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4월 30, 2008

정답없는 세상

다음은 프랑스 ‘고등학교 졸업 시험'의 일부라고 한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사랑이 의무일 수 있는가?
죽음은 인간에게서 일체의 존재 의미를 박탈해 가는가?
역사가는 객관적일 수 있는가?

철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예술이 인간과 현실과의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
무의식에 대한 과학은 가능한가?
현실이 수학적 법칙에 따른다고 할 수 있는가?
권리를 수호하는 것은 이익을 옹호하는 것과 같은 뜻인가?
정의의 요구와 자유의 요구는 구별될 수 있는가?

다름은 곳 불평등을 의미하는 것인가?
평화와 불의는 함께 갈 수 있는가?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것에도 가치가 존재하는가?
종교적 믿음을 가지는 것은 이성을 포기한다는 뜻인가?
진리가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할 때 진리 대신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환상을 좇아도 좋은가?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20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위질문의 절반도 생각해보지 못했던거 같다. 질문들의 요지는 세상살이에는 딱히 정답이 없고 끝없는 성찰이 필요하다는걸 사회의 문턱으로 나서는 이들에게 각인 시켜주는 목적도 있었을거 같다. 수많은 현자들의 말씀들 통해 '이거다' 하는 말들을 들을 수 있지만 현실의 삶에 대입시키는 과정중에 희석되어 없어져 버리거나 곧 약발을 잃게 되고 만다.

세상일에 정답이 없다는걸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도 30대를 훨씬 넘어서였다. 그 전까지는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라고는 없었다. 오로지 세상의 정답을 향해 저돌적으로 나가고 있었다. 개인적인 두뇌회전력의 부족에 제일 큰탓이 있겠지만 고등학교 까지 이뤄지던 공교육에도 책임이 일부분 있을 것이라고 본다. 프랑스 학생들이 위와 같은 삶의 본질에 닿는 질문들을 받으며 사회로 나서고 있을 무렵 나는 '대학에만 가면 된다. 그때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말들을 들으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대에 몇명이 들어갔는지가 중요하던 그곳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재능은 뭐고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곰곰이 사유하고 각성할 기회 라는게 애당초 없는 곳이었다. 공교육은 그런거 하라고 존재하는게 아닐까? 하여튼 그렇게 서른 넘어서도 자신이 누군지, 원하는 게 뭔지 모르는 사람이었고 사지선다형 답안에서 답을 찍어낼 궁리를 하며 헤메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의 진정한 가치는 상상속의 것이든 진짜이든 진리를 소유하고 있는지 여부로 결정 되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에 의해 결정된다. 진리의 소유 여부가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능력이 점점 커지고, 계속해서 더 완벽해질 수 있는 가능성도 생기게 된다. 소유는 사람을 수동적이고 게으르게, 오만하게 만든다. 만약 하느님이 오른손에는 모든 진리를, 왼손에는 비록 끊임없는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꾸준히 부지런하게 진리를 추구하려는 열정을 감춰 쥐고서 내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겸손하게 왼손을 택할 것이다.
고트홀트 레싱Gothhold Lessing, <<안티 괴제Anti-Goeze>>(1778)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불확실한 미래에서 오는 불안감을 눌러가며 묵묵히 살아 가야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그렇게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까. 삶의 정반합의 변증법적 과정일 것이다. 삶에 정답이 있다면 세상은 또 얼마나 삭막하고 각박 해졌을까? 그래서 이 뒤떨어지는 지력을 소유한 이도 불확실한 세상뒤로 숨어들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칼럼] 인간과 세상에 대한 교육

화요일, 4월 29, 2008

종교는 인민의 아편?

마르크스를 부정적으로 말할때 자주 인용되었던 말이었다. 종교자체를 부정하는 무자비한 공산당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말의 앞뒤를 자름에 따라 의미가 크게 달라지게 된다. 이 말도 마찬가지의 것이었음을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신은 위대하지 않다'를 읽으면서 몇페이지 넘기지 않아 그 말의 출처가 담긴 인용구를 만나게 되었다.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종교적인 고뇌는 진짜 고뇌의 표현이자 진짜 고뇌에 대한 '항의'이기도 하다. 종교는 억압받는 창조물의 한숨, 무정한 세상의 정이다. 종교가 생기 없는 상황에서 생기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사람들에게 환상 속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종교를 폐지하는 것은 진정한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현실에 대한 환상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곧 환상이 필요한 현실을 포기하라는 뜻이다. 따라서 종교비판은 아직 제대로 발전하지는 못했지만 고뇌의 계곡에 대한 비판이며, 그 후광이 바로 종교이다. 비판은 사슬 속에서 진짜가 아닌 상상 속의 꽃들을 솎아냈다. 인간이 환상도 위안도 얻지 못하고 사슬에 묶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슬을 떨쳐버리고 진짜 꽃을 딸 수 있게 하려고.
헤겔의 법척학 비판을 위하여( Contribution to the Critique of Hegel's Philosophy of Right) 중
마르크스는 종교를 일방적으로 폄하한게 아니었다. 일반인들에게 위로와 위안을 주는 나름대로의 가치를 인정했다. 그러나 현실의 모순을 적극적으로 고쳐나가기 위해서는 현실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종교의 자세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잠시 비껴 설 수는 있지만 부조리를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것이 없는 종교를 아편에 비유했던 것이다.

한때 종교를 가졌던 적이 있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꽤 진지하게 생각하고 다녔던거 같다. 보통의 아이들보다 죄책감 같은 것도 많이 가졌던거 같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는 발길이 뜸해지다가 어느 순간부터 별다른 이유없이 완전히 끊어졌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난후 다시 다녀야 겠다는 생각에 근처의 장소로 나갔었으나 '이건 아닌데..'하는 회의감이 계속 커져 다시 발길을 끊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 않는 하느님과 예수님의 말씀들. 사회와 동떨어진 듯한 강론내용들에서 괴리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대체로 종교들이 비난을 받는 이유는 그들이 모시는 신의 가르침과는 다르게 행동하는데 있다. 신의 전지전능함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것처럼 말을 하지만 종교는 개인의 불안감을 자극해 오로지 교세확장에만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종교들이 현실의 문제 앞에서는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작년 여름에 온나라를 떠들석하게 했던 아프칸 인질사태를 봐도 그렇다. 자기를 믿는 신도들이 이교도의 손에 잡혀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데 그 위대한 신은 도대체 뭘하고 있는 것이었을까. 종교가 말하는대로 라면 하늘나라로 먼저간 이들이 오히려 더 행복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때 내가 사는곳 근처에 있던 그 교회의 십자가를 보는 느낌은 허무 자체였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이상 종교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종교는 이런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알고 이용한다. '사후세계', '영적인 세계'들에 비교적 관심이 많고 대체적으로 인정을 하는 편이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말들에 맹목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종교는 틀렸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 맞다. 사람은 이성을 포기하는 순간 악마가 지배하게 된다.

사람들이 자신의 어수룩함과 군중 본능, 남을 경솔하게 믿어서 속아 넘어가고 싶다는 소망 또는 욕구를 어떻게 드러내는지 알아차리는 것은 속물적인 행동이 아니다. 이것은 고대에도 문제였다. 어수룩하게 잘 속아 넘어가는 사람은 어쩌면 순수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성질이 그 자체로는 아무런 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악한 사람, 영악한 사람들에게 이것은 어서 와서 형제자매를 이용하고 착취해달라는 초대장이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인류의 커다란 약점 중 하나가 된다. 끈질기게 사라지지 않는 이 현상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종교의 성장과 끈질긴 생명력, 또는 기적과 계시가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정직하게 설명할 도리가 없다.


크리스토퍼 히친스, 김승욱(번역)| 알마 | 25,000원

이책을 읽고서 비로소 더이상 벽에 걸어놓을 일이 없던 '십자가' 하나를 마음편하게 버릴 수 있었다. 버려야 겠다는 생각을 몇번 했었으나 왠지 가슴에 걸려( 벼락이라도 맞을거 같은 ) 몇년째 따라 다니던 것이었다. 아직 까지는 아무일 없다.

수요일, 4월 23, 2008

변진섭 - 그대에게



봄이면 듣고 싶은 노래중의 하나가 변진섭의 '그대에게'다. 이노래를 들으면 북한강에서 맞이 했던 91년의 봄이 생각난다.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시찰하기로된 진지공사로 부대는 두달가까이 화천읍건너편의 KBS송신소 근처에서 숙영을 했다. 숙영지 아래로 보이는 북한강의 물결과 녹색으로 물들어 가던 나무들의 싱그러운 풍경이 노랫말과도 참 잘어울렸다. 용화산을 지나 춘천으로 가는길의 끝으로 가보고 싶던 호기심과 길가에 있던 '소망교회'의 아늑했던 기억도.

목요일, 4월 17, 2008

우열반의 추억

공부에 소질이 없었던 내게 학창시절은 좋은일 보다는 가슴아픈 일들이 더 많이 추억으로 남아 있다. 몇일전 유쾌하지 못한 그때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중간고사를 마친 후 성적이 나올때쯤의 어느날 오후 자율학습시간이었다. 담임이 들어오더니 몇몇이들의 이름을 부르더니 아무 설명없이 복도에 나가 '없드려 뻗쳐'를 시켰다. 호명된 이들이 모두 나왔을 무렵 남은 학생들에게 담임의 설명이 있었다. '지금 나간X들은 성적이 00등 이하다!'. 그에게 호명된 이들은 자기가 관리해야할 학생이 아니라 반전체의 평균성적을 떨어뜨려 교사로서의 그의 실적에 피해만 입히는, 그래서 교실 밖으로 내쫓아 버리고 싶은 존재일 뿐이었던 것이다.

가끔 '10년후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불안한 미래를 그려 볼때가 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앞서 말한 기사를 보면서 세상은 그렇게 빨리 변하지 않고 오히려 더 퇴보할 수도 있다는걸 알 수 있었다. 20년전의 교실에서 당해야 했던 잊혀지지 않는 모멸감을 이제는 정부가 앞장서서 권장을 하고 있다.

'0교시 수업'과 '우열반'을 완전히 '자율화'하겠다는 말은 언뜻 그럴 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학생들을 괴롭히고 심지어 죽음으로 내모는 것의 자율화'가 될 위험이 너무나 크다. 오로지 성공은 곧 돈이라는 거. 돈 없으면 무시당한다는 거. 그 경쟁에서의 낙오는 인생 실패를 의미한단 거. 그렇게 경제논리로 일관된 협박과 회유로 훈육되는 사회 분위를 그대로 쫓아 오로지 입시에만 목을 매달고 있는 학교는 이미 전인교육 기관으로써의 위치를 잃은지 오래된 일이다.

우리나라는 기초적인 사회안전망 조차 없다. 초식동물의 군집마냥 가장 뒤처지는 놈이 포식자의 먹이가 되어 나머지의 안전이 잠정 담보되는 시스템이다. 거기에 공적 신뢰 따윈 없다. 결국 끝줄에 서지 않으려 끊임없이 서로를 경계하며 두리번거리는 왜소하고 불안한 낱개들만 남을 뿐인 평균적인 삶을 교육시키는 학교에 '0교시 수업'과 '우열반'의 자율을 부여하게 되면 어떤 자율을 행하게 될지 너무도 뻔한일이지 않을까.

병적인 지경에 이른 이 나라의 학벌경쟁 때문에 부모들은 아이들의 성적이 떨어져서 '낙오자'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며 매일매일 가시방석 위에서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이들에게 사교육을 시킨다. 아이들은 과중한 학습 부담과 과열 경쟁으로 고통받고, 부모들은 과중한 사교육비와 불안으로 고통받고 있다.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늘어놓고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학벌사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일은 꿈나라의 이야기일 뿐일까. 20년전 일찌감치 교사들의 실적에 도움이 되는 '좋은 대학'으로의 진학은 나랑 상관없는 일이 되었었다. 교사들은 그저 내가 무사히 졸업만 하면 그만인걸로 여기고 출석만 해있으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비루한 생활이 이어지고 있을때 때아닌 곳에서 위한을 얻을 수 있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 잖아요'라는 글을 남기고 목숨을 끊은 학생의 글과 연극을 보면서 였다. 죽은 이의 이야기를 듣고서 위로를 얻었다니 참 잔인한 나였고 시대였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쟎아요

행복은 그 잘난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매일같이 공부 또 공부 지옥같은 입시전쟁터
어른들의 그 뻔한 얘기 이젠 정말 싫어요
행복과 성적이 정비례하면 우리들의 꿈은 반비례잖아요

행복은 그 잘난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자율학습 또 보충수업 시험 시험 시험 입시전쟁터
세상은 경쟁 공부 대학 출세 명예 돈
서로 서로 사랑 하고 나줘주는 세상은 어디

행복은 그 잘난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내 무거운 책가방속에 무엇이 들었을까
아주 공갈 사회책, 따지기만 하는 수학책,
외우기만 하는 과학책, 국어보다 더 중요한 영어책,
부를게 없는 음악책, 꿈이 없는 국어책

얼마나 더 무거워져야 나는 어른이 되나
얼마나 더 야단맞아야 나는 어른이 되나

행복은 그 잘난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1번 2번 3번 4번 넷 중에서 행복은 몇번
우리들 살고 싶은 사랑 가득한 세상
내 무거운 책가방 속엔 행복은 없고 성적 뿐이죠
행복은 그 잘난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화요일, 4월 15, 2008

BEAR GRYLLS knife

등산용 칼이라면 아미나이프밖에 없는줄로 알았었다. 그 생각에 처음으로 '칼'을 들이댔던게 Man vs. Wild였다. 주인공이 조난 상황으로 뛰어들때 항상 휴대하던 세가지 도우였던 '칼, 수통, 부싯돌'을 보면서 아미나이프로 좀 두꺼운 나무를 건드리면 왠지 부러질것 같은 느낌이 괜한 생각은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Bear Grylls는 휴대한 칼로 나무 가지를 꺽는 정도를 넘어서 왠만한 나무 한그루를 쓰러뜨리는 용도로 쓸 수도 있었고 생각외로 다용도로 활용했다. 그 프로그램을 처음 보면서 왜 아미나이프를 휴대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자연 스럽게 풀렸다. 만능 칼은 모든걸 만족 시켜주는듯 하면서도 모든 기능에 '결핍'이 개입되어 있었다.

그가 항상 휴대하는 칼은 Bayley Knife라는 회사와 'Man vs. Wild'등의 프로그램을 찍으면서 함께 만든 칼이었다. 작고 단단한 그 칼을 나도 하나 가지고 싶지만 판매가만 70만원 정도에 배송비, 관세등을 따지면 100만원에 육박할것 같아 그냥 맘편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아니 가지고 싶은 장비의 서열 저 바깥쪽으로 밀려 나고 말았다.

그 칼에 대한 호기심은 어쩔 수 없어 그 싸이트에 들어가 소개글을 허접한 실력으로 번역을 해봤다.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The knife - one of man's oldest tools, born out of necessity in his hunt for survival. Times have changed - and so has technology - but to some of us, the knife is still a prime possession. A possession that gives great satisfaction from its ownership and use, knowing that it was given life by a man뭩 mind eye and hand in a time honoured tradition - but with the best of modern materials which can survive generations."

" ... 칼 -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냥에서의 필요로 태어났으며 사람이 사용한 가장 오래된 도구중 하나이다. 시대가 바뀌었고 많은 기술이 발전했지만 일부의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소유물이다. 칼은 많은 세월을 지나며 그때마다 최고의 재료를 통해 만들어져 가며 이어져 왔다. 그렇게 사람의 마음, 눈, 손을 거쳐가며 발전되어지는 영광스러운 전통을 거쳐가면서 그것만의 의미를 가지게 된걸 안다면 본인의 칼을 소유하고 사용는것이 얼마나 큰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인지를 알것이다. ... "

Rob Bayley - 제작자의 말.

This practical hand made model was designed in collaboration with Bear Grylls for the 'Man vs. Wild' and 'Born survivor Bear Grylls' TV series. This is 'Bears knife of choice', and as you would expect, it is made to last thanks to a strong full tang assembly method featuring a unique one piece guard.

The design criteria demanded a knife that was not too large, remaining light and slim enough to be carried unobtrusively without getting in the way, yet still perform when required.

Check out the cool bead blasted handle to aid grip, also the hand polished clip point blade made from RWL swedish powder steel for serious use. It comes with Bear's action sheath featuring horizontal carry with extra knife detainment, or on request a traditional full leather pouch-type sheath can be supplied.

Please note: this knife is designed to be used primarily as a high quality cutting tool - it will take hard use but is not a sharpened pry bar.

수공으로 만들어진 이 실용적인 칼은 TV 시리즈 'Man vs. Wild' 와 'Born survivor Bear Grylls'와 함께 만들어졌다. 기대 하듯이 Bears가 선택한 하나의 칼날과 몸체에 견고하게 조립되어진 부품으로 만들어져 있다.

칼이 만들어질때 요구된 디자인의 표준은 다음과 같다. 너무 길지 않고 가볍고 얇음으로써 눈에 잘 띄지 않아 필요로 할때 즉시 사용할 수 있도록 휴대하기 편해야 한다.

손잡이는 쥐기 편하게 물방울 무늬로 산뜻하게 처리되었으며 손잡이와 칼날이 만나는 부위는 스웨덴 RWL사의 powder steel로 처리되어 섬세한 사용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칼을 구매할 경우 여분의 칼을 수납할 수 있는 Bear의 로고가 들어간 칼집을 선택하거나 전통적인 방식인 가죽칼집을 선택할 수 있다.

주의 : 이 칼은 아주 높은 품질의 절단 도구로 만들어졌다. 숫돌로 갈아져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칼날의 크기 (mm) : 100 x 30 x 4
길 이 (mm) : 215
무 게 (g) : 200
가 격 (GBP) : 350 ( 한화 약 70만원 정도 )





버너 - 콜맨 442

한때 이 세상에서 최고 좋은 버너로 생각했던 적이 있다. 군시절 부대로 매달 배달되던 '월간 산'과 '사람과 산'에 나오는 장비들을 하나씩 호기심으로 스크랩 하면서 처음 봤던 버너였다. 군용버너로 시작되었다는 유래와 함께 특유의 디자인과 휘발유를 연료로 사용한다는 생소한 느낌이 합쳐져 묘한 느낌을 주던 장비였다. 콜맨을 다시 만난건 복학을 했을때였다. 학교안 매점의 스포츠 코너의 주인이 이런저런 장비들을 쌓아놓고 있었는데 이 버너를 45,000원에 판다는 말에 앞뒤 잴것도 없이 덜컥 사버렸다.

한동안 나의 자랑 거리였다. 지금 생각하면 한낱 하수의 뽐내고 싶은 마음에 다름 아니었지만 그때는 누구에게라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설레이는 일이었다. 지금은 같은 가격대에 선택할 수 있는 버너들이 많고 또 혼자 다니는 산행에서는 화력이 지나치게 세고 무겁고 부피를 많이 차지하는 장비가 되버렸다. 지금 가지고 있는것도 마지막으로 불을 붙였던게 언제 였는지 기억 나지 않을 정도로 사용가치를 급격히 잃어 가고 있다.

썰렁한 자취방에서 처음 불을 붙이며 맡았던 매캐한 휘발유향의 알싸했던 느낌은 지금 생각해도 신선하게 되뇌어 진다. 등산 장비를 보는 안목도 그때보다 높아졌고 장비를 선택하는 기준도 바뀌어 다시 선택할일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비바람, 눈보라 산속에서 유일하게 온기와 위안을 주던 콜맨버너의 따뜻함까지 잃어버리는 일은 절대 없을거 같다.


▶ 제원

① 상품명 : 442A Stove(442A 스토브)
② 출 력 : 2,125kcal/h
③ 용 량 : 0.35L
④ 사이즈 : 11.8×16.2cm
⑤ 사용연료 : 화이트 가솔린, 무연 휘발류
⑥ 사용시간 : 보통-2시간 30분, 최대-1시간 5분
⑦ 원산지 : U.S.A

▶ 특징

① 콜맨 스테디셀러 스토브입니다.
② 연료통이 붙어있는 일체형 스토브입니다.
③ 무연 휘발류 전용노즐 교체 가능합니다.(비권장)
④ 가급적이면 화이트 가솔린 연료를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⑤ 타 연료 사용시 찌꺼기로 인한 노즐 막힘 현상이 발생됩니다.
⑥ 연료는 탱크용량의 2/3까지만 주입 해야 합니다.
⑦ 탱크용량의 1/3은 에어 압력을 높히는데 필요한 공간입니다.
⑧ 필요이상의 연료주입은 불완전연소로 인한 화재 발생위험이 높습니다.

월요일, 4월 14, 2008

우주인



우주인의 배출을 두고 냉소적이거나 나름대로 충분한 의미를 가진다며 환호를 지르는 쪽으로 나눠지는거 같다. 사실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6개월 마다 이뤄지는 우주정류장 체류 우주인을 교체하는 과정에 두명의 우주인이 가게 되는데 그때 남은 좌석 하나를 우주여행을 원하는 이들에게 참가비를 받고 태워준다는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었다.

우주인 선발에 수만명의 사람이 지원을 했고 수차례의 평가를 거치면서 두명으로 압축되는 과정의 뉴스와 행사들을 볼때마다 오버들 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정류장 프로그램에 참여하는것도 아니고 그들의 임무수행에 동반객의 참여자를 선발하는데 저정도까지 행사와 선발과정이 필요할까라는 의구심이 드는게 당연한 것 아닐까.

본격적인 20가지 실험을 우주에서 행하고 공식적인 우주인 훈련을 받았기에 관광객이 아닌 분명한 우주인이며 본격적인 우주시대의 개막이 열렸다고 얘기들 한다. 그러나 실험의 내용을 보면 문외한이 봐도 수준높은 내용의 실험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주인 훈련 받기에도 벅찼을 그들이 그동안에 습득했을 과학적 지식과 실험방법들의 수준이 얼마나 높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선발과정과 훈련과정의 내용을 봐도 우주인이 필요하면 공군의 전투조종사에서 선발한다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우리는 이미 준비된 이들을 충분히 보유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력으로 우리 우주인을 우주로 보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과정이며 첫술에 배부를 수 없듯이 우주인을 배출한 것 자체로도 의미를 둘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우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거쳐야할 단계가 많을 것이다. 아직 자력으로 위성을 쏳아올릴 수 있는 발사체를 갖지 못한 우리가 우주인을 직접 우주로 보내기 위해서 거쳐야 할 과정들은 너무도 멀어 보인다. 그 과정까지 어떤 길을 가야 하며 이번 우주인의 배출로 어디쯤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찾아 보기 힘들다. 우리에게 왜 우주인이 필요한가? 우리의 맥락에서 우주 연구가 정말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어떤 주제가 우선되어야 하는가? 이러한 진지한 논의가 없는 한, 우주인 탑승 행사는 일시적인 흥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 흥분을 위해 260억의 돈을 써야 했나?

어떻게든 공식적으로 한국의 국적을 가진 사람이 우주를 다녀옴으로써 얻게 되는 지식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지식들이 260억의 막대한 돈을 투입해서 얻은 것이라고는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다. 넉넉치 못한 예산으로 움직이고 있는 이나라 살림을 생각할때 '차라리'라는 말로 시작되는 아쉬운 일들이 너무 많이 떠오른다. SBS 뉴스는 “이번 발사는 이소연씨 개인의 단순한 우주 비행이 아닙니다. 미래 한국 과학의 꿈이고 미래 한국의 희망을 실었습니다. 이제 한국인은 우주로 향하고 있습니다. ”라고 했는데 아무리 좋게 보려해도 '호들갑'으로 보인다.

우주인 발사와 같이 듣게된 소유즈호에 대한 기사들이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냉전적인 사고들에 파묻혀 있을때 비슷한 시기에 개발되었던 아폴로호 보다 당연히 성능이 못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라봤었던 우주선이었다. 스페이스 셔틀방식으로 우주선을 발전시키려던 미국의 NASA도 다시 예전의 방식으로 돌아간다고 하니 초기 과학자들의 발상과 노력이 얼마나 뛰어 났었는지를 증명해주는거라고 생각해야 할까. 소유즈는 키릴어로 Союз로 표기되며, "연합" (union) 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진화를 거듭해온 소유즈 우주선

' 소유즈 TMA-12'는 소유즈 우주선의 최신버전인 TMA 시리즈 중에서 12번째로 제작됐다. 러시아로선 103번째 우주선이다. 러시아는 1967년 4월23일 최초 비행 이후 4차례의 발사 실패를 계기로 우주선의 기능을 보완해왔다.

소유즈 1~9호는 단순 우주비행용이었으며 소유즈 10호(1971년)부터 궤도스테이션(초기 형태의 우주정거장)인 '살류트' 등과 도킹한 뒤 40호(1981년)까지 페리(ferry) 버전이 이용됐다. 승무원 수송기능을 보완한 T(transport)시리즈는 소유즈 T-1(1979년)에서 T-15(1986년)까지 사용됐다. TM 시리즈(M은 modification을 의미)는 우주정거장 '미르'에 우주인을 본격 도킹시키기 시작한 1986년(TM-1)부터 2002년(TM-34)까지 활약했다. 현재의 TMA 버전은 사람의 생리조건에 보다 최적화한 우주선이라는 의미로 A(anthropometric.인체측정학의)가 추가됐으며 2002년부터 비행을 시작했다

발사에서 귀환까지,절묘한 우주콘서트

'소유즈 TMA-12'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남동쪽으로 2100㎞ 떨어진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지상을 이륙한다. 바이코누르는 1957년 사상 최초로 '스푸트니크' 인공위성을 쏘아올리고 1961년 유리 가가린이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에 성공한 전세계에서 가장 큰 우주기지이다.

소유즈 우주선을 실은 '소유즈 FG 발사체'는 지상을 떠난 뒤 118초(지상 49㎞ 상공)에 1단 로켓을 분리한다. 226초 후엔 성층권을 벗어난 지점(지상 84㎞ 상공)에서 그동안 고열과 중력에 의한 손상으로부터 비행체의 앞부분을 보호해왔던 페어링을 이탈시킨다. 이어 2단 로켓이 분리된 다음 2단과 3단의 연결부위이자 우주선 본체를 고열로부터 차단하는 후부선체가 떨어져 나가고 마지막으로 발사 후 528초 만에 3단 로켓을 벗어버린다.

이후 소유즈 TMA-12는 자체 엔진으로 비행한다। 이틀 동안 지구를 33~34바퀴 돌면서 고도를 지상 220㎞에서 우주정거장이 있는 지상 350㎞로 높여 도킹하기에 가장 적합한 위치를 맞춘다. 10일 오후 10시에 도킹에 들어간 뒤 3시간여 만에 도킹을 마치게 된다.


이씨는 9박10일간 ISS에 머물며 차세대메모리소자 실증실험 등 18가지 우주과학실험 임무를 수행한 뒤 19일 낮 12시31분 ISS와의 도킹을 풀고 약 3시간20분 후인 오후 3시52분께 카자흐스탄 초원지대에 착륙하게 된다.

귀 환 과정에서 비행방향을 조정하는 우주선 앞부분의 궤도선과 엔진이 장착된 뒷부분의 기계추진선을 버리고 우주인들이 탑승하는 귀환선만 성층권에 진입하게 된다. 귀환선은 외부가 특수 세라믹으로 처리돼 있어 대기권과의 마찰에서 발생하는 1500도의 고열을 견딜 수 있다. ▒▒☞ [출처]한국경제

타프( Tarp )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개념의 장비였다. 처음에 어느 등산장비판매 싸이트에서 오지산행용이라며 Tarp라는 개념의 장비를 판매하고 있었다. 등산스틱을 지지대로 사용해 간단하게 지붕을 만든 것이었다. 왠지 텐트를 지는 무게가 부담스럽거나 야영터를 만드는것이 여의치 않은 오지 산행의 개념에서는 딱 맞는 장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타프를 사용하기 전까지는 혼자 산에 갈때 에코로바에서 만든 피츠로이I 1인용 텐트를 사용했다. 비교적 가벼운 무게( 텐트치고는 )에 산속의 밤에서 본능적으로 느끼게 되는 두려움에서 그나마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 주는 안락함이 있었다.

산속에서 밤을 보내는건 아무래도 평소보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칠흙의 어둠으로 바뀌는 산속의 밤은 그리 안락한 느낌만 줄리 없다. 그래서 사람은 최소한의 자기 공간을 만들 필요가 있다. 텐트처럼 사면을 막지는 않지만 타프와 워킹폴을 이용해 간단한 벽과 지붕을 만듦으로써 가지게 되는 심리적인 안정감은 큰 위안이 된다.


Man Vs. Wild의 Bear Gryll도 어떤 조난상황에서도 밤을 오면 나뭇가지와 잎들을 이용해 간단한 움막을 설치 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야생동물의 접근을 사전에 막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움막앞에 피운 불이 움막에 반사되면서 더 큰 동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작 Tarp만을 이용한 산행을 제대로 해본적은 없다. 그런 식의 야영 경험이 없었던건 아니었다. 텐트 설치가 여의치 않았던 상황에서는 매트리스만 깔거나 침낭커버 만으로 밤을 보내기도 했다. 때에 따라서는 일부러 텐트 바깥에서 자는 경우도 많았다. 다만 그런 식으로 하룻밤을 보내는걸 당연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었다.

새 봄의 신록들이 더욱 파랗게 물이 올랐을때 타프한장을 배낭에 넣고서 매봉밑 옛 숙영지로 야영을 가고 싶다. 가벼워진 배낭의 무게만큼이나 가뿐한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