 파견을 나가게 되었다. 그것도 갑자기 일이 닥쳐 허둥지둥 짐을 싸서 내려 가면서 느껴야 했던 스산한 분위기속의 심란함으로 가득했던 꿈이었다. 이제는 가족까지 더해진 상황이었다.

나중에서야 그일이 꼭 필요해서 가게된것도 아니었고 기대없이 던졌던 말에 내가 흔쾌히(?) 대답을 함으로서 이뤄졌다는걸 알게 되었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죄도 죄라고 하면 할말이 없다. 처음으로 프로젝트다운 프로젝트를 갓 수행했었고 회사와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렴풋이 느껴가고 있었을 그때의 나는 그런 상황을 간파할 능력이 없었다.

개인에게는 악몽으로 떠오르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던 사람들을 이후로도 한참동안 인생의 선배로써 상사로써 여기며 지냈다. 그것들이 잘못된 일이라는걸 깨닫게 된 일은 한참후의 일이었고 그때는 이미 그곳을 떠난 후 였다.

수요일, 11월 07, 2007

삼성과 검찰

삼성 그룹의 고위 재무담당자였던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의 비자금과 자금운용에 대해 고백을 하여 파문이 이어지고 있다. 그의 고백에 따르면 검찰에 정기적으로 1인당 수백~수천만원의 '떡값'을 상납했으며 여론 조성을 위해 대학교수,기자들도 매수하고 심지어 시민단체에까지 '지원'을 하려고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돈을 받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와인과 호텔이용권을 주도록하여 정관계 및 언론, 학계,시민단체 까지 로비를 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수사를 차일피일 미루던 검찰은 떡값을 받은 검사들의 명단을 발표하기 전까지 수사를 하지 않겠다는 말까지 했다. 수사의 공정성을 지키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다. 검사들도 검사를 못믿겠다는 말이고 스스로 떡값을 받아왔다는 사실을 인정한 셈이다. 검사라면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 국가 최고의 기관에서 명예와 사명감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한기업의 로비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니 뭔가 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기업의 회장들이 그들의 부정과 탈법으로 구속되었을 때마다 나왔던 말이지만 이번에도 역시 국가경제를 위해서 그냥 넘어가야 한다는 말들이 설득력 있게 나오고 있다. 자본이 한국의 관료집단을 장악한데 이어 나라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 갔다던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빈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삼성이 일류회사라는건 별다른 이견이 없다. 이건희 회장 일가의 탈법과 부정을 단죄한다고 해서 삼성이라는 기업을 부정하고 해치려는건 아니다. 회장일가의 제왕적 군림과 탈법행위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일류기업을 제위치로 바로 잡아주려는 노력이다. 돈으로 온 나라를 주무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전근대적인 사고를 가진 총수로부터 일류기업을 구해내기 위한 작업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돈만 벌면 또는 있으면 모든게 합리화 될 수 있는 천박한 사회풍토를 바로 잡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자본의 힘에 법과 상식마저 굴복한 나라와 사회에 더이상의 희망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삼성제국과 언터처블

화요일, 11월 06, 2007

종이와 연필

[시인의 산문]

종이와 연필

내가 힘에 겨워할 때, 주위엔 아무도 없었고, 나는 연필과 종이와 씨름을 하며 그 힘겨운 시간들을 이겨내야 했다. 그리하여 난 지금도 이 종이와 연필을 소중히 생각한다. 내게 유일한 위로가 되어주었던 친구들. 그러나 이제사 생각해보니 이 종이와 연필은 나의 뜻과는 다르게 수많은 과거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기록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 기록들을 다시금 꼼꼼히 읽어보니 그 속에 그려져 있는 나는, 나를 혹독히 저주하여 더 이상 저주할 수조차 없는 하찮은 존재로 전락시켜버린 나였고, 그 속에 그려진 세상은, 증오와 욕설, 위선과 무기력함으로 가득 찬 세상이었다. 난 이 놀라운 기록의 집행자였던 종이와 연필을 쳐다본다. 종이와 연필은 책상 한 모퉁이에 어질러져 나의 뾰족한 시선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다. 그들의 순진무구함이 나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나는 그래도 여전히 종이와 연필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나에게 속한 직공들. 저주받은 날 다시 위로하고 다시 저주할 테니, 그리하여 난 이 충실한 직공인 종이와 연필을 소중히 생각하는 것이다.

저자 및 역자 소개

이철성
1970년 충북 보은에서 출생,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했으며 동대학원 불문과를 수료했다. 1996년 『문학과사회』 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시단에 데뷔했다. 시집으로 『식탁 위의 얼굴들』이 있다.

식탁 위의 얼굴들 (이철성 시집)

1998년06월17일
신 4X6 판, 145 쪽
ISBN : 89-320-1009-9 02810

토요일, 11월 03, 2007

비단꽃 넘세

평소 기독교인들의 독선적인 믿음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나는 우리나라에 들어온 기독교가 무속신앙을 대체한게 아니라 오히려 무속화 되어버렸다고 여겨 왔었다. 독선적인 기독교에 빗대어 무속 신앙을 같이 비하시켜 왔던 것이다. 그렇게 이땅에서 수천년을 함께 해오던 신들과 그의 대리인들은 미신으로 치부되면서 없어져야할 서글픈 존재가 되어갔던 것이다.

내가 무속신앙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된건 최근에 들어서였다. 눈에 보이는 세계외에 또 다른 세계가 있을 수 있음을 조심스럽게 인정하게 있었고 사후세계가 충분히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 부터였다. 그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무속인들의 세계가 궁금해지는건 당연한 순서였다. 그리고 그래이엄 핸콕의 Super Natural(초자연)이라는 책을 통해 종교의 원래 모습이 영적세계를 체험한 이들, 즉 무당들의 경험을 토대로 형성되었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종교와 무속신앙들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막연히 무속신앙을 미신으로 치부하거나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가져왔던걸 반성하게 되었다. 다른 신들과 다를 바 없는 신이었고 그 대리인들, 즉 무당들이야말로 이땅에서 이어져온 종교인이고 성직자였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삶을 돌보고 때로는 호통을 치고 때로는 도움을 주기도 하는 이땅의 신들은 여전히 그자리에 있어 왔던 것이다.

무속인들의 삶과 경험을 이 한권의 책을 통해 알 수 있으리고 기대하지 않았다. 김금화씨(76)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이나마 그들의 삶을 엿보고 이해하고 싶었다. 300페이지 조금 넘는 책이 그들의 세계를 설명해 주기에는 너무도 모자를 것이다. 막연히 무섭고 우리와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던 그들의 세계가 오히려 흔히 알고 있는 일반 종교보다 더 우리 생활에 가까이 있을 수 있음을 알게 된것이 이 짧은 독서를 통해 얻은 가장 큰 기쁨이고 수확이었다.

" ... 셋방살이를 해도 주인과 세입자가 존중하며 공존하는 것이 법칙이다. 당연히 종교를 두고 내 것만 옳고 다른 이의 것은 미신이라고 단정 지으며 배척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무속도 엄연한 종교다. 그것도 우리 민족 대대로 내려온 전통의 종교다. 자신들과 다른 신을 섬긴다고 해서 무조건 배척하는 것은 종교인으로서도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어떤 이는 굿에 쓰이는 울긋불긋한 깃발이나 작두, 한 서린 소리가 무섭다고 한다. 하긴 조용하고 엄숙한 교회 예배에 비하면 시끄러운 징, 장구 소리에 무당 호통까지 어우러진 굿이 사람의 마음을 끌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죽고 사는 것, 삶을 이어나가는 것이 평화로운 일만은 아니다. 오히려 삶은 적나라한 고통이고, 그것을 이겨내는 단단한 마음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더 많다. 무속은 굽이굽이 곡절 많고 시련 많은 인간사를 질긴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더 큰 의지가 되는 종교가 될 것이다. ... "

금요일, 11월 02, 2007

잘난 사람들의 인정

내가가진 고충을 얘기하면 이런 말을 들을때가 있었다. " 다 똑같다. 모두 힘들다. " 이 말을 듣는 순간 내가 가진 문제들은 그저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버린다. 쓸데 없는 소리를 한것이다.

학교 졸업 후 처음 들어갔던 회사에서의 일이었다. 한참 일을 배워야 할때 주변일들이 맡겨지는 기분을 느꼈다. 빨리 자리를 잡고 싶어하는 마음과 미래에 대한 걱정을 선배직장인에게 얘기했었다. 그때 들려오는 대답이 그거 였다. '모두가 그렇다. 그건 니가 알아서 해야 한다'. 거기에는 제대로 된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일을 제대로 배우고 있는 이들과 내가 일을 배우는 차이와 발전의 정도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빠져 있었다.

내가 어느정도 그들의 나이가 되었고 처지가 되어서 생각해보니 그때 그들은 그저 귀찮아서 그런 대답들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때는 그런줄로만 알았었다.

세상을 살면서 드는 의문들에 대한 답들을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하는게 많다. 괜찮은 책과 글을 찾아 읽어려는 노력들의 의미도 여기에 한 목적이 있다. 생각과 느낌들을 매끄럽게 표현하는 능력이 아직 모자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공감을 가지게 되는 좋은글들을 만나게 되면 스스로 깨달은양 기쁨을 느끼게 된다. 다음의 글도 그런 글이었다.

" ... 난 왜 이런 말들이 자꾸 “나 니들보다 덕 본 거 없어. 나도 니들이랑 똑같은 세상을 살고 있어”라는 소리로 들리지?
혹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신의 자본을 부정함으로써 자신이 누려온 혜택을 은폐함과 동시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겪었을 고통도 애초에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기 위한 작전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 "

잘난 사람들의 인정-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