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1월 14, 2009

멀쩡함과 광기-쥐박이를 예로


좀작은 사이즈와 책표지 디자인이 친숙한 느낌을 줘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거 같았는데 좀 어려웠다.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나는 능력이 떨어지는 탓이 크지만 지하철에서 읽다보면 쉽게 이해가 안되는 문장들을 만날때면 어느새 딴 생각을 하고 있을때가 많았다. 책의 끝까지에 이르르서도 '멀쩡함'에 대해 명쾌한 정의를 좀처럼 찾을 수 없었을 만큼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 책의 역자도 원문의 난해함으로 번역이 쉽지 않았다고 말한것이 그나마 위안이 었을려나.

덕분에 별 생각없이 여겨왔던 '멀쩡함'과 '광기'의 의미에 대해 의문을 가질 기회를 가졌다. '광기'라는 말은 누군가가 상식밖의 행동을 할때 '미쳤다, 제정신이 아니다'등의 말과 함께 쉽게 받아 들일 수 있는 개념이라고 여겨왔다. ''멀쩡하다'는 말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 눈에 띄는일 없이 무난하게 생활한다면 그게 곧 '멀쩡'하다는 말을 누가 묻는다면 바로 답할 수 있는 것이다.

비슷한 말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멀쩡함sanity’(sanity, sane에 정확히 대응하는 우리말 단어가 없어 이 책에서는 ‘멀쩡함’으로 옮겼다)은 늘 인기 없는 말이면서도 결코 유행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이 말은 17세기에 의사들이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는 의미로 처음 사용했는데, 현대인에게 가장 친숙한 의미인 광기의 반대말 또는 대안이라는 의미는 19세기 들어 비로소 등장했다. 하지만 그 의미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거나 정의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광기와 달리 이 단어를 설명하려고 애쓴 사람도 없고 시나 제목, 속담, 광고, 농담에 이 말이 쓰인 적도 드물었다(지금도 그렇다). 이 단어는 과학적으로 신뢰성이 거의 없으며, 문학적으로도 거의 쓸모가 없다. 그런데도 이 단어는 꼭 필요한 용어가 되었다. 정확히 무엇에 필요해졌는지, 그리고 혹 미래에도 이 단어가 필요해진다면 과연 무엇에 필요할 것인지가 바로 이 책의 주제다.

그러나 자세를 바꿔 조금 진지하게 대하니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도대체 뭐가 미친짓이고 뭐가 멀쩡한것인지 불분명 한것들로 세상이 가득차 있다는걸 알 수 있다.

쥐박이가 대선에서 자기가 대통령이 되는 효과만으로도 주가가 2,000을 넘어서고 내년(2009년)에는 3,000이 될 것이라며 747경제론을 펼치고 세계적인 불황앞에서 '위기다, 위기는 끝났다'를 반복하며 갈팡질팡 하다가 급기야 지하벙커속에 숨어있다. 이게 '멀쩡'한 것일까 그를 비판하는게 '멀쩡'한 것일까. 현실성 있는 경제분석으로 자신의 의견을 인터넷에 올린 '미네르바'가 멀쩡한 것일까 고환율 정책, 부도 직전의 회사를 인수하느니 마느니로 갈팡질팡하며 국고를 탕진하고서도 원없이 돈을 써봤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강만수'가 멀쩡한 것일까. 표현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된 국가에서 인터넷에 올린 글을 가지고 인신구속을 하는 검찰은 '멀쩡'한 걸까 '광기'를 보이고 있는걸까.


멀쩡한 자아라는 개념을 둘러싼 커다란 혼란 가운데 하나는 멀쩡함이 과연 현실감각을 의미하느냐는 점이다. 어떤 상황에서는 현실적인 의미에서 자폐증이나 정신분열증, 우울증에 걸리는 것이 멀쩡한 행동이 될 수 있다. 멀쩡함이란 원래 미치기를 거부하는 것, 미친 해결책을 채택하려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광기를 해결책으로 채택해서라도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재능을 의미하는가? 멀쩡함은 광기의 레퍼토리가 없어도 되는 자유를 뜻하는가, 필요할 때 이런 레퍼토리를 심리적 도구 상자로 이용할 수 있는 자유를 뜻하는가? (205쪽)

권력자들은 곧장 '법과 질서'의 '멀쩡'함을 강조한다. 그 '멀쩡'함을 지키는 것이 올바른 행동이고 나머지는 '광기'라고 비난한다. 쥐박이가 이런 말을 했다. "해머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때리고…" "G20 정상회의 공동의장국으로서 어떻게 의장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앞이 캄캄했다"는 등의 말을 내뱉었다. 그가 입법시키려고 하는 법들이 '멀쩡'한 민주주의이고 야당의 반대가 '광기'라는 것이다. 입법을 밀어 붙이려는 강경한 태도가 국회사태를 촉발한 근본원인이었는데도 거기에 대해서는 일절의 반성이 없다. 오로지 모든 폭력을 도매금으로 '광기'어린 야당탓으로만 돌리고 있다.

이책은 다음의 말로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인간의 멀쩡함에 대한 정의를 내리며 책을 마무리 짓는다. 다른 이론들이 경쟁적으로 소개되기를 기대하면서

“멀쩡함은 광기의 대안을 뜻하는 단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멀쩡함은 굴욕을 예방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가리키는 말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