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10월 12, 2008

나쁜 사마리아인들



정말 명쾌했다. '개방, 경쟁'을 부르짖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을 명쾌하게 파헤치고 문제점들을 까발려 놓는다. 시장개방을 찬성하는 이들이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경쟁'이 필요하다. '온실'속에 있어서는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는 누가 들어도 지당한 이야기를 할때면 어떤 이의를 제기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숨통이 틔는 기분이었다.

'경쟁'이라는 말을 들으면 비슷한 수준의 선수가 실력을 가늠하는 경기장의 모습을 떠올린다. 미묘한 차이로 승부가 갈라지는 시합장에서의 경쟁은 보는이에게 재미와 박진감을 준다. 그런 경쟁이 이어질 수록 선수의 실력은 더 발전해 멋진 경기를 보여주게 될것이다. 그러나 두 선수의 실력차이가 확연하게 난다면 어떻게 될까. 결과는 이미 정해진거나 마찬 가지이며 한 선수는 경쟁 상대로써의 의미조차 없어지게 될 것이다. 비슷한 실력의 선수들과 연습하며 실력을 쌓지 않는한 잘되어 봐야 그저 만만한 기술연습상대 정도에 머무르다 선수 생명이 다하게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 자들이 말하는 '개방'과 '경쟁'의 이면에는 이미 수십년에서 100년이상까지 기술과 산업구조를 발전시켜온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런 선진국의 기업들과 제대로 자리잡지못한 개발도상국의 기업의 공정한 경쟁은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다. 이는 저개발 국가의 발전을 도우는 '착한사마리아인'이 아니라 영원히 상대방의 우위에 서서 이윤을 얻어 내겠다는 '나쁜사마리아인'이 되겠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방법이 정답이 아님은 확실해 보인다. 그들의 방법대로 개방과 경쟁을 시도한 나라의 대부분이 빈곤이 심화되고 있는 자료를 곳곳에서 보여주고 있다.

다음은 이 책의 표지에 나오는 말이다. 책의 기본적인 내용을 잘 표현해 내고 있다.


내게는 여섯 살 난 아들이 있다. 이름은 진규다. 아들은 나에게 의존하여 생활하고 있지만, 스스로 생활비를 벌 충분한 능력이 있다. 나는 아들의 의식주 비용과 교육 및 의료 비용을 지불하고 있지만, 내 아들 또래의 아이들 수백만 명은 벌써부터 일을 하고 있다. 18세기에 살았던 다니엘 디포는 아이들은 네 살 때부터 생활비를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뿐인가. 일을 하면 진규의 인성 개발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아이는 지금 온실 속에서 살고 있기에 돈이 중요한 줄 모르고 지낸다. 아이는 자기 엄마와 내가 저를 위해 노력하는 것에 대해, 자신의 한가로운 생활을 보조하고 자신을 가혹한 현실로부터 보호해 주는 것에 대해 전혀 고마움을 모른다. 아이는 과잉보호를 받고 있으니 좀 더 생산적인 인간이 될 수 있도록 경쟁에 노출시켜야 한다. 아이가 경쟁에 더 많이, 그리고 더 빨리 노출될수록 미래에 아이의 발전에는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이고, 아이는 힘든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정신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나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말고 일을 하게 해야 한다. 아이에게 더 많은 직업 선택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 아동 노동이 합법적이거나 최소한 묵인이라도 되는 나라로 이주를 생각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내 귀에는 여러분이 나를 보고 미친 사람이라고 욕하는 소리가 들린다. 생각이 짧다고, 매몰찬 사람이라고. 여러분은 나에게 아이를 보호하고 양육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내가 여섯 살 먹은 아이를 노동 시장으로 몰아넣는다면 아이는 약삭빠른 구두닦이 소년이 될 수도 있고, 돈 잘 버는 행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뇌수술 전문의나 핵물리학자가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만일 아이가 그런 직업을 가지려면, 내가 앞으로 적어도 10년 이상의 세월 동안 보호와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여러분이 단순히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아도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아 절약되는 돈을 보고 히죽거리는 것보다는 아들의 교육에 투자를 하는 편이 현명하다고 말할 것이다. 

어쨌든 내 생각이 옳다면, 올리버 트위스트는 생각이 짧은 착한 사마리아인 브라운로우 씨의 손에 구조되는 것보다는, 늙은 악당 페긴을 위해서 소매치기를 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브라운로우 씨는 소년 올리버에게서 노동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은 것이다.

나의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은 개발도상국에는 급속하고 대대적인 무역 자유화가 필요하다는 자유 무역주의 경제학자들의 주장과 근본적으로 논지가 일치한다. 이들은 개발도상국의 생산자들이 생존을 위해 자신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려는 동기를 가질 수 있도록 지금 당장 가능한 한 경쟁에 많이 노출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호는 안이함과 나태함만 유발할 뿐이므로, 경쟁에 노출되는 것이 빠르면 빠를수록 경제 발전에 더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기 부여 외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능력이다. 진규가 여섯 살에 학교를 그만둔다면 설령 2,000만 파운드라는 엄청난 보수를 주겠다는 제의나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겠다는 무시무시한 협박이 있다 해도, 어려운 뇌수술을 성공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개발도상국의 산업 역시 너무 일찍부터 국제적인 경쟁에 노출되면 살아남지 못한다. 이들에게는 선진 기술을 익히고 효율적인 조직을 만드는 등의 능력을 키워 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내가 앞 장에서 미국의 초대 재무 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이 처음으로 이론화하고, 그 이전과 이후의 정책 입안자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서 사용해 온 것이라고 소개한 유치산업 이론의 핵심이다.


마지막으로 이책을 읽도록 일부러 기회를 만들어준 국방부 관계자들에게 다시 한번더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이 책을 '반정부, 반미 도서'로 규정한 국방부 담당자의 사고수준을 함께 점검해보라는 말도 함께 전하고 싶다. 군간부들이 읽었을리는 없고 계원하나 잡아 시켜 대충 만들어낸 자료일 가능성이 99%라고 보지만 정말 읽고도 이런 선택을 했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기본적으로 한나라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상황을 인식하고 판단해야 하는지( 우리나라의 예도 수시로 나온다 )에 대한 내용이 반복되어 나오는 걸 보고도 '반미, 반정부 도서'라고 규정했다면 그 장교의 머리가 돌로 만들어져 있거나 북한이나 미국에서 보낸 간첩일 가능성이 100% 이기 때문이다. 자기돈 들여 그짓을 한다면 모를까 엄연히 국민의 세금을 먹고 사는 존재들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