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내렸다. 몇달동안 비가 오지 않아 반가운 비소식이라고들 기대했는데 강원도 지역은 때 아닌 폭우로 피해가 큰 모양이다. 왠지 정상을 벗어나고 있는 듯한 기상현상들이 자꾸 불길한 기운을 주는거 같다. 우리나라 근해에서 잡히는 어종의 변화도 온난화와 관련이 있다고 하는데 큰 재난이 닥치기 전에 동물들이 먼저 감지를 하고 피하는 모습을 보는거 같아 더욱 불안한 소식으로 들린다.
비가 그치고 예년의 가을 기온을 되찾아 꽤 쌀쌀 해졌다. 따뜻한 겨울이 좋지만 겨울이 춥다는 전제하에서 좋다는 말이다. 춥지 않은 겨울이 이어지는 날에서의 그런 기분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경제논리 앞에서 환경에 대한 논의는 그저 배부른 소리로 간단하게 무시되기 쉽상이다. 경제논리로 환경문제를 뒤로 미루는 인류의 모습은 꼭 폭탄위에 앉아 환호를 지르며 떨어지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의 마지막 장면과도 같은 모습인거 같다. 눈앞의 일에만 매몰되어 그것이 파멸로 가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인류의 모습을 절묘하게도 희화화 시켰던 장면과 같이. 
화요일, 10월 24, 2006
가을비, 환경문제 느낌.
수요일, 10월 18, 2006
연필
필기구는 주로 연필을 쓴다. 이런 습관이 생긴지도 한 10년이 지난거 같다. 특별히 연필을 좋아 했던건 아니었는데 영화속의 한장면이 연필을 내 삶에서 특별한 존재로 이끈 시발점이었다.
외국의 영화속에서는 오렌지색의 깔끔한 색깔에 지우개가 달린 연필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걸 써보고 싶어 문구점 여기저기를 다녔으나 찾지 못했다. 영화속에서 본 연필의 모습중 기억에 남는 것이라면 좀 엉뚱하게도 쥬라기 공원이었다. 영화장면중 쥬라기 공원에서 새끼공룡을 부화시키는 담당자의 손에 쥐어진 그 연필이 눈에 들어왔다. 클립보드의 내용을 "오렌지색의 지우개가 달린 연필"로 지우고는 지우개 찌꺼기를 새끼손가락으로 슥삭 털어내는 모습에서 그 연필에 대한 욕구는 최고조에 달하기 시작했던거 같다. 
당장에 시내의 큰문구를 찾았지만 없었다. 이후로도 간간이 문구점을 들를때 마다 그런게 있나 하고 찾았지만 눈에 띄지 않았다. 그때까지 찾을 수 있었던 지우개 달린 연필은 초등학생을 위해(?) 조악하게 만들어진 것들로써 그다지 손에 쥐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것들 아니면 지우개가 없는 일반적인 연필들이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졸업을 하고 서울로 취업을 해서 올라왔다.
서울에 처음 올라와 몇달간 생활을 했던 신림동을 가끔씩 찾을때가 있었다. 그러던 중 신림동의 한 문구점에서 우연히 DIXON사의 "오렌지색의 지우개가 달린 연필"이 눈에 띄었다. "전율"을 느껴야만 하는 순간이었다. 그 자리에서 몇 자루의 연필을 샀고 집으로 오는 내내 몇번이고 꺼내어 보았다. 다음날 회사에 가서도 별의미 없이 빈종이에다가 몇자 끄적이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연필에 달려 있는 지우개가 넘넘 신기했던 것이다.
그 때 이후로 연필은 내 삶에 중요한 의미로써 자리잡게 되었고 헨리 페트로스키의 "연필"이라는 책을 접한 이후로는 그런 취향에 학문적인 뒷밧침까지 이룰 수 있었다. 필기구를 사용하는 습관은 이 "오렌지색의 깔끔한 몸체에 지우개가 달린 연필"을 직접 만나기 전과 후로 나눠지는 순간 이었다. 확정적인 목적으로 필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연필만 사용을 했다.
쓰고 지울 수 있고 연필을 깍을 때 느끼는 절제의 느낌은 목적에 이르기까지 묵묵히 자신을 깍아 내가며 도와주는 연필은 다른 필기구에서 줄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느낌까지 더해 주었다.
오늘도 나는 변함없이 연필을 잡고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닳아가고 깍여 나가는 연필만큼 내삶의 깊이도 더해져 갈까. 
토요일, 10월 14, 2006
핵실험에대한 황당한 반응
민주노동당의 주요 당직자들이 주사파로 불리는 NL계열이 장악한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의 북한에 대한 도를 넘은 애정은 진보진영내의 논란거리다. 그들의 행동이나 발언들에서 학생시절때 김일성의 생전 모습이 TV에 언뜻 비치자 벌떡 일어서 손을 들고 인사를 했다는 알고 지내던 학생회 간부에 대한 이야기가 그저 헛소문이 아니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미국의 핵에 대해 반대를 하며 반전 반핵을 부르짖던 그들의 구호가 91년경 노태우대통령의 한반도 비핵화 선언과 함께 주한미군의 핵무기들이 철수되고 94년 북한의 핵개발 의혹과 함께 슬그머니 반전평화라는 말로 대체가 되어버렸다. 북한의 핵개발은 그들의 자주권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이다.
맞는 부분도 있다고 본다. 300만명이 굶주린다는 그들의 체제가 뭐 그리 지켜야할 가치가 있는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럼으로써 김정일 정권은 내부 결속을 더 강화할 수 있고 외부의 압력에도 버틸 여력을 가지게 되었을 것으로 본다. 정치인들이 국민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나라를 찾기가 어디 쉽겠는가. 하지만 김정일정권은 정도가 훨씬 심하다. 국민들을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기에 충분했던 돈으로 핵개발이나 하고 있었으니. 그러면서도 정작 그들은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을거다 정작 모든 피해를 감내해야 하는 사람들은 북한 주민들이다. 이제까지의 어려움 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을 겪어 나가야 할테니.
그들이 실험한 핵무기가 성공한건지 실패한건지 알 수 없지만 전력화 되기 까지는 또 몇년이 지나야 할지 모른다. 탄두를 소형화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실시해야 하는 숱한 실험과 또 발사체에 싣기 위한 연구와 실험들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 또 그 자금들은 어떻게 조달할것인가. 하지만 그럴 수록 더 끔찍한 지옥이 되어갈 북한땅에서 살아가야할 대다수의 북한 주민들은 지금 보다도 더 끔찍한 현실을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런 짓거리를 펼치고 있는 정권을 진보정당이라는 곳에서 옹호를 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 노동당은 국민들이 공통적으로 인식을 하고 있는 진보정당이다. 그런 정당이 상식을 무시하고 NL계열의 생각대로 북한의 핵개발의 정당성을 주장으로 내홍을 겪고 있다. 그들이 그렇게 비판하는 조선일보가 욕을 먹는 이유가 뭔가. 조선일보는 그들의 이해관계가 맞지 않는 사안에는 서슴없는 비판의 날을 세우다가도 그렇지 않은 사안들에는 놀랍도록 다른 자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NL계열의 문제도 비슷하다. 미국과 관련된 사안들은 모두 미국에 책임이 있다고 외치던 그들이 왜 북한의 핵에 대해서는 어찌 그리 관대하게 생각을 할 수 있는 걸까. 너무도 닮은 꼴을 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스스로 진보세력의 해악임을 알리고 있다.
민주노동당에서 NL파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기 위한 바른 인식과 자세가 뭔지 알아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일본의 북한산 제품 수입금지가 발표된 가운데 13일 일본 도쿄 서쪽의 마이즈루 항에서 선원들이 북한 선박에 자전거를 싣는 작업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마이즈루/로이터 연합
월요일, 10월 09, 2006
북한의 핵실험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 대단히 불행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질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핵무장력이 무서운게 아니라 주변국들의 반응이 더 무서울 수 밖에 없다. 사상최악의 살상무기를 가지고서 평화를 지키기 위해 체제안전 운운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안된다. 강대국들은 가지는데 우리는 왜 안되는가 라고 말하는것은 논리적으로 이상이 없어 보이지만 한반도 주변의 상황은 그런 간단한 이유로 설명될 수 없다. 핵무장을 하지 않고 있는 동북아의 일본, 대만, 한국은 핵무기를 만들지 못해서 없는게 아니다. 기술과 자금도 충분하지만 핵무장의 도미노 현상과 증대될 파멸의 위협때문에 최대한 자재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북한의 핵무장은 일본의 핵무장을 당연하게 만들어 줄것이고 남한과 대만도 당연히 핵을 가지려고 나설게 분명할 것이다. 그러면 동북아를 넘어 세계 곳곳에 핵무장의 바람이 불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을 중국과 미국, 러시아가 앉아서 보고만 있을까.
이번일을 저지른 북한의 지도권들은 어떤 정치적인 이득이 있을거라고 계산했는지 모르지만 지금도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는 북한의 주민들이 겪어야할 참상은 이제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커져 갈게 분명하다.
북한은 그들을 옥죄고 있는 금융제재와 각종규제를 없애기 위해 그들 특유의 벼랑끝 전술을 펼치고 있는것으로 보인다. 때마다 그들은 유사한 방법으로 위기를 넘겼으나 이번만큼은 주변국가들도 다르게 대응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의 정권이 그렇게 지키고자 하는 그들의 국가 모습이 어떤가. 20세기 마지막 봉건국가이면서 수백만의 국민이 기아로 쓰러져 가는걸 막지 못해 외부에 손을 벌려야 하는 처지의 나라이다. 그런 정권을 지키고자 하는 열의는 주체사상에 빠진 북한의 정권수뇌부들 밖에 없어 보인다. 세상의 누가 그런 정권과 나라를 지킬 가치가 있다고 생각을 할까. 반대의견 한번 내지 못하고 그들 정치인들이 저지른 일때문에 더욱큰 고통을 겪어 나가야할 북한의 주민들이 안쓰럽기 그지 없어 보인다. 이제 세상은 그들에게 가야할 식량과 겨울을 나게할 연료와 생필품 마저도 못가게 막는걸 당연하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지난 여름 수해로 수천명이 목숨을 잃고 수만명이 집을 잃었던 북한이다. 지금도 인사동 거리에서는 북한의 어린이들이 이번 겨울을 무사히 날 수 있도록 내복을 보내줄 수 있도록 모금활동을 펼치고 있다. 생존의 문제 앞에서 그 따위 체제가 무슨 소용일까. 자기 자식먹일 식량이 없어 목숨을 걸고 압록강을 건너야 하는 국가에 이념따위가 무슨 소용일까. 점점 차가워지는 계절의 바람에 겨울을 날 걱정을 하고 있는 북녘의 사람들이 너무 불쌍하게 느껴진다. 북한의 위정자들은 그런 주민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핵실험을 단행했을까. 아니면 그들의 정권을 지키기 위해 했을까.
수요일, 10월 04, 2006
페츨헤드랜턴의 리튬배터리 사용
페츨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다음과 같은 뉴스가 떠있었다.
내용을 요약하면 LED헤드랜턴에 리튬배터리를 사용하면 LED의 수명이 상하거나 수명이 짧아질 수 있으니 사용을 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Lithium batteries information
Limitations on use of AA/LR6 and AAA/LR03 Lithium batteries with headlamps. This information does not apply to the e+Lite which was designed to work with CR2032 Lithium batteries. Lithium batteries are lighter and give longer burn times at low temperature than traditional Alkaline batteries. Due to recent advances in the performance characteristics of Lithium batteries (especially their higher output during discharge), they can cause the lamp to overheat and possibly damage the LEDs.
You can use AA/LR6 Lithium batteries with the following lamps
* MYO range: MYOBELT SB5 / MYO / MYOLITE.
* DUO range: DUO LED 14.
* Others: SAXO / MICRO / ZOOM Halogène.
* Discontinued headlamps: MYO 5, DUO LED 8.
Do not use Lithium batteries with the following lamps
* TIKKA / ZIPKA range: TIKKINA / TIKKA / ZIPKA / TACTIKKA / TIKKA PLUS / ZIPKA PLUS / TACTIKKA PLUS / TIKKA XP / TACTIKKA XP / TIKKA XP ATEX / TIKKA XP HAZLOC.
* MYO range: MYOLITE 3 / MYO 3 noir / MYO XP.
* DUO range: DUO LED 5.* SAXO AQUA.
* Discontinued headlamps: MYOBELT 3, DUO LED 3.
페츨 제품들은 LED에 다이렉트로 전원을 흘려주는 방식이므로 전압이 알카라인보다 높게 나오는 리튬배터리를( 1.7V이상 나올 수 있다 ) 사용하면 상할 수도 있다. 물론 Princeton Tec의 Apex, EOS등 regulated 회로가 장착된 헤드랜턴들에서는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다.
페츨 제품들은 견고성, 신뢰성면셍서 완성도는 꽤 높지만 밝기유지면에서는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 있다. regulated회로가 장착된 제품들은 각각의 모드( High, Low등)가 초기 밝기의 수준을 이어가는 시간을 말하는데 비해 페츨의 경우 밝기와 상관없이 각 모드에서 발밑을 비출 수 있을정도인 2미터 거리에서 0.25lux까지 떨어지는 시간으로 말한다. 이정도 밝기는 구름없이 맑은날 밤에 보름달이 떴을때의 밝기라고 표현하고 있다. 예를 들어 Zipka Tikka시리즈들에서 High모드에서 사용시간이 80시간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이는 High모드의 처음밝기가 유지되는 시간을 말하는게 아니라 밝기가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해 Optimum, Econimic단계를 지나 0.25Lux단계가 끝나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된다. regulated회로가 없는 중저가 제품들의 공통된 특성이다.
영하40의 환경에서도 제성능을 낼 수 있고 방전현상이 없는 리튬배터리를 사용하지 못하는건 상당한 약점으로 보인다. 
월요일, 10월 02, 2006
증기보트 만들기
예전에 딴지일보에서 "추억의 장난감 만들기" 코너에서 증기보트 만들기 기사를 봤을때 꼭 한번 만들어 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드디어 시제품을 완성해서 물위에 띄워봤다. 워낙 없는 손재주에다가 경험도 없어 물에나 띄울수만 있어도 성공이라는 생각으로 시도했는데 기대밖(?)으로 가슴떨리는 진동과 함께 수증기를 내뿜으며 앞으로 가기까지 했다.
하지만 완성도는 떨어진다. 알루미늄 캔을 절단해 선체를 만들때 바깥쪽으로 나오는 부분을 잘못 예측해 인쇄된쪽이 나와 깔끔해 보이지 않는다. 핵심부분인 구리관을 굽힐때 양쪽의 균형을 미리 염두에 두지 않아 좀 균형이 맞지 않아 버렸다. 균형을 맞추려고 이리저리 구부리다가 상태만 더 악화 시켰다.

구리관을 바깥쪽으로 나오게 하고 틈새를 막아줘야 하는데 글루건을 처음사용하다 보니 어느만큼 발라주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덕지덕지 붙여 놓아 깔끔함은 완전히 포기한 단계다. 시운전을 할때 연료로 사용할 양초를 찾지 못해 솜에 알콜을 듬뿍발라서 운행을 했다. 화력은 좋았으나 너무 좋았던게 탈이되어 버렸다. 너무 쎈 화력이 선체윗부분 창문을 만들어 두었던 부분을 녹여 버려 선체만 남은 모습이 되어버렸다( 그때 모습은 그나마 증기보트의 모습이었다 ). 모양새가 그래서인지 진성이도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않는 눈치였다.
뭐 그래도 기본적인 기능과 성능은 확인했으니 이걸로 만족해야 겠다. 다음번엔 경험을 바탕으로 훨씬 더 완성도 높은 배를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역시 성공은 실패를 먹고 자라는 모양이다.
금요일, 9월 22, 2006
FX사업은 제대로 되었던 걸까
우리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 사업이 진행되었었다. F-15, EF-2000, 라팔, 수호이-35 이렇게 네개의 기종이 후보에 올랐었고 기종선정 과정의 외압설과 함께 평가단장이 구속되는등 많은 논란 끝에 F-15로 낙찰되었었다. 당시 김동신 국방부 장관이 기종이 결정되기전 미국을 방문했을때 럼스펠드 국무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기종선정은 한미동맹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말이 언론에 보도되었었다. 그때 이미 내부적으로는 F-15로 결정된 상태에서 나머지 기종들은 들러리로 세웠었구나를 확신할 수 있었다. 
한미동맹이라는 말한마디에 모든 이성적인 판단이 마비되어 버리는 우리나라 분위기에서 당연한(?) 결정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각 기종들의 장단점에 대해 자세히 파악하지 않았고 또 그럴 능력도 없었지만 뭐 어느게 선택되던 공군력이 강해지는데는 큰차이가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2001년 에어쇼장에서 받았던 라팔 화보집 까지 그냥 폐지함 속에 버렸고 관심도 없어져갔다. 물론 조종석을 직접 보면서 느꼈던 F15와 유럽전투기들의 세대차이(?)에 대한 의문도 묻어버리면서.
그런데 지난 여름 F-15K가 추락한 이후 다시 이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인터넷 여기저기서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많은 내용이 F15를 지지하는 것들이고 라팔을 비하하는 내용들이 많았다. 감정적인 내용들이 많아 제대로 된 자료들은 드물었다. 그중에 꽤 논리적으로 설명된 내용들도 있었다. 뭔가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확신이 점점 강해져 갔다.
당시 FX사업에 대한 주요 의견중 하나가 "사업연기"였었다. 지금도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의견을 볼 수 있다. 기종 결정을 다음 정권으로 미루고 1~2년정도 더 시간을 주어서 미개발 상태였던 라팔, EF-2000의 개발진행 상황을 볼 수 있었으면 다른 결론이 날 수 있지 않았을까. 페이퍼상의 전투기라고 폄하되었던 유럽 전투기들의 논란도 잠재울 수 있었을 테고 입찰 업체들에게 더 유리한 조건을 얻을 기회를 얻게 되었을 것이다. 유럽 전투기 라팔, 타이푼은 속속 실전에 배치되고 있다. 앞으로도 이 전투기들에 최신기술들이 계속 적용되고 업그레이드 될것이다. 15K 와의 격차는 앞으로 더 커질 수 밖에 없을거 같다. 
그때 나는 "사업연기"라는 말을 선뜻 이해하기 힘들었었다. 노후 기종의 대체라는 사업목적도 있었기에 당장 들여오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거 같았다. F15K의 장점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미공군이 운용중에 있는 기종이었고 검증된 비행기여서 제일 빨리 납품을 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다른것을 선택해도 뭐가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F15K도 여태 4대밖에 들여 오지 못했다. 게다가 한대는 "G-LOC으로 인한 조종사 의식상실"이라는 이해하기 힘든 이유로 추락해 버렸고 나머지 기체들도 과연 내년까지 모두 들어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독자적으로 전투기를 개발하기 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필요할 것이고 그때까지 수입은 불가피할 것이다. 40대로만 끝날 문제가 아니다. 계속 들어올 전투기들이 합리적으로 선택될 수 있도록 여론이 형성되었으면 좋겠다. 한미동맹이라는 말이 선택의 우선요소가 되는 일은 더이상 없어야 한다. 
금요일, 9월 15, 2006
대추리의 빈집철거
미군기지가 들어설 대추리의 빈집들에 대한 철거작업이 진행되었다는 뉴스를 봤다. 우리나라 군부대의 이전과 공공시설의 설치에는 그렇게 반대의견을 존중(?)하는 정부가 미군부대의 이전에는 신기할 정도로 신속한 대응과 추진을 하고 있다. 어떤 일에 미국이 조금이라도 연관되면 이성적인 판단력이 멈춰버리는 분위기가 우스웠다. 미국이 하는 것이니.. 하는 식의 진지하게 보이는 듯한 현실론을 말하는 것은 이미 상식이 되버렸다. 그러면서 그곳 주민들과 도움을 주려는 이들의 저항을 한낱 반대만 일삼는 무리들의 철없는 행동으로 치부해 버린다.
먼저 세계최강의 미국이 하는 행동인데.. 어쩔 수 있냐는 말을 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조선을 일본에 넘긴 매국노들이 동북아 최강의 국가인 일본에게 저항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어쩔 수 없지 않느냐. 우리도 좋아서 이러는것 아니다. 그들이 하자는데로 하는 수 밖에 없다." 라고 말한다면 그건 현실을 아주 직시한 판단으로써 정당화 될 수 있는 건지.. 또 다른 하나, 향후 중국이 초강대국으로 성장했을때 고구려 역사 뿐 아니라 백두산까지 자기네 땅이라고 한다면 "세계 최강의 중국이 그러는데 어쩔 없다." 며 현실론을 펼쳐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인지.
출근길에 두번의 플랭카드를 보게 된다. 하나는 경기도와 서울의 접경지역쯤에 국군도하사령부의 이전을 반대한다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양재IC 근처에서 추모공원의 건립을 반대한다는 내용이다. 둘다 몇년째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문제들이다. 거기에 살던 주민을 나가라는 것도 아니고 주변에 그런 군부대와 혐오시설(?)이 들어온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만큼 난리들인데 멀쩡히 살고 있는 사람들을 나가라고 하는데 대추리에서 벌어지는 저항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닐까.
주한미군의 역할변화와 기지이전의 성격, 주변국가와의 정치적 문제 부터 이전비용, 원주민 대책까지 제대로된 논의과정과 설명이 한번도 없었다. 진지한 설명과 대안 제시, 합의가 없는 미군기지의 이전은 계속해서 더큰 문제를 일으키며 나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화요일, 9월 12, 2006
그래도 명왕성은 돌겠지
얼마전 명왕성이 태양계의 행성에서 빠지게 되었다는 뉴스가 오르내렸다. 태양계의 행성이 되고 안되는게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퇴출, 박탈"등의 좀 살벌한 말들로 포장되어 있어 좀 눈에 거슬리기도 했다. 행성이든 아니든 명왕성은 지금도 열심히 그의 궤도를 돌고 있다는거에는 변함 없을 테니.
명왕성에 대해 자료를 찾아 봤다.
명왕성은 워낙 멀리 있고 크기도 작고 희미해서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그러나 명왕성은 첫눈에 다른 8개의 행성과는 구별된다. 태양으로부터 평균거리가 39.44AU이지만, 근일점거리 43억2천만km, 원일점거리 73억6천만km로 궤도가 매우 찌그러져 있다. 때문에 일정 기간에는 해왕성의 궤도 안쪽으로 들어온다. 1979년에 해왕성 안쪽으로 들어와서 1999년 2월에 다시 바깥으로 나가기까지 명왕성은 실상 8번째 행성이었다. 황도면과의 기울기 또한 특이하다. 다른 행성들이 7도 이내의 궤도면 기울기를 가진 것과 달리 명왕성의 궤도 기울기는 무려 17도나 된다.태양계 외곽에 있는 행성들은 대체로 목성과 같이 질량이 큰 거대행성들이다.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이 이들이다. 그러나 명왕성은 위성 샤론까지 합쳐도 질량이 지구의 1천분의 1도 안된다. 이 때문에 학자들은 명왕성이 애초에 해왕성의 위성이었다가 떨어져 나온 것이거나, 혜성이 궤도가 변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명왕성이 행성이 아니라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된 것은 지난 1992년부터 발견되기 시작한 카이퍼벨트에 속하는 소행성들 때문이었다. 1950년 경 미국의 천문학자 카이퍼는 명왕성 바깥에 혜성과 같은 성분을 띤 작은 천체들이 무수히 많이 있을지 모른다는 제안을 했다. 이들은 목성과 화성사이의 소행성대처럼 거대한 소행성의 띠를 이루면서 인력에 이끌려 태양 쪽으로 끌려들어와 혜성이 된다고 보았다. 지금까지 밝혀진 30-1백AU 사이의 카이퍼벨트에 속하는 소행성들이 수십여개가 발견됐다. 카이퍼벨트의 존재를 확인한 것을 계기로 과학자들은 명왕성이 카이퍼벨트에 속하는 천체의 우두머리 격에 해당하는 천체라고 확신하게 됐다.

국제천문연맹(IAU)은 이러한 명왕성을 행성으로 불러야할지를 놓고 천문학자들을 통해 전자메일 투표를 하려고 한 적도 있다. 일부 국제천문연맹 과학자들은 명왕성을 ‘소행성 10000’으로 불러 소행성 중에서도 기념할 만한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자고 하는가 하면, 다른 학자들은 해왕성 바깥의 천체들을 대표한다는 뜻으로 ‘해왕성 역외 천체(Trans-Neptune Object) 1호’로 부르자는 의견을 내놓았다.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천문학자들 사이에서 그리 의미를 얻지 못한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논의에 불과했다. 이시우 교수(전 서울대 천문학과)는 “천문학자들 사이에서 행성을 말할 때는 명왕성은 아예 제쳐두고 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고 말한다. 이미 천문학자들 사이에서는 명왕성은 행성이 아니며, 물리화학적 특성으로 볼 때 카이퍼벨트의 천체라는 것에 이견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시우 교수는 “만일 명왕성이 궤도를 약간만 달리 잡아 태양 가까이로 오게 됐다면 아마 혜성이 돼 사라졌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제천문연맹은 지난 2월 명왕성을 소행성으로 재분류하지 않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명왕성을 계속해서 행성(Planet)으로 부르기로 했다. 천문학자들에게는 의미가 없는 일이지만, 아홉 행성의 막내로써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전통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수성, 금성, 지구, 화성과 같이 표면이 암석으로 이뤄진 ‘지구형’ 행성과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처럼 가스층으로 덮힌 ‘목성형’ 행성과 달리 명왕성은 지금까지의 관측 결과 대부분이 얼음으로 이뤄져 행성으로 보기에 부족했다. 자신이 속한 ‘카이퍼 벨트’에서 상당한 크기의 천체가 계속 발견돼 불안한 상태로 행성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비슷한 공전궤도에서 명왕성보다 큰 지름 3,000km의 제나라 불리는 ‘2003UB313'이 2003년에 발견돼 퇴출 명분이 명확해진 것이다.
명왕성의 행성 지위상실을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에 비유해 쓴 기사가 있었다. 참 적절한 비유를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궤도 지키기에 여념이 없는 사회의 비정함을 날카롭게 묘사했다.
"... 우리 사회의 가장 변두리에서 한명의 인간이고자 애면글면 살아가다 끝내 '퇴출'당하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시설 생활인들이다. 일그러지는 몸으로 남들과 다른 생활 궤도를 살아야 하는 중증 장애인들, 더욱이 돌봐줄 사람조차 없는 이들이 사회의 냉혹한 배웅 속에 시설 안으로 쫓겨난다. .. " 06/09/10 한겨레 신문 [아침햇발] 명왕성아, 잘 있니? / 박용현
2주전이었던가 인사동에 들렀다가 교보문고로 가는길에 종로구청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장애인들을 보았다. 위의 기사는 그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나는 그때 그 사람들의 이유가 뭔지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미 그들은 내 생활과는 전혀 다른 궤도의 사람들이었다. 이런 상황인데 그들과 나는 같은 사회의 구성원 일 수 있는 걸까. 함께 대한민국이라고 외칠 수 있는 걸까.
월요일, 9월 04, 2006
가을 느낌.
가장 좋아하는 계절 얘기가 나오면 항상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그 때" 라고 대답을 하곤 했다. 아직 여름에 있지만 어느날 아침 이나 저녁 무렵에 스며있는 서늘한 느낌이 참 좋기 때문이다.
어제 휴일 당직 근무를 서고 10시경 사무실을 나설때 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런 기운이 막 밀려오고 있었다. 올해 들어 그런 느낌을 받은건 어제가 처음은 아니었다. 출근길 건널목앞에 서있을때 짧아져 채 아파트를 넘지 못하고 있는 햇살 하며 열대야로 밤잠을 설칠때 문을 열어도 더운 바람이 들어오는 기운이 더이상 느껴지지 않았을때 부터 가을이 어느새 찾아오고 있구나 하는건 머릿속으로 헤아리고 있었다. 왠지 어제서야 나는 가을이 왔구나 하는걸 머리부터 몸까지 받아들이게 된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가을이면 참 센티멘탈한 일들도 많았고 산에도 자주 찾아갔던거 같은데 예전과는 다른모습으로 가을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이런 것들은 계속 가져가고 싶다.
매년 맞이해온 가을이지만 91년 화악산 진지공사때의 가을이 내 몸속에 남아있는 가장 찐한 가을인거 같다. 그해 늦여름부터 시작해 가을이 되어서야 끝이났던 작업내내 화악산에서 숙영을 했으니 그냥 가을이 오는 계절속에 풍덩 빠져 있었던것이다. 얼마전 이칠봉을 찾았을때 작업이 끝나고 숙영지로 돌아가던 군사도로에서 그때기분에 잠시나마 회상하고 싶었는데 예상치 못한 일들로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서둘러 내려오기도 빠듯해 아쉬웠다. 이 가을이 다가기전에 꼭한번 다시 가고 싶다.
그리고 이 가을.. 새로운 가을 느낌들을 가득가득 채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