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9월 30, 2008

책읽기의 '달인'?

'책'에 대한 책들이 넘쳐나는거 같다.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5. 매주 가장 기다리는 책소개 기사가 소개되는 신문지면에 소개되었을 정도면 괜찮은 책일거라는 생각은 했다. 그러나 제목에 따라 붙은 '인생역전'이라는 말이 석연치않은 느낌을 주어 읽고 싶다는 생각에까지는 미치지 못하게 했다. 제목에서 '거부감'과 '의구심'이 먼저 들었다. 이런 감정의 근원은 그저 좋아서 보는 책과 나의 독서습관에 어떤 방법과 형식으로 지나친 간섭을 당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책을 읽는 방식이 '비효율'적인 것은 분명한거 같다. 조금 어려운 내용이 담긴 책이면 행간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 지나가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한권을 읽었을때 '얻는것들'이 '책읽기의 달인'들이 얻는 그것에 비해 한참을 미치는 못할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독후감 한편 제대로 쓰지 못하는 나인데 인터넷 서점에는 상상하기 힘들정도의 길고 깊은 내용의 독후감들이 있는걸 봐도 그렇다.

책을 읽는데 '효율'적인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저 흘려 들을 말은 아닌데 왠지 배려없는 선의를 받는 느낌이 들었다. 알라딘에 올라온 이책의 서평을 통해 확인한 내용을 보고서 내가 받은 느낌이 그 책의 내용과 크게 벗어나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렇다. 책을 읽는 이유는 자신의 사회신분을 향상하기 위해서다. (중략) 공자의 시대에도 책읽기가 신분상승의 결정적 요인이었다면 지식기반사회라고 일컬어지는 오늘에야 그 중요성을 새삼 말할 필요가 없을 터다. 자본이 지식을 사서 더 큰 이익을 내던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오히려 지식이 자본을 구해 더 큰 이익을 남기는 시대이다. (중략) 책읽기와 사회적 성공의 상관관게는 오랫동안 등한시되었다.

기본적으로 저자는 독서를 신분상승과 경제적 이익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효율적인 읽기를 주장함으로써 '읽기의 달인'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할 수 있었다( 혹시라도 보관함에 담아 구매했을지도 모를 가능성마저 자를 수 있어 천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

책을 읽는다는건 그 자체로써 커다란 기쁨을 안고 있다. 미지의 세계와의 만남에 설레고 새로운것들을 알게 되면서 느끼는 즐거움들은 빼놓지 못한 기쁨일 것이다. 책읽기의 효율? 그런건 관심이 없다. 독서를 수단으로 삼고 싶지않다. 그것 자체의 기쁨을 누리는 것일 뿐이다. 효율 따위를 여기에서 까지 찾고 싶지 않다. 그저 읽는것 만으로도 내게는 벅찬 기쁨이다.

그렇게 읽고 쌓여 가는 책 제목의 모음들이 그것을 읽은 이의 관심사를 보여줄 뿐 아니라 주인의 세계와 성격을 귀띔해 주게 될 것이다. 오랜 시절 바뀌고 쌓여온 책을 읽은이의 세계와 취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책을 만들어가는 그것이 독서의 내가 생각하는 독서의 의미이다.



※ 별볼일 없는 블로그에 올린 이야기지만 위책의 내용을 비난하거나 폄하할 의도는 없다. 그럴 자격이 내게는 없다. 책을 읽는 방식과 차이에서 오는 생각을 표현한 것이다.

목요일, 9월 25, 2008

SAS Survival Handbook


영국육군 특수부대 SAS의 생존교재(?)를 샀다. 번역된것도 있으나 대부분의 Bushcraft관련 정보와 지식들을 외국싸이트를 통해 얻는게 일상화 되다보니 이런책은 일천한 실력이나마 원문으로 보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BushCraft와 Survival은 궁극적으로 같은 기술을 필요로 한다. 다만 그것을 행하는 환경이 스스로 찾아갔느냐와 어쩔 수 없이 처해진것이냐에 따라 구분되는 개념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런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별부담없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내용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생존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조난을 당한이의 의지(will)이고 이것이 밑바탕 되지 않은 기술과 도구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인상적인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책의 저자가 SAS출신인건 확실한데 실제로 영국의 군인들이 이책을 가지고 훈련에 임하는지는 모르겠다. 내 군복무시절에 이와 같은 교범을 본 기억이 없다. 이와 비슷한 것들을 교육받은 기억 역시 없다. 훈련중 모든 식사는 때마다 밥차가 와서 보급했고 밥차가 오기 애매한 특별한 경우에만 전투식량이 지급되었다. 그나마 야외 생활에 필요한 기술을 배운건 텐트를 설치하거나 동계용 분침호를 만들었던 경험이 전부인거 같다. 실제로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야외생활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들은 제대후 본격적으로 취미로 즐긴 '등산'에서 얻어진 것들이다. 그러나 모든 훈련이 야외에서 이뤄지는 군에서 별다른 야외생활 기술의 교육이 없다는 것에 대해 불만이 있었던건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온갖 잡일과 상명하복의 처절한 스트레스를 견디어 내는것 만으로도 충분한 '서바이벌'교육이었던것 같다. 실제 전투에 이르러서는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 였지만.


그제나 이제나 '국방부'가 전투원들의 능력배양보다 쓸데 없는 것들에 더 관심이 많은건 변함이 없는거 같다. 어느 사기꾼 한놈이 대통령이 되더니 국방부가 덩달아 '금서'라는 걸 선정했다는 소식과 함께 그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지가 엊그게 같은데 이제는 "좌편향된 근.현대사 교과서를 손질해야 한다" 아무렇지 않게 군사 독재자를 미화하는 나섰다는 것이다. 저런 놈들의 머릿속에서 "SAS Survival Hand Book"과 같은 책은 평생가도 나오지도 못할 것이고 관심을 가지지도 못할 것이다.

화요일, 9월 23, 2008

가을 편지

내게 '가을 편지'는 가을( 정확히는 가을 기운이 '문득' 느껴지는 늦여름 어느날 )이면 꼭 듣고 싶은 노래다. 입대 하고서 눈깜짝할사이 3개월이 지났고 그걸 실감했을때가 9월이었다. 그 전에는 와닿지 않던 이 노래가 '문득' 느껴진 가을과 함께 은은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다음해 9월 가을빛 가득한 매봉의 군사도로를 오가며 이노래를 흥얼거리며 누렸던 그해의 가을은 특별한 느낌으로 자리잡았다.

오늘에서야 가을 바람이 느껴졌다. 더워지는 지구의 영향으로 9월 하순까지 한낮에는 내내 30도를 웃도는 기온이 이어졌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가을학기가 시작되는 무렵이면 느끼던 '햇볕은 따가우나 바람은 찬'기운을 10월을 목앞에 두고서야 느끼게 되고 말았다. '불안'한 기운으로 찾아오는 계절의 변화가 불편하지만 올 가을에는 모든것을 헤메이는 기분을 한껏 느껴봐야 겠다. 낙엽처럼 흩어진 상념들은 성장과 치유의 밑거름이 될거라 믿는다.

틀린글씨나 마무리 못할 문장으로 이어질까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꼬박꼬박 눌러써서 보내던 편지를 마지막으로 보내고 받은게 언제인가 싶다. 이번 가을에는 가을빛 가득한 곳에 자리잡고 주절주절 상념들을 담은 편지를 써보고 싶다.

금요일, 9월 05, 2008

제세상만난 쥐박이의 개


법질서 확립을 위해 최선을 다할것이라며 촛불시위에 가담된 시민의 검거에 열을 올리고 있단다. 사기꾼 한놈이 청와대에 들어가더니 목줄 풀어준 개마냥 제세상 만난 듯 날뛰는 모습이다. 경찰들이 언제부터 그토록 '법질서 확립'에 열심이었는지 놀랄일이다. 사적인 자리 말고 공적인 자리에서 만난 그들의 안하무인의 태도와 불성실한 모습들을 겪으면서 도둑 잡고 치안 유지하는 게 경찰이라는 생각은 이미 오래전에 접었기에 뜻밖이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촛불시위는 기본적인 절차를 무시하고 선심쓰듯 쇠고기수입 전면개방을 약속한 생각없는 명박이에게서 발단되었다. 시위대와 명박이 사이의 문제였다. 촛불시위는 누구나 공감하는 사건에서 비롯된 일이었고 누군가 조직적으로 만들어서 이뤄진 자리가 아니었다. 경찰은 시민들의 평화적인 시위를 보장하고 보호해 주어야 하는게 그들의 임무고 일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시민의 안전을 보호하는것이 아니라 명박이를 보호하고 나섰고 시민들과의 충돌을 일으킴으로써 스스로 '쥐박이의 개'임을 공표했다. 시위현장에 위압적인 모습으로 처음부터 시민들의 시위를 위협하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시위과정에서 일어난 충돌에서 시민을 처벌한다는 말은 계속 이어졌지만 '견찰'들이 저지른 범법행위를 성실히 조사했다는 소식은 들은적이 없다. 인센티브까지 지급해 가며 시위대를 검거하더니 이번에는 게시판에 글을 올린이들을 찾아가며 검거하겠다고 나섰다. 본보기로 처벌을해 싹을 자르겠다는 정치적인 의도임을 분명히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툭하면 그들의 주인인 대통령을 '쥐박이, 사기꾼, 새끼'등으로 부르는 나도 그들의 감시대상이 되고 있는지 모를일이다. 할짓없는 견찰(犬察)들에겐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주인인 쥐새끼가 물어오라고 시켰을테고 주인을 욕하는 일에는 유난히 '법질서'를 들먹일줄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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