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기구는 주로 연필을 쓴다. 이런 습관이 생긴지도 한 10년이 지난거 같다. 특별히 연필을 좋아 했던건 아니었는데 영화속의 한장면이 연필을 내 삶에서 특별한 존재로 이끈 시발점이었다.
외국의 영화속에서는 오렌지색의 깔끔한 색깔에 지우개가 달린 연필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걸 써보고 싶어 문구점 여기저기를 다녔으나 찾지 못했다. 영화속에서 본 연필의 모습중 기억에 남는 것이라면 좀 엉뚱하게도 쥬라기 공원이었다. 영화장면중 쥬라기 공원에서 새끼공룡을 부화시키는 담당자의 손에 쥐어진 그 연필이 눈에 들어왔다. 클립보드의 내용을 "오렌지색의 지우개가 달린 연필"로 지우고는 지우개 찌꺼기를 새끼손가락으로 슥삭 털어내는 모습에서 그 연필에 대한 욕구는 최고조에 달하기 시작했던거 같다.
당장에 시내의 큰문구를 찾았지만 없었다. 이후로도 간간이 문구점을 들를때 마다 그런게 있나 하고 찾았지만 눈에 띄지 않았다. 그때까지 찾을 수 있었던 지우개 달린 연필은 초등학생을 위해(?) 조악하게 만들어진 것들로써 그다지 손에 쥐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것들 아니면 지우개가 없는 일반적인 연필들이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졸업을 하고 서울로 취업을 해서 올라왔다.
서울에 처음 올라와 몇달간 생활을 했던 신림동을 가끔씩 찾을때가 있었다. 그러던 중 신림동의 한 문구점에서 우연히 DIXON사의 "오렌지색의 지우개가 달린 연필"이 눈에 띄었다. "전율"을 느껴야만 하는 순간이었다. 그 자리에서 몇 자루의 연필을 샀고 집으로 오는 내내 몇번이고 꺼내어 보았다. 다음날 회사에 가서도 별의미 없이 빈종이에다가 몇자 끄적이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연필에 달려 있는 지우개가 넘넘 신기했던 것이다.
그 때 이후로 연필은 내 삶에 중요한 의미로써 자리잡게 되었고 헨리 페트로스키의 "연필"이라는 책을 접한 이후로는 그런 취향에 학문적인 뒷밧침까지 이룰 수 있었다. 필기구를 사용하는 습관은 이 "오렌지색의 깔끔한 몸체에 지우개가 달린 연필"을 직접 만나기 전과 후로 나눠지는 순간 이었다. 확정적인 목적으로 필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연필만 사용을 했다.
쓰고 지울 수 있고 연필을 깍을 때 느끼는 절제의 느낌은 목적에 이르기까지 묵묵히 자신을 깍아 내가며 도와주는 연필은 다른 필기구에서 줄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느낌까지 더해 주었다.
오늘도 나는 변함없이 연필을 잡고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닳아가고 깍여 나가는 연필만큼 내삶의 깊이도 더해져 갈까.
수요일, 10월 18, 2006
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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