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작은 요정들이 번성한다는 사실은 나를 기쁘게 한다. 추운 겨울밤 따뜻한 오두막 안에서 숲이 신음하고 오두막이 흔들리는 바람 소리를 들을 때면, 나는 언제까지라도 깃털을 잔뜩 부풀린 저 작은 것들이 이 모든 것을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끊임없이 놀라고 경이로워할 것이다. 그들은 확률을 부정하고, 물리학의 법칙을 거부하며, 놀라운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음을 온몸으로 증명해 보인다.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강수정 옮김│에코리브르
겨울 화악산을 찾아가 야영을 한적이 있었다. 지금은 화악터널도 넓히고 도로포장도 새롭게 해 드나드는것이 아무렇지 않지만 그때는 초입의 군부대에 신분증을 맡겨야 당일 산행으로 다녀올 수 있었다. 그래서 중봉을 건너 적목리로 가야 한다고 초병을 겨우 설득해 야영장비를 메고 산을 오를 수 있었다. 천도교 기도원 뒷쪽 숲속에 텐트를 설치했다. 아직 학생신분이었던 때여서 변변한 겨울장비라는게 없었다. 겨울숲에 찾아온 밤의 기운과 정취를 느낄 겨를도 없이 텐트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침낭도 겨울밤을 지내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솜침낭이었다. 어찌어찌 하여 밤새 텐트를 흔든 바람과, 뼈를 애는 추위와 함께 밤을 보냈고 날이 완전히 밝은 후에야 굳은 몸을 겨우 움직여 다시 배낭을 꾸릴 수 있었다. 문명세계에 적응한 사람에게 자연에서의 겨울이란 혹독한 것이다.
깊은 숲속에 들어가 눈을 걷어내고 얕은 구덩이를 판 다음, 근처의 자작나무에서 벗겨온 종이처럼 얇은 껍질과 붉은가문비나무의 마른 가지로 모닥불을 지폈다. 어두운 밤하늘로 솟아오르는 불꽃, 하늘거리며 떨어지는 눈송이 사이로 번지는 매캐한 연기, 그리고 꼬챙이에 끼워 불에 구워먹던 산토끼와 호저고기는 겨울의 낭만을 한층 고조시켰다. 나는 그 불에 몸을 녹이며 잭 런던의 <모닥불(To Build a Fire)>이라는 단편소설을 떠올리곤 했다. 북부의 광활한 야생에서는 열이 곧 생명을 의미한다는 내용이었다. 난생 처음 얼어붙은 유콘 강을 찾은 사람에게 생명의 열쇠는 젖지 않은 몸과 성냥이었지만 불운한 주인공은 그만 발을 적시는 실수를 저질렀고, 결국 그의 불과 목숨은 꺼지고 말았다.
런던은 주인공의 문제를 이렇게 지적했다. "그에겐 상상력이 없었다. 그는 상황을 기민하게 파악하고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관심만 가졌을 뿐 그 속에 내포된 의미는 살피지 않았다. 영하 50도는 서릿발 같은 영하 80도 내외를 의미했는데도 그에겐 그저 딱 영하 50도일 뿐이었다. 그 속에 뭔가 또 다른 의미가 담겨 있으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 치채코(알래스카 원주민들이 신출내기나 이방인을 부르는 말)는 추상적인 것, 서리나 각종 숫자들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의 의미는 알지 못했다. 사실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우리는 열대환경에 적응했고, 집과 옷의 도움으로 일년 내내 그 환경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온다가 물의 어는점인 0º까지 떨어지면 벌써 불편함을 느낀다. 그러나 영하 50도에 대해 뭘 알겠는가? 그런 온도는 경험해본 적도 없고, 동물들이 그런 온도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천지에 겨울 세계가 펼쳐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공적인 열대 환경 속으로 몸을 사린다.
버너를 피워 아침을 든든히 먹고 커피를 한잔 마실때였다. 몸이 어느정도 풀린 그제서야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눈위에 나있는 동물들의 발자국과 발밑을 걷고 있던 거미에게 눈길이 멈췄다. 그곳에서 내가 가진 음식과 연료가 동이나면 다시 문명 속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목숨을 유지하는것도 힘든일이 될텐데 그들은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겨울숲에 담긴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끼는 첫걸음 이었다.
겨울숲에서는 그것이 가지는 혹독한 추위와는 다르게 어떤 포근함을 느끼게 된다. 그런 느낌을 가졌던 근원에는 겨울숲의 생명들이 가진 경이로운 능력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것이 얼어붙어 시간마저 멈춘듯 보이는 그곳에서도 그들만의 생존전략으로 새봄을 맞이하기 까지 겪어내는 치열함과 경이로운 능력으로 가득찬 숲속의 이야기들을 한걸음 한걸음 눈길에 발자욱을 내듯이 이야기를 펼친다. 그리고 “자연은 존재할 뿐 그 경이로움은 받아들이는 이의 마음속에 깃들인다”는 그의 생각에 점점 동화되게 한다.
호수 밑바닥에서 거의 반년을 보내는 거북이, 한번도 가본 적 없는 곳으로 날아가 겨울을 나고 다시 돌아오는 나비, 체온 저하로 밤에만 활동하는 하늘다람쥐, 봄날 성충이 되어 날아갈 생각으로 구멍을 뚫어놓고 잠을 자는 파리 유충, 벌새만한 크기로 겨울 숲을 이겨내는 상모솔새 등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이들은 저마다 터득한 방법으로 겨울을 난다.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도구를 사용해 환경을 변화시키는 인간과 달리, 동물들은 주변환경에 자신을 맞춘다. 지은이는 모든 생물이 능동적으로 겨울 숲에 적응하는 모습을 찾아내어 이를 감동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산행전 봤던 일화가 있다. 전날 산행을 시작하기전 버스 종점의 가게에서 간단한 점심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시골동네의 구멍가게겸 음식을 함께 팔던곳이어서 동네 주민들도 별일 없이 들렀다 가고 하는 곳이었다. 한 할아버지께서 살아있는 꿩한마리를 가지고 들어오셨다. 왠거냐 하는 동네분들의 반응에 뜻밖의 어부지리 같은 재미있는(?) 사연을 말씀 하셨다. 자기 밭으로 가는 중에 꿩한마리가 논두렁을 쫓기듯 뛰어 가고( 너무 놀라면 꿩은 날지 못하고 뛴다고 한다 ) 있었고 곧바로 뒤에 담비 한마리가 꿩을 쫓아가더라는 것이었다. 도망치던 꿩이 바위틈새로 숨어 들어갔는데 몸이 모두 들어가기에는 비좁아 꼬리가 삐져 나와 있었다고 한다. 뒤따르던 담비는 꿩의 꼬리깃털을 물고 바깥으로 끌어내려 하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다가가니 담비는 곧장 도망쳐 버리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바위틈속에 들어간 꿩을 그대로 손으로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도망가던 담비는 아쉬운듯 돌아서서 그 광경을 아까운듯 지켜보고 있었다고 한다.
금요일, 2월 29, 2008
동물들의 겨울나기
수요일, 2월 27, 2008
2MB 대통령 취임.
2MB가 드디어 대통령으로써의 공식일정을 시작했다.
반쪽짜리 내각이라느니 하며 우려의 목소리도 들리지만 인수위원회의 퍼포먼스를 통해 드러난 능력을 볼때 내각이 구성여부와는 별 상관이 없이 굴러갈 수 있을거 같다. 오히려 저런 내각이 구성되지 않는게 다행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들의 내각 구성의 핵심은 '고소영'과 '강부자'라는 말로 불리어 진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고려대', '소망교회', '영남'의 머릿글자와 '강남의 부동산 부자'의 약자라고 한다. 2MB정권의 본질을 명쾌하게 압축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2MB가 선택한 총리와 장관 후보자들의 이력은 당황스럽다 못해 어이가 없다. 병역면제율이 38.5%, 일반 국민의 여섯 배에 달한다고 한다. 자녀들의 이중국적율 21%, 다섯 명 중의 하나는 한국의 국적이 아닌 다른 나라 국적을 갖고 있다. 재산은 평균이 39억, 일반국민의 16배에 달한다. 돈이 많은게 문제는 아니나 그들의 재산이란 것이 투기와 탈세로 이루어져 있다는 게 문제다. 1인당 평균 주택 3.6채와 토지 4건. 그가 뽑아놓은 일꾼들의 면모를 보면 2MB 정권이 어떤 계층의 정서와 이익을 대변하게 될 것인지 보이게 된다. 몇명만 간추려서 면면을 보겠다.
한승수 국무총리 후보.
헌정파괴 국보위에 참여한 경력, 투기차익 은폐하여 공직자 윤리법 위반, 편법증여에 부인의 위장전입. 그리고 본인 및 장남의 병역특혜, 장남은 군 복무 중 해외 골프 여행. 복무 중 해외 골프 여행 보내주는 군대가 세상에 또 있을 수 있을까. '위장전입' 문제 하나로 총리 후보의 목을 날리던 이들이 이 사람을 어떻게 할지 궁금할 뿐이다.
남주홍 통일부 장관 후보.
교육비 이중 공제 4500만 원. 부인은 부동산 투기 의혹. "부부 교수로 25년 벌어서 재산이 그 정도면 양반"이라는 말과 "다른 사람들 봐라”라는 비교열위론’으로 해명 했다. 그런데 그가 말한 “다른 사람”은 도대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해석에 따라서는 300백억이 넘는 2BM대통령에 빗댄 것일 수도 있다. 게다가 곧 한미 간에 전쟁이 벌어지며, 2007년에 남한이 무정부상태가 된다는 등의 극우망언. 이런 극우반공주의자를 통일부 장관으로 기용한 이의 정신상태는 어떤 것일까.
이상희 국방부 장관 후보.
미군기지 이전과 관련하여 평택에서 시위가 벌어졌을 때, "xx 분자" 진압해야 한다며 거기에 무장병력을 투입할 계획을 내놨다고 한다. 이런 발상이 가능한 인물의 손에 국가의 무력을 지휘할 권한을 쥐어준다? 2MB다운 생각이라고 해야 하나?
이춘호 여성부 장관 후보.
아파트, 오피스텔, 단독주택, 공장, 점포, 주차장, 임야, 대지, 논 등 총 40여건의 부동산을 포함하여 49억원의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신고하여 세상사람들은 그의 재산목록을 부동산 백화점에 빗대기도 하였다. 전국 곳곳에 부동산 투기를 한 사실을 지적하자, "남편이 기쁜 마음에 오피스텔을 선물했다"고 해명했다. 부동산 부자는 뭐가 달라도 다른 모양이다. 저런 상황에 오피스텔을 선물할 생각을 할 수 있다는걸 보면 다른 별에서 살다가 온사람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
신도시 개발등으로 땅값이 폭등한 김포지역의 농지구입경위에 대해 투기의혹뿐만 아니라 절대농지 불법 매입의혹이 일자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할 뿐 투기와는 상관없다”라는 기염을 토했다. 이런 사람의 눈에 보이는 환경이란건 도대체 어떤 것일까. 그렇게 땅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이왕이면 온 나라의 땅을 사랑하라고 환경부 장관으로 기용하려 했을까?
김성이 복지부 장관 후보.
전두환 정권때 '3청교육'이나, '정화운동' 에 관한 논문을 써서 전두환 대통령 각하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국민을 정화대상, 청소의 대상쯤으로 생각해서 썼던 논문으로 받았던 표창의 영광을 다시 누리고 싶었던 것일까? 게다가 다른 이의 논문을 표절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단다.
가지가지들 한다. 잠깐 검색해서 정리한 것이 이 정도다. 도대체 이런 사람으로 구성된 내각도 내각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래도 2MB 나름대로 엄선해서 내놓은 멤버들일 것이다. 고르고 고른 게 이 정도니, 선택 되지 못한 이들의 상태는 또 어땠을까?
대선때 많은 사람들은 2MB의 도덕성에 문제가 있음을 알았지만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그를 선택했다. 하지만 '도덕적이지 못한 저 집단이 과연 유능이라도 한가?' 저들이 그토록 자랑하는 능력이라는 것은 혀꼬부러진 '아륀지' 발음만큼 갈팡질팡하던 인수위의 다채로운 닭짓을 통해 충분히 드러났다.
사실 어떤 면에서 저들은 실제로 유능하다. 일반인들이 모르는 제 나름의 노하우가 있기에 땅도 사놓고, 위장전입도 하고, 세금 탈루도 하고, 병역도 면제 받는 게 아니겠는가? 바로 이것이 저들이 비록 도덕성은 없지만 능력은 있다고 자부하는 근거다. 우리는 잘 사는데, 너희들은 왜 못 사냐? 한 마디로 우리 강부자들을 따라 배우면 온 국민이 잘 살 수 있다, 이게 저들이 생각하는 '선진'이다. 그러려면 부도덕한 고소영이라도 부자라면 데려다 써야 한다, 이게 저들이 말하는 '실용'이다. 그 '실용주의'의 진가는 이렇게 나타나고 있다.
화요일, 2월 26, 2008
누가 달을 만들었을까?
달의 크기는 태양의 400분의 1이다.
달은 태양보다 400배 더 지구에 가깝다.
달은 하루에 400Km씩 회전한다.
달의 둘레에 지구의 둘레를 곱하면 436,669,140Km가 된다. 그리고 이 값을 100으로 나누면 436,699Km, 즉 99.9% 정확하게 태양의 둘레가 나온다. 태양의 둘레를 달의 둘레로 나누고 여기에 100을 곱하면 극지방에서의 지구 둘레가 나온다. 태양의 크기를 지구의 크기로 나누고 100을 곱하면 달의 크기가 된다.
우연의 일치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지구는 하루에 40,000Km씩 회전하며 달은 그보다 거의 정확하게 100배 적게 회전한다. 달은 지구 주위 궤도를 도는 동안 늘 한면만을 지구로 향한다. 게다가 그 평균 거리는 적도 자전 속도가 정확히 지구일의 1%일 만큼 떨어져 있다. 이 수치들은 모두 확인 가능하며 논란의 여지가 없다. 어떻게 이 모든 일이 우연일 수 있겠는가? ...
교보문고의 서가에서 이책을 처음 봤을때 좀 뜬금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UFO나 외계문명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편이지만 제목이 왠지 판타지 소설과 같은 수준의 이야기로 보였고 13,000원의 책값을 지불해가면서까지 보고 싶은 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책을 다시 만났던건 매달 참석했던 모임 장소 근처의 헌책방이었다. 그곳에서도 처음에는 선택에서 빠졌었다. 그리고 다음달 모임때 다시 그곳을 찾았을때 같은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래서 몇권의 책과 함께 샀다.
지구에는 알 수 없는 일들이 많다. 과학으로 접근하고 설명하는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 되지만 인간이 이룩한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것들이 많다. 달생성의 기원에 대해서도 주로 논의되는 몇가지 이론이 있지만 그 논리가 가진 헛점들에 대해 합리적인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어떤 지적인 존재가 달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와 비교해도 논리적 완성도에서 별반 차이가 나지 않게 된다.
외계/지적인 존재가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하는 저자의 이야기는 과학이라는 테두리에서 생각하고 살아가도록 교육받은 이들에게는 터무니 없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우주에서 우리만 있고 우리가 알아낸 과학이외의 것들은 받아들이지 않는 자세도 문제가 있을 것이다. 우주는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고 우리 뿐만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이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기 위해 나노기술과 양자론을 끌어오고,시간초월을 위한 '타키온'의 존재, 공간초월을 위한 '양자얽힘'현상을 언급해 나간다.
저자는 달이 지구에 얼마나 중요한 역활을 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특히 금성과 화성과의 비교를 통해 지구와 달의 중력이 서로 일정하게 끌어주는 과정에서 지구의 각도를 22.5도의 기울기를 갖게 하고 이로써 계절의 변화와 고등생물의 생존과 진화를 가능하게 한 점과 지구의 '판구조운동'에 결정적 역활을 함으로써 지구 전체가 수중속에 있지 않고 육지와 산맥을 형성하여 역시 지적인 생명체의 진화를 돕게 되었다. 그리고 지구의 지적인 존재가 과학적인 발전을 이룩할때쯤 그들은 메세지를 남겼는데 달과 지구, 태양과의 놀랍도록 일치하는 십진법의 관계가 그들이 남긴 메세지일지도 모른다는 논리를 편다.
저자의 논리를 받아들이고 아니고를 떠나 현상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BBC의 공룡에 대한 프로그램의 시그널 화면에서 공룡들의 뒷편으로 지나가던 달의 모습을 보며 느꼈던 묘한 감정의 근원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이를 설득하거나 설명한다는 것이 어떤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 것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의구심을 잔뜩 안고서 읽어 나갔으나 때론 기발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설명에 의구심도 점점 누그러져 갔다.
책을 읽는동안 평소 좀처음 느끼지 못했던 달의 기운을 세번 정도 겪었다. 지방을 내려가면서 차창밖으로 달이 휘영차게 떠있었다. 찻길 방향이 바뀔때까지 계속 바라보고 있는거 같았다. 그리고 돌아오는날 새벽에 집으로 들어서는 복도 가득히 달빛이 차있었다. 마지막은 퇴근길이었다. 전철에서 내려 다리를 건너는데 대보름날의 달빛이 기가막힌 풍경으로 집으로 가는길을 비추고 있었다. 달에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유달리 관심이 갔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것도 기가 막힌 우연이었을까?
크리스토퍼 나이트, 앨런 버틀러 공저 / 채은진 옮김. 말글빛냄 펴냄.
월요일, 2월 18, 2008
창백한 푸른별
EBS의 지식채널ⓔ 에서 방송된 것들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보이저호가 명왕성을 벗어나며 바라본 지구의 모습은 언제봐도 뭉쿨한 느낌을 준다. 그런 느낌의 근원을 잠시 생각해 봤다. 몇가지 말들이 떠올랐지만 딱히 정리되지 않았다.
지인의 문상을 다녀 오는길에 언뜻 생각이 들었다. 영원을 향한 사람들의 그리움과 다시 못올 먼곳으로 떠나는 아쉬움의 느낌이라면 그래도 비슷한 표현이 될 수 있을까?
보이저호에 대해 썼던 얘기
토요일, 2월 16, 2008
독점과 가격 횡포
miaan님의 블로그를 보고 몇가지 생각이 떠올라 몇자 적는다.
기억에 남는 장소가 있었는데 어딘지를 찾지 못하는 곳들이 있다. 가평에서 강원도 화천으로 넘어가는 도마치고개를 걸어서 넘어간적이 있었다. 도로 포장을 하기 전이었는데 그때 볼 수 있었던 폭포와 깊은 소를 다시 찾을 수 없었다. GPS의 필요성은 그래서 시작되었다. 인공위성이 보내는 신호를 받아 작동된다는 묘한 느낌도 한몫 했다. 선택을 앞두고 여러 회사들과 제품들앞에서 혼돈을 거쳐야 했다. Garmin과 Magellan에서 만들어진 제품들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Magellan의 모회사가 탈레스라는 말에 군용통신장비를 만드는 회사에서 만들었으니 더 낫겠다는 생각에서 마젤란제품을 사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내위치를 파악할 수 있고 기록하고 싶은 장소를 저장하는 기능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에 explorist 100을 사려고 했다. 국내에서는 24만원정도에 판매되고 있었으나 Ebay에 확인결과 100불 내외의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배송료를 감안해도 15만원 이내면 살 수 있고 굳이 지도를 넣어서 다닐 필요까지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해외 구매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판매자의 다른 제품들을 구경하다 보니 상위기종으로 점점 눈길이 갔다. 당시 최상위기종이었던 explorist 600도 300달러 내외에서 판매되고 있었다. 100이 우리나라에서 24만원인데 거기다가 10만원 정도만 더 보태면 최상위기종을 살 수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전자나침판, 기압고도계 등등의 부가기능과 데이타를 USB포트를 통해 자유롭게 전송받을 수 있는 점에 끌려 600을 선택했고 배송료까지 30만원대 초반에 구매를 끝낼 수 있었다.
다음까페 길잡이를 통해 GPS의 기능들을 하니씩 익혀가다보니 자연스럽게 GPS에 탑재하는 전자지도에도 관심이 갔다. 이때쯤해서 300$ 내외에서 거래되는 모델이 국내판매업소에서 80만원에 달하는 금액으로 팔리고 있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 업소에서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었다.
지도를 개발하는데에는 많은 기간과 많은 비용이 투자 되었다. 미국판매가와 국내판매가가 많은 차이가 나는 이유중 하나가 바로 이런 기술개발 투자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가격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로써는 궁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도개발과 기기의 판매가격과는 상관관계를 찾아볼 수 없기때문이다. 지도는 기기의 생산과는 완전히 별도로 그들이 개발한것이다. 운송료와 관세, 관리비 등을 생각해도 기기에서 발생하는 세배에 가까운 가격차이는 납득되지 않는다. 그리고 해당 업소에서 구매하지 않은 제품에 대해서는 A/S를 하지 않고 지도 판매도 하지 않는다. 즉, 지도를 사용하고 싶으면 자기 업소에서 기기를 사라는 말인 것이다. 자체 개발했다는 지도를 무기삼아 독점의 영역을 넓혀가려는 횡포에 다름아닌것 같다.
물론 그 지도를 사용하고 싶으면 그 업소에서 GPS를 구매하면 된다. 그 사람이 장사를 하는데 이래라 저래라 하는건 도리에 어긋나는 일일 것이다. 그래도 그런 불편한 느낌을 가지고서 물건을 구매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들의 횡포에 휘둘리고 만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전자지도가 탑재되지 않은 GPS도 산행때마다 충분한 편리함을 주고 있다. 나의 GPS의 주된 사용목적은 루트의 활용과 트랙로그의 저장이기 때문이다. 종이지도를 항상 휴대하고 다니지만 각별히 좋아하는 산의 경우에는 특별히 국립지리원의 전자지도를 구매해 활용하고 있다.
목요일, 2월 14, 2008
평양에 태극기는 안된다?
다음달 26일 평양에서 열리는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남북한전에서 태극기와 애국가의 사용여부를 놓고 북한에서 그들다운 반응을 보였다.
축구대표팀 응원단 ‘붉은 악마’는 13일 홈페이지(www.reddevil.or.kr)를 통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아시아지역 3차 예선 2차전 한국-북한의 평양 경기에 기존 응원 방식을 보장받지 않으면 참가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붉은 악마 운영위원회는 “한국과 적대적인 나라, 험악한 지역을 막론하고 원정을 다녔고 일관된 방식의 응원을 진행했다. 응원을 위해서는 국호를 외치는 것과 태극기 등 국가 상징을 사용하는 것이 필수이며 이는 붉은 악마의 전통이다. 우리의 전통을 구속하는 원정 응원은 의미가 없다”고 전했다.
언론들이 전한 바로는 지난 5일 개성에서 열린 월드컵 예선전 실무협의에서 북측 대표들은 태극기와 애국가 대신 한반도기와 아리랑을 사용하자고 강력히 주장했다고 하는데 아울러 남측이 제안한 1천명 규모의 민간응원단( 붉은악마 ) 방북과 대규모 기자단 파견에 대해서도 난색을 보인 모양이다.
그런데 왜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는 인공기를 걸었는데 북한의 평양에는 태극기를 걸 수 없는가?
북측이 내세운 이유는 굳이 태극기와 애국가를 사용해 대결구도를 조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월드컵 등 국제축구경기가 민족의 제전이 되기보다는 민족의 각축장으로 변질됐다는 비판도 만만찮기 때문에 같은 민족끼리 '국가적 개별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겠냐는 것이 북한의 주장이다.
그러나 충돌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남측의 민간응원단 방북을 불허하는 것은 앞서 이야기한 북측 주장의 진면목을 보게 한다. A매치 경기에서 소속국가의 국기와 국가를 사용하는건 FIFA규정에도 나와 있는 상식적인 규칙인데 월드컵 지역예선과 같은 단순한 경기에서 조차 민족의 화합과 통일을 들먹이며 단순한 룰을 어기려는 이유는 뭘까.
실무회의에 참석한 조중연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은 북측 대표가 "공화국 역사상 태극기가 하늘에 나부끼고 애국가가 울린 적이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북한은 남한을 실체로서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남한을 아직도 미국의 괴뢰 정권 정도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좋다. 남한이 미국의 괴뢰정권이라고 치자. 그런 괴뢰정권에게 쌀이며 연료 등등의 생필품과 주식조차 해결하지 못해서 구걸행각을 펼쳤던 북한은 뭐하는 나라인가? 왜 북한은 남한을 인정하지 못하는걸까?
나를 인정하지 않는 상대방과 무슨 민족과 통일을 들먹이고 무슨 미래를 기대한다는 말인가? 태극기가 평양에 걸리는게 그렇게도 큰 문제라는 말인가? 더 이상 북한에 구걸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축구 게임 하나 하는데 정치적인 논의가 필요한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나? 과연 지구촌 어디에서 태극기를 거는데 이렇게 자존심 상하게 구걸하는 나라가 어디 또 있단 말인가? 나를 인정하지 않는 상대방에게 더 이상의 대화 시도는 대화가 아니라 구걸이다.
월요일, 2월 11, 2008
Surefire 6P Patriot.
Surefire Korea에 올린 사용기의 사은품으로 받은 6P의 모습이다. 한정 모델로 나온 Patriot인데 미국 성조기에 사용된 빨간색, 파란색, 흰색을 사용해 제작했다. Surefire의 모델줄 비교적 저가에 속하는 모델이어서 품질에 의문을 품기도 했으나 예상외로 훌륭한 제품이다. 역시 Surefire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올린 사용기의 모델이었던 L2와 비교해도 표면의 아노다이징 처리와 클립의 유무외에는 별다른 차이점을 느끼지 못했다. 제품의 신뢰성에서 오는 Surefire의 특성은 그대로 가지고 있는 물건이다. 야영철이 다시 오면 전구를 LED( P60L )로 교체해 캠프장의 조명으로 활용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에서 사용기를 찾을 수 없어 Surefire 본사홈페이지에 있는 사용기(True Story)를 몇개 번역했다.
Get the Buck Out of There
위스콘신에서 캠핑여행을 하는 동안 내친구와 나는 밤에 Surefire 6P와 함께 짧은 산책을 하기로 했다. 우리가 걷고 있는 동안 나는 매우 독특한 어떤 냄새를 맡게 되었다. 사향종류의 향이었다. 같이 걷던 친구에게 같이 냄새를 맡았는지 물어보았다. 우리는 어떤 짐승의 그러렁 거리는 소리를 같이 들었다. 우리는 재빨리 6P를 소리가 나는 쪽으로 비췄다. 아주 커다란 몸집을 가진 수사슴( buck )이 2,3피트 앞에 서 있었다. 우리를 향해 자세를 낮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가 6P를 눈을향해 곧장 비추자 자세를 누그러 뜨렸다. 우리는 천천히 뒤로 도망쳐왔고 살아서 이 이야기를 할 수 있다. Surefire에 감사를 표한다.
원래 전술도구의 개념으로 나온 Surefire의 제품들은 강력한 빛을통해 적을 압도하는 목적으로도 쓰인다는 말을 본적이 있다. 제논 램프에서 뿔어내는 빛은 정면에 서있는 사람을 일시적으로 충분히 무력화 시킬 수 있다. 위의 사용자는 어둠속에서 만난 야생동물을 향해 빛을 뿜었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야생동물이 먼저 다가와 공격하려 했다는점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두 사람이 모르고 새끼있는 동물 가까이 다가간건 아니었을까? 동물들에게 빛을 쏘이는게 바람직한 일은 아니겠지만 Surefire가 가진 효용성의 단면을 보여준 일화다.
Ryan F.
Minneapolis, MN
Fifteen Tons of Rolling Thunder
나의 보병회사( 병력용역회사로 보임 )는 이라크에서 두번째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고 Surefire를 모두 소지하고 있었다. 우리가 휴대한 소총에 Surefire가 장착하지 않았다면 호주머니 속에는 들어있었다. 어느 날 밤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때 나는 Surefire 6P를 차량의 해치밖에서 사용하고 있었다. 그걸 떨어뜨렸을때 15톤이 나가는 차량이 밟고 지나가는걸 목격했다. 이제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음을 확신했다. 모든 차량이 지나간뒤 P6를 다시 주워 동작을 시켰더니 정말 놀랍게도 여전히 확실하게 불이 들어오고 있었다.
Surefire는 기타회사의 제품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신뢰성을 기본 특성으로 하고 있다. 부사장인 폴김씨가 방한했을때 보여줬던 L4 박살내기 는 자사제품에 대한 신뢰가 어느정도인지를 아낌없이 보여줬던 자리였다. 15톤짜리 차량이 밟고 지나가도 동작했다는 이야기는 Surefire의 신뢰성이 어느정도인지를 충분히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후레쉬를 켜는 순간이 편안한 상황이 아님을 생각할때 신뢰성은 무엇보다 중요한 특성일 것이다.
Brian Y.
Fort Lewis, 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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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 나들이
삼청동에 갔었다. 어디에 들어가 있지 않으면 불편한 기온 때문에 그다지 편안한 나들이는 아니었던거 같다. 그래도 오래된 동네 골목길의 느낌이 좋았다. 다만 지나는 차량들 때문에 계속 옆으로 비껴 서는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사람들이 커피맛을 보려고 꽤 긴줄을 서있는 어느 커피점앞에 있는 '고르바쵸프'라는 이름을 가진 인형이었다. 아이들은 제 장난감을 만난냥 올라타고서 즐겼다.
오래된 동네의 상징만큼 어지러운 전기줄 들이 있었다. 어느 동네에서는 전기줄이 보이고 아니고에 따라 집값이 차이를 보인다고도 하는데 여기서는 싫다는 느낌 보다는 나름 정감있게 다가왔다. 삼청동의 길을 안내하는 푯말들도 효용성은 있어 보이지 않은데 나름 역할을 하고 있었다.
삼청동 초입에서 봤던 장면이었다. 아프리카 관련 전시회를 알리는 포스터와 지프가 있었다. 멋진 장면이다 싶어 셔트를 눌렀지만 별로인거 같다.
삼청동길을 따라 쭉 올라가다 보니 장난감 박물관이 나왔다. 입구에 서있는 인형이 왠지 쓸쓸한 모습을 하고 있는거 같았다. 입장료 때문에 고민하다가 그냥 지나쳤다. 조금 더 지나치다 보니 금융연수원을 보게 되었는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위해 서있는 전·의경들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많이 불편해졌다.
계량기의 모습과 빨간색의 몸통을 가진 소화전의 모습은 사진의 소재로 자주 쓰이는 소재인거 같다. 소화전 보다 더 오래 된거 같은 고재의 나무와 함께 카메라에 담았다.
이 마지막 그림은 여기를 찾는 누군가가 삼청동의 모습을 가늠할때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 올린 삼청동의 약도이다. 필요하면 그림위에서 마우스 오른쪽 버튼 클릭하고 다른이름으로 사진 저장을 누르면 됨.
금요일, 2월 01, 2008
대한민국 정부는 영어 숭배 정책을 당장 폐기하라!
인수위원회의 모습을 보면 코메디프로를 보고 있는거 같다. 영어 표기법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원어민처럼 발음하기 어렵다면서 국어표기법까지 바꿔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프레스 프렌들리(Press-friendly)라고 했더니 ‘프레스 프렌들리’라고 썼더라.(f와 p 발음의 차이를 구분하지 않고 썼다는 의미) 미국에 가서 오렌지를 달라고 했더니 못 알아들어서 오린지라고 하니(l과 r 발음을 달리했더니) 알아듣더라”라는 일화까지 소개 했다.
웃기지도 않는다. 그들이 그토록 자랑하던 심각한 청년실업, 양극화등 파탄나고 있는 민생경제 해결에 대한 얘기는 일부러 찾아 듣기도 힘든데 영어발음이 어쩌니 저쩌니 하고 있는 모습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세상 어느 나라에서 정부 관료들의 저런 이야기를 언론의 톱뉴스로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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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장, 2008/02/01 14:10, 희망찬시민운동/NGO-Archives]
대한민국 정부는 영어 숭배 정책을 당장 폐기하라!
무릇 한 나라의 정부란 국민 공동의 번영을 꾀하기 위해 국민들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정책과 제도를 만들고, 국민이 낸 세금으로 그 제도를 집행하는 기관이다. 따라서 정부와 공무원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해야 하는 심부름꾼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을 보면,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가릴 것 없이 대다수 공무원들이 알아듣기 힘든 영어와 외래어를 남발하면서 국민들보다 우월한 양 으스대고 있다.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이들의 몰상식한 행위는 영어 사대라는 그릇된 풍조를 조장하고 우리말글을 파괴함으로써 대한민국 국민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자긍심에 상처를 주고 있다. 경쟁의 측면에서 보아도 국어 속 영어 남용은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오히려 국민들을 깊은 열등감에 빠지게 하고 우리 민족과 문화의 정수를 팽개치는 일이니 이들을 어찌 대한민국 정부, 대한민국 공무원이라 할 수 있겠는가?
2007년 9월부터 행정자치부는 전국 2,166개 동사무소를 ‘동주민센터’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있다. 주민 생활과 가장 밀접하고 숫자도 많은 행정 기관의 이름을 영어에서 온 ‘센터’라는 외래어로 쓰겠다고 한다. 이 발상은 도대체 어느 나라 공무원들의 것인가? 마땅한 새 이름을 찾다 보니 주민들에게 친숙한 말이 ‘센터’밖에 없더라고 태연히 답하는 행정자치부의 태도는 너무도 뻔뻔하다. 그들은 국민들의 비판의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2007년 12월 7일 한국방송 뉴스에 보도되었듯이, ‘동사무소’ 이름 변경에 대한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자면 대한민국 성인남녀 58.7%가 우리말 이름으로 바꾸는 것이 좋다는 뜻을 밝혔다. ‘센터’라는 말을 써도 좋다는 의견(37.6%)보다 이 말에 거부감을 갖는 국민이 압도적임을 알 수 있건만, 행정자치부는 막무가내로 잘못된 정책을 고집하고 있다.
어디 이 뿐인가? 이 나라 행정부 최고 기관인 청와대는 ‘로드맵’, ‘아젠다’, ‘태스크포스’ 등의 영어를 거침없이 내뱉고, 중앙부처와 지방정부에서도 ‘클러스터’, ‘벨트’, ‘프로세스’, ‘어메니티’, ‘멘토링’ 등 셀 수도 없는 영어 단어들을 행정 사업의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급기야는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에서조차 선관위와 정치인들이 매니페스토, 네거티브 등 낯선 영어 단어를 끄집어내어 사용함으로써 마치 일반 국민들과 다른 월등한 존재인 것처럼 뽐내고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홍보하는 문구에 이르면 더욱 어처구니가 없다. ‘저스티스퍼스트’(법무부), ‘홈택스’(국세청), ‘씽크페어’(공정거래위원회), ‘세이프-코리아’(소방방재청), ‘하이 서울’, ‘다이나믹 부산’, ‘컬러플 대구’, ‘잇츠대전’, ‘울산포유’, ‘플라이 인천’, ‘투어파 트너 광주’, ‘글로벌 인스퍼레이션 경기’, ‘하트 오브 코리아 충청남도’, ‘프라이드 경북’, ‘필 경남’, ‘디 에센스 오브 코리아 전라북도’, ‘그린 전남’. 자연스레 지방자치단체들이 여는 주민 대상의 축제들도 영어 이름 투성이고, 새로운 사업 명칭은 으레 영어로 지어야 훌륭하고 멋있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무슨 의도로 정부와 공무원들이 이런 짓을 저지르고 있는가? 그들은 세계화 시대에 걸맞은 변신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거나 핑계에 불과하다.
세계화의 추세에 따라 경제와 문화의 교류가 확대되는 것은 필연적이지만, 그렇다고 우리말을 버리면서 행정 용어를 영어로 바꿔야 할 이유는 없다. 정부가 영어 단어를 남용한다고 국민들의 영어 구사 능력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정체성과 독특함을 파괴하고 전 국민의 의사소통 수준을 낮출 뿐이라, 결국에는 세계화 시대에 요청되는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만다. 이러한 착각의 밑바탕에는 반민주적인 권위주의와 영어 사대주의가 깔려 있다. 영어를 사용해서 사업과 자기 자신을 신비화하고 일반 국민들보다 우월한 존재인 양 포장해서 결과적으로는 봉사하는 행정이 아닌 군림하는 행정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세계화’는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한 술 더 떠서 17대 대통령으로 뽑힌 이명박 당선인은 초중등학교에서 영어 과목 외의 과목을 영어로 수업하는 ‘영어몰입교육’을 도입하겠다는 정책을 구체화하고 있다. 초중등교육의 목표를 온통 영어 능력 습득에 맞춰가는 이 정책은 어떤 결과를 빚을 것인가? 수업의 질은 떨어질 것이고, 새로운 유형의 영어 사교육이 증가할 것이며, 이에 따라 교육 양극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 장기적 결과는 무엇인가? 영어 숭배 망령에 사로잡힌 이 정책 탓에 국가 예산은 비효율적으로 낭비되고 국민의 허리는 휘어질 것이다. 영어 숭배가 유행하면서 국어는 나날이 파괴되고 전 국민의 의사소통 능력은 형편없이 떨어질 것이다. 교육의 균형은 깨지고 폭넓은 교양과 인성을 갖춘 인재를 길러내기는 더더욱 어려워질 것이며, 국가 경쟁력도 약화되는 위기를 초래할 것이다.
우리는 정부가 영어를 숭배함으로써 빚어질 수많은 위험에 대해 엄중히 경고한다. 자연 환경의 파괴가 생활에 주는 위험만큼이나 언어 환경의 파괴도 심각한 위험을 부른다. 이런 위험에 대처할 책임을 지고 있는 정부가 어찌 앞장서서 우리말을 파괴하고 있는가?
<우리의 요구>
1. 행정자치부는 즉각 ‘동주민센터’라는 이름을 버리고, 주민 자치와 복지에 알맞은 새로운 이름으로 바꿀 것을 촉구한다.
2.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사업 명칭과 용어에서 불필요한 영어 남용을 즉각 중단하고, 국민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바꿀 것을 촉구한다.
3. 대통령 직속의 ‘언어위원회’를 신설하여 외래어 및 외국전문용어에 대처하고, 우리말글을 보호할 법과 제도를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4. 사교육비를 증대시키고 국어 파괴를 부르며 교육의 질을 떨어뜨릴 영어몰입교육 방침의 폐기를 촉구한다.
2008년 1월 30일
국어단체연합, 국어문화운동본부, 나눔인터내셔날, 동북아평화연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시민사회포럼,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한국여성민우회, 옥천한국어학당, 외솔회,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전국국어교사모임, 짚신문학회, 풀꽃세상을위한모임, 한겨레말글연구소, 한국대학교육연구소, 한국언어치료연구소, 한국작가회의, 한글문화연대, 한글재단, 한글학회, 한민족도덕운동본부, 한민족문화학회, 흥사단, 희망심리상담소, 희망제작소간판문제연구소, 김영환 부경대교수, 유팔무 한림대교수, 정현기 연세대교수, 홍세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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