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시절에 연극관련 과목의 과제를 위해 봤던 연극이었다. 이후로 나의 일기장에는 생활이 팍팍하게 느껴져 "자기감각, 자아" 등의 말이 필요한 때면 내용을 상기하며 유쾌하게 끝난 연극의 마지막 장면처럼 "카사블랑카여 다시한번!" 으로 마무리를 지으며 다짐을 새롭게 하곤 했다.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영화 카사블랑카를 보면서 영화속의 주인공(험프리 보가트)를 닮고 싶어하는 주인공 앨런의 독백으로 연극은 시작된다. 그는 아내에게 이혼당한 남자이며 꽤나 소심한 성격이다. 친구인 딕과 그의 아내 린다의 도움으로 앨런은 많은 여성을 소개받고 만나지만 지속된 관계로 이어지지 않는다. 나름대로 작업성 멘트를 준비하고 상황을 만들려 하지만 어리숙한 치장을 한 한심한 모습을 하고 있는 앨런에게 호감을 느끼는 여성은 없다. 만날때 마다 퇴자를 맞게 된다. 낙담한 앨런을 린다는 다독거리면서 위로한다. 차츰 린다와 사이가 가까워진 앨런은 그녀에게 마음을 품게 된다.
한편, 딕은 아내가 다른 남자와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만 설마 그가 앨런일 것이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다. 연극은 마지막으로 가면서 앨런과 린다는 연인 사이로 발전하지만 관계가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은 서로 알고 있다. 결국 앨런은 살아가는데 있어 중요한건 자아존중감 이라는걸 알게 되고 어설픈 치장 대신 솔직함에서 오는 자신감으로 상대방을 대하게 됨으로써 드디어 매력적인 여성과 데이트 약속을 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행복한 결말로 끝을 낸다.
연극의 재미있는 설정으로 험프리 보가트의 분신이 연극 중간중간에 등장 한다. 긴 코트를 입고 나타난 험프리 보가트는 자아존중감이 약한 앨런에게 시시콜콜 간섭을 하며 조언을 한다. "자, 이제 그녀에게 키스할 때라구. 머뭇거리지 마." 이런 식으로 충고를 들려준다. 자아를 잃어버리고 대중매체속의 가공된 이미지 또는 타인에 대한 의식이 중심에 서서 그것에 이끌려 가는 사람들의 혼란스러움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에 앨런이 자아존중감을 가지게 되었을때 험프리 보거트는 더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앨런의 마음속에 자기자신이 제일 먼저 자리를 잡게 되었고 누구의 눈치볼 필요없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게 된 것이다.
연극은 코믹하게 이뤄져 있다. 어슬픈 앨런이 작업을 걸때 사용한 대사중 기억에 남는 부분이다.
알렌 : 토요일 저녁에 뭐 할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여자 : ( 나가며 )자살 할 거에요.
알렌 : ( 나가는 여자를 뒤쫓으며 ) 그럼 금요일은요 ?
세상살이라는게 여러 조직에 얽매여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내가 내 삶을 살아가는게 아니라 타인의 의식에 얽매여서 살아가게 될때가 많다. 마음의 중심에 나 대신 타인이 대한 의식, 타인의 생각이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괜한 일에도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다. 스스로 헤쳐가야할 일에도 다른 사람의 눈을 먼저 의식해야 한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로써 완벽한 삶이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문제점들을 일으키고 또 안고 가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중요한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모두 내것으로 인정을 하고 받아 들이는 자세일 것이다. 장·단점을 받아 들이고 스스로 해결해 나가려는 자아존중감이야말로 세상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2008년이다. 새해에 또 다시 외쳐본다.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 ! "
토요일, 12월 29, 2007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
목요일, 12월 27, 2007
수요일, 12월 26, 2007
다이어리
블로그의 이름처럼 종이를 담고 있는 다이어리는 내가 애지중지하는 물건중의 하나이다. 좋아하는 물건을 많이 갖게 되어 좋을거 같기도 하지만 그게 그렇지만도 않다. 필기를 대신할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이 있는 세상에서 한권의 다이어리를 채우는건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어서 대부분의 것들이 한동안 책꽂이에 꽂혀있다가 내지만 따로 빼서 쓰여지거나 쓰레기통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된다. 올연말에만 우리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지급한 것에서부터 협력업체들이 홍보용으로 배포하는것까지 대여섯권이 책꽂이를 차지하고 있다.
수많은 다이어리가 내손에 들어왔었지만 그중 기억에 남는 다이어리가 세권 정도 있다. 처음으로 다이어리를 소유했던건 고등학교때 아버지가 집에 가져오셨던 다이어리였다. 일반 노트 사이즈로 큼지막해 일기장으로도 적당해 그때부터 군대가기전까지 일기장으로 활용을 했었다. 없던 문장력을 그나마 확장시켜주었던 존재였었다. 질풍노도와 같았던 그 시기들의 상념들이 담겨 있다.
두번째는 군대 시절에 사용했던 다이어리 였다. 다이어리가 있으면 개인적인 영역이 생길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외출 나가던 이에게 부탁해서 구입했다. 컴팩트사이즈(10.8inch)를 말했었는데 클래식사이즈(14inch)를 받았었다. - 내지의 사이즈를 이렇게 말한다는 것도 최근에 안 사실이다. - 처음엔 조금 커보이는 다이어리가 못마땅했으나 이런저런 잡념과 넋두리들을 담아가기엔 안성 맞춤인 크기임을 알 수 있었다. 보안규정상 일기를 쓰는건 불법이라는 말에( 왜 그런지는 아무도 몰랐다 ) 검열때마다 숨겨 가면서 삶의 편린들을 기록으로 남긴 덕에 적어도 내게는 어떤 추억록 보다도 빛나는 추억록을 가지고 나올 수 있었다. 물론 소심했던 마음은 제대하느날 마지막 검문소를 통과할때까지 조마조마 해야 했었다.
세번째는 지금도 간간이 빈종이를 채워가고 있는 낡을데로 낡은 다이어리다. 처음 내손에 들어왔던건 서울에서 사회생활을 갓 시작했을 때쯤 진주집을 찾았을때였다. 몇장 쓰여지지 않은 다이어리가 눈에 띄길래 가져와 내가 사용했었다. 그때의 나는 알 수 없이 돌아가는 세상일들로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고 있을때이기도 했다. 마침 그때 처음으로 내 손에 들어왔던 지우개가 달린 오렌지색 Dixon연필과 함께 힘겨웠던 시간들을 내 하소연과 이야기들을 내내 묵묵히 들어 주던 고마운 존재가 되어 갔다. 어디에나 함께 다니는 존재가 되어 가방 없이도 다이어리 만큼은 손에 쥐고 다녔고 -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디자인적으로 봐도 별로인 그 무거운 다이어리를 손에 쥐고 다니는 모습을 떠올리면. - 산에 갈때 배낭속에 까지 넣어서 가지고 다닐만큼 분신과 다름없는 존재이기도 했다.
다이어리를 좋아하지만 그 물건 자체에 의미를 부여고 싶지는 않다. 물건 자체가 의미를 가지는 명품 다이어리를 소유하고 싶은 바램은 없다. 평범한 물건이 내 손에 들어와 의미를 부여 받는 과정이 좋다. 실용의 의미를 넘어 흐르는 생각들까지 틈틈이 담는 영혼의 교감까지 나누는 존재가 되는 그 과정 말이다. 시간의 효율적인 관리를 극대화 시켜주는걸로 광고되고 있는 어느 회사의 다이어리처럼 사용하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다. 내게는 모자란 기억의 보조장치와 일상의 소소한 감정들을 담는 도구로서의 역할만 하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목요일, 12월 20, 2007
2007년 대선 소감
대선이 끝났다. 예상했던데로 결과나 나왔기에 별다른 감흥은 일지 않고 쓴웃음만 나왔다. 지난 10년동안 민주화 세력과 개혁성향의 세력이 정권을 잡았지만 정작 그들의 지지기반이었던 서민들을 위한 정책은 뒷전으로 밀고 기득권 세력과 타협을 하고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정책들을 이어갔다. 과거의 운동권 출신의 정치인들은 고관대작의 생활에 안주했다.
민주화 뒤 ‘구조개혁의 주체’가 돼야 할 시민들이 외환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면서 양적인 생산 능력에 따라 줄을 세우는 전도된 가치 체계를 우리 사회는 대책 없이 수용했다. 이런 흐름을 저지해야 할 이른바 민주화 세력, 양심 세력들도 무방비 상태로 욕망의 대열에 동참했다. 이는 정치에 대한 불신을 낳았고, 민주화 세력에 대한 배신의 느낌과 결합되면서 대선 분위기가 ‘돈’과 ‘성공’의 이미지를 띤 이명박 쪽으로 쏠리는 현상으로까지 이어졌다. 민주화 정권이 들어선 이후의 서민, 노동자들의 생활은 치닫는 양극화로 더욱 어려워지게 되었다. 이번 선거는 이로 인한 민심 이반의 결과였던 것이고 민주·개혁 세력에 대한 실망과 반감이 어우러진 민심은 후보의 범죄적 과거를 묻지 않는 극단적인 선택을 가능하게 했다.
문득 이번 대선의 최대 수혜자는 삼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노무현이 연기시켜주었던 금산분리법을 완화를 주장하던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어버렸다. 더구나 이명박은 삼성특검을 반대하던 유일한 후보였었다. 전 정통부장관이었던 진대제의 이명박캠프 합류때 양식도 신념도 없는 저런 인물을 노무현 정부는 최장수 장관으로 기용하고 있었구나 했었지만 이또한 삼성의 노련한 작전이 아닌가 하는데까지 생각이 다다랐다.
결국 삼성특검은 흐지부지 되고 금산분리법까지 삼성에 유리한 방향으로 정리되어가지 않을까. 김용철 변호사의 용기있는 증언으로 우리사회의 치명적인 모순을 고칠수 있었던 기회는 물거품이 되고 말지 걱정이 든다. 자본과 권력의 유착은 더욱 고착화 되어 이명박의 말대로 "기업하기 좋은나라"가 되어 대다수의 서민들은 더욱 고착된 고용불안과 깊어지는 양극화로 인한 고통을 겪어야 하는건 아닐까.
오늘 이랜드 노조간부 43명이 집단 해고 되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과연 그가 말하는 경제 살리기, 존경하는 국민에 그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는 건지 모르겠다. 교과서 대로의 공산국가가 아닌 다음에야 모두가 똑같이 잘살고 이익을 볼 수는 없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는 그 말에 비정규직,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이익도 포함되어 있는지 묻고 싶다.
이런 일들이야 모두 존경하는 국민을 위하겠다는 전임 대통령들때도 일어났던 일들이기에 특별날것도 없다. 무엇보다도 우려스러운건 내년초부터 진행하겠다는 경부운하 사업이다. 청계천 복원사업때처럼 타당성 검토, 합리적 계획, 의견수렴, 영향평가 등 형식적 요건에 불과한 절차를 거쳐 전문성을 이유로 일반 시민의 참여가 제한된 채 관료와 전문가 중심으로 진행되지나 않을지. 태안앞바다에서의 기름유출로 인한 피해복구에서 석유를 닦아내는 퍼포먼스를 벌이던 그가 국를 동강내고 구조적으로 파괴시켜놓을 그 사업을 또 그때처럼 막무가내로 진행시키지나 않을지. 분명 그럴테지만 제발 이것만큼은 막아내고 싶다.
독·소 전쟁 싸이트
틈만 나면 괴벨스 평전을 읽고 있다. 넉넉잡아 내년 1월까지 독파 하려고 했는데 예상외로 쉽게 읽혀지고 있어 1월 중순이면 감상문을 올릴 수 있을거 같다. 평범했던 청년이 어떻게 히틀러에 열광하게 되고 측근이 되어 가는지 점점 흥미를 더해 가고 있다.
1000페이지 넘는 책을 지하철에 서서 들고 읽으려니 좀 뻘쭘한면도 있다. 무게도 무게여서 가산역에 다다를 즈음이면 팔이 뻐근하다.새삼스런 얘기지만 나치즈가 태생부터 악마집단으로 여겨왔던 생각들이 편협적인 생각이었음을 깨달아가고 있다. 그들이 발생하고 힘을 결집시킬 수 있었던 독일의 상황과 주변국과의 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주 훌륭한 싸이트 하나를 알게 되었다. 전혀 다른 내용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그 블로그를 다시 찾지 못하고 있다. 혹시라도 이글을 보게 된다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 볼그거의 말처럼 이런 내용을 공짜로 볼 수 있게 되다니 인터넷의 대단한 존재 가치를 확인했다. 독·소전쟁 정리겸 영어학습겸 섭렵을 해야 겠다.
독·소 전쟁
토요일, 12월 15, 2007
브레인 스토리(Brain Story)
부산으로 출장내려가는 길에 철도서점에서 샀다. 역시 책은 서점에서 골라가면서 사야 제맛으로 보는 맛이 있는거 같다.
뇌는 인간의 장기중 가장 특별한 부분으로 보인다. 생명을 이어가는 중요성에서는 뒤로 밀릴 수 있지만 의식을 가지는 사람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부분일 수 밖에 없다. 어떤 사고로 신체가 손상되면 많은 부위들을 기증받은 장기나 신체의 일부분으로 대체할 수 있고 회복 후에는 사고전과 다름없이 똑 같은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뇌의 경우는 이식자체도 불가능 하겠지만 이식이 가능하다 가정해도 수술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사람이라는 개념에서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책에서는 동물의 신체중 뇌의 영역이 가장 알려지지 않았고 최후까지 알아가야할 부분이라는걸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들과 함께 설명한다. 뇌연구의 진척이 더디고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뇌의 특정영역이 특정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언어에 관한 영역이라고 알려 졌던 부분도 다른 부위의 손상으로도 동일한 현상을 겪기도해 객관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뇌가 이뤄내는 의식과 감정이 어떻게 구성되어 표현되는지를 밝히는게 뇌과학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보고 있다. 과학의 발달로 뇌가 가졌던 특정기능을 대체하는 것으로 보이는 기술들이 속속 선을 보이고 있다. 특히 기억과 연산부분은 컴퓨터의 능력이 일반적인 뇌의 기능보다 훨씬 뛰어넘고 있다. 하지만 뇌가 가지는 진정한 특성은 사람마다 가지는 개성과 감정, 의식에 있다. 이런 의식과 감정을 컴퓨터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고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쉽게 구현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가 있다는 이야기를 믿는 편인 나는 의식의 부분에 있어서는 과학의 영역을 넘어서 혼의 이야기도 나와 주기를 기대했었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과학적인 측면에서 뇌의 이야기를 풀어 간다. 뇌연구 부분에서 과학이 가진 한계를 인정하고 DNA와 미지 영역의 신비함을 과학적인 입장에서 이야기 하지만 누가나 수긍할 수 있을 정도로 편하게 이야기 해나가는 책이었다.
일전에 책에 관한 TV프로그램에서 사후세계에 관련된 책을 주제로 토론 하는걸 본적이 있다. 토론참석자는 사후세계를 긍정하는사람, 긍정하지 않는 사람, 중도적인 입장인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사후세계의 경험을 부정했던 토론자는 어느 국가연구기관의 박사였었다.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과학이 풀어나갈 과학의 영역이라고 간단히 정리해버려 다른 의견이 들어설 틈을 주지 않는 태도가 거슬리게 보였던 걸로 기억이 된다.
그 책에 나오는 일화로 큰 교통사로고 사후세계를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를 사회자가 했다. 사고 직후 그 사람은 아무런 고통없이 교통사고가 처리되는 모습을 공중에서 지켜보고 있을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사고현장 뒤로 줄지어 서있는 차속에 사고를 당한 자신을 위해 기도를 하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고 한다. 고마운 마음에 차번호를 기억했었고 병원에서 퇴원한 후 고마운 마음에 직접 찾아가 인사를 했다는 이야기였다. 영혼의 존재를 수긍할 수 있는 이야기도 그 사람에게는 아직 풀지 못한 뇌의 기능일 뿐이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평소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과학적인 것으로만 이해하려는 관습때문에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과학적인 영역과 비과학적인 영역은 함께 설 수 없는 것일까? 과학이 가지는 긍정적인 면들을 수용하지 않을 이유는 없지만 모든것을 과학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것도 분명한 사실이 아닐까.
무속인들이 신에 들린 후 부터 가족들도 모르는 숨겨진 이야기들을 굿중의 무속인이 이야기 하기도 한다. 이미 숨진 사람이 어느곳을 거쳐 갔는지를 말하기도 한다. 모두 뇌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과학적인 입장에서 설명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일을 풀어가고 예측해가기 위해 과학에 대한 맹신에 빠지는 것과 함께 비과학적인 해석과 방법에만 매달리는 것도 피해야할 일이다. 이 책과 같이 과학적인 뇌분석으로 최소한 아인슈타인의 뇌가 일반인과 특별히 달랐기에 천재적인 이론들을 내놓을 수 있었다는 비과학적 이야기가 과학적으로 반박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토요일, 12월 08, 2007
갈데까지 가는 나라
차기 대선을 10여일 남기고 있는 이나라는 이미 대기업 재벌 집단들과 학계, 사법부 등의 사익추구형, 친재벌형 패거리 집단들이 서로의 이득을 맞추느라 이합집산하는 희귀한 광경 이외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모습으로 흘러가고 있다.
신문기사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냈었다는 이가 기업의 비리를 조사하느라 기업이 위험에 빠지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기사를 봤다. 더 자세히 읽어볼 필요도 없이 삼성문제를 대충 조사하고 지나가자는 말이었다.
또다른 기사에서는 대기업들이 최종 면접 시험에서 김용철 변호사에 대한 질문을 응모자들에게 던져 김용철을 "배신자"라고 부르는 이에게 가선점을 주는 한편 김변호사의 양심 고백을 비난하고 "조직 보호"를 내세우는 이에게 합격의 길을 열어준다는 이야기였다.
이런 이상한 일은 뉴스거리도 되지 않을 정도로 대한민국에서는 "상식"이 되어 버린 모양이다. 마피아 윤리의 "상식화"야말로 두려운 일이지만 이미 그렇게 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신자유주의가 1~20년 더 진척되면 대한민국의 모습이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최소한의 정의도, 양식도 없는 사회가 가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고 사회적 약자의 원인과 책임은 오로지 개인에게만 돌아가는 천박한 성공지상주의는 당연한 상식이 되어 있을 것이다. 정부를 든든한 자금관리와 경비를 맡아주는 집단 정도로 보고 관리하는 확대된 기업의 권력, 경쟁력·효율성을 위한 비정규직의 확대와 인력감축의 상시화와 이로인한 빈부격차의 확대와 고착화, 개발지상주의에 떠밀려 깍이고 없어질 숲과 동물들.. 이렇게 척박하고 살벌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이 이나라의 미래여야 할까?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남미식 경제파탄의 말로를 향해 가는 모습밖에 보이지 않는다.
합격하려면 그를 배신자라 부르라.
목요일, 12월 06, 2007
김경준, 귀신과 일을 벌였었나?
검찰의 BBK 수사 발표가 있었다. 이미 그들이 재계, 정치세력의 손바닥위에서 놀고 있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에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이번 발표내용은 너무 화가 났다.
검찰 수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법리적 판단의 대상이 아닌 도덕적 논란의 문제들까지 충분한 조사도 하지 않은 채 불과 20일이란 짧은 조사를 통해 서둘러 무혐의라는 판정을 내린 데 있다.
거짓말 논란의 핵심 사안인 ㈜다스의 실소유자, 그리고 도곡동 땅 주인 문제의 처리가 대표적이다. 이 부분에 대한 검찰의 발표가 사실이라면, 도곡동 땅 주인이 아닌 이명박 후보의 형 이상은씨가 남의 땅 판 돈을 다스에 갖다 쓴 것이 된다. 검찰은 지난 8월 도곡땅 주인이 이상은씨가 아닌 제3자라고 판단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의 땅도 아닌 제3자의 돈을 자신의 증자 대금으로 집어넣었는데, 제3자가 누군지를 밝히지 않는 게 말이 되는가?
하지만 검찰은 도곡동 땅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끝내 비켜갔다. 이 후보의 다스 소유 의혹에 대해서도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다른 의혹들에 대해서는 화끈하게 무혐의 결론을 내린 검찰이 왜 유독 이들 부분에서는 어물쩍 넘어갔는지 궁금하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장춘 전 필리핀 대사는 이명박 후보로부터 이 후보가 비비케이의 대표라고 적힌 명함을 직접 받았다고 증언했지만 검찰은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또 이 후보는 7년 전 비비케이 사업을 시작했을 무렵,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비비케이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지만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눈을 감았다.
검찰 수사의 신뢰성에 대한 의구심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검찰 수사의 생명은 공정성과 신뢰 확보에 있을 것이다. 검찰은 이번 사건 수사에서 법적인 책임과 도덕적 책임 부분을 명확하게 가려서 판단을 해야 했다.
검찰은 더 나올 게 없다고 봐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고 했지만, 과연 그게 최선이었는지는 양식있는 사람이라면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발표내용이다. 증거가 불충분한 부분은 결론을 유보한 채 추후 보강 수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신중한 결론을 내려야 했다. 그랬더라면 수사 결과 전반에 대한 신뢰 문제로까지 번지지 않았을 것이다.
검찰이 도덕적 논란을 포함해 모든 의혹들에 대해 결론을 내리려 했다면 적어도 이 후보와 그의 형 이상은씨를 불러 충분한 조사를 해야 했다. 의혹의 당사자인 이 후보에 대한 서면 조사 두 차례로 그가 직면하고 있는 도덕적 논란들이 모두 무혐의라고 결론을 내린다면 누가 그것을 믿겠는가? 검찰은 이번 수사를 통해 유력한 대권주자의 호감을 얻었을지는 모르지만 가장 중요한 이미 실추된 그들의 명예를 아예 땅에 파묻는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수요일, 12월 05, 2007
경제 살리기
유력한 대선 후보인 이명박 후보의 최후의 걸림돌로 보이던 BBK 사건의 중간 발표가 있었다. 예상과 다르지 않게 이명박 후보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방향으로 결론이 났다. 다른 대선후보들은 수사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발표를 했고 신당은 수사과정에 대한 특검까지 발의하겠다고 나섰다.
위장취업, 위장전입, 친인척들에 대한 부동산 개발 정보 누설 등 한국가의 대표자로써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들을 저질렀는데도 40%대의 확고한 지지율은 변함이 없다. 이제 검찰의 면죄부까지 주어졌으므로 그의 대선의 승리는 확정적으로 보인다.
일반인이 저질렀다면 절대 용납되지 않을 도덕적, 법률적 문제들을 가지고 있는 이명박 후보가 그토록 인기를 구가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내세우고 있는 '경제 살리기'에 대한 기대에 있다. 문제가 있는건 알지만 경제만 살려 준다면 무방하다는 생각들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두 아들의 병역문제 때문에( 이명박과 비교하면 문제거리도 아닌거 같다 ) 많은 표를 잃고 대선에서 패해야 했던 이회창 후보는 도덕성을 이미지로 들고 나왔던 상황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어야 했지만 경제살리기라는 화두를 들고 나온 이명박에게 도덕성 문제 따위는 애당초 고려사항이 되지 않고 피해도 주지 않고 있는 셈이다. 그 만큼 이명박에 대한 경제부흥의 기대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크다. TV에서 봤던 이명박 후보 지지연설자는 시간 내내 이명박이면 경제를 살려서 서민들이 살만하게 해줄 수 있을 것으로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나라 경제는 어떤 상황일까? 참여정부가 들어선 이후의 경제가 그 전보다 바닥으로 곤두박질 떨어지고 있는 걸까? 그래서 서민들의 삶이 더욱 힘들어 지고 있는걸까? 이런 간단한 의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자료를 찾아 봐도 우리나라 경제가 파탄났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참여정부들어 역사상 최고의 주가 상승, 국가신용도 향상, 외환보유고 증가, 한미FTA체결로 수출기업 살리기 성공, 대국민 정부서비스의 획기적 질적향상을 이룬 전자정부 완벽구현 등 성공적으로 국정운영을 집행했다. 주가상승, 국가신용도향상, 외환보유고증가, 국가부채감소 등은 역대 정권 비교 최고수준이고, 자주국방-자주통일 노선 때문에 미국 양키들과 다소간의 불협화음이 다소 있지만 ( 미국이 해달라고 하는데로 다 해주면서 그정도 반대 목소리마저 나오지 않는다면 그게 어디 나라라고 부를 수 있을까? ) 이라크파병 등 강력한 동맹국인 대미외교의 안정적 강화를 이룬 정권으로 부를 수 밖에 없다.
참여정부는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과 지지에 의해 생겨난 정권이다. 대통령과 정책입안자들은 그런 철학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었으며 오히려 보수세력들이 원하는 정책을 잇따라 내놓음으로써 지지했던 이들에게 실망과 분노를 안겨 주었다. 요즘의 경제적인 어려움은 기업활동의 결과로 생기는 이익들이 노동자들에게까지 골고루 돌아가는게 아니라 일부 계층으로의 집중이 심화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은 판단일 것이다. 일반 서민들은 경제성장의 과실들을 맛볼 수 없으며 그래서 더욱더 양극화가 깊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참여정부들어 더욱 심해지고 고착화 되어가고 있다. 대표적인 좋은예로 비정규직 법안의 통과와 한미FTA의 졸속추진을 들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의 실질성장률은 4.5% 수준이다. 반면 잠재성장률은 4.9%이다. 대한민국이 보유한 모든 자본과 노동, 기술을 투여해서 가능한 최대 성장치와 실제성장치의 차이가 0.4% 포인트 차이가 난다는 뜻이다. 즉,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해도 5% 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경제성장은 노동의 숙련도, 자본스톡의 투자증대, 기술혁신, 연구개발과 같은 변수에 의해 견인되는 것이지 대통령이 시민들이나 노동자들을 윽박지른다고 해서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어떤 후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이 1%이상 오를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차라리 허경영 후보가 말하는 제대로 걷지 못하고 있는 세금들을 확실하게 받아내 모든 신혼부부들에게 1억원씩 주겠다는 공약이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와닿는다.
사회의 구성원들이 살아가는 과정중에 생겨난게 경제이지 경제를 위해 나라가 존재하거나 국민이 있는건 아니다. 대통령은 경제뿐만아니라 국가의 전반적인 분야들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을 가지고 정책을 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다. 하지만 이명박 후보처럼 먼지 정도가 아니라 매연에 썩은 냄새까지 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그의 뻔뻔함이 무섭고 그걸 용인 해주는 사회가 무섭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절반 가까운 지지를 보내고 있는 이 사회가 무섭다.
근거 희박한 경제살리기라는 말에 현혹되어 도덕적, 법률적 가치들이 폄하되어 나라의 기강이 흔들리는 선택을 하는 일만큼은 막아야 한다. 경제살리기 때문에 판단력이 마비되고 도덕적 가치들이 무시되는 사회라면 더 이상의 희망이 없는 사회일 것이다.
화요일, 12월 04, 2007
ARTHUR - Artillery Hunting Radar
적 포병의 진지 및 공격 징후를 사전 탐지할 수 있는 대포병레이더가 스웨덴 SAAB사의 'ARTHUR'(ARTillery HUnting Radar)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미국과 이스라엘, 스웨덴 등 3개 국외업체가 경합한 결과, 군 작전요구성능(ROC)을 충족하고 수명주기 대비 비용 측면에서 경제성이 우수한 것으로 평가된 스웨덴 제품을 결정했다고 하는데 애당초 미국제품을 원했던 것으로 보이나 미국과 이스라엘의 경우 기술이전과 가격 부분에 문제가 있었던것으로 보인다.
대포병레이다는 적포병이 발사한 포탄이 탄착할 예상지점과 포진지를 파악하게 해주는 장비로써 정보화 전력이 가지는 가치가 커져가는 현대의 전장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장비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가 처음 도입을 결심하게 되었던 계기는 무엇보다 94년도에 북한 대표의 입에서 나온 "서울 불바다"때문이 아니었던가 싶다. 이미 남한과의 군사력경쟁에서 무너져 버린 북한은 더이상의 재래식 군비경쟁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비대칭 무기 확보에 나서게 된다. 수도권 일대를 겨냥한 장사정포를 배치하고서 군비경쟁의 주도권은 남한으로 넘어갔지만 전쟁이 벌어질 경우 자기들도 남한의 수도권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비대칭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거기서 나왔던 말이 앞서 말한 "서울 불바다"였다.
지하갱도시설에 위치한 장사정포들의 위치는 알려졌지만 갱도에서 나와 포격을 하는 포들의 위치를 정확히 판단해 보복포격을 통해 무력화 시키는게 시급한 문제로 대두 됨으로써 MLRS, ATACMS등의 전술 로켓, 미사일들과 함께 포병레이다를 서둘러 도입하게 되었었다.
서둘러 AN/TPQ-36를 사기는 했지만 도입후에 몇가지 문제점들이 노출되었다. 미국이 이 장비의 핵심기술을 한국에 제공해줄리는 만무한 일이었고 견인 트럭, 레이다, 쉘터의 세개의 파트로 구분되어 있어 우리나라와 같은 야지에서 운용하기에 제한이 있었다는 점이다. 더구나 평지에서와 달리 산과 구릉이 많은 지역에서는 제 성능을 100% 발휘하지 못한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어 왔었다.
대포병레이다 시스템은 존재 자체로써 북한의 포병에게 대단히 부담스러운 존재일 수 밖에 없는 존재다. 더구나 사격을 위해 지하갱도에서 나온 이후에는 별다른 방호시설 없이 포격을 해야 하는 그들로써는 대포병사격에 더욱 취약할 수 밖에 없다.
1차 걸프전때 이라크군의 경우 초탄을 쏜 야포가 2탄을 쏘지 못하고 대부분 파괴되다고 한다. 사격명령이 떨어졌음에도 이라크 포병들은 대포병사격의 두려움때문에 명령을 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초탄을 발사한 포대가 우선적으로 보복되는걸 목격하고서 사격을 할 수 있는 포병은 없었을 것이다.
Arthur의 추적 반경이 짧다는 의견도 있다. 장비 한대의 추적 반경이 40Km이나 여러대가 통합적으로 운영될 경우 더 늘어날 수도 있고 최대사정거리로 포격을 할일이 드물고 야포의 사정거리를 대부분 포함하기 때문에 운용하기에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추적 반경이 포의 사정거리보다 길어야만 제역할을 할 수 있는건지는 모르겠다. 포탄이 비행하는 일정 영역만 커버할 수 있으면 될거 같은데 이부분은 좀더 자료를 찾아 봐야 겠다.
장비사양
최대 추적 반경 : 40 km
탐색 면적 : 1600 miles
추적 능력 : >100 target/min
레 이 다 : Passive Phased Array
Transmitter : TWT (Travelling Wave Tube) air cooled
Receiver : MTI with adaptive wind compens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