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12월 30, 2006

셰르파, 히말라야의 전설



오늘 아침 본사에 서류 제출차 들렀다가 프로젝트 사무실로 오는 길에 읽고 있던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었다. 미국의 작가이며 사회운동가인 조너선 닐이 그동안 업적에 비해 등반가들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셰르파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냈다.

셰르파의 존재에 대해 궁금함을 선뜻 떠오른 두가지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1,2 학년 무렵이었던거 같다. 고상돈씨가 우리나라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올랐었다. 정상에서 찍은 사진이 바른생활인가 하는 교과서에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목적을 달성한 훌륭한 사람으로 본 받아야 할 사람으로 배웠던 이야기였다.

교과서의 내용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거기에서도 같이 올라갔던 셰르파 이야기는 잠깐 언급이 되었던것을 기억한다. 그때도 궁금했었다. 정상에 서있는 고상돈씨의 사진을 찍어주었던 그사람은 누구였을까 하는 자연스런 의문을 가졌다.

또 하나는 얼마전까지 매주 일요일이 끝나고 월요일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간에 방송국에서 '산'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매주 연속으로 하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있었다. 한번은 어느 지역의 산악회원들이 히말라야에 있는 어느 산을 갔던 이야기가 2주동안 연속으로 방송되었었다.

힘겹게 올라가는 이야기를 꽤 실감나게 봤던거 같다. 그러면서 또 셰르파들에 대한 자연스런 궁금점을 가지게 했었다. 같이 올라갔던 셰르파에 대한 이야기는 잠깐 잠깐 언급이 되었었지만 좀 위험한 등반 구간마다 고정자일을 설치했던 셰르파는 그저 지나가는 이야기 였지만 정상에 올라 기뻐하는 모습에서 까지 셰르파에 대한 이야기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궁금한 마음은 계속 남았다.

신문의 한켠에서 이책의 출판소식을 듣게 되었다. 지체없이 퇴근길에 교보문고를 들러 당장 사서 읽기 시작했다.

20세기초 제국주의의 광풍은 세계속의 오지였던 히말라야에까지 불어 미답의 봉우리들을 먼저 올라가기위한 경쟁이 국가간의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때까지 히말라야 고원의 척박한 환경속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또다른 생계수단을 제공해 주는 계기가 되기 시작했었다.

조너선 닐은 등반의 성공을 위해 많은 희생을 겪고도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를 셰르파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해간다.

위대해 보이기까지 하는 히말라야 봉우리 등정의 업적뒤에 숨어있는 추악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밝힌다. 지금에의 셰르파들이 등반가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그들의 일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과 노력이 있었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다.

책을 처음 집었을때 책의 중간 부분에는 카메라 시선을 외면하면서 초췌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네명의 셰르파 사진이 있다. 사진속의 사연을 알아갈 수록 그들에 대한 연민과 초기 서구 등반가들의 무책임한 행동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연은 다음과 같다.

"...1934년 눈보라가 몰아치는 낭가파르바트(8,125m)의 길고 긴 능선 위에 16명이 고립됐다. 등반을 주도한 독일 등반가들은 셰르파족과 허약해진 동료들을 버려둔 채 스키를 타고 도망쳤다. 남은 이들은 며칠 동안 악몽 같은 밤을 보내며 내려오다 처참한 동상을 입고 모두 9명이 사망했다... "

그때 살아서 내려온 사람들이 사진속의 사람들이었다.

셰르파는 오랜 세월 동안 백인 등반가들에게 동료로 대접받지 못했다. 셰르파는 언제나 백인과 다른 텐트를 사용했고, 텐트가 부족하면 그냥 눈 쌓인 산위에서 자야했다. 백인들이 고기를 먹을 때 셰르파는 빵을 먹었고, 침낭도 없이 담요만 두르고 잠을 자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백인들은 원정에 실패하면 실패의 책임을 셰르파에게 돌렸다.

조너선닐은 서구의 인종우월주의 모습의 예로 에베레스트 초등을 든다.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와 뉴질랜드의 등반가 에드먼드 힐러리는 함께( 그렇게 말하기로 그들은 합의했다 ) 정상에 올랐다. 물론 셰르파가 포함되지 않은 같은 등반대소속이었던 영국인으로만 구성된 정상 공격조가 있었지만 그들이 실패했기에 그들이 최초의 등정자가 될 수 있었다.

어찌되었건 힐러리는 영국의 연방국가 소속의 국민이었다. 그래서 영국은 그들이 세계최초의 등정자라고 자랑할 수 있었다. 힐러리에게는 작위까지 수여되었지만 텐징에 대한 이야기는 끼어들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이 식민지로 가졌던 국가의 변방 사람의 도움으로 올랐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거다.

이 책의 마지막은 1980년에 있었던 등반가들의 회의에 있었던 일화를 이야기 하며 끝을 맺는다.

"1980년 히말라야와 인접한 인도 북부의 작은 도시 다르질링의 히말라야 등반학교에선 유명한 등반가들의 회의가 열렸다. 청중 속에는 1934년 낭가파르바트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7명 중 한 명인 앙 체링(96)을 비롯한 셰르파들이 앉아 있었다. 평생을 빵을 위해 사선을 넘나든 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화가 치밀었다. 참다 못한 그들은 마침내 연단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소리쳤다.“셰르파는 어디에 있지. 우리가 짐을 날랐어. 우리들은 어떻게 됐지. 왜 당신들은 당신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거야. 당신들은 셰르파가 없었다면 결코 그 일을 해낼 수 없었을거야.”