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대한 기사를 읽었다. 그 기사를 본 후 아옌데 대통령의 동상이 있는 모네다궁 앞에 가서 꽃한송이 바치고 싶어졌다. 기념사진 찍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의 동상앞에 서서 사진 한장 찍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가 꿈꾸던 좌파정권은 자리를 채 잡기도 전에 좌절되고 말았다. 세상은 레드컴플렉스에 휩쌓여 있었고 자기 발밑에 좌파정권이 들어서는걸 용납할 수 없었던 미국은 칠레가 가진 자원들의 가치를 무력화 시키며 옥죄어 나간다. 그리고 군부를 자극해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결국 그들의 꿈을 짓밟아 버렸다.
짤막한 기사를 통해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감동을 받았던건 저열한 인간들의 탐욕을 넘어서는 인간의 숭고한 가치를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탐욕과 절망으로 점철되어 더이상의 희망이 존재하지 않을거 같지만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숭고한 영혼들도 있다. 자진해서 유태인들을 나치에게 넘겼던 이들이 있었던 반면에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이 끝날때까지 그들을 보호해준 이들도 있었던 것이다.
대통령이 사는 모네다궁을 탱크와 비행기로 포위한 군부는 대통령의 국외 탈출을 권유했으나 아옌데는 단호히 거부했다. 그리고 죽음으로 맞서며 라디오 방송을 통해 칠레 국민에게 한 최후 연설 내용. 아옌데 대통령이 꿈꾸던 신생 좌파정권은 실패했으나 그 꿈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계속해서 영역을 확대해갈 것이다.
“역사적 순간에 서서 저는 민중의 충성에 대한 빚을 갚기 위해 제 목숨을 바치려 합니다. 그들은 무력을 갖고 있으므로 우리를 노예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의 전진은 범죄로도 무력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고, 민중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머지않아 위대한 길이 다시 열리고 이 길로 자유인들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걸어갈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칠레 만세!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저의 마지막 말입니다….”
☞ 기사원문
☞ 관련내용
☞ 아옌데 대통령 추모 싸이트
화요일, 9월 15, 2009
아옌데 대통령
금요일, 9월 11, 2009
특전 U보트( Das Boot )

이 영화를 처음 봤던게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없는 용돈을 억지로 만들어 친구와 같이 영화관을 찾았다. 순전히 프라모델로 만들었던 U보트가 나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보러 갔던 영화였다. 그러나 영화는 당시 TV시리즈로 인기를 끌었던 '전투'나 2차 대전영화와 같이 단순히 적군과 아군이 싸우는 단순한 구조의 내용이 아니어서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U보트가 연합군의 구축함에 속절없이 당하다가 결국 침몰하고 마는 모습을 보고서는 영화전 신났던 마음마저 침울하게 변해서 극장을 나서야 했었다. 얼마전 EBS에서 이 영화를 방송하는걸 다시 봤다. 그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장면들의 이해를 통해 심란한 마음으로 극장문을 나섰던 마음을 이해 하게 되었다. 입구에서 괜히 초등학생들을 막아섰던게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장면이 있다. U보트가 연합군측 상선 세척을 향해 연달아 어뢰를 명중 시킨다. 곧 반격에 나선 연합군의 구축을 피해 잠수를 한다. 6시간 동안 연합군 구축함의 추격을 무사히 피한 U보트는 그들이 공격한 상선의 피해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부상한다. 그러나 세척중 한척이 여전히 불이 붙은채 그곳에 있었다. 침몰할거 같지 않은 그 유조선을 향해 다시 어뢰를 발사한다. 배위에서 그때까지 구조를 기다리고 있던 선원들이 바다에 뛰어 들며 그들을 격침시킨 U보트를 향해 살려달라며 헤엄쳐 오기 시작하지만 함장은 더이상의 인원을 수용할 여력이 없다며 구조를 하지 않는다. U보트는 아군과 적군 모두에게 버림받은 선원들을 애써 외면하며 무거운 분위기속에서 그곳을 벗어난다.
그 장면에서 또 다른 전쟁영화 씬 레드 라인"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는 곳을 향해 가던 미군들 앞으로 원주민 한명이 아무런 상관도 관심도 없는듯한 모습으로 터벅터벅 지나가던 그 장면. 전쟁은 국가와 민족을 위한 성스러운 것이라 정치가들은 선동하지만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에서 개별 구성원들은 전쟁의 부속물에 불과하다. 누가 점령군이던 상관없는 원주민이 미군앞을 무심히 지나가는 모습처럼 전투 당사자들의 문제가 아닌 나머지 '전쟁 부속물'들의 사정따위는 애당초 관심밖의 일이다. 연합군측의 상선이 침몰을 보면서도 구조를 하지 않았던 구축함들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그때까지 봐오던 2차대전 영화속의 독일군은 연합군 앞에서 추풍낙엽같은 존재이거나 감정이입의 여지가 없는 모습으로 그려졌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특별히 '어느편'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독일군이던 아니던( 연합군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았을 것이다 ) 잠수함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전쟁 수행의 모습을 통해 전쟁과 개인의 의미를 짚어 보게하는 수작으로 평가하고 싶다.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는 즐거움, 나이 먹는 즐거움을 알게 해준것도.
금요일, 9월 04, 2009
수요일, 9월 02, 2009
늑대 '아리' 사살
얼마전 우리를 탈출했던 늑대 '아리'가 사살됐다는 뉴스가 있었다( ☞ 관련기사 ). 총에 맞아 죽은 '아라'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평생 우리속에만 있는 동물이 비단 늑대뿐은 아니지만 야생의 습성이 살아 있는 늑대에게는 얼마나 더 큰 고통이었을까. 탈출후의 짧은 외출의 마지막 자유를 제대로 누렸기를 빌었다. 야생의 습성을 가진 굶주린 늑대가 일으킬지 모르는 상황들에 대한 부담감에서 사살을 결정한 담당자들의 심정도 이해한다. 평생 우리속에 살던 늑대가 얼마나 위험한지 의문은 들지만 아마 내가 그자리에 있어으면 같은 결정을 내렸을거 같다.
90년대 말이었다. 경북 구미에서 잠시 동안 일을 할때 였다. 근처 관공서 알림판에 붙어 있었던 늑대를 목견한 이를 찾는 다는 포스터 한장을 보고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 야생동물이라고는 산토끼 정도 밖에 살지 못할 정도로 구석구석이 개발된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야생 늑대를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속에 가둬 키우던 늑대 한마리를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자연은 본질을 잃어 버렸구나 하는 씁쓸함이 든다.
뉴스에서 멸종한 동물들을 복원한다는 소식을 간간이 듣게 된다. 그러나 복원한 동물이 살아갈 자연이 없는 상태에서의 복원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구에서 원래는 그들도 함께 살아가는 존재 들이었음을 수용하고 그런 모습들이 당연한일로 받아들이게 되는 일은 불가능한 공상일까. 풍경좋은 경관의 기능으로써의 자연이 아닌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그런 숲을 가진 곳.
96년 늦봄이었다. 그때 산악회에서 같이 활동하는이와 북한산위쪽으로 한북정맥으로 이어진 호명산에 있던 폐군부대 건물에서 하룻밤을 묵었었다. 늑대 특유의 울음 소리를 듣고서 잠을 깼었다. 내 귀를 의심했었다. 같이 있었던 이도 역시 의아해 했다. 그때 그 소리는 뭐였을까. 집나간 개가 외쳤던 소리일까. 아니면 진짜 늑대였을까.
금요일, 8월 14, 2009
UP
대사 한줄 없이 이어지는 장면이 어찌 이리 사람의 삶을 애잔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아이들을 위해 보러 간 영화였지만 첫부분에서 뜻밖의 감동을 받았다. 여덟살 소년 칼과 엘리의 만남으로 영화는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마이클 지아치노 (Michael Giacchino)의 음악과 함께 대사 한줄없이 둘의 일생을 압축적으로 그려 나간다. 모험가 찰스 먼츠가 찾았던 곳을 가기 위해 만든 저금통이 생활의 질곡에 따라 깨지고 다시 쌓이는 모습을 통해 같이 나이를 먹어간다. 그리고 엘리가 항상 먼저 오르던 언덕길을 칼의 손에 이끌려 오르다 결국 엘리는 쓰러지고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만다. 78세의 노인이 된 칼은 양로원으로 가기직전 엘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풍선으로 집을 띄워 폭포위를 향해 날아 간다.
이 오프닝 장면은 영화의 감독이 아이들과 함께온 부모를 위해 배려한 장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본 아이들도 본격적인 '액션'이 벌어지는 후반부를 재미있게 기억 했고 감동을 느꼇던 부분은 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수요일, 7월 29, 2009
E-P1이 사고싶어졌다
토요일, 7월 18, 2009
어느 봄날의 기억

지난 봄 중림동 약현성당을 찾았었다. 근처에서 일을 했을때 점심식사후 사진속의 벤치에서 커피한잔 뽑아 마시며 편안히 쉬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떤 곳을 다시 찾았을때 그때의 기분을 느끼는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닌거 같다. 초대받지 못한 어색한 기분이 들어 곧 나와서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성당후문으로 나오는 길이었다. 성모상앞에 흩어져 있는 목련잎들이 눈에 들어왔다.
Kelly Kettle형 주전자들

칭다오의 시장에 갔더니 Kelly Kettle형 주전자들을 아주 쉽게 볼 수 있었다. 화석연료를 쉽게 사용하기 힘든 지역이라면 아주 유용한 방식의 주전자인거 같다. 비슷한 시기를 지내온 우리나라에는 이런 물건이 없었다. 끓는 물만 있어도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식습관의 차이가 이런 물건의 발명을 이끌어 내지 않았을까 싶다. 부피가 나갈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문제이긴 하지만 어떤 날씨에서도 물을 끓일 수 있는 효율성에서는 최고의 도구일 것이다.
화악산을 다시 찾아갔다
화악산을 다시 찾았다. 촉대봉에서 매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매봉정상의 군부대 때문에 인적이 드문 편이었다. 그래서 아주 깊은 산속에 들어온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요즘은 찾는이가 늘어나서 인지 길의 흔적이 비교적 뚜렷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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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hBuddy를 사용해 간단한 조리를 했다. 그리고 혼자 있는 숲속의 어둠을 은은히 밝혀 주며 위안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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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봉에서 이칠봉으로 이어지는 군사도로의 흔적이다. 요즘은 사용하지 않는 곳이 되었는지 길의 흔적이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이길을 따라 가다 멧돼지 일가족과 마주쳐 가슴을 쓸어 내리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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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낸 사람 화악산산행 |
목요일, 7월 16, 2009
8,000미터급 14좌, '세계최초'를 향한 비극
고미영씨가 8,000미터급 봉우리 14개를 등정하는 기록에 도전하던중 하산길에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월요일 아침이었다. 그 뉴스를 듣는 순간 안타까움과 함께 화가 났다.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위한 스폰서들의 경쟁과 압박이 빚어낸 사고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산이 좋더라도 그정도 고봉을 다녀오면 피로감이 적지 않았을텐데 일년에 8,000미터급 봉우리를 대여섯개씩 오르는걸 고미영씨와 오은선씨 스스로 원했을리 없을거 같다. '세계 최초' 타이틀을 위한 스폰서들의 과당 경쟁과 압박이 그들을 그렇게 내몰았을 것이다.
박영석씨가 남극점을 밟으면서 산악계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했을 때였다. 그때 때마침 14좌 등정의 경쟁자였던 엄홍길씨는 에베레스트에서 조난당해 숨졌던 고 박무택씨의 시신을 수습하는 '휴먼원정대'를 꾸려 떠났다. 아무도 공개적으로 뭐라 말하지 않았지만( '휴먼 원정대' 아니었던가 ) 나는 영원무역( 박영석씨의 스폰서 )의 성공을 물타기 하기 위한 트렉스타 측의 작전이 개입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강하게 가졌던적이 있다. 물론 그런일이 실제 있었다 하더라도 엄홍길씨의 개인적인 사심에서 비롯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또한 스폰서들간의 과당 경쟁과 견제가 배후에 있을것이라 여겼었다.
제국주의가 기성을 떨칠때 서구의 열강들은 각국의 강인함을 선전하기 위한 목적에서 경쟁적으로 히말라야의 고봉들을 오르기 시작했다. 등반의 내용, 도덕성 따위는 '세계 최초'의 타이틀 아래에 묻힐 수 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포터와 세르파들의 희생은 이야기 깜냥도 되기 힘들었다. 어떻게든 등정을 하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국가의 든든한 지원을 기반으로 한 대규모의 물자를 동원하는 '극지법'등반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는것이 목적이었다. 그리고 등정은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조국'에 바치는 '애국'활동이었다.
그러나 등반스타일도 세월과 함께 바뀌었다. 이제는 어느어느 봉우리를 올랐다는 것 보다는 얼마나 알차고 참신한 내용으로 오르지가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세계는 굳이 '14좌 등반', '세계 최초', '여성' 따위의 타이틀에는 그다지 관심 없어 보인다. 상업적 성취를 위해 희생을 감수하면서 정상을 오르는 행위는 이제 자제되어야 한다. 또 스폰서의 자금 지원, 대규모 인원, 셀파와 고소 포터, 산소, 고정 로프, 위성 통신을 사용하거나 이용하는 등반은 지양되어야 한다는 기준이기도 하다.
이런 흐름의 변화는 프랑스의 세계적 산악잡지 <몽타뉴>와 유럽고산등산협회가 해마다 뛰어난 등반가에게 주는 '황금피켈상'의 규정에도 나타난다.
황금피켈상 심사규정
1. 엘레강스한 등반 스타일인가?
2. 창의력과 혁신성이 있는가?
3. 탐험정신이 있는가?
4. 독창적인가? 남의 도움을 받았는가?
5. 원정대의 자율성이 있는가?
6. 고도의 등반기술이 있는가?
7. 참여와 자율성.
8. 위험한 등반행위는 아니었는가?
9. 파트너와 지역 원주민을 보호했는가?
10. 자연보호를 실천했는가?
일본이 17회 황금피켈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이팀의 등반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등반 장비만 봐도 구곡이나 토왕성 폭포를 등반할때의 것과도 별반 차이가 나지 않을 만큼 간결하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관심밖인 듯한 '7,000'미터급을 올라서 세운 기록이다.
Karmet(7756m) 남동벽 - 카주야 히라이데, 케이 타니구치(여)로 이루어진 혼성팀이 카멧 남동벽에 신루트를 개척했다. 카멧은 인도와 티베트의 국경에 있는 가르왈히말라야 제2위 고봉이다. 이들은 2008년 9월 28일 등반을 시작해 7박 8일간 남동벽 중앙을 알파인스타일로 등반, 10월 5일 정상에 섰고 1박 2일간 하산했다. 이들이 사용한 장비는 1.5킬로그램 텐트 1동, 50미터 로프 2동, 에일리언 1조, 주마 1조, 스크류 5개, 하켄 5개 등이었다. 신루트명은 사무라이 다이렉트다.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에 목매어 있는한 이런 안타까운 죽음은 또 다시 나올 것이다. 피할 수 있는 사고는 피해야 한다. 에베레스트에 하루동안 수백명씩 오르는 날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이제는 '결과' 보다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