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8월 28, 2008

나무를 심은 사람

■ 한글

이 영화를 처음 봤던게 1999년 봄이었다. 어느 시민단체에서 발행하는 월간지를 통해 알게 되었고 비디오 테잎으로 주문했었다. 주변과의 소통이 거의 단절되다시피한 파견지의 기숙사에서 반년을 생활하던 때였다. 그곳의 비디오 감상실에서 이 영화를 몇번이고 되돌려 봤었다. '고독'속에서 황무지를 숲으로 바꾸어 나가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그때의 나에게 절실하게 와닿았고 '위로'와 '치유'를 해주었다. 그리고 한쪽눈을 실명하면서까지 애니메이션을 직접 그린 감독의 이야기는 영화의 이야기에 더욱 깊은 감동을 더해 주었다.

" ... 게다가 20대의 나이에는 60대의 인간들이란 죽는 것 외에는 별로 할 일이 없는 늙은
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살아있고 다만 하는 일이 바뀌었을 뿐이다. ..."로 기억되던 대사는 불안한 미래와 그걸 기꺼이 받아 들여야 한다는 '성장통'을 겪던 내게 돌파구의 실마리를 쥐어주는 느낌이었다.

구글에는 영문판 밖에 없어 한글 자막이 나오는 동영상을 찾아 구글에도 올렸다.

■ 영문


□ 나무를 심은 사람 [The Man Who planted Trees]

○ 1987년 캐나다에서 제작된 극장용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
○ 원어명 : L'homme qui plantait des arbes
○ 감 독 : 프레데릭 백
○ 원 작 : 장 지오노

가난한 집안의 외아들이었던 그는 집안 사정으로 인해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고, 16세에 은행에 취직하여 20여년 간을 은행원으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그리스와 라틴의 고전들을 섭렵하며 문학 수업을 쌓았다.1928년 발표한<언덕>이 성공을 거두면서 뛰어난 서정성과 강렬한 문체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지오노는 평생을 고향인 마노스끄에서 창작 활동에 전념하며, 30여 편의 소설과 수많은 희곡, 시나리오를 발표한 20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장 지오노는 이 책을 출판할 때 공동의 선을 위해 돈을 한 푼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 상영시간 : 30분
○ 제 작 사 : 소시에트 라디오캐나다, CBC
○ 제작연도 : 1987년

30분짜리 극장용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로 1987년 캐나다의 CBC와 소시에트 라디오캐나다(Societe Radio-Canada)에서 제작하였다. 엘지아 부피에라는 사람을 모델로 한 장 지오노(Jean Giono)의 원작을 프랑스 출신의 캐나다 애니메이션 작가 프레데릭 백(Frederic Back)이 애니메이션 영화로 제작한 작품이다. 광택을 없앤 아세테이트 위에 색연필로 작업하였으며 5년 6개월 동안 제작하였다. 이 작품은 거의 변화를 주지 않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약 2만 장의 그림과 10∼30초라는 긴 시퀀스를 사용했다. 미묘한 자연의 움직임은 인상파적인 기법으로 처리했으며, 프레데릭은 이 작품으로 인하여 한쪽 눈을 실명했다.

인생을 관조하듯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파스텔톤으로 그린 작품으로,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한 마음으로 시작한 나무 심기는 환경의 중요성을 망각해가는 이 시대에 그것의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교훈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으로 프레데릭은 1981년에 제작한 크랙에 이어 1987년 두번째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1987년에는 앙시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 대상, 히로시마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 대상을 수상했다.

<영화 내용>
한 젊은이가 프랑스의 알프스여행길에서 물을 찾아 폐허가 된 마을을 헤매며 불모의 땅을 걸어가다 양치기 노인을 만나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받는다. 다음날 그는 양치기 노인을 따라 도토리파종하는 것을 보러 간다. 양치기 노인은 55세 된 엘제아르 부피에로서, 아내와 아들을 잃고 외떨어진 산에 들어와 홀로 도토리파종을 시작한 지 3년이 되었다. 그는 나무가 부족하여 땅이 죽어가고 주민들이 포악해진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땅은 아니지만 산 곳곳에 뿐 아니라 떡갈나무 씨를 뿌리고 가꾼다.

세월이 흘러 제1차 세계대전후 젊은이는 부피에가 살던 곳을 다시 찾아와 그동안 파종한 나무들이 10년생의 우람한 나무로 성장해 있는 것을 본다. 그는 울창한 숲을 바라보며 사람의 노력으로 삶의 터전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메말랐던 마을 계곡에는 물이 흐르고 주민들이 하나 둘씩 돌아온다. 조금씩 자연이 되살아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1935년 부피에의 '나무심기'는 정부정책으로 자리잡게 되고, 부피에는 1947년 89세의 나이로 바농에 있는 요양원에서 평화롭게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