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7월 16, 2009

8,000미터급 14좌, '세계최초'를 향한 비극


고미영씨가 8,000미터급 봉우리 14개를 등정하는 기록에 도전하던중 하산길에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월요일 아침이었다. 그 뉴스를 듣는 순간 안타까움과 함께 화가 났다.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위한 스폰서들의 경쟁과 압박이 빚어낸 사고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산이 좋더라도 그정도 고봉을 다녀오면 피로감이 적지 않았을텐데 일년에 8,000미터급 봉우리를 대여섯개씩 오르는걸 고미영씨와 오은선씨 스스로 원했을리 없을거 같다. '세계 최초' 타이틀을 위한 스폰서들의 과당 경쟁과 압박이 그들을 그렇게 내몰았을 것이다.

박영석씨가 남극점을 밟으면서 산악계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했을 때였다. 그때 때마침 14좌 등정의 경쟁자였던 엄홍길씨는 에베레스트에서 조난당해 숨졌던 고 박무택씨의 시신을 수습하는 '휴먼원정대'를 꾸려 떠났다. 아무도 공개적으로 뭐라 말하지 않았지만( '휴먼 원정대' 아니었던가 ) 나는 영원무역( 박영석씨의 스폰서 )의 성공을 물타기 하기 위한 트렉스타 측의 작전이 개입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강하게 가졌던적이 있다. 물론 그런일이 실제 있었다 하더라도 엄홍길씨의 개인적인 사심에서 비롯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또한 스폰서들간의 과당 경쟁과 견제가 배후에 있을것이라 여겼었다.

제국주의가 기성을 떨칠때 서구의 열강들은 각국의 강인함을 선전하기 위한 목적에서 경쟁적으로 히말라야의 고봉들을 오르기 시작했다. 등반의 내용, 도덕성 따위는 '세계 최초'의 타이틀 아래에 묻힐 수 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포터와 세르파들의 희생은 이야기 깜냥도 되기 힘들었다. 어떻게든 등정을 하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국가의 든든한 지원을 기반으로 한 대규모의 물자를 동원하는 '극지법'등반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는것이 목적이었다. 그리고 등정은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조국'에 바치는 '애국'활동이었다.

그러나 등반스타일도 세월과 함께 바뀌었다. 이제는 어느어느 봉우리를 올랐다는 것 보다는 얼마나 알차고 참신한 내용으로 오르지가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세계는 굳이 '14좌 등반', '세계 최초', '여성' 따위의 타이틀에는 그다지 관심 없어 보인다. 상업적 성취를 위해 희생을 감수하면서 정상을 오르는 행위는 이제 자제되어야 한다. 또 스폰서의 자금 지원, 대규모 인원, 셀파와 고소 포터, 산소, 고정 로프, 위성 통신을 사용하거나 이용하는 등반은 지양되어야 한다는 기준이기도 하다.

이런 흐름의 변화는 프랑스의 세계적 산악잡지 <몽타뉴>와 유럽고산등산협회가 해마다 뛰어난 등반가에게 주는 '황금피켈상'의 규정에도 나타난다.

황금피켈상 심사규정

1. 엘레강스한 등반 스타일인가?
2. 창의력과 혁신성이 있는가?
3. 탐험정신이 있는가?
4. 독창적인가? 남의 도움을 받았는가?
5. 원정대의 자율성이 있는가?
6. 고도의 등반기술이 있는가?
7. 참여와 자율성.
8. 위험한 등반행위는 아니었는가?
9. 파트너와 지역 원주민을 보호했는가?
10. 자연보호를 실천했는가?

일본이 17회 황금피켈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이팀의 등반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등반 장비만 봐도 구곡이나 토왕성 폭포를 등반할때의 것과도 별반 차이가 나지 않을 만큼 간결하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관심밖인 듯한 '7,000'미터급을 올라서 세운 기록이다.

Karmet(7756m) 남동벽 - 카주야 히라이데, 케이 타니구치(여)로 이루어진 혼성팀이 카멧 남동벽에 신루트를 개척했다. 카멧은 인도와 티베트의 국경에 있는 가르왈히말라야 제2위 고봉이다. 이들은 2008년 9월 28일 등반을 시작해 7박 8일간 남동벽 중앙을 알파인스타일로 등반, 10월 5일 정상에 섰고 1박 2일간 하산했다. 이들이 사용한 장비는 1.5킬로그램 텐트 1동, 50미터 로프 2동, 에일리언 1조, 주마 1조, 스크류 5개, 하켄 5개 등이었다. 신루트명은 사무라이 다이렉트다.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에 목매어 있는한 이런 안타까운 죽음은 또 다시 나올 것이다. 피할 수 있는 사고는 피해야 한다. 에베레스트에 하루동안 수백명씩 오르는 날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이제는 '결과' 보다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