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3월 27, 2008

헌책방

2000년도 겨울이었다.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에 헌책방을 순례하는 시민기자 최종규씨의 연재기사가 눈에 띄었다. 꼬깃꼬깃 쌓이고 꽂혀있는 서가에서 책 찾는걸 좋아하지만 그때까지의 내게 헌책방은 일부러 찾아가는 곳은 아니었다. 그때쯤 한참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생활들이 이어지고 있을 때였다. 우연인지 몇달단위로 이어지는 프로젝트 장소마다 헌책방이 있었다. 먼저 회기역에서 가까운 곳에 있을 때였다. 김종규씨의 글을 보고 먼저 그곳으로 찾아 갔다. 몇년동안 이어서 읽지 않고 있었던 '로마인 이야기'를 그곳에서 다시 구입해 보기 시작했다. 소통의 경로들이 모두 닫혀있던 그때 그렇게 찾아간 헌책방과 책은 세상과의 유일한 소통의 경로가 되어갔다. 그곳에서의 일이 끝나고 다음 일터로 옮겼던 곳에도 헌책방이 있었다. 삶의 고단함이 그대로 녹아있는듯한 수더분한 주인 내외의 모습에 친근감을 느꼈고 매일 퇴근하는 길마다 들렀다. 내 삶에 책이 본격적으로 가까워 지기 시작했던건 그렇게 헌책방을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였던거 같다.

헌책에서는 뜻하지 않는 글귀나 저자의 친필 서명을 만날때가 있다. 노량진에서 있는 모임때마다 들러는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에 있던 글귀는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태고적 공룡의 머리를 적셨을 비.." 뭉쿨했던 느낌은 BBC에서 만들어진 공룡에 관한 다큐멘터리의 시그널 화면에서 달을 봤을때 느꼈던 묘한 느낌의 근원을 알게 해주었다. 태고적 공룡들도 바라봤을 달을 지금의 내가 보고 있다는 느낌 그것이었다. 그런 글귀를 쓴 사람이 누군지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고에 공룡의 머리를 적셨을
비가
오늘 내 머리에도 내린다.
위안이 된다.

1994.6.25. 신촌문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