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2월 29, 2008

동물들의 겨울나기

숲속의 작은 요정들이 번성한다는 사실은 나를 기쁘게 한다. 추운 겨울밤 따뜻한 오두막 안에서 숲이 신음하고 오두막이 흔들리는 바람 소리를 들을 때면, 나는 언제까지라도 깃털을 잔뜩 부풀린 저 작은 것들이 이 모든 것을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끊임없이 놀라고 경이로워할 것이다. 그들은 확률을 부정하고, 물리학의 법칙을 거부하며, 놀라운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음을 온몸으로 증명해 보인다.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강수정 옮김│에코리브르

겨울 화악산을 찾아가 야영을 한적이 있었다. 지금은 화악터널도 넓히고 도로포장도 새롭게 해 드나드는것이 아무렇지 않지만 그때는 초입의 군부대에 신분증을 맡겨야 당일 산행으로 다녀올 수 있었다. 그래서 중봉을 건너 적목리로 가야 한다고 초병을 겨우 설득해 야영장비를 메고 산을 오를 수 있었다. 천도교 기도원 뒷쪽 숲속에 텐트를 설치했다. 아직 학생신분이었던 때여서 변변한 겨울장비라는게 없었다. 겨울숲에 찾아온 밤의 기운과 정취를 느낄 겨를도 없이 텐트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침낭도 겨울밤을 지내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솜침낭이었다. 어찌어찌 하여 밤새 텐트를 흔든 바람과, 뼈를 애는 추위와 함께 밤을 보냈고 날이 완전히 밝은 후에야 굳은 몸을 겨우 움직여 다시 배낭을 꾸릴 수 있었다. 문명세계에 적응한 사람에게 자연에서의 겨울이란 혹독한 것이다.

깊은 숲속에 들어가 눈을 걷어내고 얕은 구덩이를 판 다음, 근처의 자작나무에서 벗겨온 종이처럼 얇은 껍질과 붉은가문비나무의 마른 가지로 모닥불을 지폈다. 어두운 밤하늘로 솟아오르는 불꽃, 하늘거리며 떨어지는 눈송이 사이로 번지는 매캐한 연기, 그리고 꼬챙이에 끼워 불에 구워먹던 산토끼와 호저고기는 겨울의 낭만을 한층 고조시켰다. 나는 그 불에 몸을 녹이며 잭 런던의 <모닥불(To Build a Fire)>이라는 단편소설을 떠올리곤 했다. 북부의 광활한 야생에서는 열이 곧 생명을 의미한다는 내용이었다. 난생 처음 얼어붙은 유콘 강을 찾은 사람에게 생명의 열쇠는 젖지 않은 몸과 성냥이었지만 불운한 주인공은 그만 발을 적시는 실수를 저질렀고, 결국 그의 불과 목숨은 꺼지고 말았다.

런던은 주인공의 문제를 이렇게 지적했다. "그에겐 상상력이 없었다. 그는 상황을 기민하게 파악하고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관심만 가졌을 뿐 그 속에 내포된 의미는 살피지 않았다. 영하 50도는 서릿발 같은 영하 80도 내외를 의미했는데도 그에겐 그저 딱 영하 50도일 뿐이었다. 그 속에 뭔가 또 다른 의미가 담겨 있으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 치채코(알래스카 원주민들이 신출내기나 이방인을 부르는 말)는 추상적인 것, 서리나 각종 숫자들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의 의미는 알지 못했다. 사실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우리는 열대환경에 적응했고, 집과 옷의 도움으로 일년 내내 그 환경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온다가 물의 어는점인 0º까지 떨어지면 벌써 불편함을 느낀다. 그러나 영하 50도에 대해 뭘 알겠는가? 그런 온도는 경험해본 적도 없고, 동물들이 그런 온도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천지에 겨울 세계가 펼쳐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공적인 열대 환경 속으로 몸을 사린다.

버너를 피워 아침을 든든히 먹고 커피를 한잔 마실때였다. 몸이 어느정도 풀린 그제서야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눈위에 나있는 동물들의 발자국과 발밑을 걷고 있던 거미에게 눈길이 멈췄다. 그곳에서 내가 가진 음식과 연료가 동이나면 다시 문명 속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목숨을 유지하는것도 힘든일이 될텐데 그들은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겨울숲에 담긴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끼는 첫걸음 이었다.

겨울숲에서는 그것이 가지는 혹독한 추위와는 다르게 어떤 포근함을 느끼게 된다. 그런 느낌을 가졌던 근원에는 겨울숲의 생명들이 가진 경이로운 능력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것이 얼어붙어 시간마저 멈춘듯 보이는 그곳에서도 그들만의 생존전략으로 새봄을 맞이하기 까지 겪어내는 치열함과 경이로운 능력으로 가득찬 숲속의 이야기들을 한걸음 한걸음 눈길에 발자욱을 내듯이 이야기를 펼친다. 그리고 “자연은 존재할 뿐 그 경이로움은 받아들이는 이의 마음속에 깃들인다”는 그의 생각에 점점 동화되게 한다.

호수 밑바닥에서 거의 반년을 보내는 거북이, 한번도 가본 적 없는 곳으로 날아가 겨울을 나고 다시 돌아오는 나비, 체온 저하로 밤에만 활동하는 하늘다람쥐, 봄날 성충이 되어 날아갈 생각으로 구멍을 뚫어놓고 잠을 자는 파리 유충, 벌새만한 크기로 겨울 숲을 이겨내는 상모솔새 등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이들은 저마다 터득한 방법으로 겨울을 난다.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도구를 사용해 환경을 변화시키는 인간과 달리, 동물들은 주변환경에 자신을 맞춘다. 지은이는 모든 생물이 능동적으로 겨울 숲에 적응하는 모습을 찾아내어 이를 감동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산행전 봤던 일화가 있다. 전날 산행을 시작하기전 버스 종점의 가게에서 간단한 점심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시골동네의 구멍가게겸 음식을 함께 팔던곳이어서 동네 주민들도 별일 없이 들렀다 가고 하는 곳이었다. 한 할아버지께서 살아있는 꿩한마리를 가지고 들어오셨다. 왠거냐 하는 동네분들의 반응에 뜻밖의 어부지리 같은 재미있는(?) 사연을 말씀 하셨다. 자기 밭으로 가는 중에 꿩한마리가 논두렁을 쫓기듯 뛰어 가고( 너무 놀라면 꿩은 날지 못하고 뛴다고 한다 ) 있었고 곧바로 뒤에 담비 한마리가 꿩을 쫓아가더라는 것이었다. 도망치던 꿩이 바위틈새로 숨어 들어갔는데 몸이 모두 들어가기에는 비좁아 꼬리가 삐져 나와 있었다고 한다. 뒤따르던 담비는 꿩의 꼬리깃털을 물고 바깥으로 끌어내려 하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다가가니 담비는 곧장 도망쳐 버리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위틈속에 들어간 꿩을 그대로 손으로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도망가던 담비는 아쉬운듯 돌아서서 그 광경을 아까운듯 지켜보고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