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두권의 책을 받았다.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동물들의 겨울나기". 괴벨스의 선전이 제대로 효과를 본것인지 어릴 때 부터 봐왔던 2차 대전영화속 독일군의 멋있는 모습은 지금도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그래서 이런 독일군 이미지의 근원을 찾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겨울숲의 자연에 순응해 가는 동물들의 이야기도 궁금했다.
괴벨스의 경우 1,000페이지가 넘는다. 겨울내내 읽어야 할까?
수요일, 12월 05, 2007
화요일, 12월 04, 2007
ARTHUR - Artillery Hunting Radar
적 포병의 진지 및 공격 징후를 사전 탐지할 수 있는 대포병레이더가 스웨덴 SAAB사의 'ARTHUR'(ARTillery HUnting Radar)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미국과 이스라엘, 스웨덴 등 3개 국외업체가 경합한 결과, 군 작전요구성능(ROC)을 충족하고 수명주기 대비 비용 측면에서 경제성이 우수한 것으로 평가된 스웨덴 제품을 결정했다고 하는데 애당초 미국제품을 원했던 것으로 보이나 미국과 이스라엘의 경우 기술이전과 가격 부분에 문제가 있었던것으로 보인다.
대포병레이다는 적포병이 발사한 포탄이 탄착할 예상지점과 포진지를 파악하게 해주는 장비로써 정보화 전력이 가지는 가치가 커져가는 현대의 전장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장비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가 처음 도입을 결심하게 되었던 계기는 무엇보다 94년도에 북한 대표의 입에서 나온 "서울 불바다"때문이 아니었던가 싶다. 이미 남한과의 군사력경쟁에서 무너져 버린 북한은 더이상의 재래식 군비경쟁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비대칭 무기 확보에 나서게 된다. 수도권 일대를 겨냥한 장사정포를 배치하고서 군비경쟁의 주도권은 남한으로 넘어갔지만 전쟁이 벌어질 경우 자기들도 남한의 수도권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비대칭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거기서 나왔던 말이 앞서 말한 "서울 불바다"였다.
지하갱도시설에 위치한 장사정포들의 위치는 알려졌지만 갱도에서 나와 포격을 하는 포들의 위치를 정확히 판단해 보복포격을 통해 무력화 시키는게 시급한 문제로 대두 됨으로써 MLRS, ATACMS등의 전술 로켓, 미사일들과 함께 포병레이다를 서둘러 도입하게 되었었다.
서둘러 AN/TPQ-36를 사기는 했지만 도입후에 몇가지 문제점들이 노출되었다. 미국이 이 장비의 핵심기술을 한국에 제공해줄리는 만무한 일이었고 견인 트럭, 레이다, 쉘터의 세개의 파트로 구분되어 있어 우리나라와 같은 야지에서 운용하기에 제한이 있었다는 점이다. 더구나 평지에서와 달리 산과 구릉이 많은 지역에서는 제 성능을 100% 발휘하지 못한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어 왔었다. 
대포병레이다 시스템은 존재 자체로써 북한의 포병에게 대단히 부담스러운 존재일 수 밖에 없는 존재다. 더구나 사격을 위해 지하갱도에서 나온 이후에는 별다른 방호시설 없이 포격을 해야 하는 그들로써는 대포병사격에 더욱 취약할 수 밖에 없다.
1차 걸프전때 이라크군의 경우 초탄을 쏜 야포가 2탄을 쏘지 못하고 대부분 파괴되다고 한다. 사격명령이 떨어졌음에도 이라크 포병들은 대포병사격의 두려움때문에 명령을 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초탄을 발사한 포대가 우선적으로 보복되는걸 목격하고서 사격을 할 수 있는 포병은 없었을 것이다.
Arthur의 추적 반경이 짧다는 의견도 있다. 장비 한대의 추적 반경이 40Km이나 여러대가 통합적으로 운영될 경우 더 늘어날 수도 있고 최대사정거리로 포격을 할일이 드물고 야포의 사정거리를 대부분 포함하기 때문에 운용하기에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추적 반경이 포의 사정거리보다 길어야만 제역할을 할 수 있는건지는 모르겠다. 포탄이 비행하는 일정 영역만 커버할 수 있으면 될거 같은데 이부분은 좀더 자료를 찾아 봐야 겠다.
장비사양
최대 추적 반경 : 40 km
탐색 면적 : 1600 miles
추적 능력 : >100 target/min
레 이 다 : Passive Phased Array
Transmitter : TWT (Travelling Wave Tube) air cooled
Receiver : MTI with adaptive wind compensation
금요일, 11월 30, 2007
무·배추 수확
초가을에 심었던 무우와 배추를 수확했다. 먼저 농사를 지었던 어르신들의 원래 배추가 잘되지 않는다는 말에 그냥 버리는셈 치고 모종 50포기만 심었었다. 그중 25포기가 속이 꽉차게 잘 익어 끝까지 자라 주었다. 무우는 굵은 뿌리만큼이나 억세게 모두 싹을 트고 자랐다. 이럴줄 알았으면 배추를 좀 더 심었을걸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흙살림에서 구했던 유기농 퇴비와 목초액을 사용했던게 크게 효과를 본거 같다.
하얗게 속이 꽉찬 배추를 보시며 어르신들은 농사를 지어봤던게 아니냐는 과찬의 말씀을 아끼지 않으셨다. 밭에서 도로까지 지고 내려오는 일이 보통이 아니었지만 직접 키운 채소를 먹는 기쁨을 넘어설 수 있을까.
막상 김장을 담고 나니 부피가 수확했을때보다 확 줄었지만 내년 여름까지 우리가족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김치가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우리를 든든하게 했다. 심었던 모종의 반밖에 수확하지 못한 배추였지만 씨앗을 뿌렸던 무우는 솎아 내면서 까지 키워야 했다. 덕분에 무우 한박스는선물로 보낼 수 있었다.
밭사이를 다니며 노는 진성이와 윤성이는 엄마·아빠의 수확에 대한 기쁨에는 안중에도 없이 자기들만의 시간을 누리고 있다. 바쿠칸이나 파워레인저의 영향을 벗어나 그나마 흙과 채소를 통해 자연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소중한 경험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램이 다.
수요일, 11월 28, 2007
ZebraLight
플래쉬라이트 매니아들의 포럼인 CandlePowerforum에서 선풍적인 화제를 모았던 ZebraLight가 도착했다. 제품 제작자는 미국사람인데 생산공장은 중국에 있는 모양인지 상하이에서 배송되어 왔다. 덕분에 5$라는 비교적 아주 저렴한 배송비만 지불했고 주문한지 딱 1주일만에 배달되어왔다( 미국에 있는 주문자들의 경우 2주이상씩 소요된 모양이었다 ).
배송봉투를 뜯으니 메이저급 회사제품만큼은 아니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깔끔한 형태로 포장 되어있었다. ZebraLight는 Head Band에 부착되어 있고 나머지 악세사리 들이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헤드밴드의 품질도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일전에 주문했던 Inova 24/7에 딸려왔던 것에 비하면 훨씬 부드럽고 좋았다. 그 외의 악세라리로는 방수를 위한 O-ring이 두개, 여분의 부드러운 야광 실리콘 장착대 두개와 목걸이, 주머니등에 장착할 수 있는 클립으로 알찬 구성을 이루고 있다.
ZebraLight의 몸통만 찍은 사진이다. Type-III로 아노다이징처리된 알루미늄 합급으로 된 몸체를 가지고 있으며 반사경없이 Cree-Q5 LED가 작은 폴리카보네이트렌즈로 덮여있다.
클립을 장착한 형태로 주머니나 기타의 곳에 간단히 꽂아서 사용할 수 있다.
목에 걸어서 사용할 수 있도록 줄과 글로우 장착대를 제공하는데 야광이어서 밤에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한다.
헤드밴드에 장착한 모습이다. 헤드랜턴으로써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 AA 건전지 하나만 들어가기에 아주 가볍다. 단점일 수도 있지만 집중되는 부분없이 넓게 퍼지는 형태의 빛이어서 근거리 작업을 할때 매우 유용하다.
등산용 헤드랜턴은 몇년새 가장 큰 변화를 겪은 장비다. 그전까지는 필라멘트 전구를 사용한 헤드랜턴들에서 페츨, 내쇼널등의 메이커 제품들이 거의 정점을 이루고 있었다. 여기에 LED가 사용되면서 부터 페츨과 내쇼널은 순식간에 최고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제품자체의 완성도는 높은 편이지만 건전지의 전원을 일정하게 사용할 수 있는 레귤레이터 회로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눈이 높아진 사용자들로 부터 외면을 받게 되었다.
산속에서는 대체로 희미한 불빛만 있으면 별무리 없이 즐거운 야영을 할 수 있다. 때때로 밝은 빛을 필요로 할때도 있다. 레귤레이터의 제어를 받는 제품의 밝기 조정이라면 하이레벨의 빛의 양을 믿을 수 있지만 페츨과 같이 꾸준히 하향곡선을 그리게되는 제품에서는 그러지 못하다. 모르고 있으면 별거 아니지만 그런 기능을 알고 나면 레귤레이터회뢰가 없는 제품은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된다.
빛을 내는 효율도 반도체의 발전속도 만큼이나 발전을 했다. 초창기의 1.5V 건전지 세개를 사용해도 15루멘 이상 넘기 힘들고 그것도 한시간 남짓 유지되던 빛이 이제는 건전지 하나를 사용해서도 60루멘을 훌쩍 뛰어넘어 버려 두시간을 가볍게 넘어버린다. Zebralight의 밝기와 유지시간은 다음과 같다.
Low 2.6 루멘 : 사흘반
Medium 13 루멘 : 19시간
High 66 루멘 2시간 20분
아무리 밝은 후레쉬라도 밤을 낮으로 바꿀 수는 없다. 어둠을 받아 들이는 순응이 필요하다. 자연속에서 문명화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잠시 보완하는 용도와 목적으로써의 도구로 생각하는것이 옳은일이 아닐까.
Zebra Light Co.
목요일, 11월 22, 2007
인간 없는 세상
오염된 강물을 볼때 사람이 한 일년정도 없어지거나 오염물질을 내보내지 않으면 강물 색깔이 맑게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적 있다. 또는 영화 'Omega Man'처럼 전쟁으로 인류가 멸망하고 영화속의 오메가맨이 내가 되면 지구가 바뀌어 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했다.
저자는 인류가 갑자기 지구에서 사라진다는 가정을 할 경우 이제까지 이룩해온 문명의 자리에 어떻게 자연이 되돌아 오는지를 이야기 한다. 그러면서 자연의 자정능력을 넘어서는 생산활동과 훼손으로 스스로를 위험에 빠트리고 있는 인류문명의 문제들을 역설적으로 설명하고 이해시킨다.
사람이 만들고 이용하는 문명은 사람에 의해 끊임없이 관리되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다. 사람의 관리가 중단되고 가동도 멈추게 되면 시간적인 차이만 있을 뿐 원래 그 땅의 주인이었던 물, 풀, 나무들과 동물들이 다시 자리를 잡아 나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문명에 의해 사라진 동물들이 있고 그것들의 흔적들이 길게는 수백만년까지 영향을 미칠것이기에 문명이 들어서기 전과는 다른 모습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의 손길이 끊긴 자리에 자연이 되돌아 오는 광경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인적이 드문 길을 가면 어김없이 보도블록 사이로 틈틈이 자라고 있는 풀들을 볼 수 있다. 그중 일부는 뚫고 올라오다시피해 두꺼운 보도블록을 깨트린 것들도 있다. 끈질긴 생명력이라고 표현하지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그렇게 금새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지난 봄부터 일궈온 텃밭에서도 끊임없이 자라는 잡초들도 원래 그 땅의 주인들이 었던 그들이 자기 자리를 잡아 나가려는 것 뿐이었을 것이다. 사람이 심은 채소 씨앗들은 애당초 그곳이 살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토요일, 11월 17, 2007
야근
IT업체들을 보면 직원을 풀어놓으면 돈벌어오는 앵벌이 수준으로 생각하는 회사의 경영자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멋모르고 회사생활을 시작한 이들에게 정시퇴근은 회사의 사정상 불가능한 일임을 일찌감치 주입을 시키며 그가 가진 기대와 열정을 12시간 이상씩 뽑아 먹으며 부려먹는 것이다.
진행되는 일을 돗보이게 하기 위해 야근 자체를 목적으로 야근을 종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우리는 수시로 철야를 하고 주말까지 반납하고 일을 하고 있다는걸 보여줌으로써 더디게 진행되는 일정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대신 몸으로 떼우는 방식이었다.
많은 이들은 살인적인 강도의 일감에 제풀에 지쳐 나가거나 그동안의 일들을 경력으로 더 낳은 조건의 회사를 찾아 나섬으로써 정리가 된다. 물론 그러는 동안에도 프로그래밍에 대한 열정과 기대로 가득찬 신입사원들은 계속해서 들어오고 비슷한 과정을 겪어가게 된다.
아무리 야근이 일상화 되어도 개인적으로 처리해야 할일이 있게 마련이다. 일찍 나갈일이 있어 그때의 팀장에게 사정을 설명하니 일을 보라고 하면서도 끝을 흐리는 말로 업무로스가 생겨서 걱정이라고 했다. 또 한번은 칼퇴근을 했는데 같이 퇴근을 하던 회사의 임원이 되게 바쁜일이 있는 모양이다라는 말을 했다. 덕분에 오랫만에 누리고자 했던 퇴근후의 여유로운 기분을 잡치고 말아야 했다. 수십, 수백시간을 초과 근무했는데도 그것에 대한 권리는 애당초 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야근때문에 특별히 일을 많이 하거나 못할일을 해내거나 했던 기억은 없는거 같다. 어차피 밤늦게까지 있어야 하니 대게 아침시간부터 점심무렵 넘어 까지는 집중해서 일을 하지 않게 된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몇달을 계속해서 12시간 이상씩 일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은 칼퇴근을 트집잡는 이는 아무도 없지만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박혀 있는 탓인지 맘이 편한건 아니다.
애니메이션 감독 연상호
수요일, 11월 14, 2007
2007 서울 에어쇼
실망스러운 행사였다. 9,000원이었던 입장료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신 비행기라고는 KAI가 록히드마틴의 도움으로 제작한 훈련기인 T-50 한대였다. 지상에 전시된 비행기들도 예년에 비해 초라한 정도였다. 우리공군의 최신예기라는 F-15K 근처에만 예의 에어쇼에서 볼 수 있는 장비들이 전시되어 있는 정도였다.
비행시범을 볼때는 한·미공군이 개최하는 행사장에 온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미공군의 F-15C와 한·미공군의 F-16 시범비행이 전부였다. 특히 이해할 수 없었던건 F-16의 시범비행이었다. 같은 기종을 그것도 별로 다를게 없는 비행시범을 한·미공군이 각각 별도로 진행시킨 이유가 궁금했다. 내용이 없으니 양으로라도 채우려는 의도는 아니었는지.
블랙이글의 경우 고별비행이라고해 일부러 블랙이글팀이 주기되어있는 활주로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잡고 지켜보기로 했다. 마지막 비행이니 뭔가 특별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했었지만 태극문양을 그리는 비행마저 보이지 않더니 여섯대의 비행기가 편대비행을 하고 T-50 다섯대가 뒤따라 비행하더니 끝을 맺어 버렸다. 갑자기 끝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고별 비행치고는 이마저도 실망스러웠다. 비행이 끝난 후 해단식을 가지는 모양이었는데 별로 보고 싶지 않아 자리를 떠났다.
국제에어쇼가 이렇게 초라하게 된건 미국의 전투기를 도입하기 위해 공군부터 유럽과 러시아의 업체들까지 멋있게 뒤통수를 쳤던 국방부의 자업자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 결과로 아무도 찾지 않는 썰렁한 국제 에어쇼가 되어버렸고 전투기를 구매하겠다고 공개입찰을 해도 아무도 응하지 않는( 짜고 치는 고스톱판이기에 )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게 아닐까.
98년 2회 에어쇼 때부터 매회 관람을 했지만 다음 에어쇼가 열릴 수 있을지 걱정이 들었다.
화요일, 11월 13, 2007
먼지와 함께 사라지다
지난 11월 11일에는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다. 1988년 11월13일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과 노동법 개정을 목표로 시작된 전국노동자대회는 지난 20년 동안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치러진 노동계 최대 행사다. 노태우 정권 시절에는 정부가 원천봉쇄하더라도 경찰과 숨바꼭질하면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치러냈고, 문민정부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불허된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참여정부는 올해 노동자대회를 원천봉쇄함으로써 20년 전통의 전국노동자대회에 새로운 역사를 보탰다. ‘문민정부 이후 최초의 전국노동자대회 원천봉쇄’. 경찰은 도심의 극심한 교통체증과 시민불편 운운하며 집회금지를 통고했고, 노동부 등 네 부처 장관은 연명으로 담화문을 발표했으며, 지방에서는 대회 참가자 상경을 원천봉쇄했다.
그럼에도 전국노동자대회는 치러졌다. 서울 남대문에서 시청까지 거리에서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리는 동안,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광화문까지 거리에서는 집회 참가자 수와 맞먹는 2만여 전경이 도심의 교통체증과 시민불편을 야기했다. 노태우 정권때에는 집회에 최루탄으로 대응했는데, 2007년 참여정부는 물대포와 도심 상공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집회를 방해하는 헬리콥터로 대응 방식을 바꾸었다.
시위현장을 기록하고 방해할 목적으로 뜬 경찰 헬리콥터가 시위대 머리위를 계속 빙글빙글 돌며 시끄러운 소음과 바람으로 시위를 방해하고 있었다. 그 소리가 비정규직과 고용불안이라는 방식으로 더욱 교묘하게 지배방법을 발전시키고 있는 지배층의 노동자 계급에 대한 요란한 조롱 소리로 들렸다. 노무현정권의 참여정부는 집권 5년만에 본색을 그렇게 대놓고 드러냈다.
공권력이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한없이 군림하려드는 행태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시민들의 불편을 시위를 원천봉쇄한다며 길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던 전·의경들의 모습은 누구나 추억할 수 있는 군생활을 하는 청년의 모습이 아니라 환갑이 넘은 노인을 때려 죽여도 아무도 죄를 묻지 않는 무시무시한 공권력의 폭력 집단으로 보였다. 시위대보다 더한 불편을 주면서 길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경찰들과 시위대가 내는 소음보다( 그래도 여기엔 알리고자 하는 외침이라도 있다 !) 더 큰 소음을 내며 불편을 초래하는 그들이 말하는 시민은 대체 누구일까.
5년전 그때의 나는 이런 노무현의 본질을 간파할 능력이 없었다. 진정 노동자의 입장을 헤아릴 줄 알고 그에 맞는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사람일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랬던 그가 노동자들에게 미칠 영향이 어떤 것인지 분명한 FTA협상을 일방적으로 추진시켜 버리고 비정규직 양산과 고용불안을 한층더 강화시켰다. 그에게는 그것들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분신하고 맞아죽은 사람들은 그가 생각하는 시민이 아니고 국민이 아니었던 것이다. 노동자들의 머리위에 뜬 공권력의 헬리콥터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그렇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마지막 남은 기대의 미련까지도 몰아내버린 일요일 오후였다. 먼지와 함께 사라졌다.
금요일, 11월 09, 2007
단순함
휴대폰을 새로 구입했다. 핸드폰에 있는 부가기능을 좋아하지 않고 거의 사용하지 않기때문에 단순한 기능의 모델을 찾았으나 쉽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슬라이드형과 얇은 형태를 싫어해 바(Bar)형의 단순한 모델을 좋아한다. 결국 스카이의 im-u130으로 선택했다. 이것도 단순한 기능의 핸도폰은 아니다. DMB기능만 빼면 최신 핸드폰의 기능은 모두 가지고 있는 모델이다. 그래도 바형에다 묵직한 느낌을 주기때문에 그나마 내가 원하는 타입에 근접한 사양이어서 선택했다. 게다가 단종된 모델이기 때문에 기기변경인데도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
이전에 가지고 있던 핸드폰에 있던 데이타서비스 버튼과 카메라기능은 거의 사용할일이 없었다. 이런 기능만 제외시켜도 가격이 더 저렴해 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졌었다. 복잡한 기능을 싫어하는건 핸드폰에서만 그런것도 아니다. 이런저런 군더더기 기능을 없애고 제품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단순함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통신사들은 이용자의 데이타통신 서비스의 사용을 유도하기 위해 카메라기능과 데이타통신 버튼을 대부분의 모델에 적용시킨다고 한다. 해외로 수출되는 제품에는 전화기능만 있는 저가폰들이 있지만 국내에서는 판매하지 않고 있는 사실이 뉴스에 방영되기도 했다. 국내 핸드폰들의 출고가가 떨어지지 않는 큰 이유일 것이다. 본연의 목적보다 부가적인 기능에 더 눈독을 들이고 있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으니 소비자는 전혀 쓰지 않는 기능을 위해 필요 없는 비용을 지불할 수 밖에 없는 셈이다.
제3세계 아이들에게 100달러 짜리 저가 노트북의 보급운동을 벌이고 있는 니컬러스 네그로폰테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도 합리적 가격에도 높은 품질을 갖춘 제품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부품·소재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휴대전화나 노트북컴퓨터 같은 전자제품의 부품 가격은 18개월마다 한 번씩 절반으로 떨어지는데 전자업체들이 필요없는 기능들을 추가해 완제품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기능 비대증’에 빠진다는 주장을 한다. 싸지만 양질의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비결로, 네그로폰테 교수가 제시하는 것은 ‘단순성’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단순함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 정확한 리듬으로, 그저 척척 써나간다는 것. 그렇게 6개월정도 정해진 시간에 일을 끝내고 나오는 것, 그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글쓰기이다. 이런 단순함은 마치 열대지방의 북소리와 같아서, 몽환적인 집중력과 같은 것을 사람에게 일으킨다고 했다. 정해진 일을 정해진 시간의 정확하게 수행하는 것, 단순함은 결국 스스로에게 주는 안정감의 힘이다. ...
돌이켜 보면 내 생활에도 필요없는 군더더기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중 많은 것들을 떠안아 가고 있다. 그런 고민과 행동들 때문에 정작 중요한 일들을 놓치는 경우도 많다. 본질적인 사항들이 군더더기들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단순함의 미학을 내 생활에도 적용시켜야 겠다. 그럼으로써 삶의 본질에 한걸음더 다가설 수 있을거 같다.
"싼것과 싸구려는 다른다.
목요일, 11월 08, 2007
악몽
다시 반복하기 싫은 일이 꿈에서 반복해서 이뤄질때가 있다. 군에 다시 입대하는 상황도 좋은예 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걸 악몽이라고 부를 수 있다.
첫직장에서의 일이었다. 프로젝트를 마치고 다른팀의 일을 잠시 지원하고 있을때 회사의 임원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구미에 사람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는데 갈 수 있겠느냐는 내용이었다. 그때까지는 지방의 업체에 파견근무를 하는것이 일반화된 회사였고 이미 그 업체에 나가 있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고민없이 갈 수 있다고 대답했다.
반년이상을 서울을 떠나게 됨으로써 많은것을 미루거나 포기해야 했다.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취미생활과 만남들, 정이들었던 노량진의 옥탑방을 정리하기에는 사흘의 시간은 짧기만 했다. 그때 회사 사무실의 이전까지 있어 심란함은 더욱 깊었고 가을의 풍경은 단풍의 아름다움 보다는 스산함 자체였다.
오늘 새벽에 꿈에서 그때의 상황이 재현 되었다. 지방에 있는 어느 기업의 공장으로 파견을 나가게 되었다. 그것도 갑자기 일이 닥쳐 허둥지둥 짐을 싸서 내려 가면서 느껴야 했던 스산한 분위기속의 심란함으로 가득했던 꿈이었다. 이제는 가족까지 더해진 상황이었다.
나중에서야 그일이 꼭 필요해서 가게된것도 아니었고 기대없이 던졌던 말에 내가 흔쾌히(?) 대답을 함으로서 이뤄졌다는걸 알게 되었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죄도 죄라고 하면 할말이 없다. 처음으로 프로젝트다운 프로젝트를 갓 수행했었고 회사와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렴풋이 느껴가고 있었을 그때의 나는 그런 상황을 간파할 능력이 없었다.
개인에게는 악몽으로 떠오르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던 사람들을 이후로도 한참동안 인생의 선배로써 상사로써 여기며 지냈다. 그것들이 잘못된 일이라는걸 깨닫게 된 일은 한참후의 일이었고 그때는 이미 그곳을 떠난 후 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