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12월 29, 2007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

학생시절에 연극관련 과목의 과제를 위해 봤던 연극이었다. 이후로 나의 일기장에는 생활이 팍팍하게 느껴져 "자기감각, 자아" 등의 말이 필요한 때면 내용을 상기하며 유쾌하게 끝난 연극의 마지막 장면처럼 "카사블랑카여 다시한번!" 으로 마무리를 지으며 다짐을 새롭게 하곤 했다.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영화 카사블랑카를 보면서 영화속의 주인공(험프리 보가트)를 닮고 싶어하는 주인공 앨런의 독백으로 연극은 시작된다. 그는 아내에게 이혼당한 남자이며 꽤나 소심한 성격이다. 친구인 딕과 그의 아내 린다의 도움으로 앨런은 많은 여성을 소개받고 만나지만 지속된 관계로 이어지지 않는다. 나름대로 작업성 멘트를 준비하고 상황을 만들려 하지만 어리숙한 치장을 한 한심한 모습을 하고 있는 앨런에게 호감을 느끼는 여성은 없다. 만날때 마다 퇴자를 맞게 된다. 낙담한 앨런을 린다는 다독거리면서 위로한다. 차츰 린다와 사이가 가까워진 앨런은 그녀에게 마음을 품게 된다.

한편, 딕은 아내가 다른 남자와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만 설마 그가 앨런일 것이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다. 연극은 마지막으로 가면서 앨런과 린다는 연인 사이로 발전하지만 관계가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은 서로 알고 있다. 결국 앨런은 살아가는데 있어 중요한건 자아존중감 이라는걸 알게 되고 어설픈 치장 대신 솔직함에서 오는 자신감으로 상대방을 대하게 됨으로써 드디어 매력적인 여성과 데이트 약속을 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행복한 결말로 끝을 낸다.

연극의 재미있는 설정으로 험프리 보가트의 분신이 연극 중간중간에 등장 한다. 긴 코트를 입고 나타난 험프리 보가트는 자아존중감이 약한 앨런에게 시시콜콜 간섭을 하며 조언을 한다. "자, 이제 그녀에게 키스할 때라구. 머뭇거리지 마." 이런 식으로 충고를 들려준다. 자아를 잃어버리고 대중매체속의 가공된 이미지 또는 타인에 대한 의식이 중심에 서서 그것에 이끌려 가는 사람들의 혼란스러움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에 앨런이 자아존중감을 가지게 되었을때 험프리 보거트는 더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앨런의 마음속에 자기자신이 제일 먼저 자리를 잡게 되었고 누구의 눈치볼 필요없이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게 된 것이다.

연극은 코믹하게 이뤄져 있다. 어슬픈 앨런이 작업을 걸때 사용한 대사중 기억에 남는 부분이다.

알렌 : 토요일 저녁에 뭐 할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여자 : ( 나가며 )자살 할 거에요.
알렌 : ( 나가는 여자를 뒤쫓으며 ) 그럼 금요일은요 ?

세상살이라는게 여러 조직에 얽매여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내가 내 삶을 살아가는게 아니라 타인의 의식에 얽매여서 살아가게 될때가 많다. 마음의 중심에 나 대신 타인이 대한 의식, 타인의 생각이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괜한 일에도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다. 스스로 헤쳐가야할 일에도 다른 사람의 눈을 먼저 의식해야 한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로써 완벽한 삶이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문제점들을 일으키고 또 안고 가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중요한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모두 내것으로 인정을 하고 받아 들이는 자세일 것이다. 장·단점을 받아 들이고 스스로 해결해 나가려는 자아존중감이야말로 세상살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2008년이다. 새해에 또 다시 외쳐본다.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