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9월 08, 2007

죽음과 함께 춤을

이책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던 계기는 목차에 들어있는 "천국에서 그가 본 것들"이라는 소제목 때문이었다. 죽음이 주는 허망함을 사후세계라는 것에서 그나마 위로를 받아 왔던 나는 현직의사의 입장에서 시후세계에 대한 이야기에 무척 관심이 끌렸다. 서점에 갔을때 내가 생각하던 책이 맞을까 확인을 하려 했는데 재고가 없었다. 좀처럼 이용하지 않는 인터넷을 통해 책을 샀다.

좀 실망을 했다( 내가 바라던 내용이 아니었음 ). 저자는 현직 의사의 자격을 가진이로써 철저히 과학의 입장에서 환자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안락사 시킨 환자의 마지막 모습에서 신비한 느낌을 잠시 언급하기는 했으나 전체적으로 이 사람은 임사체험과 사후세계와 같은 비과학적인 영역은 처음부터 고려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의사의 능력을 필요이상으로 높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오해와 편견을 재치있게 이해시켜 준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삶에 대한 미련과 의사에게 의존하는 모습들을 익살스럽게 표현을 한다. 그런 환상을 심어준 의사들의 한계와 오만을 비판한다.

현대의 의학이 자리잡은 시점을 19세기말 정도로 볼때 눈부시게 발전한 부분은 "병리학, 세균학, 마취학" 이렇게 딱 세부분이라고 말한다. 그 이외의 눈부시게 발전해 보이는 부분들은 각종 편의장치들이 잔뜩 추가되었지만 본질적으로 변한게 없는 100년전의 자동차와 현대의 자동차의 차이를 비유해가며 이해시킨다.

잊을만 하면 심심치 않게 암을 치료할 수 있는 특별한 기술이 개발되었다는 뉴스가 들린다. 심지어는 암치료 성공율이 50%정도라고 선전 하면서 발전된 의학의 성과를 광고 하지만 이런 뉴스들은 1950년대에 발표되었어도 비슷한 성공율도 발표되었을 것이라면서 과장된 현대 의학수준의 현실을 설명한다.

불치병에 걸린 환자에게 행해지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환자 본인과 가족들에게 많은 고통을 주게 된다. 자연스럽게 안락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과연 가능하게 될지는 의문이다. 존엄한 죽음의 문제를 벗어나 치료비 부담의 문제로 안락사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도 숱하게 생기게 될지 모른다.

병원비의 문제가 아닌 존엄한 삶의 마감의 문제로써 안락사를 고민하고 시행할 수 있는 네델란드의 환경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삶과 한번도 떨어진적이 없으며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일이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맞이하기도 힘든 문제이다. 그러기에는 현세에서 맺고 있는것들이 너무나 많다. 모든것들을 포기한다고 치더라도 아이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문제 앞에서 죽음을 쉽게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래서... 내세라도 있으면 거기에서 다시 만난다는 위안이라도 가질 수 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