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5월 29, 2008

화악산-촛대바위길

자연에 존재하는 야생의 것들 가운데서 사랑할 만한 것, 경이를 품을 만한 것, 숭배할 만한 것을 찾아낸 사람은 운이 좋다. 무한한 즐거움과 신선함의 원천으로 가는 길을 찾은 것이기 때문이다. :: 휴 B.코트,『동물의 적응색』(1940)

내게는 화악산이 있다. 어디에서도 충족되지 않는 신비한 느낌을 화악산은 내게 준다. 화악산을 알게되고서 몇번을 갔는지 가물가물 하지만 항상 그곳의 구석구석을 찾아 다니고 싶어하는 마음을 품어왔다. 그리고 화악산은 최근에서야 그가 가진 비경을 조금씩 내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화악터널에서 길을 따라 내려오면 길이 크게 휘어지어 꺽어지면서 촛대바위가 나타나고 숲사이로 자그마한 폭포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그위로 살짝 보이는 계곡위쪽으로 이어지는 길들이 항상 궁금했었다. 인터넷을 뒤져도 좀처럼 산행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 그곳을 다녀온 이야기를 찾아서 산행정보를 물어도 도움될 만한 대답을 받을 수 없었다. 사창리의 택시기사에게 물어도 그쪽으로는 가지말고 차라리 다른쪽을 가라는 권유를 해왔었다. 지형도를 구입해 봐도 등로 표시는 없었고 초입의 능선 우측으로는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 불안감을 더했다. 찾는이가 많지 않은 길을 구체적인 정보없이 찾는건 내게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출발전의 심란한 마음들을 정리하고 초입을 찾아 나섰다. 뚜렷한 족적이 있는 길은 없었고 대충 무리없이 오를 수 있는 곳을 찾아 능선까지 가기로 했다. 어떤 사연으로 그곳에 있게된건지 모를 소의 머리뼈가 있는 곳에서 오르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눈에 띄는 족적을 찾을 수 있었다. 이후로는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처음에 눈에 띄었던 길을 별생각없이 따라가다 보니 애당초 목적했던 능선을 많이 벗어났지만 선녀폭포 위쪽으로 이어지는 계곡의 비경을 맛볼 수 있는 행운을 얻을 수 있었다. 매봉에서 이칠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안부에서 발원된 계곡은 태고적 느낌과 비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후 다시 능선으로 붙을 생각을 하고 사면을 오르기 시작했다. 족적이 거의 없었지만 별다른 어려움 없이 능선까지 갈 수 있었고 이후부터는 희미하게 나있는 발길을 따라 1390봉의 안부까지 오를 수 있었다.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는 그림들을 현실 속에서 찾으려 한다는 것은 얼마나 역설적인가···· 특정한 이미지에 대한 기억이란 특정한 순간에 대한 회한일 뿐이며, 집들, 길들, 도로들은, 애석하게도, 세월만큼이나 손에 잡히지 않는다. :: 마르셀 프루스트,『스완네 집쪽으로』

1991년도 진지보수공사때 한달간 숙영했던 곳을 찾았다( 이번 산행의 목적이기도 했다 ). 그때 이후의 삶에서 산에 경이감을 갖게 하고 화악산을 숭배하게 했던 곳이다. 처음엔 그냥 지나쳤었고 몇번을 오고 간 후에야 겨우 그곳임을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작전개념이 바뀌었는지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던거 같았다. 풀과 잡목들이 군데군데 키만큼 자라있었고 맑은 물이 솟았던 샘물은 보이지 않았다. 그토록 애타게 그리워했던 곳인데 좀 허무한 기분이 들었다.

그곳에서 중식을 한후 이칠봉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었다. '가을편지'를 콧노래로 부르며 오가던 군사도로는 가장 아름다운 길로 남아있을 것이다. 용담계곡으로 하산하려던 계획을 바꿔 샘치골로 빠졌다. 진한 더덕향이 하산하는 동안 내내 코를 찔렀다. 조금씩 비경의 속살을 보여주기 시작한 화악산은 앞으로도 계속 내영혼의 쉼터이자 경이와 숭배의 대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