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12월 19, 2008

서른 즈음에 - 김광석

EBS 지식채널e 143화 '서른 즈음에'



10년도 더된 일이다. 어떤 사연으로 샀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인생 이야기'라는 제목의 김광석 CD에서 처음 들었다. 음악에 별다른 관심이 없던 내게 CD구매는 흔한일이 아니었다. 그런 연유로 자명종을 대신해주던 CD플레이어에 꽤 오랫동안 들어 있었고 매일 아침 이 CD의 첫곡이었던 '서른 즈음에'를 들으며 잠에서 깰 수 있었다. 그때 이미 고인이 되었던 김광석씨의 노래와 이야기는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았다.

그때 살던곳이 노량진의 옥탑방이었다. 흔히 가난한 서민의 주거 형태로 이야기 되지만 63빌딩이 바라보이고 앞집에 큰 은행나무가 인상적이었던 그곳에서의 생활은 나름 꽤 편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학생때 마산앞바다가 훤히 보이던 달동네에서의 자취생활과 곧이어 이어진 신림동 고시원촌의 8개월동안의 생활을 벗어났기에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보낸 3년은 지금도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 이었다는 말을 쉽게 할정도로 아련한 추억들도 많았던 때였다.

서른이 넘어면 누리지 못할거 같은 '자유'가 좋았고 저물어 가는 20대가 아쉽게 느껴지는 만큼 하루하루는 설레이는 일들로 채우려 했다. 그러나 뭐던지 할 수 있을거 같았고 세상은 그저 아름다울 것이라는 대책없는 낙관들에도 조금씩 의심이 가는 일은 계속 생겨났고 나도 더이상 세상을 밝게만 바라보려는 '어린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걸 느껴가기 시작했다. 애써 외면하고 싶어했던 서글픈 일들과 느낌들의 근원을 스스로 찾아 나서야 했다. '서른 즈음'에서야 삶의 첫걸음마를 떼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서른 즈음'의 사람에게 '순수'하다는 말은 칭찬이 아니라 비난일 것이다.

그동안 소중하게 여겼던 것들이 많이 퇴색되어 갔다. 영원히 갈것 같던 관계들이 어이없이 사라져 버리기도 했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덧없이, 허무하게 지나가버린 것이다. 그런 대신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뭔지 내가 살고 싶은 삶이 뭔지도 알게 되었다. 드디어 '마흔 즈음에' 삶의 첫걸음을 떼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