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2월 01, 2008

대한민국 정부는 영어 숭배 정책을 당장 폐기하라!

인수위원회의 모습을 보면 코메디프로를 보고 있는거 같다. 영어 표기법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원어민처럼 발음하기 어렵다면서 국어표기법까지 바꿔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프레스 프렌들리(Press-friendly)라고 했더니 ‘프레스 프렌들리’라고 썼더라.(f와 p 발음의 차이를 구분하지 않고 썼다는 의미) 미국에 가서 오렌지를 달라고 했더니 못 알아들어서 오린지라고 하니(l과 r 발음을 달리했더니) 알아듣더라”라는 일화까지 소개 했다.

웃기지도 않는다. 그들이 그토록 자랑하던 심각한 청년실업, 양극화등 파탄나고 있는 민생경제 해결에 대한 얘기는 일부러 찾아 듣기도 힘든데 영어발음이 어쩌니 저쩌니 하고 있는 모습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세상 어느 나라에서 정부 관료들의 저런 이야기를 언론의 톱뉴스로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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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장, 2008/02/01 14:10, 희망찬시민운동/NGO-Archives]

대한민국 정부는 영어 숭배 정책을 당장 폐기하라!

무릇 한 나라의 정부란 국민 공동의 번영을 꾀하기 위해 국민들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정책과 제도를 만들고, 국민이 낸 세금으로 그 제도를 집행하는 기관이다. 따라서 정부와 공무원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해야 하는 심부름꾼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을 보면,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가릴 것 없이 대다수 공무원들이 알아듣기 힘든 영어와 외래어를 남발하면서 국민들보다 우월한 양 으스대고 있다.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이들의 몰상식한 행위는 영어 사대라는 그릇된 풍조를 조장하고 우리말글을 파괴함으로써 대한민국 국민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자긍심에 상처를 주고 있다. 경쟁의 측면에서 보아도 국어 속 영어 남용은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오히려 국민들을 깊은 열등감에 빠지게 하고 우리 민족과 문화의 정수를 팽개치는 일이니 이들을 어찌 대한민국 정부, 대한민국 공무원이라 할 수 있겠는가?

2007년 9월부터 행정자치부는 전국 2,166개 동사무소를 ‘동주민센터’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있다. 주민 생활과 가장 밀접하고 숫자도 많은 행정 기관의 이름을 영어에서 온 ‘센터’라는 외래어로 쓰겠다고 한다. 이 발상은 도대체 어느 나라 공무원들의 것인가? 마땅한 새 이름을 찾다 보니 주민들에게 친숙한 말이 ‘센터’밖에 없더라고 태연히 답하는 행정자치부의 태도는 너무도 뻔뻔하다. 그들은 국민들의 비판의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2007년 12월 7일 한국방송 뉴스에 보도되었듯이, ‘동사무소’ 이름 변경에 대한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자면 대한민국 성인남녀 58.7%가 우리말 이름으로 바꾸는 것이 좋다는 뜻을 밝혔다. ‘센터’라는 말을 써도 좋다는 의견(37.6%)보다 이 말에 거부감을 갖는 국민이 압도적임을 알 수 있건만, 행정자치부는 막무가내로 잘못된 정책을 고집하고 있다.

어디 이 뿐인가? 이 나라 행정부 최고 기관인 청와대는 ‘로드맵’, ‘아젠다’, ‘태스크포스’ 등의 영어를 거침없이 내뱉고, 중앙부처와 지방정부에서도 ‘클러스터’, ‘벨트’, ‘프로세스’, ‘어메니티’, ‘멘토링’ 등 셀 수도 없는 영어 단어들을 행정 사업의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급기야는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에서조차 선관위와 정치인들이 매니페스토, 네거티브 등 낯선 영어 단어를 끄집어내어 사용함으로써 마치 일반 국민들과 다른 월등한 존재인 것처럼 뽐내고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홍보하는 문구에 이르면 더욱 어처구니가 없다. ‘저스티스퍼스트’(법무부), ‘홈택스’(국세청), ‘씽크페어’(공정거래위원회), ‘세이프-코리아’(소방방재청), ‘하이 서울’, ‘다이나믹 부산’, ‘컬러플 대구’, ‘잇츠대전’, ‘울산포유’, ‘플라이 인천’, ‘투어파 트너 광주’, ‘글로벌 인스퍼레이션 경기’, ‘하트 오브 코리아 충청남도’, ‘프라이드 경북’, ‘필 경남’, ‘디 에센스 오브 코리아 전라북도’, ‘그린 전남’. 자연스레 지방자치단체들이 여는 주민 대상의 축제들도 영어 이름 투성이고, 새로운 사업 명칭은 으레 영어로 지어야 훌륭하고 멋있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무슨 의도로 정부와 공무원들이 이런 짓을 저지르고 있는가? 그들은 세계화 시대에 걸맞은 변신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거나 핑계에 불과하다.

세계화의 추세에 따라 경제와 문화의 교류가 확대되는 것은 필연적이지만, 그렇다고 우리말을 버리면서 행정 용어를 영어로 바꿔야 할 이유는 없다. 정부가 영어 단어를 남용한다고 국민들의 영어 구사 능력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정체성과 독특함을 파괴하고 전 국민의 의사소통 수준을 낮출 뿐이라, 결국에는 세계화 시대에 요청되는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만다. 이러한 착각의 밑바탕에는 반민주적인 권위주의와 영어 사대주의가 깔려 있다. 영어를 사용해서 사업과 자기 자신을 신비화하고 일반 국민들보다 우월한 존재인 양 포장해서 결과적으로는 봉사하는 행정이 아닌 군림하는 행정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세계화’는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한 술 더 떠서 17대 대통령으로 뽑힌 이명박 당선인은 초중등학교에서 영어 과목 외의 과목을 영어로 수업하는 ‘영어몰입교육’을 도입하겠다는 정책을 구체화하고 있다. 초중등교육의 목표를 온통 영어 능력 습득에 맞춰가는 이 정책은 어떤 결과를 빚을 것인가? 수업의 질은 떨어질 것이고, 새로운 유형의 영어 사교육이 증가할 것이며, 이에 따라 교육 양극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 장기적 결과는 무엇인가? 영어 숭배 망령에 사로잡힌 이 정책 탓에 국가 예산은 비효율적으로 낭비되고 국민의 허리는 휘어질 것이다. 영어 숭배가 유행하면서 국어는 나날이 파괴되고 전 국민의 의사소통 능력은 형편없이 떨어질 것이다. 교육의 균형은 깨지고 폭넓은 교양과 인성을 갖춘 인재를 길러내기는 더더욱 어려워질 것이며, 국가 경쟁력도 약화되는 위기를 초래할 것이다.

우리는 정부가 영어를 숭배함으로써 빚어질 수많은 위험에 대해 엄중히 경고한다. 자연 환경의 파괴가 생활에 주는 위험만큼이나 언어 환경의 파괴도 심각한 위험을 부른다. 이런 위험에 대처할 책임을 지고 있는 정부가 어찌 앞장서서 우리말을 파괴하고 있는가?

<우리의 요구>

1. 행정자치부는 즉각 ‘동주민센터’라는 이름을 버리고, 주민 자치와 복지에 알맞은 새로운 이름으로 바꿀 것을 촉구한다.

2.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사업 명칭과 용어에서 불필요한 영어 남용을 즉각 중단하고, 국민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바꿀 것을 촉구한다.

3. 대통령 직속의 ‘언어위원회’를 신설하여 외래어 및 외국전문용어에 대처하고, 우리말글을 보호할 법과 제도를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4. 사교육비를 증대시키고 국어 파괴를 부르며 교육의 질을 떨어뜨릴 영어몰입교육 방침의 폐기를 촉구한다.

2008년 1월 30일

국어단체연합, 국어문화운동본부, 나눔인터내셔날, 동북아평화연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시민사회포럼,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한국여성민우회, 옥천한국어학당, 외솔회,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전국국어교사모임, 짚신문학회, 풀꽃세상을위한모임, 한겨레말글연구소, 한국대학교육연구소, 한국언어치료연구소, 한국작가회의, 한글문화연대, 한글재단, 한글학회, 한민족도덕운동본부, 한민족문화학회, 흥사단, 희망심리상담소, 희망제작소간판문제연구소, 김영환 부경대교수, 유팔무 한림대교수, 정현기 연세대교수, 홍세화 작가

* 출처링크 : 민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