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3월 06, 2008

정신을 차리자.

이명박 대통령이 기업인들과 직접 통화할 수 있는 '핫라인(Hot-line)'을 만들기로 했다고 한다. '기업인 핫라인'은 청와대 집무실에 별도 유선전화를 두는 것이 아니라 휴대전화를 사용하는데 "퇴근 후에도 전화를 받을수 있어야 한다"는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지난 대선 공약이기도 했던 핫라인은 "이 대통령이 평소 수행비서에 핫라인 전화를 맡겨 연결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업무시간 이후에는 직접 관저로 가지고 가 잠자리에 들 때도 머리맡에 둘 계획" 이라고 했고 공항의 귀빈실까지 기업인들에게 개방한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기업인들이 어느선까지 이며 누구누구의 전화번호를 말하는건지 모르겠으나 대략 다음의 사진에 나오는 인물정도가 아닐까 하는 추측이 든다.

2MB의 청와대 입성의 일등공신은 부동산 투기와 논문표절에 있어 탁월한 실용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이고 있는 그의 측근들이 아니라 2MB가 대통령이 되어 경제만 살려준다면 그동안 그가 저지른 일들은 봐줄 수 있다는 기대심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경제가 정말 죽었거나 파탄이 났었는지 의문을 가져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자료들을 찾으려 해도 경제가 죽었었다는걸 증명해줄 자료가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한국의 경제상황

이상한건 보수 언론과 야당들이 잃어버린 10년이라며 이지메를 가하던 '좌파정부'에서 국민소득이 꾸준히 상승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일이 있을 수 있을까. 경제가 죽었었다면 하락까지는 아니어도 세계 평균성장율은 고려해 평행선은 그어져야 될거 아닌가. IMF이후 '잃어버린 10년'동안 꾸준한 성장을 거듭해 2007년 말 현재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946달러로 2002년의 11,499달러에 비해 거의 2배 가까이 상승했으며, 소위 ‘좌파 정부’가 집권한 98년 이후부터 따지면 근 3배 수준에 도달해 있다. 그 이전의 외환 위기와 이후 환율 정상화를 고려한다 해도 매우 착실히 발전해 왔던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2003년 3.1%, 2004년 4.7%, 2005년 4.2%, 2006년 5.0% 2007년 4.9% 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돌 뿐 아니라, 대략 1~ 3 % 대에 머물고 있는 미국, 일본, 캐나다, 프랑스, 독일, 영국, 스웨덴, 노르웨이, 스위스, 스페인,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핀란드, 오스트리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대부분의 구미 선진국보다 훨씬 높다. 또 이들 선진국들의 과거 발자취를 돌이켜 보면 국민소득 2만~ 3만 달러 사이에서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3.4% 로 현재의 우리나라보다 훨씬 낮았다.

반면 4% 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보인 나라들은 유럽에서는 체코, 헝가리, 폴란드, 슬로바키아와 같은 동유럽 나라들, 그리고 중국과 동남아, 중남미의 개발도상국들로 이 나라들의 1인당 국민소득은 많으면 1만 달러를 조금 상회하거나(체코), 적게는 1천 달러 (베트남) 수준이다. 대충 봐도 이제 막 산업화가 진행되고 있는 나라들이란걸 알 수 있다.

그러면 대체 왜들 경제가 죽었다고 난리들일까. 지금 우리가 겪는 경제적 압박은 노무현의 무능과 별반 관련이 없을뿐더러 이명박의 집권으로 시원스레 해결될 일도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서브프라임 사태와 석유/원자재 값 폭등 및 중국과 동남아 제조업의 약진 등의 국제적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지만, 산업이 성숙기로 접어든 국가에서 겪는 당연한 모습인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6,70년대 같은 기적적인 급성장은 가능하지 않으며, 오히려 경제적 성과의 재분배에 더 관심을 기울이며 체질을 개선해 가는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민생경제를 살릴 방안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중요한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상황에 대해 극심한 착각과 환상에 빠져 있고, 이병박 정권의 탄생 자체가 바로 이런 오류에 기반을 두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벗어나지 못하는 한 앞으로 계속 실망에 실망을 거듭할 일만 남았을뿐이라는 점이다. 그런 실망은 우리나라를 점점더 진정한 절망의 늪으로 밀어 넣고 말지도 모른다.

이런 착각과 환상의 배경에는 박정희 전두환 시대처럼 10%에 가까운 성장을 매년 계속해야만 한다는, 아니면 언제 굶어 죽을지 모른다는 기성 세대의 뿌리 깊은 두려움과 피해 망상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더욱더 그런 체제를 심화시켜나가는 쪽으로 사회를 움직여 가고 있다.
지지자들

이런 비이성적인 불안감을 부추겨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도 존재하고 지지하는 세력이 있다. 그렇다면 그를 지지하고 부추기는 세력들은 누구일까. 얼마전 참여연대의 설문조사에 이명박 정부가 내정한 장관 내정자 중 결격사유가 있는 내정자를 교체해야 한다는 질문을 했더니 ‘교체해야 한다’는 65.3%, ‘별 문제가 아니므로 교체하지 않아도 된다.’가 32.7% 의 응답을 보였다고 한다. 또한 장관인사기준에서 ‘능력이 뛰어나도 도덕적 기준에 맞지 않으면 제외해야한다’는 응답이 47.9%, 불법적 행위만 없다면 개인능력이 우선이다’는 응답은 41.8%, ‘능력이 뛰어나다면 도덕적 기준은 중요치 않다’는 응답이 9.5%였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장관의 결격사유가 별 문제가 아니므로 교체하지 않아도 된다는 32.7%의 국민이었다.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표를 던진 것은 최종 투표율 63%를 100%로 볼 때 48.7%였다. 투표율이 63%이므로, 투표권이 있는 성인의 31%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표를 던진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참여연대 조사와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장관내정자의 도덕성이 ‘별 문제가 아니므로 교체하지 않아도 된다.’는 32.7%와 교묘하게 일치된다. 대체 국민의 32%가 어떤 사람들일까 하는 것이다.

이명박에게 표를 던진 31%가 살려달라는 경제는 뭘까? 그것이 민생일거라고 생각한다면 앞에서 말한 보수언론과 야당의 난리 부루스에 아직 속고 있는 것이다. 절대 아니다. 그들이 말하는 경제는, 아직 부동산과 주식으로 돈을 벌고 싶다는 울부짖음이다. 부동산과 주식으로 돈을 더 벌게 해달라는 메시지인 것이다. 도덕성? 그게 밥 먹여주나? 도덕성 찾는 것=‘무능’, 투기꾼=‘유능’이 되는 세상에서 무슨 도덕성인가?

지지자들의 경제

30대 이상의 사람들은 한국에서 부자가 되는 방법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바로, ‘말뚝 박기’이다. 값어치가 없는 서울 근교의 싼 땅에, ‘신도시개발’이라고 말뚝만 박아놓는 것이다. 그러면 전 국민이 들썩거리면서 다 몰려와 땅값을 올려놓았다. 거기에 콘크리트로 닭장처럼 아파트만 올리면 된다. 그럼 강남의 땅값을 저절로 오른다.

주식? 역시 쉽다. 이명박의 경우를 보자. 회사 하나를 설립해서 제법 이름 알려진 사람이 사장으로 올라선다. 가수 비도 좋고, 현대사장 출신 이명박도 좋고, 연예인 누구도 좋다. 회사 크게 키운다는 제스처를 취한다. 해외도 진출하는 척 한다. 물론 이때 외국지사 하나 설립해 놓으면 더 좋다. 주식 값이 올라간다. 마구 오른다. 직원들에게도 주식을 준다. 직원들도 회사의 주식이 오르니 사 놓는다. 팔고 튄다. 역시 말뚝 박기다. 유명인이 강남에 그럴 듯한 사무실 차려놓고 말뚝만 박아놓으면 됐다. 이게 소위 말하는 역대 정권 경제 살리기였고 국민들은 아직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이명박의 지지자들이 말하는 경제는 민생경제가 아니라 부동산과 주식수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경제에 다름 아니었다. 그런 경제의 부흥을 원하는 사회지도층과 여론 주도층들의 바램과 지지로 이명박은 대통령직에 당선될 수 있었다.

실용주의
이명박 대통령이 내세운 실용주의란 무엇일까. 실용주의는 20세 초, 듀이란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다. 굳이 해석을 하자면 지식에 몰입되지 않고 경험에 따라 행동하는 세계관(?) 정도로 해석하면 될까?

‘실용’이란 말을 깊이 있게 이해하려면 왜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이런 사상이 나왔는가 하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유럽은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고 노동자 착취가 극에 달했다. 유럽은 전통적으로 계급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계급적으로 대립하면서 사회가 변화한다.

계급적 사회가 아니었던 미국은 조금 달랐다. 그때 등장했던 사상이 바로 ‘실용주의’이다. 당시 왜 미국에서 실용주의를 받아들였는지 이해 해야 한다. 20세기 초반 전세계를 휩쓸었던 공산주의가 미국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실용'은 악용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 수 있는 사상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지식보다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논리는 이념을 배격할 때 방패막이가 되어줄 수 있다.

이명박 정권의 예를 들자면, 이념이란 쓸모없는 것이고 사회의 진보를 방해하고 있다는 식의 발언을 이미 하고 있지 않은가? 미국은 이 실용주의라는 무기로 교묘하게 자본가들을 보호했고, 그 결과로 유럽보다 더 잘 살면서도 국민의료보험 조차도 확립시키지 못하는 나라로 전락했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는 이 실용이란 말을 세워, 부동산과 논문표절에서 실용적인 일들을 해온 이들을 장관으로 기용해 정책기구에 버젓하게 앉혀 놓았다. 이런 문제있는 인사를 과감하게 행할 수 있는 것은 오만하다고 할 만큼 지나친 자신감, 즉 그의 실용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앞으로 또 이명박 정부가 또 어떤 실용을 내세워 무슨 짓을 할 지 걱정 된다.

이명박 정권의 좋고 싫음을 떠나 내가 속한 사회, 가정이 편안하기 위해서라도 오류를 가지고 있는 문제점 들에 대한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가지고 고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잘못된 현실인식과 정책이 실용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지지 받고 추진된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잃어버린 시간들이 될 것이다.

참조한 글들

국민 32%를 적으로 만들기
[칼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기적이 아니라 상식이다.
우리들의 무서운 적, '실용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